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과학자헌장


버날이 세운 단체 중의 하나가 과학노동자연맹(National Union of Scientific Workers)이었다. 1948년 이 단체는 과학자 헌장을 발표한다. 양신규의 글 중에서 인상깊었던 것이, 그가 과학기술자를 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PD계열의 노동활동가 누군가와 논쟁했다는 거였다. 당시 그 노동계의 선구자께서는 그걸 거부하셨다는데 국가지도자건 노동지도자건 뭐건 한국엔 과학이 들어설 여지는 원래 없었다.

버날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이 과학자 헌장은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봐도 손댈 구석이 별로 없다. 헌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 세기 동안에 과학은 전세계에 걸쳐서 인간생활의 조건을 통제하는 주요 요소로 되었다. 과학은 세상에서 격리되었던 소수인의 천직이었던 것이 현재 50만 정도의 남녀가 본업으로 삼고 생활수단으로 삼는 것으로 바뀌었다. 과학은 대학·산업·행정에 있어서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고, 또 거의 그에 못지않는 직접적인 영향을 다른 수백만의 사람들 —기사·의사·농업기술자 등 과학의 지식과 방법의 응용을 필요로 하는 사람— 에게 미치고 있다.

과학자라는 새로운 직업은 매우 급속하게 등장한 것이었기 때문에 의학이나 법률처럼 오래 된 직업의 경우에 책임과 권리에 대한 규정이 차례차례 전통적으로 성장한 것처럼 천천히 발달할 여유가 없었다. 한편에서는 과학의 무시,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의 무책임한 사용 등 여러 가지 나쁜 결과가 최근에 들어와 너무나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장차 이것을 막을 하나의 방법은 과학자가 사회에서 책임 있는 공인된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뭐하나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다. 그냥 보는 그대로이다. 과학이라는 지식체계의 중요성과 위험성에 대한 과학자와 사회 모두의 자각, 그리고 과학의 옳바른 사용을 위해 과학자들의 지위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옳바른 교육을 위해서 전교조가 필요하고, 공무원들의 권익을 위해 공무원노조가 필요한 것처럼, 과학자들도 그들의 지위를 위해 노조가 필요하다. 국내에 그런 단체들이 꽤 있다.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 그럼 국내 과학사학계의 대부로 군림하고 계시는 송상용님 -게다가 이 분은 유네스코 한국지부의 회장이신가 그럴텐데- 이 주도로 작성하신 과학자헌장을 살펴보자. 헌장을 자세히 살펴봐도 과학의 옳바른 사용을 위해 과학자의 공인된 지위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말 따위는 없다. 이런 말은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혜택을 가져왔지만 대량살상무기 개발, 환경파괴, 기술적 재난, 사회적 불평등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 1999년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세계과학회의(World Conference on Science)는 과학자의 윤리강령 제정과 과학의 사회적·문화적 측면 연구를 강조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적 위상이 부각되고, 최근 정보통신기술 및 생명공학과 관련된 사회·문화적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과학기술자 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에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과학기술자의 자세, 책임의식 및 윤리 등에 관한 과학기술자 헌장을 제정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미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적 위상은 ‘부각’되어 있는 것이다. 이게 인문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된 한국 과학자헌장의 발제자들이 가진 현실인식이다. 나는 모르겠다. 그게 막대한 연구비가 지원되는 현대과학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그들의 질투심인지, 아니면 그냥 과학에 대한 적개심인지. 가끔은 과학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과학학자들이라는 족속들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기분 나쁘니 다시 버날이 만든 헌장으로 돌아가자. 헌장의 첫머리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과학의 사용에 대한 책임은 과학자와 일반 대중의 연대책임이어야 한다. 과학자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치적·경제적·기술적 세력을 지배하고 있지도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과학자는 과학지식의 무시 또는 남용이 사회에 유해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지적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와 동시에 사회는 과학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평가하고 이용하는 능력과 나아가 그러한 의사를 지녀야 한다.

나는 언젠가 과학이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사회도 과학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버날도 같은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은 참으로 과학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회인 것 같다. 그래서 과학학자들로 구성된 한국 과학자헌장의 발제자들은 과학자들에게 윤리적 책임만을 강조하시는 거다.


4.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기술자는 일반 대중과 달리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거나 그것을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용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

4.1 과학기술자는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양심적으로 선택된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개발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주의 깊게 성찰해 그것이 자신의 도덕적 원칙과 맞지 않을 때 거부해야 한다.

4.2 과학기술자는 과학기술이 사회와 환경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먼저 발견하고 평가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자는 부정적 영향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이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고 일반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이를 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4.3 과학기술자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에 대한 토론에서 자신들의 지식이 닿는 데까지 최대한 독립적·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해야 한다. 과학기술자는 전문적 조언을 제공할 때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하며, 어떤 과학기술 지식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를 공개해야 한다.

4.4 과학기술자는 생명과 평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할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 따라서 과학기술자는 생태계 보전에 도움을 주는 과학기술, 전지구적 및 국지적 평화를 위협하지 않는 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헌장 어디에도 사회와 과학자가 연대책임을 져야 하며, 사회에도 과학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구절은 없다. 무조건 과학자들만 죽어라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건 과학자들이 배부른 부르주아지이며 그들이 소유한 지식이 지나치게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송상용님을 비롯한 국내 과학학자님들의 생각인거다.

버날도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국 과학헌장 따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말이 등장한다.


1. 과학자의 책임

과학이 선용되는가 악용되는가에 따라 빚어지는 결과는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과학이라는 직업에는 시민이 보통의 의무에 대해 지는 책임 외에 특수한 책임이 따른다.

특히 과학자는 대중이 가까이 하기 어려운 지식을 갖고 있든가 또는 그것을 쉽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지식이 선용되도록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책임은 과학자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과학에 대하여
① 과학연구의 건전성 유지, 과학적 지식의 억압과 왜곡에 대한 저항.
② 과학적 성과의 완전한 공표.
③ 인종적 내지는 민족적 장벽을 넘어 다른 과학자와 협력할 것.
④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균형을 올바르게 고려하여 과학의 발달을 확실하게 할 것.

사회에 대하여
① 과학, 특히 자기 자신의 분야가 당면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문제들에 대하여 지니는 의미를 연구할 것. 그리고 이런 지식이 광범위하게 이해되고 실행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
② 기아 및 질병과 싸우고, 모든 나라의 생활과 노동조건을 평등하게 개선하기 위해서 과학을 사용할 새로운 방법을 탐구할 것. 이 경우 궁극적으로 같은 목적을 지닌 모든 조직 및 개인과 협력할 것.
공공행정의 모든 측면을 연구하고, 과학적 방법이 충분히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또 이 분야에서의 과학의 진보가 갖는 의의를 국민과 정부가 항상 알 수 있도록 할 것.

세계에 대하여
① 과학의 국제적 성격을 유지할 것.
전쟁의 근원을 연구할 것.
③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안정된 기반 구축을 추구하는 세력을 지원할 것.
④ 과학자의 노력이 전쟁준비의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하여, 특히 과학이 대량 파괴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 반대할 것.
⑤ 비합리주의·신비주의·인종차별·권력 찬미 등과 같은 반과학적 사상에 의해 고취된 운동에 저항할 것.

문맥을 잘 살펴 읽으면, 과학자들에게 윤리적 강령을 종용하는 한국 과학자헌장 따위와 버날이 만든 과학자헌장이 어떻게 다른지 눈에 보일 것이다. 전자에서 과학자는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해 소극적 존재로, 후자에서는 적극적 존재로 그려진다. 전자는 과학자들에게 사회로 나오라고, 너희들의 막중한 책임을 인지하라는 윤리적 명령을 내리는 데 그치고 그들을 사회에 내보내기엔 조금 위험한 아이, 혹은 돌아이로 보는 반면, 후자는 과학자들에게 사회와 정치의 영역으로 뛰어들라는 적극적인 명령을 내린다. 나는 송상용님이 참으로 존경스러운 것이다. 과학자들을 불을 가진 어린 아이로 보는 부모의 심정으로 이런 조악한 과학헌장 따위를 만드신 송상용님이 참으로 존경스러운 것이다.

송상용님의 과학자의 지위에 대한 해법은 참으로 독특한 것이다. 아래를 보자.


과학기술자는 의사, 변호사 등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전문직업과는 달리 피고용인의 신분을 갖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반면, 과학기술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다른 전문직업에 비해 공공적 성격을 더 크게 갖는다. 따라서 과학기술자가 사회 전체에 대해 지는 책임과 고용주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과학기술자의 책임윤리 실현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6.1 과학기술 단체는 소속 회원들에게 윤리적 행위지침을 제공하는 윤리강령을 자체적으로 제정하고, 이에 따른 상벌과 쟁점이 되는 사안의 평가를 위해 상설 윤리위원회를 구성, 운영해야 한다.

6.2 과학기술 단체와 정부 관련부처는 사회적 쟁점이 되는 문제를 제기한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6.3 과학기술 단체와 정부 관련부처는 분쟁해결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이를 위한 공식 절차를 마련해 내부고발 등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6.4 과학기술 단체와 정부 관련부처는 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의 활성화를 위한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 단체는 소속 회원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독립적 조언을 제공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또한 정부 해당 부처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을 파악하고, 이에 대해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쟁을 조직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과학기술자들은 의사나 변호사와는 달리 피고용자이지만, 그들의 서비스는 더욱 공공적이란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이들의 ‘윤리강령’을 제정하는 일이다. 이들이 좌파 맞는가? 그래서 해결책이 ‘내부고발자’ 보호제도인가. 분쟁해결기구인가. 과학자의 사회적 지위가 ‘부각’되고 있다는 분들이 무려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 ‘피고용자’에 불과한 과학자들에게 ‘윤리적 강령’이나 부과하자고 말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송상용님 참 짱이지 않는가?

버날이 만든 과학자헌장은 이후 과학자의 지위를 위한 조건을 심지어 급여와 여가시간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후진국에 대한 과학연구지원이라는 범세계적 요구를 한다. 이러한 버날의 요구가 유네스코로 이어진 것이다.

자 그럼 송상용님이 만드신 한국 과학자 헌장은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계실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 가난한 인문학자들께서는 너희 과학자들을 이용해 우리 배를 좀 채워야겠다”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자 그런 구절들(게중에는 참 황당한 것도 있는데)을 옮겨보자.


2.2.5 전통과학기술의 가치를 인식하고 전통과학기술과 현대과학기술의 조화로운 발전을 모색한다.

7.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

오늘날 윤리, 사회, 문화, 환경, 경제, 보건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많은 사회적 쟁점들은 인문·사회과학 또는 과학기술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요청되고 있다.

7.1 과학기술자와 과학기술 단체는 인문·사회과학자와 협력하여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을 잇는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다학문적(multidisciplinary) 연구 및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 관련부처와 지원기구는 이를 위해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 STS)의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

7.2 과학기술자와 과학기술 단체는 과학기술윤리 연구 및 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7.2.1 과학기술자의 교육과 훈련 과정에서 과학기술윤리와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이 그 필수적인 부분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공계 대학 및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윤리가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되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7.2.2 과학기술 단체는 과학기술윤리 교육 및 연구의 현황을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한편, 소속 회원들이 인문·사회과학자들과 협력하여 과학기술윤리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

참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전통과학이라 함은 아마도 한의학을 말하는 것일게다. 무려 한의학에 호의적인 분들이 가득한 이 일파들이 이런 문구를 집어 넣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한의학에 증오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의학에 아주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다만 도대체 과학자헌장에 ‘전통과학’ 따위의 비과학적 언어가 들어간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건가, 이들이 제정신이 아닌건가. 7절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저게 통섭으로 보이다면 여러분은 국내 과학학자들에 대해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거다.

이런 위대한 한국 과학자헌장을 작업하신 분들이 모여 계신 곳이 참여연대다. 그러니 내가 ‘좌파에게 과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좌파라면 참여연대에 모여 계신 과학사회학자님들보다 더 빨갰던 버날이 만든 과학자헌장과, 스스로 좌파라고 부르짖으며 시민사회활동과 과학의 민주화 따위를 외치는 분들이 만든 과학자헌장은 왜이리 다른가? 누가 좌파인가?

왕님과 공부할 때, 유네스코에서 왕님을 초청한 적이 있었다. 과학자윤리강령이란 걸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왕님은 당연히 상당히 비판적인 내용의 발제를 했고,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송상용님을 비롯한 국내의 대부분의 과학학자들을 만났다. 송상용님의 발제는 참으로 동정이 가는 그런 것이었다. 과학자윤리강령의 제정이 전세계적으로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이라는 보고였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버날이 만든 1948년 과학자헌장. 그것으로 충분한데 자신들 배를 불리겠다면서 과학자윤리강령을 만들겠다는 걸 용남한다면 그건 상식이 죽은거다.

아마 그 때 왕님이 ‘이 자리에 어째 과학자는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까?”라고 말했고, 그 자리에 조금 늦게 오셨던 한 공학교수는 ‘현장에서 과학기술자들이 무슨 어려움을 토로하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윤리강령 타령을 한단 말입니까’라고 말하고는 잠시 후 자리를 떴다. 당연히 실패로 끝난,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는 토론회였다. 유네스코 한국지부 회장에 과학사학자가 과학자의 자격으로 앉아 있는게 한국의 현실이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버날의 과학자헌장엔 이런 말이 있다. 국내의 과학학자들은 버날의 이 말이 무서워서 이 헌장을 과학자헌장으로 체택하지 않은 것이다. 들어라 이 강단의 미치광이들아. 버날이 이 땅에 태어났다면 너희를 박격포로 쓸어버렸을 것이다. 이 과학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아.


과학자가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조건은, 이 헌장 외의 부분에서 그 윤곽이 드러나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정당한 존경을 노력하여 획득한 사회에서만 충분히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존경은 과학의 여러 가능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현대사회에서의 과학의 절대적인 역할을 인식하고, 과학적인 방법과 전망을 집대성하여 사회가 그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① 과학에 대하여 충분한 자금이 주어질 것.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의 경우 과거에 주어졌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자금이 준비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그 나라의 현재의 연구인력을 충분히 이용하고, 나아가 신규모집과 훈련을 통하여 점점 많은 과학자를 공급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 준비를 의미한다.
② 연구성과가 신속하게 개발되고 실제로 응용될 것.
③ 연구계획이 기초과학 본래의 발전과 과학적으로 산정된 사회의 필요 모두를 고려하여 만들어질 것.
④ 과학자가 모든 단계의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 특히 산업, 입법기관, 정부 및 국제연합 같은 국제적 기관 등의 상급단체의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
⑤ 과학이 인류에 봉사하기 위해 현재 무엇을 하고 있으며, 장차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정부의 선전활동을 지원할 것.

태연이가 뿔났다. 이 침팬지들아.
참고로 나는 블로그에서 누군가를 지칭할때 '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근데 왜 송상용님이라고 했을까? 왜그랬을까? 태연이가 안다.

12 thoughts on “두 개의 과학자헌장

  1. 과학과 가치에 대해 내가 쓴 글이 미묘하긴 한데, 이 글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함. 내가 이야기한 건 “과학자라고 해서 과학의 인식론적 지위가 사회적 개입에 그대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음”이라는 측면에서였고,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 역시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위상과 지위가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과학자 스스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개진, 표명, 실현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함.

    어떤 문제든 여러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인 싸움이 필요한 거라…… 버서커 모드가 필요한 건지도.

  2. 저항!

    한국의 갑부집 아들 젊은 아새끼들은 강남에 찌질한 클럽에서 몇 억짜리 외재차를 주차시켜 여자와 빠구리 뜨는데만 집중을 하니, 돈이란 것은 여자 가슴 위에서만 돌고 돌지 깨어있는 과학자들의 손에는 절대 가지 않는게 문제죠.

    이같이 가슴이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돈 벌기위해 저항을 멈추어야 하죠.

  3. 크크. 전문적 지식을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위상과 지위라……. 이런 식으라면 어떻게 말을 이어갈지 뻔하죠. ‘지식의 위상이란 무엇인가’에 정의를 내리겠죠. 뭐. 이런 식의 전개 방식은 궤변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전문적 지식을 사회적으로 활용하려고 개발된게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이고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윈도우XP이고 인터넷의 자바일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굳이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몰라도 컴퓨터를 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지니까요.

    그런데 이것을 놓고 전문적 지식의 위상과 지위를 따지는건 신선놀음 내지는 궤변에 불과하죠. 위상과 지위에 대해서 떠든다고 XP의 정품 인증 크렉이 개발되어 널리 사람들에게 보급되나요? 괜히 혼란스럽게 만들뿐이죠.

    그럼 신선놀음 하는 자들은 그 놀음말고 무얼해야하는가. 윈도우 XP를 좀더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내는 크레커들의 고충을 이슈화시키는데 한몫해야한다는거죠. 예를 들어 크렉커들이 많은 이들에게 프로그램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도움을 주지만 국가에서 그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려고 할 때 그들이 범죄자가 아님을 대변해달라는거죠.

    이 글은 뭐 이런게 아닐까요?

  4. 대학원생이시더군요. 것도 제국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낍니다. 김치는 충분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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