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탈레반이나 중동의 테러조직과 우리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아니 독립군이 역사적 관점에서 얼마나 다른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안중근이나 윤봉길의 테러를 조선의 독립을 위한 애국적 행동의 발로라고 배워 온 우리에게 탈레반의 테러행위는 도대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일제 36년이라는 길다면 긴 식민지 시대를 거친 땅에서 중동의 테러를 보는 우리의 관점은 뒤섞여 있다. 가끔 우리의 국민들이
희생을 당할때마다 우리는 분노를 느끼고 또 전체적인 동정심에 휩싸이기도 하는 묘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의 입장에서 볼 때 일제 36년은 어쩌면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일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때로는
문화의 교류를 위한 장점이 되었을지 몰라도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페르시아 인도, 몽골 등의 거대 제국들에 끊임없이 지배당하던 아프간은 19세기 초에야 비로서 독립적인 왕국을 건설
할수 있었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전성기이던 이 시기에도 아프가니스탄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도를 러시아로부터 방어하는데 있어 아프가니스탄을
기지로 삼으려했던 영국의 전략으로 인해 제 1,2 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있었고, 영국에 의해 지배되다시피했던 역사가 어느정도
안정을 찾을 무렵 1979년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침략당한다. 미국과 이슬람 세력들과 동조하여 결국 소련을 몰아내기는
했지만(아프가니스탄 내전), 무장세력들간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1996년 탈레반이 집권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특이한 점은
사회주의나 반제국주의적 관점의 전쟁이라기보다는 마르크시즘이라는 무신론으로부터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수호할 목적의
‘종교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실상 탈레반이라는 조직도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경험을 쌓은 농촌의 성직자 출신들로, 내전을 거치면서 약화된 파슈툰족의 부활을
추구하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이슬람세력인 것이다. 파슈툰족은 2,850만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다수
부족이고 따라서 탈레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의 소수를 대변하는 극단주의자들이라기보다 다수의 아프가니스탄
국민들로부터 암묵적인 지지를 받는 전위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교의 힘이 여전히 이토록 강력하게 국가를 쥐고 흔들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싶다. 누군가는 광신을 염려하며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증오를 표출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제대로된 국가적 안정이 없이 언제나 정치적/군사적 혼란만이 존재했던 이런
땅에서는 국민을 하나로 묶기 위해 종교라는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된 국민통합장치가 작동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보는
것이다. 일제
36년이라는 어찌보면 짧았던 시기에도 대종교를 비롯한 종교적 신념으로 국민을 단합하려는 시도가 탄생했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시기를 일제36년과 같은 상화엥 처해있었던 국가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이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는 것이다.
특히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목하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주둔군의 야만적인 모습은 외국군과 외부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현되며, 탈레반이라는 일종의 종교조직에 자신들의 염원을 담아내고 있는 형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즉, 현실이
이럴진데 연합군의 탈레반에 대한 계속되는 공격은 주민들의 탈레반 지지를 꺽기는 커녕 계속해서 그 지지도를 올리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이 전파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땅은 파슈툰 왈리(Pashtunwali)라는 불문법에 의해 다스려져 온 곳이다. 파슈툰 왈리는 파슈툰 족의 삶의 철학이 배어 있는 규범들의 집합이다. 자치, 평등, 부족회의와 같은 여러 개념들이 존재하지만 그 핵심에는 바달(Badal, 복수), 멜마스티아(Melmastia, 환대), 나나와티(Nanawati, 보호)라는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환대와 보호라는 개념들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달(Badal), 즉 복수라는 개념이다.
바달은 개개인에 대한 복수를 결국 가족과 마을 종족 전체의 복수로 이끌게 되는 파슈툰 족의 핵심 개념이다. 악셀로드의 실험에서
팃포탯(Tit for Tat)이 승리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환대에 배신당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은 복수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바달과 같은 가치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탈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단재 신채호의 <조선혁명 선언>중
파슈툰 왈리의 개념들은 불문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떤 개념에 우위를 부여하는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독교의 교리에서 강조하는 가치가 변하듯이 파슈툰 왈리의 개념들도 그러한 변화를 겪어 왔을 것이다. 작금, 파슈툰
왈리의 개념들 중 바달이 개념적 우위를 점거하는 것은 시대적인 요청이다. 적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침략, 전쟁, 내전이 없었던 세대가 없는 암울한 역사 속에서” 파슈툰 족이 바달 뿐 아니라, 멜마스티아(Melmastia, 환대)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강열국의 지배로 인해 경제적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던 일본은 조선에게 자신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위해를 가함으로서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 자국가의 경험은 그 어떤 도덕적 책무로도 작동할 수 없음을 증명해주었다. 사실 장하준이 선진국의 변화를
촉구하는 대목에서 나는 그의 나이브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역사적 분석은 날카롭고 아름다웠지만, 그 대안이 선진국의 변화를
촉구하는 윤리적 각성따위의 것이라면, 나는 현재 대한민국이 걷고 있는 역사적 경로를 한번 추적해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베트남으로부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우리의 역사도 결국은 일본이 걸었던 제국주의 따라잡기의 그것과 크게 다른 것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국가간 생존경쟁의 힘의 게임을 인식한 과학자들이 ‘세계정부’를 꿈꾸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또한 도덕적 이상을 가정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산타야나의 리뷰가 세계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언제나 망가져버리는 현실을
바라보며 천천히 대안을 모색해 볼 뿐이다.
더불어 “중동 지역에 대한 선교는 기독교인의 숙명입니다”라고 말하는 작자들에 대한 나의 바달도 참으로 다스려야 할지 표출해야 할지 고민되는 그런 개념인 것이다.
+ 아프가니스탄이란?
+ 아프가니스탄 : 세계 분쟁의 교차로
+ 아프가니스탄, 끝나지 않는 전쟁터
+ ‘열강의 각축장’ 아프가니스탄의 오늘 (1)
+ 파슈툰족의 생활 규범, ‘파슈툰왈리’
잘 읽었습니다. 헌데 염려되는 것이 신의사도(?)라고 하는분들이 또 와서 난리를 치지 않을까 염려스럽네요 진화를 공부하는 학생한테 회개하라고 외치시는 분들인데요
ps.이 영상을 보시면서 기분전환을
http://kr.youtube.com/watch?v=at_f98qOGY0
많은 협박과 압제에 시달려 온지라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답니다. ㅎㅎ
늘 그렇지만 김우재님의 글은 생각할꺼리를 참 많이 가져다 주십니다.
읽을만한 글도 참 많고…
제가 등록한 많은 RSS 중에서 순위권을 달리신다고 할까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가끔은 욕도 좀 해주고 그러세요. ㅋ 블로그 스킨이 죽입니다. 부러운걸요? 저도 하나 만들어주시면,, 부비부비 ㅋ
어느 다큐에서 봤는데..탈레반은 마약재배 같은 걸로 돈을 번다고 하더라고요..
그에 비해 임정은 해외에 동포들에게 후원을 받아서 어렵게 유지되다가 이봉창의사나 윤봉길의사의 의거로 후원금이 늘어나서 유지되죠..
탈레반은 많은 악행을 했습니다..연을 쫓는 아이에 보면 탈레반이 집권하던시기에 많은 하자라인을 학살하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하네요..
단지 탈레반은 더럽게 독재하던 것들이 다시 독재를 하기위해 싸우는것 아닌가요..
김준수/ 인터넷에서 목소리 높이며 테러행위 하는 애들은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됩니다.
혹은 웃으면서 자상하게 대해 주면 됩니다.
진짜 무서운 것들은 오프라인에서 인터넷 통제하려 드는 것들이지요.
문제는 현재 연합군의 대테러공격이 그런 탈레반의 독재를 더욱 공고히 해준다는 역설에 있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