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놓는다는 것

S에게
 
과학은 서구의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것을 배워 익히기에 힘써야 하며 또 그렇게 힘겹게 따라온 수 십년의 세월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과학은 유럽의 근대에 단 한번 우연하고도 조잡한 조합에 의해 힘겹게 탄생한 지식분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신석기의 농업혁명이 이집트의 것이든 아니면 수메르인의 것이든 우리가 그것에 대해 그 어떤 열등감도 없이 농업을 우리의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이유와, 과학을 우리의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같으면서 다르다. 만일 과학에 어떤 문화적 요소가 반영된다고 했을때 더욱 그러하다. 과학은 역사에서 동떨어져 있는 학문이 아니므로 해당 과학분과가 가능할 수 있었던 역사적, 문화적, 제도적 요건은 역사속에서 찾아져야만 한다. 내가 매주 부산에서 생물학사를 공부하며 내가 사랑하는 이 학문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도 그러한 지도 그리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아가 서구에서 가능했던 생물학의 부흥이 이 땅에서 어찌하면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하고자 하는 나의 열망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학제간 연구라는 제도도 우리는 서구의 것을 흉내내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흉내내야만 한다면 잘해야 한다. 또 잘 흉내내는 것을 넘어 역사적 분석과 상황적 분석에 돌입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고민없이 널부러져 있는 수없이 많은 또 형식화되어 무의미해져버린 학제간 연구를 보고 있다. 학제간 연구란 두어개의 과를 연결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이오인포매틱스가 됐든 시스템바이올로지가 됐든, 만일 두 학문분과 이상의 지식이 요구되고 그러한 학제간 연구가 요구된다고 했을 때 이를 위한 적절한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데에는 많은 경비와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수도 없이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생물학은 그 분과다양성을 축적하는 가운데 학제간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특히 나의 업인 분자생물학의 역사자체가 학제간 연구의 산실이었다.
 
위에서 나는 학제간 연구를 위한 행동이 단순히 무언가를 묶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보자. 네가 돼지를 접붙히고 싶다면 그들을 그냥 같은 우리 속에 쳐박아두면 된다. 물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만 동물은 그렇다. 원초적 욕구를 합칠 경우엔 별다른 시스텀적 고려 없이 융합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너와 나라는 사람을 친구로 만들고 싶다고 해보자. 그냥 우리 둘을 한 방에 가두어 두는 것만으로, 혹은 같은 장소에 묶어 두는 것만으로 우리가 친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비슷한 물리적 공간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해져야만 할 텐데 왜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걸까. 그건 조직화된 두 개의 의식체, 서로가 그 자체로 거의 완전한 조직화를 거친 유기체가 부딪히기 때문이다. 각각이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하기 때문에 둘은 쉽게 융화되기 힘들다. 서로를 탐색하고 공격하고 방어하고 그러한 과정이 지난 후에야 둘은 친해졌다고, 우리는 이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가깝게 하는 것, 시간적으로 오래 지나는 것이 둘을 친구로 만들지는 않는다. 물론 물리적 공간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둘의 융합은 불가능하다. 학제간 연구란 기본적으로 친구를 만드는 일과 유사하다.
 
몇가지 사례로 상황을 보편화할 수는 없지만, 학제간 연구란 시스템적 요소와 개인적 요소 두가지로 구성된다. 시스템적 요소란 위에서 말한 친구를 만드는 과정에 개입하는 상황을 고려해보면 명확해진다. 사실 분자생물학의 초장기에 이루어진 학제간 연구는 지금과 같은 거창한 시스템이 없이도 가능했다. 그것은 당시 과학자들 사이의 문화 때문이었다. 20세기의 초중반까지도 과학자들의 문화에 전문화되고 서로의 분과에 무관심한 지금과 같은 폐쇄성은 없었다. 물리학자들은 생물학에 생물학자들은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곤 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스템이란 그들이 넘나들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이상일  필요가 없었다. 시스템은 물리학을 전공한 한 학부생이 생물학을 하고싶다고 말했을 때 굳이 막지 않는 그런 제도면 족했다. 현재 우리에겐 그런 분위기나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 요소란 분위기를 바꾸어 나가는 몇몇 개인들의 활동이다. 파지 그룹을 이끌었던 물리학자 출신의 델브뤽이나, 통계역학의 창시자인 볼츠만과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게다. 이들처럼 완벽하게 취한 몇몇 과학자들은 당대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또 바꾸어 놓는다. 우리에겐 그런 과학자도 별로 없다.
 
우리의 상황에 적용시켜보았을 때, 시스템적 요소의 고려는 공간적, 문화적, 제도적 개선을 요구한다. 공간적 고려란 문화적 고려와 관련 있다. 서구의 문화는 대화가 충만하고 직설적이며 개인주의적이다. 그러한 문화를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사실 그들의 문화라는 것도, 게다가 과학과 관련된 부분으로 축소해보면 많은 부분 공간적인 측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변화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장점을 살리면서 학제간 연구의 시스템을 모방할 수 있다. 그것이 티타임 혹은 거실문화다.
 
실험실의 중앙엔 커다란 칠판과 원형 테이블이 필요하다. 그곳엔 항상 유동인구가 있어야 하고 다른 실험실의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 만일 하나의 과가 있다면 그 과의 중심에도 비슷한 라운지가 필요하다. 그곳에서 사람을 사귀고 과학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볼츠만이 과학적 토론을 했던 장소가 주로 선술집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는 공간적 제한 속에서 발생하는 생물과도 같은 것이다.
 
제도적 개선에 관해선 이미 말한 바와 같다. 과학도가 분과를 넘나드는 것에 대한 제약이 완화된다면 그것으로 학제간 연구는 가능하다. 그것이 이루어진 후엔 분과를 넘나든 개인에 대한 관용과 수용이라는 분위기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따름이다.
 
개인적 요소를 우리 상황에 적용해 보았을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개인이란 약한 존재여서 자신이 속한 시대적 문화적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그들은 제한적 상황 속에서 능력을 발휘할 뿐이다. 나는 개인적 요소는 시스템의 보완으로 대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에서 몇몇 개인의 역할은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그들은 문화와 제도라는 시스템적 인큐베이터 속에서 기능한 특출난 요소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S 너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학제간 연구가 무엇이던 간에 네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그것과 연관되어 있다. 너는 분명 생물학과 정보학을 연결시킬 만한 인재로 선출되었고 그러한 목적 하에 설립된 단위체안에 들어 있다. 멍청하게도 한 개인을 두개의 랩에 묶어 두면 학제간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윗대가리들의 결정때문에 네가 두개의 랩에 걸쳐 있지만 어차피 상황이 그렇다면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현실을 살아야만 하는 아랫것들의 운명이다. 너나 나나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정하고 그것을 타파할 힘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구체적인 전략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내겐 구체적인 전략이 있고 그것을 네게 이야기해줄 시간도 있는 듯 하다.

건강하길.


8 thoughts on “다리를 놓는다는 것

  1.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융합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는 겁니다. 박사님이 지금 말하시는 것,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제 머리속에는 그러한 구체적인 것들이 안떠오르네요…힌트라도 좀…ㅎㅎ;; (흠,,,실험건물안에 살롱이 있어야한다는 그런 법있으면 안되나…ㅎㅎ 그러면 아마 자연스럽게 학제간의 연구가 일어날텐데…)

  2. 연애 편지 따위를 쓰니까 댓글이 안 달리는 것임. 그나저나 이런 편지를 받고 기뻐할 S를 바라는 건 마치 2차원 캐릭터가 3차원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오덕의 소망과도 같은 것.

  3. 이..이것이 정녕 연예 편지인가요?? 손가락을 바라보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알레프님의 지적에 공감한다능.

    웬지 김우재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연예편지는 이렇게 쓰면 안된다하는 깊은 교훈을 남기고만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ㅎㅎ

  4. 학제간의 교류라는 것은, 같은 결과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컨데 EBS에서 2차식의 인수분해를 그림으로 푸는 어느 고등학생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그러니까 X^2 + 2X + 1 을(X+1)(X+1)로 인수 분해 하기위해 색종이를 이용하여 풀더라구요. X^2에 해당하는 색종이, X에 해당하는 색종이 그리고 1에 해당하는 색종이를 조합하여 그것으로 (X+1)(X+1)이란 결과를 끌어내더군요. 대개 완전제곱꼴로 고쳐서 인수분해 하잖아요.

    요컨데 종이접기 문제와 대수적인 문제의 연관됨을 보여줍니다. 전자는 일상적인 것이고 후자는 학문적인 것입니다. 학문을 학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결합하여 사고하게 되겠죠.

  5. 이 글이 연예편지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위의 글이 어떠한 논지를 띄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S님이라면 사진같은것은 신경 별로 안쓸듯 -,.-

  6. 두 가지가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뭐 그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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