시국선언, 통섭 그리고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본다. 이명박과 각을 세우는 서울대 교수들의 존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황우석 교수 사건때도 그랬지만, 탄핵 정국때도 대운하 반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울대라는 넓은 공간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한 생물학자의 이름을 본다. 출국 전 유일하게 만나뵌 교수님. 당연히 이번 시국선언에서 그 분의 이름을 보리라고 기대했었다. 거칠면서도 거칠지 않은, 과학자로서는 가지기 힘든 그런 진보적 시각을 지닌, 그러면서도 과학자로서의 기대에도 언제나 부응하고 계시는 그 분의 존재는 나에게 매우 큰 것이다. 이준호 교수님. 그 분의 이름은 이번에도 여전히 그곳에 그렇게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이름을 본다. 김빛내리. 실상 내가 연재하고 있는 <미르이야기>는 내가 RNA를 연구하기도 했지만, 김빛내리 교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꾸며보려던 시도였다. 나는 그의 강의에서 받았던 감동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고, 황우석 사태에서 대학원생들의 인권을 보듬어준 그 따뜻함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서 이름을 본다. 그냥 이름 하나 올리는 상징적인 것일 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일에는 용기가 뒤따를 테다.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과학자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내가 알고 존경하는 한국의 두 생물학자가 시국선언에 동참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미가 큰 사건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보다 더 크다. 카이스트, 포항공대는 과연 시국선언에 동참할까? 철저히 과학자와 공학자로 구성된 이 강단의 교수들은 서울대나 연세대, 중앙대의 교수들과 같은 인식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과학자나 공학자가 나댈 일은 아니라고 조용히 몸을 사리지 않을까? 그러고도 지식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아니, 스스로 지식인임은 애당초 포기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통섭이라는데, 이 땅의 과학기술자들은 사회의 변화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런 것은 애당초 통섭이 아닌 까닭이다.

진중권이 한예종에서 수행한 연구프로젝트의 이름이 “통섭교육과정 연구 및 통합세미나 운영”이란다. 통섭이라는 말은 이제 완전히 정착한 것 같다. 한예종에서조차 통섭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걸 그냥 학제간 연구의 세련된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의를 알고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게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통섭과 어떤 측면에서 상통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시국선언, 통섭, 김빛내리. 내가 생각하는 그 미래를 언뜻 스쳐지나가는 화두들이다. 과학자, 정치, 통학서원. 답답하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뭔가 화두들이 보이니 다행이다.

진중권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유유자적한적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진중권도 긴장하고 있으니까. 이겨라. 노무현처럼 죽지마라. 싸움은 길고 갈 길은 멀기만 하다.


33 thoughts on “시국선언, 통섭 그리고 김빛내리

  1. 홍석욱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인 줄 알았는데, 생물학자. L 선생님 말씀하시는 가보군요.. 화두들이 꺼지지 않고 다양하게 분출해야 할 것 같네요… 그 화두들의 역동성이 뭔가를 만들 수 있겠죠..

    다들 한 목소리로 똑같이 정권에 대한 분노를 뿜는 전선을 만든다고 그 자체가 뭘 달라지게 할 지에 대해서 의문입니다..

  2. 분노로 시작해야겠죠. 문제는 멍청한 민주당이 과연 거국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제가 민주당 지도부라면 누구 사퇴, 대통령 사과 같은 카드 안꺼냅니다. 당장 국회로 쳐들어가면서 노대통령의 유지를 받든다는 명목으로 선거법 개정, 검찰개혁 카드를 쓰겠죠. 총사퇴, 내각전면교체. 이런 걸로 뭐가 바뀐 적은 한번도 없는 듯 한데, 정치인들은 이런 놀이가 재미있나 봅니다.

  3. 인적 쇄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중요한 거점을 뺏기지 않는 것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치라는 게임의 클리셰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그 사람들. 아무튼 저도 김빛내리 교수를 비롯해 자연대 교수들 이름을 몇몇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철학과 교수가 없어요. (먼산)

  4. 김빛내리 교수님은 게다가 이쁘다는..(먼산). 이슈가 별로 철학적이지 못하자나요.

  5. 그나저나 도올은 도대체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촛불때도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계속 인터뷰를 했던 그가 지금 여기 없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신 건 아닌지 걱정이다. 명예회복을 하시려면 다짐했던 철학적 작업들은 완성시키셔야 할텐데 말이다. 기우이길 바랄 뿐.

  6. 아침 뉴스보고 관심있어 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빠르시네요….
    서울대 자연대는 내부에서는 정치적이라고 욕먹기도 하지만 (공부나 해라…..포항공대보다 나은게 뭐냐….라고 ^^;)
    과학자들이 보다 목소리를 확고하게 냈다면 세상은 좀 더 바뀌지 않았을까 합니다.

    잘 지내시나요? :)

  7. 어제 시국선언 예고가 나온 후로, 실험실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래도 이번엔 혈연과 관련해서 문제가
    좀 있어서 참가하기 무리 아니실까 했는데 오늘 발표된 명단에 이름을 올리셔서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늘 의외의 뭔가가 있으셔서 참 멋있으세요. ^__^

  8. 연세대학교 대학원생으로서 저희 교수님도 시국선언에 동참하셨으면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9. 이영훈은 개과천선했나 몰라.
    난 그 패거리들의 변명을 듣고 싶은데.

  10. 이영훈은 개과천선했나 몰라.
    난 그 패거리들의 변명을 듣고 싶은데.

  11. 거기 가셨군요. 잘 된 일입니다. 좋은 연구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깜짝 놀래키시길.

  12. 핑백: 익명
  13. 제 이야기는 분노의 귀결이 가시적인 ‘적’ 하나를 부수는 걸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시적인 ‘정권’ 자체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같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죠. 연대는 필요하지만 그 안의 차이들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것들의 실마리를 풀려는 노력이 함께 가야합니다. 그 안에서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함께 이루어져야 겠죠.

    어쨌거나 민주당의 전술에 대해서는 GG.

  14. 도올 선생께 크게 기대할 것이 남아 있습니까? 저로선 별 기대 안 하고 있습니다만…

  15. 친한 선생님들은 (과장 보태서) 다 아직 교수가 아니시라는. ㅈㅈ

  16. 김빛내리 선생님과 이준호 선생님의 수업은 제대로 들어본 일이 없고, 홍성욱 선생님, 이건수 선생님과 이현숙 선생님 수업을 즐겁게 (열심히가 아님) 들었었습니다. 게으르게 수업 들으면서도, 아, 저분들은 능력있고 성실한 과학자이면서 좋은 교수자구나 하는 뽀오스가 느껴지는 분들이셨는데, 시국선언에서 함자를 발견하게되니 반갑더라구요. 잘 모르는 중에도 이현숙 선생님은 강남 사람중에서도 진골 출신에 속하는 걸로 알고있는데, 이런 일마다 빼놓지 않고 서명하시는 것 같더군요.

  17. 그냥 건강이 염려되는 겁니다. 기대하는 건 하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이론서 한권.

  18. 강남좌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홍성욱 교수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과학사가도 아니고, 기술사가 전공입니다.

  19. 홍성욱 교수의 수업도 청강해보세요. 저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건질게 있을 겁니다. 과사철이 있는 대학에 다닌다는 건 좋은 기회입니다. 비판적으로 들으시되 많이 기웃거리시길. 학부시절 전 그런걸 지도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공부에 도움이 될 겁니다. 젊은 분들이 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처럼 개고생하지 마세요. ^^

  20. 한예종에서는 현재 예술 분야 간의 복합, 예술 및 과학, 인문 등의 융복합을 추진하는 통섭 교육을 5년 계획으로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이유없이 유인촌 장관은 ‘그냥 하던 것이나 하라’ 며 통섭교육과정에 지급되었던 모든 예산을 일방적으로 회수해갔지요. 예술계 인사들 사이에서 각각의 주장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것을 중간의 위치에서 명확하게 판단해주어야 하는 곳이 정부인데, 지금 정부는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색이 다른 쪽에게는 너무 쉽게 ‘좌파’ 라는 딱지를 붙이고 숙청에 들어가고 있지요. 실기 중심 학교니 모든 이론과를 없애고 실기과만 만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예종에서 하고 있는 통섭교육도 맘에 안드는거겠죠. 대체, 이론 없는 실기가 어디있답니까. 그럼 그냥 ‘기술자’ 지 뭐하러 대학 다니나요. 하긴 뭐 노사모도 범좌파단체로 분류되었다는데, 말 다했죠.

  21. 이게 초대총장이 저지른 일들 중 가장 잘못한 일입니다. 근데 이거 빼고 초대총장은 꽤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22. 한예종에서조차 통섭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이 표현 참 거슬리네요

  23. 한예종을 폄하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통섭이라는 잘못된 용어가 남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특히 통섭의 의미가 과학을 기초로 여타 학문을 흡수하려는 시도인데, 한예종과 같은 예술종합대학이 이 용어를 무차별 수입하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제가 한예종을 무시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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