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heterosis.egloos.com/844192 원문
The Meaning of Evolution : The Morphological Construction and Ideological Reconstruction of Darwin’s Theory (Science and Its Conceptual Foundations series)
번역: 김우재
이 책은 진화생물학에서 주요용어로 사용되어 온 ‘진화’라는 용어의 역사를 다룬 에세이로 시작한다. 이미 많은 과학사가들이 진화의 의미를 두가지의 구별되며 겹치지 않는 의미로 정립시켜놓았기 때문에 나의 작업은 피상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다. 17세기에 ‘진화’라는 말의 의미는 ‘전성설’-배아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이미 어른형태의 미니어쳐가 형성되어 있으며 잉태기간동안 이 미니어쳐가 펼쳐지거나 ‘진화’한다는 의미의 이론-의 이론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어졌다. 1850년대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유행되기 시작한 두번째 의미의 ‘진화’는 변형에 의한 후손으로서의 종개념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역사가들은 이 두가지 용법의 ‘진화’를 완전히 구분되는 ‘개가 짖는(bark of the dog)’것과 ‘나무의 껍질(bark of the tree)’처럼 이해해왔다. 그들은 이 둘을 혼동해서 사용하게 되면 나무가 당신을 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연구를 통해 나는 ‘나무’에 대해 좀더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이 두가지 용어가 역사적으로 ‘진화’과정 그 자체와 별반 다르지 않게 합성되었다고 믿는다. 더 오래된 발생학적인 아이디어가 두세기를 거치면서 변형되었고 결국 우리에게 친숙한 종의 변화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 과거를 담고 있게 되었다.
이러한 두가지 다른 의미의 ‘진화’사이의 역사적 잃어버린 고리는 에른스트 핵켈의 이론이다. 헥켈의 이론은 일반적인 히스토리오그라피에 따르면 19세기의 말엽에야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고 극단적인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좋은 다윈주의자들에 의해서는 끔직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핵켈은 그의 진화이론을 일종의 생물유전학적인 법칙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배아는 한종이 진화하면서 겪은 발전과정의 형태학적 단계를 그대로 밟아간다. 즉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Ontogeny recapitualted phylogeny). 정립된 정통설은 핵켈의 계통반복설은 카인처럼(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이념에 휩싸인 과학이며 근대 신다윈주의의 합법성과는 차별된다고 이야기한다.
분명히 역사적으로 핵켈의 이론을 폄하시킨 어떤 정통적 입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핵켈의 책을 연구하면서 나는 그 책에 담긴 낭만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의 독일식 다윈주의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의 이론이 단순한 사기꾼의 그것이 아니라 다윈의 적통들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영국의 천재적인 후손들 또한 계통반복설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의심된다. 이제 다윈의 역사적 발전과정으로 돌아가보면, 나는 다윈의 이론이, 그 개념과 성숙과정에서 모두, 이미 존재하던 그 원칙의 리듬에 박동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처음 절반은 진화의 원래 의미가 어떻게 변형되어갔는지를 추적한다. 이는 계통반복의 원칙으로부터 종의 후손이라는 개념으로의 변화과정을 의미한다. 나는 ‘진화’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면서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실제로 사용된 그 단어의 용법을 사용했으며, 이는 역사적 재구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의 나머지 절반은 다윈이 단순히 계통반복설의 옹호자로서가 아니라, 그 원칙 자체가 그의 개념의 내적특성이며, 발생학적 진화와 종의 진화가 같은 과정의 다른 면에 불과하다는 이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다윈의 이론이 가지는 가치자체가 받아들여질 수 없었음을 말할 것이다. 두가지 진화과정 모두가 동일한 패턴의 배열에 따라 점진적인 형태상의 변화를 수반한다. 이제 나에게는 다윈이 발생학적 진화 모델에 의존했음이 확실해 보이며, 그가 계통반복설을 사용했음이 너무나 명백해서 오히려 왜 그토록 많은 역사가들이 격렬하게 그 반대의 경우만을 이야기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나는 그 해답이 이념의 어두운 샛길에 놓여 있다고 믿으며, 책의 결론부에서 이 믿기 어려운 과정에 대한 나의 낙담스러운 감정을 표현해 볼 것이다.
이후 감사의 인사는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