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마와 교조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작업가설’을 세우고 경험을 통해 현실을 검증해 나가는 방식, 더불어 이론에 맞추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 작업가설을 수정해 가는 방식, 비그포르스가 마르크스주의와 포퍼를 융합해 사회를 변혁하는 철학으로 삼은 방식이다.  나는 비그포르스의 성공에 바로 이 과학적 세계이해 혹은 과학에 대한 뚜렷한 성찰이 놓여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관련된 글을 쓰기 앞서, 오늘 읽은 구절들을 옮겨둔다.


“현재 상태에서 대규모의 사회 공학을 실행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학적 지식은 한마디로 존재하지 않는다.” 칼 포퍼

“포퍼는 유토피아주의를 기각하고 나서 단편적 사회 공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접근 법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것은 [역사주의의 빈곤]일 것이다. 여기에서 포퍼는 단편적 사 회 공학의 임무가 “여러 사회 제도들을 고안하며,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을 재건하고 운영하 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접근법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특징은 그가 사회 전체를 다시 디자인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 공학자는 그 목표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일단 작은 조정을 행하고 나서 그 결과를 계속 개선해나가는 식의 재조정을 행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사회 공학자는 천성적인 회의주의자로서, 사회의 작동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을 가슴깊이 명심한 채 조심스러운 시행착오를 거쳐 전진해나가 는 방법을 신봉한다.” 틸튼

“비그포슈가 보기에, 모든 사회적 삶 그리고 사실상 사람의 개인적 삶 또한 그 모두가 끊임 없이 이어지는 실험의 연속이다. 개인이든 정당이든 지각이 있는 이들은 교리와 교조를 가 지고서 삶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작업 가설(working hypothese)” – 여기서 비그포슈는 존 듀이(John Dewey)의 용어를 차용한다 -을 가지고 삶에 접근하게 마련이다. 1925년에 행했던 연설 “사회주의-도그마인가 작업 가설인가?(Socialism – dogm eller arbetshypotes?)”에서 비그포슈는 사회주의가 실험이라는 그의 관점을 상술한다. 그는 회프 딩(Høffding)의 논리를 빌어서 사회주의는 경험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회주의의 여러 개혁들은 경험이라는 시험에 견주어 판단해야 하며 개혁의 노력 중에서 계산 착오와 실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새로운 조치들을 취할 때마다 그것이 가져올 결과들을 모조리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예기치 못한 위험들에 대해 개방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틸튼

“만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변화에 따른 이익을 계산(추정)했던 것보다 더 적게 만들거나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미래만이 우리가 목표로 가지고 있는 사안의 실제 달 성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사회적 실험일 뿐이며, 이 실험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 우리는 미리 작업가설을 짜놓아야 한다. 즉 정당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들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실재하는 어려움들에서 부터 도출하여 짜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 비그포르스 1


“그러나 그를 맑스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우선 그는 자본주의의 붕괴에 따른 사회주의로의 이행을역사적필연으로보지않았다. 이는있을수있는여러시나리오중의하나일뿐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필연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의식적으로 행위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궤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구조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제가 점점 더 크게 의존 해온 과학과 기술의 발전방향을 예측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세계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지성의 창조물의 세계의 문제라는 것이다.6) 또 그는 변증 법에 관심이 없었으며, 그의 과학관은 매우 실증주의적인 것이었다.” 신정완

“이렇게 맑스의 역사유물론이나 경제이론과 같은 특정한 역사관이나 이론에 전적으로 의존하 지 않은 비그포르스는, 사회주의를 도그마가 아니라 작업가설로 간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회 주의이론을 의심의 여지없이 확고한 敎義의 체계인 도그마가 아니라,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수 정되어야 하는 작업가설로 간주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는, 사회주의이론을 포함하여 모든 지식이 갖는 궁극적으로 잠정적인 성격 때문이다. ” 신정완

“도그마는 예로부터 기존 사회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런 견해였다. 그러나 동시에 혁 명주의자들에게도 그러했다. 모든 관점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모든 미래상은 가설일 수밖에 없 고, 모든 관점과 미래상의 생명력에 대해서는 오직 경험만이 평가할 수 있다는 통찰이 스며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와 다르고, 또 그보다 나은 사회형태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아무리 잠정적이고 가설적이라 해도, 이러한 관념 없이 일할 수는 없다.

미래에 대한 구상은 … 끝없는 노력을 통해 우리가 그것을 향해 그저 조금씩 접근해갈 수 있는 종착 점에 대한,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바뀔 필요 없는 구상이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미래에 대한 구 상은 길을 인도해주는 별과 같은 것, 당면한 어려움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최선의 출구를 발견하 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 비그포르스

“비그포르스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에 대한 포퍼의 비판에 수긍했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단기적 처방에만 주력할 것을 주장하는 점진적 사회공학론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했 다. 우선 비그포르스는 유토피아가 갖는 정치적 유용성에 주목했다. 현재의 사회상태보다 휠씬 나은 사회상태에 대한 청사진인 유토피아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사회상태를 바꾸어보려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의 유토피아가 있을 때에야, 사람 들은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유토피아적 상태에 접근해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면도 있다. 또 포퍼가 제안하는 점진적 사회공학적 접근이 갖는 난점도 있다. 사회문제들이라는 것은 서로 밀접한 관련 속에 있기 때문에, 시급한 해결을 요망하는 어떠한 구체적 사회문제라 하더라도, 그것만을 고립적으로 떼내어 해결하기는 어렵다. 어떤 한 문제를 특정한 방식으로 처 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문제들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급한 해결 을 요구하는 어떤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사회문제들에 어떠한 가중치를 줄 것이 며, 여러 문제영역들 간의 바람직한 균형상태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구상과 중장기 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람직한 사회상태에 대한 종합적인 청사진으로서의 유토피아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가 더 이상 수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에 는 문제가 생긴다. 포퍼가 말하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의 문제를 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잠정적인 성격을 띠어야 한다. 경험을 통해 수정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잠정적 유토피아’란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작업가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잠정적 유토피아가 유용한 작업가설의 역할을 다할 수 있으려면, 주어진 제한된 지식의 범위 내에서 가 능한 한 구체적으로 내용이 짜여져야 한다. 그럴 때에야 경험과의 대비를 통한 수정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그포르스는 이러한 자신의 잠정적 유토피아론은,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에 대 한 포퍼의 비판의 근저에 자리잡은 과학철학적 입장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점진적 사회공학론 이 가진 난점도 비껴갈 수 있는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보기에 잠정적 유토피아론은, 일단 시급히 해결을 요구하는 당면 문제들의 해결에 주력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사회구조의 큰 변화 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개혁주의적 사회주의자로서의 비그포르스의 접근방식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개념이라 판단된다. ” 신정완 2

Notes:

  1. 티모시 틸튼, 홍기빈 역. 2011. “유토피아, 점진주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의 개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포럼: 1–18.
  2. 신정완. 2011. “비그포르스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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