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숨은 비센샤프트 찾기

위의 글 <2010/12/09 – [래디컬(Radical) 바이올로지] – 과학과 비센샤프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할까 하다가, 그의 글 몇 꼭지를 옮겨본다. 물론 이 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충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이 글을 그다지 주의 깊게 읽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 혹은 과학철학자들에게 읽히지 않았으리라는 생각. 문예지에 실린 글이니 과학철학자들에게 읽힐 일은 없었을 듯.
여하튼 비센샤프트 이야기로 시작해서 ‘과학’이 관여된 지점들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인데, 끼어든 사람들은 죄다 ‘의도’나 ‘욕망’ 따위의 이야기나 하는 수준이다. 아, ‘수준’ 이야기하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는데;;
르네상스가 궁극적으로 ‘인쇄술’이라는 혁명적 매체의 발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사상적 변환과 무관하지 않다. 인쇄술 이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그렇게 높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화가가 ‘직인’의 수준을 넘어서서 ‘예술가’로 격상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바로 ‘학문적 지식’이었다. 이 지식은 오늘날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는데, 보통 ‘지혜’라고 부를 수 있는, 기술을 넘어선 차원에서 획득할 수 있는 ‘주체적 앎’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주체적’인 ‘앎’이 아닐 수 없다.
과학적 지식이라는 것은 가설과 실험, 그리고 관찰과 증명이라는 단계를 밟아서 형성되는 것이다. 환자의 증상을 병리학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은 이처럼 엄청난 변화를 예비하는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황만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는 과학적 의학지식의 출현과 마녀사냥을 연결할 매듭을 발견하기 어렵다. 의학과 진료행위가 과학화하는 것이 어떻게 마녀사냥을 추동하게 되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고찰해야 할 사항은 과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이다. 많은 과학철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과학은 시대적으로 합의된 지식체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세의학이 종언을 고하고 근대적인 의미에서 과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의학지식이 출현했다고 해도, 낡은 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합의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과도기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숨은그림 찾기다. 비센샤프트의 의미로 사용된 과학을 찾아라!
이야기는 천안함을 가로질러 황우석 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자세한 설명은 역시 생략한다. 위에서 언급된 ‘많은 과학철학자들’이란 내가 읽은 그의 텍스트에 의거하면 토마스 쿤과 파이어아벤트가 전부다. 이 글에는 파이어아벤트가 등장한다. 파이어아벤트를 이렇게 읽으면 안된다고 나는 배웠는데, 그는 이렇게 읽었다. 참고로 그의 책 <방법에의 도전 Against Method>는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설명해 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인용구에서 <방법에 반대한다>라는 책이 바로 그 책이다.
이런 맥락에서 파시즘이야말로 ‘초합리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마녀사냥도 이런 초합리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방법에 반대한다(Against Method)>라는 책에서 과학철학자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가 마녀사냥의 신화와 과학의 상동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마녀사냥의 신화는 관찰에 근거해서 반대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을 사전에 배제하는 높은 수준의 증명들을 달성하는 것이었다고 파이어아벤트는 판단한다. 따라서 반대되는 사실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은 과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마녀사냥은 과학적 지식이 어떤 경우에 신화로 전락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당부 한마디. 과학철학의 권위는 과학이 무엇이냐를 정의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과학의 정의가 각각의 과학철학자들의 정의에 의해 달라지는 무엇이라면, 과학은 존재조차 할 수 없다. 과학철학은 과학이 출현한 이후 이 무시무시한 학문의 성격을 분석해보려는 철학진영의 대응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분파와 의견이 대립하고 충돌하는 영역이다. 그 중 파이어아벤트는 가장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학자중 한명이다.
한가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은(이건 과학철학책을 좀 읽어보았다면 알만한 것인데), 파이어아벤트나 스티븐 세이핀처럼 과학지식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요인들을 다루는 학자들은 언제나 16세기까지 아슬아슬하게 거슬러 올라가 사례들을 끄집어 낸다는 것이다. 뉴턴 이후의 과학자들 특히 19세기 이후 과학의 세속화 여정이 진행된 이후의 사례들을 다루는 과학철학책들은 이처럼 과격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유를 생각해보자. 파이어아벤트의 갈릴레오, 세이핀의 홉스와 보일의 사례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거기서야 겨우 과학사회학적 주장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거니까. 여하튼 설명은 생략한다고 했는데, 말이 길었다. 생략한다.
추신: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이 실린 그 지면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써두었다. -_-
추신: 아, 물론 포퍼에 대한 인용도 없이 어떻게 도출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
따라서 반대되는 사실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은 과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과학에 도그마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의 글들은 여기저기에 많이 써두었으니 참고하시길.

36 Comments

  1. “과학철학은 과학이 출현한 이후 이 무시무시한 학문의 성격을 분석해보려는 철학진영의 대응이었다”

    문제는 그걸 왜 분석했냐는 점입니다. 그 “왜”를 이해하는 지점이 과학철학의 의의를 이해하는 지점입니다. 과학 철학을 공부하는 어느 누구도 과학자들이 그 이론을 따라야한다거나 따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카토슈 였나요? 포퍼였나요? 명시적으로 밝혀두고 있습니다. 과학철학은 언제나 과학보다 늦다고.
    질문드립니다. 이 “왜”에 대한 답은 뭘까요?
    학부시절 쪽지시험 볼 때 제시되었던 문제를 그대로 옮겨 드리면 이렇습니다
    “과학철학의 “진정한” 연구대상은 무엇인가”

    물론 김우재님이 생각하시듯 과학은 답이 아닙니다. “진정한”에 강조가 있습니다. 뭘까요?
    줄기차게 철학에 대해 혹은 과학철학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시는 김우재님은 이 학부생 퀴즈의 답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통섭에 대해 쓰신 글 읽었는데.. 언젠가 말씀드린적 있습니다. 전공자들의 글을 읽고 별 거 없다 생각된다면 우선 자신을 의심하라고… 통섭의 의미만 밝히는 것으로 논의는 종결되는 겁니다. 더이상의 논의는 불필요하지요. 이건 또 왜 그럴까요? 그 이유도 모르면서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했다고요? 김우재님의 문제는 그 과도한 지적 자만입니다. 왜 님이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못해요? 몇 년 책 좀 더 보시더니 증세가 더 심해지신 듯. 본래 알면 알 수록 나는 어쩜 이리 모를까 조심스러워져야 정상 아닙니까?

    질문 두 개 드렸습니다. 둘 다 학부 수준입니다. 한번 봅시다. 학부수준은 되시는지. 뭐.. 칸트 아는 척 하다가 노정태에게 개쪽 당한 그 친구분께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2. 그리고 과학과 인문학을 대립 관계로 전재하시는 것은 김우재님이십니다. 대응이 뭡니까? 대응이. 이 말 자체에 이미 대립관계가 전제 된다는 것 모르시겠어요?

  3. 과학철학의 “진정한” 연구대상은 바로 과학이 받는 리서치 비용을 자기들이 어떻게 좀 나눠먹어 볼까죠. 학부 수준이라 이정도는 이해도 못하시겠죠? 과학이 뭔지 이해조차 못하는데 과학철학이랍시고 난리 치지 말고 최소한 각 과학 분야를 학부 수준까진 이해라도 하고 드립들좀 칩시다. 물리학과 화학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생물학적 방법론의 한계와 위험성등에 대해서 제대로 분석한 과학철학자 한명 못봤습니다.

  4. 라이엔바흐의 <과학철학의 형성>이 내 앞에 놓여 있는데, 18장을 읽어보면 좋을 듯. 그런 학부수준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도라니. 정말 놀라운 발견을 하게 해주어서 우선 감사드립니다. (__)

    철학도시니까, 댓글놀이하지 마시고, 블로그를 공개하고 트랙백을 다세요. 응? 멋지지 않아요? +_+

  5. “진정한” 이란 단어를 참 부분별하게 쓸정도로 철학이라는게 널널하군요. 왜 철학과 가서 술만 마시는지 쉽게 설명되는군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나 조금 이해하고 대화합시다.

  6. 라이엔바흐가 조언적과제에서 머뭇거렸던 거 아닌가? 라카토슈나 포퍼가 아니라. 뭐 포퍼나 라카토슈 모두 라이엔바흐의 전통에 서 있으니 그런 말을 했을지는 모르겠어요.-_-

    그나저나 학부수준으로 철학하세요 그럼. 우리나라 철학도들은 수준 얘기하는 것 빼곤 할 줄 아는게 없나봐요. ㅠㅠ

    님이 쓰신 글좀 보여주세요. 저도 좀 보고 님의 그 ‘수준’이라는 걸 판단해 볼래요. 응?

  7. 아 이런 개떼들을 거느리고 계셨군요

    과학철학은 인식론의 한 분과다
    그냥 외우시고 시간 날 때 무슨 뜻인가 사유하세요
    그리고 저 블로그 없어요

  8. 앞 인용문 둘은 이택광 글인가요? 구글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요. ㅡ,.ㅡa

  9. 과학철학은 인식론의 한 분과다. 예압~ 외우고 사유하겠스빈다. 님도 저위에 제가 라이엔바흐의 <인식론의 세과제>를 왜 올려놨는지 외우고 사유하시면.

  10. 구글검색에 안나오죠. 문예계간지에 실린 글이라고 썼자나요.

  11. 포퍼 쿤 파이어아벤트 라카토슈 툴민 등등이 활약하면서 형성되었고, 김우재님이 뭔가 아는 것처럼 언급하시던 그 “과학철학”이 뭔지, 그게 뭣을 다루고 무엇을 목적으로 했는지 님이 아는 바 없었다는게 저 글 인용한 이유겠네요. 나 참 당황스러워서…
    한국에서 철학하면 점집 떠올리는 건 학계의 낮은 수준도 문제지만 님 같은 사이비들이 공헌한 바 크지요. 소위 인문학도들이 님을 무시한다면 그건 님이 초파리 연구해서가 아녜요. 누가 툴민을 무시합니까? 님이 무시 당하는 건 단순히 아는게 없어서고 그럼에도 많이 안다 착각하기 때문예요
    지들 전공에 대해 틀린 소리하면 부르르 떠는 분들이 어쩜 쥐톨만큼 아는 바 없는 분야에 대해 이리도 용감하실까. 말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녜요. 좀 알고 말하라는 거지
    인문학에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말은 아무거나 말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아요. 이성계는 신라시대 장군이 아니고 조지 오웰은 자본주의를 옹호한 소설가가 아니고 님이 파이어아벤트며 쿤이며 과학에 대한 정의 운운하면서 언급한 “과학철학은 님이 인용한 그 문장들이 말하고 있는 과학철학과 다른 겁니다. 그냥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거지.
    아… 물론 인문학 특유의 성격으로 길은 열려 있습니다. 그 두 과학철학이 동일하다는 것을 논증해 주시면 됩니다. 성공적이라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사료와 여러 역사적 논증을 통해 이성계를 신라 장수로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쉽겠습니다. 저라면 그냥 몰랐다 혹은 착각했다 쿨하게 인정하겠습니다만.. 뭐 한번 해보시던지.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질문인데..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니 가르침 바랍니다.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이 콩트의 실증주의, 좀 더 올라가서 로크의 경험주의와 갖는 주요한 차이는 뭔가요? 좀 더 현재로 오면 멘 드 비랑 같은 사람, 심지어 베르그송과 갖는 중대한 차이는 뭔가요? 간단히 그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는 근거는 뭔가요? 제게는 별 새로울 것 없던데… 설마 이마저 아는 바 없습니까?

  12. 진짜 철학도 등장!!
    두둥..

    ㅎㅎ

    아.. 이래서 인간은 재미있다니까. ㅋㅋㅋ

  13. 재미있는 건 ‘철학도’가 김우재를 바보 취급해도 김우재가 열폭하지 않는데, 이택광이 초파리연구 따위라고 말하자 김우재가 버럭버럭 버러럭 했다는 것. 왜 그랬을까?

    가설 1.
    이택광은 인지도도 높고, 인증이니 진지하게 상처받았다.
    하지만 철학도는 비인증이고, 듣보잡이라서 그냥 악플취급

    가설 2.
    이택광은 김우재가 뭘 시부렁거리는지 알지도 못한 체
    그냥 그냥 나와바리 싸움을 한 것이다. (초파리 연구자가 어딜~)
    하지만 철학도는 나와바리 싸움이라도
    학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김우재가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설 3.
    김우재가 이택광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예를 들면 이택광이 사회적 해악을 끼치고 있다)
    진지하게 그를 타격한 것.

    횽아들.
    나 가설 세웠으니까
    과학자임?

  14. 횽아.. 난 횽아 편이니까
    미워마..

    근데 나 과학적임?

  15. 비슷한 향취가 느껴지는데 뭘 거부해.. ㄲㄲ

  16. 님이 나를 모르면 섭하지 나 예전에 님께 글 쓸 때 이 아이디였어
    더구나 님은 내 글, 말도 없이 퍼다가 포스팅도 했잖아
    말도 없이 그랬다고 탓할 생각은 없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된 것 같아 좋기도 하고.

    그건 그거고 저 인용한 부분에 나오는 “과학철학”하고
    포퍼, 쿤 등의 과학철학하고 같은 거라고 본 거예요 아녜요?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는데 고매한 의도가 있으셔서 그걸 인용하신 거라면 그 의도 이 학부수준에게 알게하여 주시고…

    꽁수 피려 그러지 말고 솔직히 까요
    그냥 역사적으로 관련이 없지 않고 이름마저 같으니 그냥 똥이 된장이려니 찍어 먹어 봤다고
    그런데 어쩌나? 님이 인용한 문장에서 언급되는 과학철학과 그 (아마 이택광이 머리에 넣고 있었을) 쿤, 포퍼, 라카토슈 등의 과학철학은 그 목적과 대상부터가 다른데…
    자 대답 듣고 다음 진도 갑시다

    블로그는 어쩌나 만들 맘이 없는데…

    블로그는 만들 생각 없어요

  17. 내가 님도 아니고 유명 블로그에 (김우재 이택광에게 하듯) 찐따 붙어서 조회수 늘리고 이름값 알리고 하는 (이택광에게 하는 김우재 같은) 짓 한다고 오해 받기도 싫고 그러고 싶아도 않아
    블로그는 앞으로도 없습니다 님의 답도 없습니까?

  18. 근데 전에 아이츄판다 블로그에 댓글 남긴 그 애 맞어? 그때도 느낀거지만 서지학적인 지식으로 충만한 것 같아. 서지학 좀 하고 2차문헌좀 읽으면 있어보이긴 하는 거 같어. 서지학+교과서 주의자인가? ㅠㅠ 블로그 어서 만들어. 댓글로 놀기엔 니 수준이 워낙 높다고 너도 생각하자너 ㅠㅠ

  19. 근데 설마 너… scientific philosophy 랑 philosophy of science 라는 차이때문에 설레발을 치는거니…? -_- 하아;;; 교과서 그만 봐.

  20. 도대체 철학을 교과서로 공부하는 너는;;; 아 맞다 나도 뭐좀 찾으려고 철학 교과서 비스무레한걸 지금 다운받긴했구나. 털썩. ㅠㅠ

  21. 근데 그 낮은 수준의 학계에서 노는건 철학도 너도 마찮가지란다. 세상에 진실된 답이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철학도라는 놈이 용감하구나. 그러니깐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알면서 철학도 운운하냐고.

  22. 내 수준이야 바닥이지 넌 바닥도 없는 사이비고…
    학생이 교과서 안 보고 뭐 보겠니?

    이제 네 놈이 두 과학철학을 동일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인정할 충단한 근거는 마련됐다 판단된다. 내 이런 확답을 자꾸 요구한 것은 네 놈 같은 사이비들의 수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먼저 설명해 주면 이것저것 갖다 붙여요. 그러지 마라 추하다.

    네 놈은 과학 철학이 단일한 과정, 철학의 과학화로의 진행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만 그렇지 않단다. 네 놈이 인용한 라이헨바흐는 네 놈의 그런 해석에 부합하겠지. 그런데 쿤은? 라카토슈는? 네 놈이 쿤이네 포퍼네 과학에 대한 정의네 하며 언급한 과학철학이 네 놈이 생각하는 그 기준에 부합하니? 처음부터 말했다 이 과학철학과 네 놈이 인용한 과학철학은 목적도 대상도 다르다고.

    과학철학은 그 시작을 결정하기도 까다롭고, 문제별로 그룹 짓기도 어려워서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지만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시기가 있다. 1962년, 쿤의 등장이다
    쿤의 등장으로 달라지는 것은 우선 연구 대상이다. 네 놈이 인용한 라이헨바흐는 과학의 언술을 가지고 철학했지만 쿤은 과학 자체를 가지고 철학했다. 과학의 합리성 자체가 처음으로 문제가 되고 과학 철학이 비로소 언어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철학이 된다. 그래서 별 설명 없이 과학철학이라하면 보통 이 과학철학을 지칭한다. 더구나 네 놈은 쿤 파이어아벤트 포퍼 등을 언급하며 과학의 정의 운운했다 이거 너 빼도박도 못 한다

    그래서 질문 했더니 찍어 먹어도 꼭 설사를 찍어 먹는다고 라이렌바흐다. 또 골라도 아주 명확한 문장을 골랐어요. 네 그 환상의 인용 덕에 포퍼와 갖는 애매함마저 제거 되었다
    처음부터 말했다. 과학철학은 인식론의 한 분과라고. 네 놈이 라이헨바흐를 읽었다면 알겠다만(뭐 니 하는 짓 보니 읽었어도 모르겠다) 그에게 과학철학과 인식론은 동의어다. 배운 사람이 말하면 좀 귀담아 들어라. 그 차이 곰곰히 생각해 봐라

    쿤 따위 별거 없다 생각하건 말건 그건 지금 네 놈이 벌인 사기행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네 놈은 네가 인용한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후에 분석 철학이라 불릴)과 쿤, 포퍼 등의 과학철학의 차이( 아니 어떻게 이걸 모르니?)를 너는 알지 못하고 당연한 결과로 그 각각이 가지는 목적에도 무지하다 아마 다르게 구획될 다른 과학철학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자 간단하다. 반박하고 싶다면 이 과학철학의 4대 교과서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라카토슈의 과학적 연구프로그램의 방법론, 파이어아벤트의 방법에의 도전, 포퍼의 추측과 논박에서 네 놈이 생각하고 그에 따라 인용한 그 과학철학을 찾아내라. 설마 이 교과서들도 안 본건가?
    이런 논증 없이 계속 우기거나 계속 아는 척하면 너 황우석 되는거다

  23. 무슨 뜻인지 알고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 철학자 열거하면 서지학 소리 듣는 건가? 설마 그거 다 읽었을 것이라 생각 자체가 안 되는건가? 그게 철학전공자들에 대한 일반적 생각인가? 몇 사람 안 되잖아. 이번에야 내 전공 아니니까 그렇다쳐도 네가 포스팅한 글에 언급되는 철학자는(라깡 철학자 아님, 지젝도) 내 준전공은 되는데… 그 정도 수준으로도 생각이 안 되는겐가? 철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네 탓 아니다 이건… ㅜㅜ;

    플라톤 전집 발간이 중단되었다. 돈 때문이다. 본래 사비 충당이었지만 얼마간의 정부 지원이 있었다. 그게 이 정부 들어서 끊겼다. 네가 한국 수준 이 모양 하기 전에 현실을 한번 봐 주기 바란다. 벌써 오래 전이다. 고대교수들이 개쪽 무릅쓰고 나와서 돈 달라 땡깡써서 받아낸게 80억이고 그걸로 아직도 철학계 그냥저냥 먹고 산다. 아마 너네연구실 1년 예산도 안 될거다. 철학 돈으로 하냐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렇다는 생각이다. 일본만도 못 하냐고 네가 말한 적 있는 것 같다. 그 비난, 일본이 인문학에 쓰는 예산 100분의 일만 투자하라는 정부에 대한 요구로 바꿔주면 고맙겠다. 플라톤 전집도 내기 힘든 나라에서 무슨 철학자를 기대하냐?

    네가 좋아하는 것 같은 강유원이 말했다. 철학은 반드시 선생이 있어야 한다고. 오늘날 네가 이른 상황을 업자들 용어로 누에꼬치 된다고 그런다. 지 혼자 이해하겠다고 낑낑 메다가 오독이 오독을 오독으로 감싸고 결국 나만의 철학이 탄생한다. 특히 너는 책 읽을 때 모르는 부분에 밑줄 긋는 타입이기보다는 너와 동일한 생각에 밑줄 긋는 타입 같더군. 네가 인용하는 김영건 선생의 글들을 보면 그렇다. 선생의 강조점은 저긴데 너는 네 맘에 드는 부분에 주목한다. 참으로 사이비되기 좋은 조건이다.
    과학자가 철학책 보고 철학에 대해 말하는 건 매우 좋은 일이고, 나야 그런 철학은 못하고 그냥 연구자로 남겠다만, 애초에 철학이 그런거다. 좋은 선생 찾고 그것이 어려우면 2차 문헌들을 활용해라. 그거 부끄러운 일 아니다. 과학에서 남의 논문 보면 부끄럽나? 왜 다르게 생각하지? 철학에 무슨 환상이 있나?
    꼬치에서 벗어나 나비가 되어라 (@ @)

  24. 안 그래도 갈거야. 화 내고 그래.
    왜? 쪽팔려? 사기 치다 걸려서?
    아! 사기는 아니다. 그냥 무식해서 용감했을 뿐

    자.. 지 멋대로 철학 맘대로 지껄이시면서 그렇게 계속 사시고
    그 자세 그대로 포토샾질 해가면서 논문도 조작하시고

    넌 내 타고난 귀차니즘이 살렸다
    내 블로그 진짜 만들었으면 어쩔 뻔 했니
    다른 글도 봤는데 아주 가관이예요
    네가 이택광 욕할 처지냐?

    간다 잘 있어 위대한 나대로 철학자님

  25. 또 오면 블락해버릴거야. ㅠㅠ 열심히 공부해~ 교과서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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