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이 260만두를 넘어 300만두를 눈앞에 두고 있고, 1차 피해액만 2조원이 넘어가려는 지금, 아무리 금수의 목숨값이 사람 한 명보다 소중하지 않다고 해도 축산민들의 피해와 이를 고스란히 떠안게될 관련 종사자, 나아가 소비자들의 피해를 생각한다면 아덴만 여명이나 신정환의 귀국 따위는 뉴스거리도 될 수 없다. 11월 23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된 이후, 구제역 간이항체키트로 음성 판정이 나왔다는 이유로 늑장을 부른 초동대처, 즉 1주일 이상 분뇨수거차를 비롯한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사람들의 왕래가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보이다. 사태가 악화된 이후의 분석결과는 이번 사태가 천재가 아닌 인재임을 분명히 증명한다. 최초 발원지로부터의 분뇨수거차량, 양돈업 차량의 동선과 구제역 발병 지역이 정확히 일치한다.
구제역(口蹄疫, FMD, foot-and-mouth disease)은 FMDV(foot-and-mouth disease virus)라는 RNA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어 생기는 질병이다. 박사과정 때 이 바이러스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있다. 피코나비리데(picornaviridae)에 속하는 이 바이러스는 우리 실험실에서 연구하던 C형 간염바이러스의 친척뻘이 된다. RNA 바이러스의 특성상, 이들은 세포의 번역 기구들을 이용하기 위해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들은 진핵세포의 전령RNA가 지닌 CAP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고, 따라서 자신의 RNA를 단백질로 번역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리보솜(ribosome)을 끌어오기 위해 IRES(internal ribosomal entry site)를 진화시켰다. 당시 실험실의 한 선배가 FMDV의 IRES를 연구했었다. 당시 사용했던 말혈청(horse serum)이 나중에서야 오염되었다는 걸 안 선배는 랩을 나갔지만, 회사에서 판매하던 혈청까지 오염되어 있을 정도로, FMDV의 전파력은 빠르고 강력하다.
조류 독감이나 구제역 등의 최근 인류에게 판데믹의 공포를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는 대부분의 병원균은 RNA 바이러스다. RNA를 유전체로 지니고 있는 바이러스는 RNA라는 분자의 특성 때문에 자기자신을 정확하게 복제하지 못한다. RNA를 복제하는 RDRP(RNA-dependent RNA polymerase), 즉 RNA 의존적 RNA 중합효소는 복제오류 수정능력(proof reading)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염기서열을 복제한다는 것이 DNA를 유전체로 가진 원핵생물을 비롯한 생명체들에게는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바이러스들 중에 RNA를 유전체로 지닌 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유전체의 정확한 복제란 돌연변이에 의한 환경에의 부적응을 극복할 만한 이득이 된다는 걸 뜻한다. RNA 바이러스들은 복제의 불완전함을 오히려 이용한다. RNA로 유전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그 단한가지 이유 때문에, RNA 바이러스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한다. 100만 마리의 바이러스를 만들고 치명적인 돌연변이 때문에 바이러스로 기능하지 못하는 개체가 사라진다 해도, 그 중에 전염력이 높고 어쨌든 그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릴 한 마리의 개체만 등장한다 해도, 바이러스에겐 이익이 된다.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다. 돌연변이율을 줄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박테리아 이상의 생명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RNA 바이러스는 그런 수선 메카니즘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들은 인해전술로 환경에 적응한다. 그들이 적응하는 환경이란 곧, 숙주의 면역체계다.
바이러스를 위협하는 유일한 적은 자외선, 열, 그리고 고등생물의 면역체계 뿐이다. 복잡한 고등생물로 진화할수록 면역체계는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한 수 많은 세포들과 단백질 네트워크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도, 돼지도, 인류도, 수백만년의 진화과정 속에서 이러한 군비경쟁을 거쳐온 흔적을 유전체에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인간 유전체의 상당부분이 바이러스의 유전체다. 심지어 유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쓰레기 DNA들의 기능이 이러한 바이러스들이 헛발질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진화적 가설이 무엇이건 간에, 바이러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숙주의 면역체계다. 면역세포들은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항체를 만들고 만약 항체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개체라면 없는 개체보다 바이러스의 침입에 더욱 효과적으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항체를 매개로한 면역체계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에 대한 기억은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좀 더 효과적으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드는 경험의 구실을 한다. 항체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노출된 항원에 대해 우리 몸의 면역계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원리를 이용한 것이 백신이다. 백신은 바이러스의 껍질 단백질이나 죽은 바이러스 등을 몸에 주사해, 몸에 바이러스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렇게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달이 걸린다. 따라서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다. 백신은 예방약이다. 지금 백신을 처방한다고 해서 구제역에 걸린 소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구제역이 퍼지지 않은 지역의 소들이 구제역에 걸릴 확률을 낮출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다시 이러한 사태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매년 구제역이 돌기 전에 구제역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돈이 많이 들 것 같다면, 백신을 당연히 국산화해야 할 것이고, 그러고 싶으면 연구에 지원해야 한다. 사태가 터지고 난뒤에야 구제역 백신을 국산화해야 한다고 외치는 짓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기초연구에 지원을 하건 말건 그건 나랏님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구제역 백신은 고사하고, 독감 백신과 치료제까지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 것이 이 나라 기초연구의 실상이다. 그 많은 생물학 실험실들이 온 나라에 깔려 있지만, 실험기구를 비롯한 시약 대부분을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 것이 한국 과학계의 실상이다. 원천기술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첨단기술로 돈을 버는 기업이 제아무리 많아도 핵심부품은 죄다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한국 산업계의 현실이 참담한 것이라면, 연구 기자재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한국 과학계도 참담한 것이다. 원천기술이란 당장 돈을 벌게 해주는 그런 기술이 아니라, 이 나라가 스스로의 힘으로 원천기술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담보하는 그런 기술이다. 외국계 제약회사의 눈치를 보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수입을 해야만 하는 백신이 아니라, 그런 것 하나라도 국내의 연구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기술이다. 국내 연구진의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기술을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의 성과에만 투자하는 과학기술정책관료들의 무능이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제역이 전세계적인 현상이 된 지금까지도 그 흔한 구제역 간이 항원진단키트조차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가 없어서 일이 이 지경에 되었는데도, 그것 하나가 없어서 250만두의 소와 돼지들이 죽어나가야 하고, 축산농가의 민중이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데도, 그것 하나가 없어서 2달 만에 2조원을 날려 먹었으면서도 단 100억을 그런 연구에 투자할 생각을 못하는 게 이 나라 과학기술정책관료들의 철학이자 비전이다.
상황을 다시 돌려 11월 23일로 돌아가보자. 그날 지방관청에서 나온 검역소 직원들은 간이 항체진단키트라는 걸 사용해서 구제역 의심 소를 검사했다고 한다. 항체진단키트란 말 그대로 항체를 진단하는 키트다. 항원진단키트란 말 그대로 항원을 진단하는 키트다. 이런 항체 혹은 항원진단키트의 기본 원리는 항원-항체 반응이라는 면역학 교과서의 가장 기초적인 과학적 사실을 응용한 것이다. 이런 실험기법을 ELISA라고 한다. 항원은 바이러스처럼 면역계에 외부침입자로 인식되는 모든 물질을 뜻한다. 항체란 항원에 반응해 면역세포가 만들어낸 단백질이다. 항체는 항원에 고도의 정밀도를 가지고 반응한다. 항체가 항원에 반응하는 정밀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정교하다. 면역계의 기본적인 진화과정은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것이다. 외부 물질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기생체인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외부물질을 반드시 구분해야만 개체의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우리가 소화라는 번잡한 과정을 통해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고기 육회를 생으로 ‘먹으면’ 괜찮지만, 소의 장기를 몸에 이식하면 사람은 죽는다.
띠라서 면역계는 외부물질에 대해 극렬하게 반응한다. 그러한 과정이 급격하게 일어나면 염증이 된다. 따라서 이처럼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과정이 아무렇게나 촉발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면역계가 자기자신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안과 밖을 혼동한 생명체는 균형을 잃는다. 늙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 면역계도 기계와 같아서 인간이 늙으면 함께 늙는다. 류마티스 관절염, 성인 당뇨병이 모두 이런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다. 따라서 면역계는 외부물질만을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 철저한 선택과정을 거친다. 만들어지는 항체생산세포, 즉 B세포의 대부분이 비장 등에서 죽는다. 자기항원, 즉 자기 몸의 단백질을 인식하는 세포는 모두 죽인다. 그래야만 혈관으로 나온 면역세포들이 개체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어느정도 확실해 지기 때문이다. 항체의 정밀성은 바로 이런 선택과정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면역세포의 선택과정을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선택이라고도 부른다.
항체진단키트는 이처럼 항원에 의해 우리 몸이 만든 항체의 존재 여부를 검사하는 키트다. 따라서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직접적인 진단이 아니라, 간접진단이다. 항체의 짝은 항원이므로, 당연히 항체진단키트에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항원이 달려 있다. 만약 구제역에 걸린 소가 있고, 그 소가 바이러스 항원에 대한 항체를 만들었다면, 이 소의 혈청을 이 키트에 떨어뜨리면 키트에 붙은 항원과 소가 만든 항체가 반응한다. ELISA는 이 반응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다. 항체는 항원이 존재해도 만들어지는 데 몇 주의 시간이 걸리고, 만들지 못할 경우도 있다. 면역력이 약한 소는 항체를 만들 시간도 없이 죽는다. 따라서 항체진단키트는 말 그대로 구제역에 대한 정밀진단이 아니다.
반대로, 항원진단키트는 항원, 이 경우엔 구제역바이러스의 존재여부를 검사하는 키트다. 당연히 항원진단키트엔 구제역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붙어 있다. 따라서 소나 돼지의 수포 등을 이 키트에 떨어 뜨리면 마찬가지로 반응이 나온다. 구제역이라는 말처럼, 소나 돼지의 입 부위, 그리고 발 부위에 생긴 수포는 바이러스가 번식하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원키트야말로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자, 구제역의 유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최전선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진단도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항원진단키트가 중앙검역소, 즉 수의과학검역원 단 한군데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정확한 구제역 검사를 위해선, 해당 축산농가에서 소나 돼지의 수포 샘플을 채취해서, 이를 중앙검역소로 보낸 다음, 검사결과를 기다려야만 한다. 정부는 항원진단키트를 다루려면 전문가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한다.
평상시에는 간이키트가 지방위생시험소에는 항체 간이키트만 배부되어 있고요. 구제역이 발생하면 항원키트까지 배분을 합니다.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지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항체 검사키트로 했는데 음성이 나왔고, 다른 유사증상이 있어서 지금 염소소독제 중독으로 추정했고, 그래도 농장주 계속 관찰하는 과정에서 출하정지나 이동통제는 이미 실시하고 있었지만, 계속 관찰하는 도중에 증상이 더 시간이 지나니까 더 나타나겠죠.
항원키트를 좀 전에 설명을 드렸듯이, 초동 시료채취팀을 현장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이 키트를 다 가지고 가서… 평상시에는 우리들이 항원키트를 가지고 계속 붙여보면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스킬을 가지고 있고, 그 다음에 이런 것을 조심히 다룰 수 있는, 제일 처음 발생했을 때는 우리들이 가서 확인을 하고요. 그 다음부터는 한번 발생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빨리 진단해 내야 되기 때문에 전파를 시키는 것입니다.
(관계자) 참고로 말씀드리면, 항원키트는 굉장히 다루는 게 위험합니다. 잘못 다룰 경우에는 수포를 터뜨린다거나 이럴 경우에는 급속도로 전파의 위험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는 못주고 있습니다. 경북안동 구제역 발생,원인 등에 대한 정밀 역할조사 실시
나는 항원진단키트, 그것도 간이항원진단키트가 위험하다고 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수포에서 샘플을 채취해서 그걸 세포배양까지 해야하기 때문인줄 알았다. 세포배양까지 해야한다면 당연히 많은 실험기구가 필요할 테고, 세포배양과정에서 바이러스가 과량으로 증식할테니 위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간이항원진단키트라는 게, 결국은 수포에서 액을 조금 짜서 그걸 키트에 뿌리는 아래와 같은 형태다.
이게 정말 전파의 위험이 그렇게 큰가? 소독장갑 끼고, 평소에 약간의 교육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구제역이 이렇게 무서운 질병인걸 몰랐을리도 없고, 수포에서 액을 짜내 키트에 떨어뜨리는 간단한 작업 쯤은 굳이 중앙검역소까지 가서 할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포액을 다루는게 그렇게 위험한가? 그것이 항체진단키트로 음성판정을 내려서 일주일이나 늑장 대응을 하게 만들고, 그 결과 250만두의 가축 살처분과, 2조원이 넘는 피해액을 남긴 것보다 더 위험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수포액을 터뜨리는게 위험하다면, 수천마리의 소와 돼지를 직접 만지고 땅에 파묻는 작업은 더 위험하다. 전문가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인력이 없다면 이런 단순하고 간단한 작업은, 게다가 무슨 대단한 스킬이 필요하지도 않은 것쯤은 지역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항체가 생성되는 몇 주동안 이 안일하고 게을러 터진 공무원들이 ‘설마 구제역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축산농가를 우롱할 구실이 생기지 않게 된다. 구제역과 관계된 현재의 정부매뉴얼은 당연히 수정되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정부에서 항원진단키트가 위험하다고 설레발을 치는 이유는, 그게 비싸기 때문 아니면,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이유 외에는 없다. 당장 항원키트를 지역에 모두 구비하게 해야 하고,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아니라 ‘항원’ 단계에서 초동 대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건 250만두의 가축들에 대한 인간으로서 지닌 최소한의 측은지심 뿐 아니라, 축산농민들의 눈물 때문인 것이며, 거대한 참사에 대해 눈도 꿈쩍하지 않고 연일 아덴만의 여명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는 정부와 언론의 최소한의 양심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금수일지언정, 250만두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그게 당신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가?
이제서야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보게되네요.
내심 기다렸다는 ㅎ
항원, 항체진단키트의 정확한 차이를 알게 되니 정부와 언론의 무능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
봄이 되어 언땅이 녹은 후 자연의 보복이 두렵네요
항상 좋은 글 잘 읽고(엿보고 있는게 맞을 듯) 있습니다.
변함없는 모습(절대 정체라는 말은 아님^^) 계속 기대합니다.
완초과학자님 누구보다 멋지고 값진분입니다 예전처럼 활력 잃지마시고 건필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