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에 대한 정확한 독서를 신뢰를 통해 보여준 사람은 홍준기 씨였는데, 그는 나의 논문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적확한
물음을 던졌다. 그는 기본적으로 바디우의 작업이, 분석가라는 모델을 기초로 하고 있는 주체를 세공하는 작업이라는 정확한 파악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바디우적 주체는 고진적 주체와 같지 않다.
홍준기 씨는 단독적 주체보다는 바디우적 주체, 즉 정신분석가를 모델로 하고 있는 주체를 현재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분열된 주체를 신경증적 주체와 등치시킨다.
나는 분열된 주체를 신경증적 주체와 등치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분열된 주체”와 “신경증적 주체”라는 두 표현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려고 했다. 즉 나는 분열적 주체가 언제나 신경증적 주체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답했다.
오늘 나는 나의 글에 대한 매우 정확한 독자 가운데 한 명인 “붉은서재”라는 블로그의 블로거(비평고원의 회원인 박가분)가
신경증과 관련하여 나의 것과 동일한 통찰을 담고 있는 글을 올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그 글의 링크를 스크랩방에 올렸다.
놀라운 글이다.
게다가 그는 근대문학의 종언의 결과를 조영일 씨 보다 더 밀고 나아갔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조영일 씨가
어쩌면—겉보기의 인상과는 정반대로—너무나 편안한 대상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가 보기에 타당한 의심을
표출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오늘 새로운 테제를 궁리하고 있었다. 이는 라깡학회에서의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정확히 홍준기 씨와의 대화를 통해 얻게 된 것이며, 박가분 씨의 글을 통해서 좀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분열된 주체는 오로지 공동체 내부에서 신경증적 주체로 실현된다.
이러한 나의 테제는 다음의 테제를 통해 보충된다.
오늘날의 공동체는 이러한 실현을 지탱할 수 없다. 혹은 오늘날 공동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진은 종종 자신의 실패한 실천 때문에 공동체주의자로 오인된다. 나는 고진이 뿌리깊은 반공동체주의자(=연맹주의자)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 윗글을 읽고 이해를 하는 사람이 제정신인가..아니면 내가 무식한건가..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칸트, 프로이드. 마르크스, 헤겔 에 대한 현대 서양철학자들의 견해가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해석이 중요한 것인가..
오히려 이런 건 동양철학 하는 분들이 더 나은듯.
현대 과학이야 워낙 거대자본에 종속되어 있으니 응용쪽으로의 유행을 탄다 치고…인문학은 그렇게 살아 남지 않아도 될 듯한데…인문학은 유행을 만들거나 분석하는 쪽이 아니었나..
허긴..순수 인문학이라는 것도 없겠다. 모조리 정치운동, 사회운동..100분토론 출연 그런 것 하고 있어야 하니까..근데 왜 과학자들이 조금 정치좀 하려 그러면 난리버거질까?
윗대가리들이 학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대신 대중에 대한 야합을 보여주는 판이니 아랫물이 흐릴 밖에..
허긴…윌슨 아류에 놀아나는 대한민국 과학계는 뭐 좀 나은가..
윗글은 비평고원이라는 곳에서 퍼왔다. 유명한 곳이라더라…http://cafe.daum.net/9876
난 정말 머리가 나쁘기는 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아악~~~!!! 저 글은 하나도 이해가 안되..
게다가 내가 아는 또 한 미친놈이 거기서 설친다…헐.
고진 읽으려고 했는데 포기할까부다…
데리다/라깡/지젝/벤야민? 또 누구 있나..논문 한편씩 읽어보기
검색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벤야민 횡단하기 4편 pdf파일들 공자로 다운받으세요
~~ http://hohohi23.springnote.com/pages/1465768
헐…들뢰즈 학위논문이 데카르트보다 많다..
국내 인문학 학위논문 주제어에 관한 통계같은 거 없나…
비평고원이란 카페는 아주 재미있는 곳이네요. ^^
오..잠수님이 더 흥미로움.. 오호
자유기업원이라는 곳에서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책들을 공짜로 다운받는 법이 있는데 다들 알고 계시나,…? 하이에크라면 이부터 가는 건 나도 마찬가지 ㅡ.ㅡ
몇년전에는 그냥 다운 받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포인트 차감이란 걸 한다는…ㅋ
이른바 근대에 대해서는 주체 뭐시기보다는 존재와 당위의 구분이라는 칸트의 문제 제기를 붙잡고 늘어지는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다는게 요즘 드는 생각입니다. 규범체계 차원의 사건인지, 막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 피어난 또는 찾아진 질서인건지, 도무지 통일되어있질 않은 ‘근대성’을 깨버리고 좀 더 설명력이 높은 몇 가지 실체로 대체되는게 도움이 될 듯 하다는..
차라리 훨씬 더 통사론적으로 노는 논리학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아먹는데는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문학이 대상이라 저런 방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인지..
제가 느끼는 것도 그렇습니다. ‘문학’이 대상이 되면 논의가 무슨 괴물마냥 변질되어 버립디다…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