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수준’의 과학철학이라는 것

그러니까 나는 하루종일 초파리랑 붙어사는 사람인데, 과학철학을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마는. 그 복잡한 100년의 전통을 다 꿰고 있는 학자는 또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다마는. 내가 읽었던 텍스트들은 대부분 왕님과 함께 공부했던 3~4년에 걸쳐 있었고, 과학자로서 합당하다 생각되는 전통의 주류들만을 선별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나의 과학철학에 대한 이해가 완벽한 것이라고 자신은 하지 못하겠다. ‘학부생 수준’의 과학철학이 있다는데, 아마 나는 학부생 시절에 과학철학을 배운적이 없기 때문에 그 수준에 결코 이를 수 없을 것 같다.
저련이 번역한 라이엔바흐의 고전적인 논문 <인식론의 세과제>는 아직 어느정도 유효성이 있을 것 같은데, 저련의 번역이 아주 깔끔한 것은 아니니, <과학철학의 형성>에서 라이엔바흐가 ‘과학철학’ 자체에 대해(그는 이것을 새로운 철학이라고 불렀다) 논구한 부분들을 한번 인용해보자.
사변적인 철학은 절대적인 확실성을 원했다. 개별적인 사건의 예언은 불가능할지라도, 적어도 모든 사건을 제어하는 일반적인 규칙은 지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법칙은 이성의 힘에 의하여 도출될 수 있다. 우주의 입법자인 이성은, 인간정신에 대하여 모든 사물의 내재적인 성격을 현시했었다 -이러한 종류의 주장은 모든 형식의 사변적인 체계의 토대에 있었다. 이와 반대로, 과학철학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으로서 물리적인 세계에 관한 어떠한 지식도 허용하기를 거부한다. 개별적인 사건도, 그것을 제어하는 법칙도, 확실성을 가지고 진술될 수는 없다. 논리학과 수학의 원리는, 확실성이 도달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 원리는 분석적이며 공허하다. 확실성은 공허성에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선천적/종합적 지식이란 없다. pp.312

 

라이엔바흐의 이중적인 태도는 그렇다고 철학의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단정짓지 않는데 있다. 나는 사실 이것이 라이엔바흐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문장을 보자.
철학적인 지식의 실질적인 내용은 있다. 철학은 이미 허위논리적인 형식의 회화 또는 요설적인 구성에서 헛되이 “말할 수 없음을 말하려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설화는 아니다; 철학이 말해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술어로 진술될 수 있다. 그리하여 철학이 그것에 항복해야 하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없다. 철학은 그 방법에서 과학적이다; 철학은 증명될 수 있고 논리와 과학에서 충분히 훈련된 사람들에 의하여 동의된, 여러 결과를 수집한다. 철학이 아직도 논의될 미해결의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이러한 문제들은 다른 문제들에 관해 오늘날 공통적으로 허용된 해결을 이끌어 온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해결되리라는 희망이 있다.pp.315-316

 

많은 철학도들이 가진 과학철학의 이미지와 라이엔바흐의 입으로 듣는 이미지는 뭔가 상반되어 있는 것 같다. 과학철학, 즉 ‘과학’이라는 말이 들어간다고 해서 과학철학이 엄밀함을 추구했다고 생각하는 건 철학도 마음이지만, 라이엔바흐는 적어도 ‘아는만큼만’ 말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역할은 포기되지 않는다. 내가 언제 철학을 붕괴시킨다고 했길래, 철학도가 저리도 ‘르상티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철학에 대한 한국인의 사고가 ‘점집’쯤으로 치부되는 현실에는 철학자들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의 철학자들은 철학을 과학처럼 확고한 기반 위에 세우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철학이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에도 그러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 고민의 과정, 그것이 철학이 아닌가 하는데 한국의 철학도들은 과학자들 쫓아다니면서 “과학자 따위가” 혹은 “니 수준이” 따위의 말이나 하는 존재들인가 보다. 사실 그런 적대감이 든다면 나보다는 김영건 선생의 블로그에 가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보면 더 배울게 많을 것 같다. 나야 어차피 과학자고, 철학도들이 생각하는 그런 제도화된 ‘철학’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겐 볼츠만도 철학자니까. 마지막으로 라이엔바흐의 말 하나만 더 들어보자.
많은 철학도들이 교화를 찾기 위하여 철학강의에 들어간다; 그는 성서나 세익스피어를 읽는 것처럼 플라톤을 읽는다 pp. 319.

 

15 thoughts on “학부’수준’의 과학철학이라는 것

  1. 플라톤을 성서처럼 읽는다는 게 참 어불성설이지 싶습니다. 살펴 보고 음미하고 검토하고 캐묻는 일을 그렇게나 강조하는 대화편들을 보면서 말이죠-_- 이전에 말씀하셨던 ‘철학의 게으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네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또 일전에 말씀하셨던 스티븐 굴드의 ‘4할 타자’ 이야기도 생각해 봅니다. 철학에 있어서 앞선 철학적 문헌들에 대한 연구와 해석이 문제의 설정과 해결책의 모색과정과 별개일지, 자연과학의 방법론과 여러 성과들을 철학이 도외시할 수 없다는 당위에 앞서서 한 개인이 과연 어디까지 그 자신의 그릇 안에 담아내고 포섭할 수 있을 것인지(물론 heterosis님의 철학에 대한 견해에 따르면, 철학연구와 철학’학’과는 별도로 과학적 배경 위에서 철학을 수행하는 개인은 가능했고 앞으로 가능하겠습니다만),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되네요. 어쩌면 다양한 역할이 공존할 수 있고 또 그럴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철학연구자, 자연과학자,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한 철학자,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철학자, 이 중 어느 한 입장만으로 어떤, 이를 테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통섭’을 이루어내는 일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코멘트 치고는 길어졌습니다만 ‘글’이랄 것도 없는 두서 없는 넋두리인지라 트랙백은 하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플라톤을 성서처럼 읽으면 그 결과는 그 무엇도(플라톤의 저작도 포함해서) 성서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얻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들 플라톤을 너무 미워해서 힘듭니다, 하하; -蟲-

  2. http://hhnim.tistory.com/

    미국 버지니아대학에서 물리학 전공하고 계신 분인데,
    학문적 수준에서 과학철학을 많이 공부하신 분입니다.

    정치적 성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적인 고민에서 김우재님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듯 하여
    소개드려봅니다.
    어떤 스파크가 퇼지를 기대하면서요. ^^

  3. 저 역시 이론 물리학 하시는 분들이나 진화론 등등 좀 큰틀에서 과학하시는 분들 철학자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김우재님이 포퍼, 쿤, 파이어아벤트, 툴민 등을 말하 때 쓰는 과학철학이란 말과 위에 인용하신 글에서 말해지는 과학철학이라는 말은 서로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학부생 수준의 과학지식이라도 쌓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어려워서 과학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지요
    님은 어떠십니까?

  4. 아하하~
    방문하셨군요.. ㅎㅎ

    저는 두분 이야기나누는 거 경청하면서
    배울 것만 쏙 빼가 배우겠습니다.

    두근거려라.. ㅎㅎ

  5. “철학은 이미 허위논리적인 형식의 회화 또는 요설적인 구성에서 헛되이 “말할 수 없음을 말하려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설화는 아니다; 철학이 말해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술어로 진술될 수 있다. 그리하여 철학이 그것에 항복해야 하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없다.”

    여전히 마이클 폴라니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말하는 ‘상술불가능한 것’과 연결할 수 있는 내용이네요ㅎ

  6. 죄송한데, 인용구중에 말해야 하는 것하고, 마지막 문장에 그것이 뭔가요? 제가 난독증인가요? _-;;

  7. 근데 아빌르가 뭔가연? 이런건 안찾고 그냥 물어보는게 제맛

  8. 너 저련 맞냐? -_-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엉뚱한데다 하냐. 아빌르는 내가 만든거야.

  9. 맞다능 ㅋㅋ 마치 식당 주인한테 비밀의 양념을 알려달라는 것 같지만 뭘 염두에 두고 만든거냐능?

  10. 숙련 skillful 의 불어식 표현이지. 시바 다들 개 좆같은 소리 불어로 쓰면 뭐 있는것 같이 나대는데, 나라고 못 만들게 뭐람.

  11. 그렇다고 술마시고 시험보는 서울대 철학과의 학부생들을 닮고싶진 않은걸? 서울대 철학과에도 동기가 3명이나 있단다. 참고로 난 카이스트 나왔어. 그냥 전공자라고 다 전공자가 아니지. 명문대라는 SKY 같은 곳도 세계레벨에선 듣보잡이긴 한데, 그럼 그 이하는 더 듣보잡이란다.

  12. 그렇다고 술마시고 시험보는 서울대 철학과의 학부생들을 닮고싶진 않은걸? 서울대 철학과에도 동기가 3명이나 있단다. 참고로 난 카이스트 나왔어. 그냥 전공자라고 다 전공자가 아니지. 명문대라는 SKY 같은 곳도 세계레벨에선 듣보잡이긴 한데, 그럼 그 이하는 더 듣보잡이란다.

  13. 좀 쓸데없이 껴드는 것 같은데.. sécurité는 ‘세퀴리테’로 읽어주세요 ㅇㅅㅇ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