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 로렌츠가 아주 적극적인 나치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저서에 담긴 동물에 대한 ‘호의’를 그저 호의로만 받아들이기 어렵죠.
학문과 정치를 완전 별개의 것이라 우기거나 또는 진심으로 그렇다고 믿는
바보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황우석이가 그런 바보들 덕에 신이 되었던
어엿분 시절이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과객/ 그런 정신이면 학문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당연히 당대 지식인들의 사상이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생물학자나 인류학자의 대부분이 우생학을 지지했습니다. 그렇다고 19세기의 생물학 전부를 폐기하거나 당대의 발견 중 살아남은 것들을 이상하게 바라볼 수는 없는 겁니다.
정치 및 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철학이나 사회과학, 인문학과는 달리 자연과학에는 측정량이라는 외부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측정량과 이론의 연결에서 사회/문화적 요인이 개입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치였던 로렌츠의 ‘동물행동학’의 이론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훗날 포퍼의 친구로 남는 로렌츠입니다.
과학을 당대의 사회/문화적 영향 속에서 다룰 때에는 사회과학이나 철학과는 달리 정말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윌리엄 페티부터, 아담 스미스를 거쳐 밀과 리카르도, 맑스 케인즈까지 이어지는 경제학자들의 이론과는 다릅니다. 경제학의 이론들은 시대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죠. 경제학이 시대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조금 다릅니다.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맥락은 이해하겠습니다만, 저는 로렌츠 자신의 정치성과 학문적 몰성실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당시 조류에 따라 우생학을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몇 걸음 더 나아가 나치당에 가입하고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했던 전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전후 자기가 나치 활동에 소극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일종의 살아남기 위한 제스처였다고 보여지고요. 나치당원 시절의 동물 연구 결과를 그대로 인간 연구에 적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동물행동학을 정립한 사람에는 로렌츠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직하지 못한 활동을 해온 사람의 학문을 높이 평가해 줄 이유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황우석도 거짓 위에 모래탑을 쌓아 올렸죠? 물론 황우석과의 단순 비교는 곤란하겠지만, 과학자조차도 정치적 올바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엔 늘 과학을 오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 이치 아니겠습니까? 로렌츠가 그저그런 과학자로 기록되고 있다면 무시해도 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생학처럼 가치 경도적 과학을 다룰 때엔 특히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전후 하이젠베르크 같은 과학자가 고백(?)한 거짓말 정도라면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로렌츠 같은 이의 정직하지 못한 진술, 특히 인간 가치와 직접 연결돼 있는 생물학 분야에서의 그의 전력을 감안하면 로렌츠는 그냥 넘어가 줄 수 없습니다. 훗날 포퍼의 친구로 남았다는 얘긴 저도 모르고 있던 사실입니다만, 같은 오스트리아인으로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저는 철저한 이분법을 신봉하는 특정 종교의 신도가 아닙니다.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선인도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죠. 그리고 저는 무슨 구성주의 과학론을 신봉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과학 역시 그 시대에 내던져진 인간들의 행위의 결과라고 보며, 그렇다면 그러한 결과의 당사자인 과학자들의 공과를 가능한 한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과객/ 말씀 충분히 이해합니다. 로렌츠보다 틴버겐의 학문적 성취가 높았습니다만 일반대중에게 로렌츠가 더욱 유명한 것은 그의 포퓰리즘 덕분일 겁니다. 그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우려한 것은 당대의 시대상황 속에서 ‘자연’과학자의 업적을 평가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분 같네요. 자주 들러주세요 과객으로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ㅎㅎ ^^
우재님이 각인기제(?)가 발동된 새끼오리(?)가 되셨나요? ^^;;
아녜요~아녜요~~다른 분? ㅋ
일상… 입니까!! 와우
전 이마저도 그저 놀랍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ㅠㅜ
콘라트 로렌츠가 아주 적극적인 나치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저서에 담긴 동물에 대한 ‘호의’를 그저 호의로만 받아들이기 어렵죠.
학문과 정치를 완전 별개의 것이라 우기거나 또는 진심으로 그렇다고 믿는
바보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황우석이가 그런 바보들 덕에 신이 되었던
어엿분 시절이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과객/ 그런 정신이면 학문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당연히 당대 지식인들의 사상이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생물학자나 인류학자의 대부분이 우생학을 지지했습니다. 그렇다고 19세기의 생물학 전부를 폐기하거나 당대의 발견 중 살아남은 것들을 이상하게 바라볼 수는 없는 겁니다.
정치 및 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철학이나 사회과학, 인문학과는 달리 자연과학에는 측정량이라는 외부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측정량과 이론의 연결에서 사회/문화적 요인이 개입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치였던 로렌츠의 ‘동물행동학’의 이론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훗날 포퍼의 친구로 남는 로렌츠입니다.
과학을 당대의 사회/문화적 영향 속에서 다룰 때에는 사회과학이나 철학과는 달리 정말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윌리엄 페티부터, 아담 스미스를 거쳐 밀과 리카르도, 맑스 케인즈까지 이어지는 경제학자들의 이론과는 다릅니다. 경제학의 이론들은 시대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죠. 경제학이 시대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조금 다릅니다.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맥락은 이해하겠습니다만, 저는 로렌츠 자신의 정치성과 학문적 몰성실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당시 조류에 따라 우생학을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몇 걸음 더 나아가 나치당에 가입하고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했던 전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전후 자기가 나치 활동에 소극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일종의 살아남기 위한 제스처였다고 보여지고요. 나치당원 시절의 동물 연구 결과를 그대로 인간 연구에 적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동물행동학을 정립한 사람에는 로렌츠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직하지 못한 활동을 해온 사람의 학문을 높이 평가해 줄 이유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황우석도 거짓 위에 모래탑을 쌓아 올렸죠? 물론 황우석과의 단순 비교는 곤란하겠지만, 과학자조차도 정치적 올바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엔 늘 과학을 오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 이치 아니겠습니까? 로렌츠가 그저그런 과학자로 기록되고 있다면 무시해도 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생학처럼 가치 경도적 과학을 다룰 때엔 특히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전후 하이젠베르크 같은 과학자가 고백(?)한 거짓말 정도라면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로렌츠 같은 이의 정직하지 못한 진술, 특히 인간 가치와 직접 연결돼 있는 생물학 분야에서의 그의 전력을 감안하면 로렌츠는 그냥 넘어가 줄 수 없습니다. 훗날 포퍼의 친구로 남았다는 얘긴 저도 모르고 있던 사실입니다만, 같은 오스트리아인으로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저는 철저한 이분법을 신봉하는 특정 종교의 신도가 아닙니다.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선인도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죠. 그리고 저는 무슨 구성주의 과학론을 신봉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과학 역시 그 시대에 내던져진 인간들의 행위의 결과라고 보며, 그렇다면 그러한 결과의 당사자인 과학자들의 공과를 가능한 한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과객/ 말씀 충분히 이해합니다. 로렌츠보다 틴버겐의 학문적 성취가 높았습니다만 일반대중에게 로렌츠가 더욱 유명한 것은 그의 포퓰리즘 덕분일 겁니다. 그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우려한 것은 당대의 시대상황 속에서 ‘자연’과학자의 업적을 평가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분 같네요. 자주 들러주세요 과객으로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