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민중의 역사학: 최완기

우연히 구글북스에서 보게된 책이다. 최완기라는 학자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우리 역사학계에 이런 학자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그대로 옮긴다. 더불어 저작권법 따위의 제약보다는 이런 중요한 학자를 알리는 것이 더더욱 중요함도 강조하고 싶다.


가진 자의 입장,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는 영웅이나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조선 왕조가 성립된 것은 이성계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고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것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또 왕권이 강화되고 지배 체제가 안정되었을 때는 사회 질서가 유지되어 국가와 민족이 융성했고, 반대로 지배력이 약화되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국력이 쇠퇴하여 역사가 퇴보하거나 외세의 침입을 받아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한다는 식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물론 지배층의 입장에서도 피지배층이 기술되고는 있다. 그러나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통치의 대상으로서만 이해되고 있다. 민중이 사회의 모순을 체감적으로 인식하고 보다 잘 살기 위해 각성하고 단결하는 것을 이른바 난동, 소요, 반란이라고 하여 반국가적으로 보며, 민중은 오로지 ㅈ배층이 마련해 주는 안정과 질서 속에서 체념하고 사는 것만이 착한 백성이고 평화로운 세상은 그러한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식이다. 따라서 기존이 한국 사학계는 그간의 숱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고 체질로 인하여 역사를 바로 인식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편향된 역사 인식으로 인항 기존의 한국 사학계가 심하게 멍들고, 따라서 가지지 못한자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기존 사학계에 대항 변혁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신세대의 대두는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려는 기본적인 이유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실의 삶을 올바로 이해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이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인식의 폭을 넓히고 비판 의식을 길러 세상을 바로 보고 올바로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오늘의 한국 사학계가 위기에 빠져 있다든지, 아니면 최소한 단조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 바람직한 역사이고 그 역사 연구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근본적으로 이탈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엽적 사실에 대한 설익은 설명, 자신만의 관심사에 대한 집착적 연구, 민족과 발전의 문제를 상실한 탈선적 해석을 통해 한국 사학계가 그 위상을 지키고자 하는 한 우리 사학계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모습과 그 조건에 대한 논의 및 논쟁은 빈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솔한 모습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역사성을 추출하여 앞으로 이어질 우리 사회의 청사진과 그 조건 상황에 대한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역사의 주체성과 실천성의 문제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역사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변과/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모순과 과제를 해결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의식적 실천이 필요하ㅏ. 그러한 변혁의 주체는 가진 자, 지배자일 수 없다. 가진 자, 지배자는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강화시키는 데 힘쓴다. 따라서 사회의 변화, 체제의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역사 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다. 민중은 그 사회의 토대로서, 사회의 모순을 절실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변혁에 주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연구가 현실성을 지니고 진보적이기 위해서는 실천성과 민중성에 토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자명해진다. (중략)

하나하나의 개별적 사실은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참된 역사학에서는 죽어 있는 역사를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로 만드는 체계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함에 있어서 역사 이론을 내세운다. 이론의 적용은 역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이론과 같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역사학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사실을 그대로 밝히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특정한 이론만의 강요는 또 하나의 교조주의를 낳는다. 물론 의미의 부여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로서는 그 연구에 임해서 사실은 하나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보적 사학자들이 민중성/실천성을 고양한다 해도 역사학의 본질은 사실성에 있다. 그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증거의 사실성, 논지의 타당성, 서술의 논리성은 역사 인식의 전제 조건인 것이다. 따라서 진보적 사학이 차세대의 역사 인식론으로서 올바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확고한 토대와 합리적 이론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차세대의 역사 인식은 분명히 주체성과 실천성에 토대한 신세대의 역사 인식이 주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민중의 삶, 민중의 투쟁만을 강조한다면 그 역사는 민족사 전체에서 볼 때 또 다른 반쪽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지배 질서와 피지배 질서의 상호 관계를 인정하는 속에서 민중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지난날 우리 겨례의 삶, 그리고 오늘의 우리의 삶은 민중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국왕/귀족/장군/학자/예술가 등 숱한 위인들이 존재하였고, 그들의 사상이나 역할이 역사 전개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대립과 갈등, 불신과 항쟁 속에서 건강한 역사 인식의 정립, 바람직한 역사 의식의 배양은 기대할 수 없다. 오늘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당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역사학의 수립을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 되어 열린 마음으로 시각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민족사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민족의 삶을 이해하는 문제, 민족의 삶에 이바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지난날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의 전개 속에서 다양한 삶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는 항상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그 문제들 가운데에는 옛부터 되풀이되는 해묵은 문제도 있고 ㅅ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여건에서 제기된 낯선 문제들도 있다. 세대간의 갈등, 계급간의 갈등이 특히 고조되고 있는 오늘의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그 같은 역사의 문제들은 입장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이해에서 커다란 시각의 차를 가져오게 하였다. 역사의 문제들은 그것을 발견하고 검토하기 이전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들이다. 우리는 역사의 문제에 해석을 내리고 관점을 보이기에 앞서 몇 가지 인식의 틀을 설정해야 한다. 그것은 합리적이고 발전적이며 주체적인 인식의 틀이어야 한다. 이러한 틀 위에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과제를 먼저 파악하고 그 해결의 방안을제시할 수 있는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

최완기, <역사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조선 사람들>, p347-351

  1. “왕권이 강화되고 지배 체제가 안정되었을 때는 사회 질서가 유지되어 국가와 민족이 융성했고, 반대로 지배력이 약화되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국력이 쇠퇴하여 역사가 퇴보하거나 외세의 침입을 받아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한다는 식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흠… 지금까지 위 논리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미시 역사학(?),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충격적이었습니다. ‘털없는 원숭이’를 읽는 느낌같은…)를 본 뒤로 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린시절에 받은 교육의 효과는 역시 무시할 수가 없군요.

    현대 사회는 저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역사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2. 역사학 교육은 확실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모든 교육이 마찬가지이지만..저는 다 커서야 다시금 역사학의 재미를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3. 주체적인 인식의 틀이라는것이 감이 오질 않네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롭고 자주적인 역사학의 틀이라는걸까요?

    주체적인 의식이란 개개인의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말하는 걸까요?

  4. 쌤, 엉성한 답에 매번 답변을 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고 있습니다. 뭔가 아닌 것 같지만 말로는 못하겠으니 가슴만 답답해지기일 수 였는데 이렇게 정리되는 글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조언해주신 ‘현란한’ 글이 뭔지 조차 잘 이해못하지만 꾸준히 읽으면서 배워보겠습니다. ^^

    오늘 글을 딱 보아하니 중고등학교 역사책 내용이 바뀐다는 일들이 생각나더군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더기처럼 바뀌는 교육 정책이야 매번 있어왔던 일이었지만, 그 내용이 바뀐다는 말에는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되더군요. 교과서라고하면 학계에서 연구되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내용으로 신중하게 쓰여져야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논쟁을 하는 대학원 수준의 지식인도 아니고 사실들을 주입받는 우리나라 어린학생들이라면 더욱 조심스러워야될텐데 말이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얼마나 초라하길래 그 신념과 연구성과를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동에 다른 층에서 얼굴도 마주 하지 않는다는 어떤 학자들(맞죠?르원틴, 윌슨이었던가..)이 있을 정도로 학계는 고집이 쌔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현정부이야기는 뒤로 하고, 오늘의 글 ‘민중의 역사학’은 참 좋네요. 아마 지금까지 역사학은 DNA같은 사람들만 적었나봐요. 쌤말처럼 RNA나 다른 요소들을 무시할 수 없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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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전에 사놓고 못본 책 하나 또 보고 있습니다.(아.. 게놈은 아직 못보고 있어요 ㅠ.ㅠ) 최장집 교수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인데 거기에서 이런 글을 봤는데 좋아서 적어요.

    ~ 허쉬만A.O.Hirshchman이 강조하듯이, 상품시장에서 소비자의 이탈은 상품공급자인 기업에게 소비자의 선호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자기조정의 효과를 갖지만, 선거시장에서 유권자의 이탈은 정당이라고 하는 정치기업에 변화를 강제하는 효과가 약하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지식인으로서 소리쳐 외치고 있는 쌤이 참 고맙다는 겁니다. ^^;

  5. 국가에 위장취업을 해보고자(?)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시대는 기승전결로 이뤄진 한편의 소설이라는 생각을 자주하는 요즘입니다. 지금 시대는 그 중 어디쯤인지 모르겠습니다. ‘결’이라고 믿고 싶습니다만…아무래도…마지막 책장을 넘기기엔 너무 일찍 태어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ㅎ

    시대를 뛰어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타협하지도 못하는 그 지점을 살았던 역사 속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나중에 여건이 된다면 한번 정약용의 저서를 찾아볼까 생각 중입니다.

  6. 역사가 위인이나 소수의 인물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식의 서술에 대한 항거를 말하는 거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민중사가 중요하다는 게 최완기 선생의 말입니다.

  7. 역사학자들은 가장 완고함과 정의감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사마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렇다고 삶에 지친 이들을 어떻게 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역사학에 대한 이야기들은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합니다. 역사가 왜곡되면 현실도 바뀌기 때문에.

    권력에 기생하는 학자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 되지 않는 건강한 학계의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그런 의미에서 제3섹터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있는 겁니다.

    허쉬만의 책 <열정과 이해관계>를 직접 읽어보면 느낌이 잘 옵니다. 좋은 책이예요. DNA와 RNA에 대한 비유를 보니 제가 하고 있는 말들을 완전히 씹어드시는군요. 과분할 따름입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8. 저도 ‘결’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느 시대에 태어나도 그 시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산의 책들은 참 위대하죠. 건투를 빕니다.

  9. 지금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논문에서도 줄곧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정작 역사학 수업을 듣다보면 여전히 우물안에 갖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중등교육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대학 역사교양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니까요. 뭐 역사 전공강의도 몇분을 제외한다면야 교양수업에 내용이 더 첨가된 정도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한국사에서도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역사학의 반성으로 “민중사학”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민중으로 어떻게 역사학을 쓸 것인지에 여러 분들이 고민도 해보았으나 결국 남은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일 뿐. 여전히 역사학은 실증주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역사학에서 이론 공부 안한다는 것은 이미 다른 학문 연구자들도 잘 아는 사실이니까요.

    내가 왜 역사학을 연구하는지 오랜만에 글을 보고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리고 민중의 역사학은 근현대시대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조선시대 이전은 아마 수년이 지나도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사료가 없으니까요. 민중사학을 하던 분들이 얼마 되지도 않은 사료 가지고 민중을 주체로 세우려다가 결국 마르크시즘 역사학에 빠져 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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