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edium.com/science-scientist-and-society-korean/b513895730b2 원글
데이빗 돕스 (David Dobbs)의 글 <이제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비유를 버려야 한다>는 글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적대적 저널리즘과 이기적 유전자>라는 글로 반박한 모양이다. 이 논쟁이 돕스가 도킨스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 말은 반쯤 맞고 반은 틀리다. 적어도 이 논쟁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헛된 논쟁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기존의 진화생물학과 후생유전학, 진화발생생물학(이보디보) 등의 신생학문이 부딪히고 있는 과학의 흐름안에서 본다면, 이 논쟁은 충분히 깊은 함의를 지닌다.
이 점은 마이크로RNA를 비롯한 후생유전학의 학풍이 기존의 진화학자들과 얼머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를 알면 분명해진다. 후생유전학의 전통은 분자생물학에서 시작되어 진화생물학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반면, 도킨스는 여전히 자연사에서 시작된 진화생물학 전통밖으로 잘 나오려 하지 않는다. 왜 돕스가 (좀 어설프고 선동적이었지만) 후생유전학과 이보디보 등의 연구결과를 이기적 유전자의 파괴자라고 부르려 했는지는 그런 이해 위에서 바라봐야 분명해진다. 나는 몇년 전에 이런 논점들을 미르이야기의 ‘라마르크의 부활’이라는 챕터에서 이미 분명히 기술 한 바 있다.
또 한가지 문제라면 도킨스와 돕스라는 과학교양꾼들이 이 논쟁이 마치 과학 논쟁인냥 몰고 가는 점이다. 과학교양도서 작가들이 과학논쟁을 주도할 수는 없다. 진짜 논쟁은 학회와 논문들에서 정말 치열하고 숨막히게 벌어지는 중이다. 돕스의 발언은 후생유전학, 진화발생생물학에서 나오는 결과들이 해밀턴 이후에 정체상태에 놓인 진화생물학과 미묘한 긴장관계를 보이는 현상을 포착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진화력(Evalvability)라는 말이 이 신생학문들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고, 그 논문들에서 다루는 진화의 개념이 해밀턴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점, 그게 이런 논쟁이 지금 가능한 이유다.
그리고 도킨스 책을 제대로 읽고 말고는 이 논쟁 안에서나 의미가 있는것이지, 실제 신생학문들과 근대종합 이후에 정체상태에 빠진 진화생물학의 거대한 학문적 갈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추신: 굴드는 심지어 RNA연구하는 분자생물학자와 논문도 함께 쓰곤 했는데 도킨스는 해밀턴 등에 올라타고 이기적 유전자 히트 시킨 이후에 그 유명세를 타고 종교들 까댄거 외엔 학문적으로 해밀턴 시대에 살고 있는 게으른 학자일 뿐이다. 진화생물학이 해밀턴에서 완결되었다고 믿는 도킨스야말로 과학의 발전에 해가 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