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이 지닌 역사관의 기원
언
제나 도올은 학자라기보다는 선동가로, 지식인보다는 연예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당대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들을 잘 소화하고
이를 대중적인 언어로 표현해낼 줄 아는 전문가다. 대부분의 도올 팬들이 도올의 저서에서 머물며 그의 말을 그의 생각으로 이해할
것이기에, 도올은 스스로 말하는 바대로 그의 팬들 앞에서 독창적 사상가로 둔갑한다.
그
는 각주와 미주에 소홀하다. 칸트나 화이트헤드와 같은 인물 앞에선 언제나 초라한 그가 어떤 사상의 해석을 도용하면서 인용에
인색하다는 것은 알만한 이들은 이제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학자가 아니다. 학자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본다. 학자는 자신이 거인 혹은 동료들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았다는 양심을 가졌을 때 학자다. 그것이 학자적 양심이며 학계가
논문표절을 악으로 규정하는 이유다. 해석의 표절은 논문 표절보다 사소한 일로 여겨질 수 있을지 모르나, 스스로를 독창적 사상가로
부르는 사람이 저지를 일은 아니다.
과
학사에서 잠시 빠져나와 세계사와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자주 도올의 편린을 위대한 선구자적인 학자들의 논문과 저서에서
마주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후배가 선물해준 <요한복음강해>를 끝으로 도올의 학자적인 저서가 등장하기 이전엔 더이상
도올의 책은 적어도 사지 않기로 다짐했던 것도 그러한 연유다. 그는 대중적 유명세에서 멀리 떨어져 고독한 학자의 길을 걸었던
많은 이들의 해석을 도용하며 그들을 추켜세우지 않는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된다면 그것은 진정 비양심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미
그의 유학해석이 일본 소라이의 <논어징>에 복사판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바다. 이 뿐 아니라 그는 하버드 옌칭
연구소의 많은 연구들로 베낀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도올은 뚜웨이밍의 공자에 대한 해석에 많은 빛을 지고 있다. 비록
그가 뚜웨이밍의 해석을 자신의 것이라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도
올은 분명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하버드에서의 유학시절에서 학자로서의 많은 영감을 받았음에 틀림 없다. 나는 도올의 사상을 무조건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에게서 칸트적인 집대성을 기대하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끔 그의 해석이
독창적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동학의 원류를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로 파악해 나간 그의 학파 계보 뒤지기는
꽤나 성공적인 일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독창적 사고가 논문이나 체계적 저서가 아닌 선동적 저술로 그쳤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느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footnote]부끄럽게도 내가 한 사상가 혹은 학자의 모든 저술을 읽은 것은 도올 뿐이다. 나는 <확장된 표현형> 이후 도킨스 읽기를 그만두었고 굴드의 번역된 모든 책을 읽었지만 더이상 굴드를 읽을 생각이 없다. 끝장을 내고 싶은 한 명이 최근 생겼는데 이 인간은 전문서 한권을 내고는 대중서를 쓸 생각이 없는 듯 하다.[/footnote], 그는 스스로의 문체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의 학자적 성취가 더이상 학자의 그것이 아닌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사상가라는 이유로 봐줘도 되나. 종합가이기 때문에?
족보뒤지기도 베꼈을 가능성이 있다.
신복룡
에드워드 와그너
그외 외국의 한국사학자들
도올
도올의 사상(신하-왕)은 와그너의 것. 도올의 마르크스 사관 근대화 비판은 에커트의 것,.
심대윤
인치, 유지본야
도올은 짐멜을 닮았다. 이효선 <짐멜 사회학에 대한 재평가>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