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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은 다만 은유일 뿐이다

http://heterosis.egloos.com/773048 원글


2004년 10월 26일, 진화심리학카페에서 밈에 관한 관념론적 토론이 난무하는 걸 보고 쓴 글입니다. 

밈은 다만 은유일 뿐이다, 김우재 

도킨스의 밈은 하나의 메타포로 기능할 뿐이다. 밈은 측정불가능하다. 밈에 대응하는 측정량은 없다. 측정량이 존재하지 않는 과학도 가능하다. 그러나 측정량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적 존재가 기능해야 한다. DNA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물질들을 대상으로 삼는 분자생물학은 물리학의 ‘힘’이나 ‘에너지’와 같은 특별한 측정량 없이도 과학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해서 실체적 존재라는 말이 측정불가능함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존재들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든지 측정가능하고 구별가능하다. 추상적 측정량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지만 구체적 방법론에서는 반드시 측정량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으로 심리학에 접근하는 심리학자들은 쉽게 ‘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뇌’와 ‘인지기능’을 말할 뿐이다. 이러한 경향이 스키너의 행동주의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게 되었지만, 탄탄한 물리적 기반 없는 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 현대과학은 세속화되었고, 세속화과정속에서 과학이 기능한다. 중세의 과학이 신을 상정한 연구였다 해도 그들의 방법론이 측정량과 측정의 방법론을 결여한 적은 없었다. 

즉, 어떠한 ‘개념’이 과학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1. 측정량 
2. 혹은 이에 상응하는 방법론 

이 요청된다. 밈은 이 두가지를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 밈이 없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거나, 밈으로만 설명가능한 현상이 있다면 밈은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막바로 밈이라는 개념으로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심리학과 인공지능, 사이버네틱스와 인지과학에서 도킨스의 Meme Theory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또한 밈이라는 개념이 출현한 이후 그러한 마음의 과학분야에 엄청난 진보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밈이라는 개념을 사회현상이나 한 개인의 신념, 이념등으로 표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사회학 혹은 심리학의 언어로 환원되는 밈이라는 개념을 굳이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밈이라는 것은 존재론적 실체가 아닌 심리현상의 일종이다. 존재가 아닌 현상으로서의 밈을 실체로 사용하는 것은 오류다. 

도킨스 자신도 자신의 글속에서 밈을 하나의 은유로 사용하며 그것을 즐긴다. 그는 심각하게 밈을 말하는 적이 거의 없다 (BrightArticles를 보라). 도킨스는 밈이라는 개념으로 과학분야를 형성하기를 기대할지 모르나 실제로 자신이 그러한 연구를 수행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밈이라는 것이 유전자로부터 외삽된 하나의 은유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윈이 <인간의 유래>에서 진화심리학의 가능성을 말했다고 해서 당시 다윈의 말이 하나의 과학이 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 방법론이 탄생하기 전까지 과학자들에게 하나의 메타포로 기능할 뿐이다. 

도킨스 자신이 밈에 대한 챕터를 이기적유전자에 삽입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막바로 하나의 이론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도킨스는 밈이라는 개념의 유전자와의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사실들을 열거했을 뿐 어떤 공식이나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론은 책이 아니라 논문으로 제시된다. 도킨스의 밈이 과학이론이라면 과학이론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셀 수 없을만큼 많다. 기학, 형태공명, 양자의학, 파동의학, 게다가 물은 살아 있다! 

밈이라는 개념으로 토론을 하려면 이러한 사실들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토론은 관념화되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만큼 변질될 것이다. 막말로 밈을 유전자와 대비시키면서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 하는 것이 샤르댕의 오메가 포인트나 한의학의 氣로 그 현상을 설명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밈을 하나의 메타포로 사용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점이다. 현대과학의 신봉자이며 열렬한 세속주의자의 개념이라고 해서 그 개념의 사용이 막바로 개념사용자의 말을 과학적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밈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말을 과학으로 포장하지 말라. 그것은 지난 수천년간 한의학이 걸어온 퇴보를 되풀이하는 것이며, 과학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무의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