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경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발췌록

조만간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 안희경 선생과의 만남이 잡혀 있다. 동네사람들과의 독서모임에서 안희경 선생을 부른 것인데, 평소라면 사읽지는 않는 종류의 책이지만 (저자에 대한 모욕은 아니고, 소설책, 인터뷰집, 시집 등의 책은 원래 사지 않는다. 개인의 취향이다. 게다가 오마이뉴스에 가면 지금도 그 인터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온라인에 이미 흩뿌려져 있다는 뜻이다. 작가가 원하는 것이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알리는 -책 제목처럼- 것이라면 그의 생각을 읽고 전하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목표에 박수쳐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책에는 인터뷰 후기를 비롯한 부분들이 보완되었다. 좋은 책이다.) 아나키스트 노엄과 프레임의 조지, 동물해방과 실천윤리학의 피터 형이 있다길래 읽어보려고 책을 잡았다.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옮겨 둔다. 인상 깊었다는 것이 반드시 그 말들에 동의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7인의 사상가들 중 절반 이상이 내 정서와 맞지 않는 이들이다.


프롤로그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같은 것을 바란다는 그 본심을 이해하려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생기는 현실의 원인을 진단하며 연대를 확대해내야 한다. 세계의 석학들은 생존 가능한 사회, 억압 받는 사회를 만드는 답을 한국인이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성취해온 대로 또다시 다수의 삶을 지켜낼 변화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안희경, Noam Chomsky, Robert Thurman, George Lakoff, Mihaly Csikszentmihalyi, Peter Singer, Cornel West, and Vandana Shiva. 2013.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서울 : 오마이북. 12쪽.

놈 촘스키

촘스키 선생의 연구실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사진을 세 장 발견했다… 그렇게 러셀의 모든 것이 촘스키 선생과 함께하는 듯하다. 큰 액자 아래에는 러셀의 삶의 지표가 적혀 있다. “단순하지만 내 삶을 압도하듯 강하게 지배해온 세 가지 열정이 있다. 사랑을 향한 갈구, 앎을 향한 탐구,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다.” 같은 책, 24쪽.

(선거제도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에서 벗어난 거죠. 민주주의는 그 실질적 권리를 갖는 대중 다수의 뜻이 그들의 대변인을 통해 실현되는 구조로 자리 잡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은 없습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18세기에는 현대 민주주의의 모델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입헌제가 자리 잡고 나서 다수는 통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1780년대 입헌제로 돌아가 보면 제일 먼저 대부분의 대중이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음을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단적인 예가 토착 인디언들이 배제되어 있는 거죠. 같은 책, 37쪽.

시스템은 권력이 부자의 손 안에 있도록 디자인 되었고, 그런 상태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미국 헌법을 만든 핵심 인물인 제임스 매디슨 James Madi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은 재산권을 존중하는 사람들, 즉 부자의 손 안에 있을 것이며, 그 풍요와 부유함을 다수에 대항해 지켜낼 것이다.” 참으로 노골적이죠. 이로써 왜 입헌제에서 최고 권력이 투표하는 대중이 아닌 상원의 손에 들어갔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법을 입안하는 주체이자 권력 시스템의 조절 키는 ‘오늘날의 삼성’에 의해 뽑힌 상원이었습니다. 거대 기업이죠. 이들의 목표는 그 부와 나라가 누구의 소유인가를 분명히 하려는 데 있었던 겁니다. 같은 책, 39쪽.

시간을 뛰어넘어 아리스토텔레스와 매디슨은 같은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답은 정반대 방향으로 도출됐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은 불평등을 감소하는 것입니다. 그는 복지국가를 이루는 법이 답이라는 데 도달했어요. 모든 사람들을 본질적으로 중간 계급으로 만들어야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매디슨의 해법은 다릅니다. 민주주의를 규제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죠. 그렇게 미국의 민주주의는 대중을 갈라놓고 파편화함으로써 권력을 부자의 손으로 집중시키도록 해왔던 것입니다. 같은 책, 41쪽.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부분보다 훨씬 잘요.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답은 그리 먼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그때 한국인들은 잘 조직됐고, 함게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매우 용감하게, 매우 효율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던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무너뜨렸죠. 이 땅에 대단한 민주적 혁명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바람을 불러일으켰죠. 그때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해냈습니다. 기회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많아요. 한국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의 독재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잖아요? 할 일이 수없이 많이 있으며, 당신들은 오직 당신의 역사 속만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같은 책, 42쪽.

로버트 서먼

미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두 번식 부시를 선출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닙니다. 그는 두 번 다 훔쳤습니다. 타락한 선거였어요. 지미 카터가 말하길, 자기는 부시가 이긴 그 두 선거 가운데 결코 어느 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디어는 당시에 흘러나온 정보와 사실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미국에서 사용된 투표기계는 너무나 심각하게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큐파이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이제 선거를 깨끗하게 지키는 데 앞장서고, 정치적 부정에 시민을 연루시키는 것을 멈추도록 법제화하는 데 참여해야 합니다. 같은 책, 58쪽.

조지 레이코프

많은 오해들이 있습니다. 프레임은 생각의 구조입니다. 우리 두뇌 속에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바로 뇌 속 신경회로가 프레임의 구조인데, 그동안 저희는 이것을 연구해왔습니다. 프레임은 구조로써 그 안에는 프레임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다양한 언어 의미적 규칙이 있습니다. 그 규칙들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고요. 아주 간단한 예가 있어요. 식당에 가면, 거기에는 음식이 있죠. 서비스가 있습니다. 웨이터가 있고, 우리는 주문을 합니다. 그럼 계산서가 나오겠죠. 그렇게 식당에서는 한 묶음으로 짜인 일들이 벌어집니다…. 여기에 야자수나 버스는 없는 거죠. 그래서 요리사, 주방장, 웨이터 등의 의미가 레스토랑 프레임 속에서 정의됩니다. 모든 언어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프레임 속에서 갖는 의미로 규정되니까요… 그래서 프레임은 단어가 아니고, 오히려 단어가 프레임을 활성화시키는 거죠. 우리는 특정 프레임 속에서 의미로 살아나는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그 프레임이 머릿속을 꽉 채우는 겁니다. 그 프레임은 또한 연속적으로 여러 가지 사례들을 꺼내줍니다. 프레임은 중층적인 계급 구조를 갖는데, 하나의 프레임은 다른 프레임을 내포하고, 거기에 또 다른 프레임이 종속되어 있는 복합적인 구조죠. 같은 책, 88-89쪽.

정치에서 가장 상위의 프레임은 도덕성입니다…. 정책 제안은 그 정치인이 가진 도덕적 프레임에 맞추어 이루어집니다. 상위 프레임인 도덕 프레임 안에서 작동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을 자신의 입장으로 끌어오려면 가장 상위 프레임인 도덕적 프레임을 만들어야 해요. 같은 책, 91쪽.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는 근거는 98퍼센트가 무의식입니다. 의식적으로 논리를 따지면서 취하는 경우는 오직 2퍼센트 뿐이죠.그런데 이른바 진보적인 사람들의 경우 사회정의에 관심을 두면서, 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이라든지 법, 경제, 공공정책 등 이른바 ‘이성적 깨우침’이라는 것들을 배웁니다. 정치학 이론인 ‘합리적 행위자 모델’도 배우죠. 이성의 작용을 공부한 사람들은 여러 이론에 익숙해지면서 이 이론들을 진실로 믿도 떠받들게 되고, 그 이론에 통달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남한테까지 설명하려고 들죠. 하지만 이 논리들은 모두 잘못됐어요. 점점 발전해가는 인지과학이 이제는 이것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행동의 동기가 이성에 근거한다고 배웁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배운 대로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형식논리를 따른다고 믿는데, 아닙니다. 이는 프레임에 기초합니다. 은유나 비유라든가 인지적 기초 요소 등에 기반을 두죠.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감성적으로 연결되도록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우리 자신의 요구를 따져가며 행동한다는 것도 맞긴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거죠. 그렇게 공감을 이끌어내야만 상대와 결속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탈리아 신경과학계가 신경세포 체계 연구를 통해 증명했습니다. 같은 책, 92쪽.

(긍정의 언어가 전달하는 날카로운 공격성을 봅니다. 2011년 8월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촉발한 주민투표가 있었죠. 안건은 무상급식이었습니다.) 이런! 그건 우파의 프레임이에요. 무상급식을 이야기하자마자 바로 우파를 돕게 됩니다. (복지에 대한 관점 차이를 드러낸 것인데, 우파의 선별급식 대신 좌파는 전면적 무상급식을 주장했습니다. 학생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평등한 나눔을 실천하는 보편복지를 제시한 것이죠.) 그래도 잘못된 접근입니다. 무상급식이라는 말을 쓰자마자 사람들은 자녀의 급식비를 부모가 내야 한다는 것부터 떠올립니다. 거기에는 무상급식이 없는 거예요. 같은 책, 97-98쪽.

(‘영양급식, 성장급식’이라고 했다면 유권자들에게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건강권이 떠올랐을 테고, 그러면 이 사안이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누구나 누려야 할 도덕적 가치로 인식되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책, 101쪽.

(선생께서 쓴 <샌토럼 전술 The Santorum Strategy>이란 글을 읽었습니다. 진보의 언어를 일상 곳곳에서 외쳐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이 와 닿았는데, 바로 한국의 진보세력이 앞으로 다가올 대선에서 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안한 것은 진보적 정치를 실현하자는 행동이나 일반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정신을 살리는 창조적 언어를 말한 겁니다. 같은 책, 103쪽.

태양이 한국에서 특별히 상징하는 바가 있나요? 있으리라 봅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입고 나온 붉은색은 떠오르는 태양을 가리킵니다. 한국이 태양이 떠오르는 땅이 되리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민족주의 색이에요. 예전에는 공산주의 색으로 분류됐지만, 이 사람들과 공산당은 연결될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색은 강력한 민족주의자/국수주의자의 색이 된 겁니다. 아주 영리합니다. 같은 책, 104쪽.

활동가들의 문제는 이들이 정치에 그리 썩 유능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또한 자유주의자들도 그리 잘하지 못하죠. 자유주의적 정책가들은 정말 그런 분야에 유능하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운동가들 또한 도덕적 시스템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이 도덕적 가치가 자신들의 정책에 잘 녹아들어가 있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실용적인 결과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가 오큐파이 운동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한 제안 중 하나는 민주당과 함께해서 민주당을 바꾸라는 것이었는데… 거기엔 저항 운동이 갖는 마초적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위에서 다리를 막고 저항할 것이다. 우리의 힘을 보이자” 하는 식이죠. 하루 정도는 그렇게 힘을 과시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합니다. 결국에는 힘을 보여주기는커녕 타인의 삶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인식되죠… 그런데 그들(오큐파이 운동)은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멈추었습니다. 민중의 힘에 모든 것을 걸고 있고, 오로지 돈에 관련된 내용으로 접근하고 있죠… 그렇게 돈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우파의 논리 속에 서게 되는 셈입니다… 투쟁에 참여한 이들은 반드시 이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활동은 서로를 보살피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반드시 서로 아끼며 함께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공공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그 인식을 자극하고 북돋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도부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곧 우파의 담론에 갇힌다는 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습니다. 같은 책, 109-112쪽.

자유주의자들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좌파는 노조와 함께 일하니까 서로 미워합니다. 하지만 둘은 중복되는 점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합쳐야 해요. 정책이 아니라 도덕적 시스템에 기반을 둔 연합을 이뤄야 하는데, 항상 정책을 가지고 싸워요. 상대의 긍정적인 면이 무엇인지 말하고, 서로 동의하는 지점에서 하나의 긍정적인 언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각자의 위치를 인정하며 타협안을 만드는 거죠. 현안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같은 책, 113쪽.

진보가 더욱 당당하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북한은 독재국가다. 우리는 독재정권과 북한 주민에 대해서 각각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형제인 북한 동포들에게는 정부가 경제적 지원을 할 것을 촉구하지만, 북한 정부의 공격적 자세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북한 정부는 양쪽 국민을 다치게 하지 말라. 동포를 위해 개방하라.” 결국 비판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같은 책, 118쪽.

(인터뷰 후기 중: 나는 2010년부터 2년여 동안 서구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인터뷰하면서 한국과 다른 분위기에 늘 긴장해왔다. 그 거장들은 대부분 인터뷰에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민감했고, 작품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 엄격한 제한을 가했다…물론 저작권 때문이다. 특수한 조건에 둘러싸여 있던 예술가들에 비해 그동안 만나온 서구 석학들은 자애롭고 여유로웠다. 한국에서 방송을 만들며 함께했던 지식인들과 다름없이, 자신이 아는 것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키려는 듯 했다.) “인터뷰 전 녹음 및 녹화를 자유롭게 하라고 흔쾌히 허락한 레이코프에 대한 평가에서. 121쪽.”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원숭이나 사자, 기린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유전자에 프로그램이 입력된 채 태어나기 때문이죠. 먼저 태어난 동물의 행동을 따라하긴 하지만 그리 많이 배우지 않아도 잘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죠. 선천적으로 완전한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활동 대부분이 유전적으로 입력된 것이 아니라 습득한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같은 책, 129쪽.

아이들이 인문학보다 컴퓨터에 더 호기심을 보이고 더 능숙하죠? 컴퓨터는 온갖 자세한 이야기와 정보를 줍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이를 연결 짓고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통합에 서툽니다. 경제, 물리, 생물 등이 모두 분리된 연구의 결과이기 때문이죠. 이제는 하나로 연결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본의 흐름 같은 경제 문제를 고려할 때도 앞으로는 더욱 대기나 수질 등의 환경 문제가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경제학자보다 물리학자, 생물학자, 화학자가 더 잘 알고, 또 이 영역에서 지식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이 더 이상은 불가능해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융화되어야 합니다. 같은 책, 131쪽.

대통령은 국민들의 요구에 항상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과학 지식에도 열려 있고, 창의력을 발휘하려는 주장에도 열려 있어야 합니다. 창의력은 새롭고 실용적인 것이 나올 거라는 희망적인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미래에 대한 신뢰를 생산시키고, 경제를 도울 수 있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좀 더 재밌고, 더 괜찮고, 인간미 있게 만든다는 겁니다. 개인이 우울하면 국가 역시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지도자라면 국민이 힘이 나도록 정책으로 북돋워 줘야 합니다. 같은 책, 151쪽.

피터 싱어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좌파는 다윈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좌파들은 인간 본성을 이상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봤습니다. 다윈이 말한 진화는 동물에 대한 설명이지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죠. 하지만 다윈은 인간도 동물처럼 진화해왔다고 했습니다. 좌파는 사회/경제적 기반이 바뀌면 사람들이 해오던 이기적인 행동이 사라질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회적 여건이 달라져도 인간의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죠.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생물학적 영향을 끈질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 속에 있는 이런저런 면을 포용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인간의 본성에는 이기적인 속성과 이타적인 속성이 있죠. 인간은 위계를 형성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 속에 있는 위계질서가 정당하다는 설명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형태의 위계를 제거한다고 해도 인간 사회 속에 있는 위계 일반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죠. 예를 들어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독립전쟁 등으로 세습귀족 제도를 철폐하자 곧 새로운 형태의 위계가 등장했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은 세습귀족제와 사적인 부를 모두 철폐했지만 공산당 내의 지위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위계가 곧 그 자리를 대체했죠. 이스라엘의 키부츠 kibbutz도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고요. 우리는 일상에서도 사소한 권위에 촉각을 세우며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자연 속에서처럼 동종 간의 경쟁이 존재하는 거죠. 위계를 철폐하느 것은 과거 혁명가들이 상상했던 것만큼 결코 쉬운 인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좌파들이 바로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죠. 우리 인간의 본성도 진화를 통해 형성된 것인 만큼 매우 강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같은 책, 172-173쪽.

제가 말하는 좌파는 정치적으로 조직화된 세력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이루려는 하나의 사상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란 강자가 아닌 약자의 편에, 억압하는 사람이 아닌 억압받는 사람의 편에 서 있는 거죠. 더욱 평등한 사회를 꿈꿔나가는 거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혁명적 변화보다 오히려 점진적인 변화를 더욱 많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작은 발걸음들 속에서 변화를 일궈내야만 해요.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순차적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좌파적인 가치를 더 많이 갖도록 경쟁을 느슨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점진적인 변화는 기존 질서와의 타협을 전제로 한다는 질문에 대해) 다윈적 사고는 경쟁과 이타주의를 모두 포괄합니다. 기존의 시장경제는 우리의 물질에 대한 욕망과 경쟁 속에서 남보다 앞서겠다는 열망을 용인하죠. 이득이 되는 것을 향하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방향으로 흘러나가도록 구조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힘을 만드는 거예요. 서로 협조했을 때 더 이득이 될 수 있는 구조를 향한 점진적인 전환입니다…. 저는 자연 그 자체는 도덕적으로 중립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죠. 뭔가 좋은 것을 이끌기도 하고, 뭔가 나쁜 것을 이끌기도 합니다. 인간 본성을 살펴보면, 문화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는 것과 거의 유사한 모습을 갖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며 점진적 변화를 향해 접근하는 것이 다윈주의를 받아들여 선을 추구하는 좌파의 모습이 될 겁니다. 같은 책, 175-177쪽. 

전통적인 텍스트에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그리고 저는 맹자의 가르침을 더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배고픈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를 잘 설명하고 있어요. 맹자가 양혜왕에게 한 말입니다. “왕께서는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는데도 창고를 열 줄 모르며,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을 놓고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다’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찔러 죽이고 ‘내 탓이 아니라 무기 탓이다’라고 하시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같은 책, 179-180쪽.

(누가 윤리적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모두입니다. 저는 우리가 단 한 명의 위대한 윤리적 지도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주는 도움의 양을 엄청나게 늘릴 겁니다. 지구의 빈곤을 줄일 거예요. 나는 공장식 축사를 없앨 겁니다. 같은 책, 185-186쪽.

코넬 웨스트

자, 그럼 이제 한국의 노동계급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해볼가요. 한국의 노동자들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모든 노동계급 중 가장 영웅적이고 용감한 이들입니다. 조직했고, 파업했고, 총파업으로 연대해 일어나 저항했습니다. 그들에게선 장엄함이 묻어납니다. 같은 책, 198쪽.

맞습니다. 미국에서는 빈곤에 처해 있는 어린이가 전체의 22퍼센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인데 말이죠. 수치스럽습니다. 소득 상위 1퍼센트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42퍼센트에 상당하는 부를 가지고 있고, 100대 부자들이 소유한 돈이 1억 5000만 명이 가진 것보다 더 많아요. 부의 불평등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미제국’, ‘미합중국USA’이라 불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금 위태로운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실험이 아주 깊은 쇠락의 길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미국의 맨 꼭대기에서는 정치를 지배하는 소수가 재벌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중간계급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워킹 푸어, 가난한 노동자로 밀려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미국의 문화는 데카당트해졌어요. 한마디로 타락했죠. 여기서 제가 말하는 데카당트의 의미는 표피적인 쾌락에 사로잡혀 있다는 겁니다. 같은 책, 199-200쪽.

그러니까 오바마는 킹과 같이 선지자적 전통에서 나온 인물로 여겨졌지만, 결국 신자유주의 정치가로 완성된 겁니다. 같은 책, 203쪽.

(한국 창조과학회의 시조새 삭제 청원에 대해) 이런! 그건 과학 자체를 거부하는 반과학입니다. 그러면 다음 단계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할 건가요? 왜냐하면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잖아요! 그런 그들도 휴대전화를 쓰며 과학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흠, 이들의 그런 주장에는 훨씬 복잡한 함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깊은 두려움이 있어요. 같은 책, 212쪽.

(그렇다면 철학자로서, 신학자로서 선생의 역할은 사람들을 깨우는 건가요?) 우리가 지혜를 추구할 수 있다면, 몽유병자를 화들짝 깨워줄 수 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마비된 것, 차갑게 얼어붙은 채 멈춰 있는 것을 풀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나야 하고, 정착이 아닌 변화를 만들어야 하며, 요동쳐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자기 처지를 알아차리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긴장을 하면 용기가 솟아오르게 됩니다. 몽유병자처럼 멍하니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고, 현실의 부정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알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런 다음 그에 맞서는 조직을 이뤄내야죠. 빠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한 가지가 있어요. 젊거나 늙거나 빵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장미를 가져야만 해요. 그대는 아름다움을 가져야 하고, 가슴을 가져야만 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에겐 돈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일자리를 갖게 되면, 우린 아름다움을 필요로 할 거고, 장미가 필요해질 것이며, 사랑이 있어야만 살 수 있을 거예요. 젊은이에게는 돈 너머 그들을 이끌어줄 뭔가가 필요합니다. 특히 루페 피아스코의 음악, 브라더 알리의 힙합이죠. 이들은 빵과 장미를 함께 가져오고자 관심을 갖을 거예요. 물질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경제적인 것과 함께 하는 정신적인 것들. 우리는 이 모두가 필요합니다. 만약, 그 둘을 갖지 못한다면, 비록 그대가 원하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된다고 해도 그대는 정신적 영양 결핍과 영혼의 부재로 고통받게 됩니다. 아니면 도덕적 변비든지요. 그대는 이 모든 힘을 갖고 무엇이 옳은지 알지만, 꽉 막혀 버리는 거죠. 결국 흘러가지 못해요. 너무 많은 탐욕이 그 길에 쌓이고, 결국 그대의 의식은 심한 강박에 싸여, 심장은 마룻장처럼 딱딱하게 굳어질 겁니다. 그럼,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게 되죠. 오로지 권력, 권력 권력, 세력, 세력, 세력만 부르짖게 됩니다. 같은 책, 220-222쪽.

반다나 시바

인도 농민 27만명이 자살했어요. 자유무역이 농부를 죽이고 있는 겁니다. 농업의 세계화는 수백만 명의 생계와 식량에 대한 권리를 빼앗아 갔습니다. 소규모 농장과 소농을 망하게 했어요. 모든 정치인에게는 공공의 건강과 사람들의 경제적 생활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겁니다. 같은 책, 241쪽.

제가 물리학자이지만 농업을 택한 이유는 이 슈퍼씨앗이라는 아이디어가 너무나 많은 배고픔과 가난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유전자 조작이 된 씨앗은 더 많은 음식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전혀요. 2011년에 우리가 <GMO 황제에게는 옷이 없다>라는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바보로 보이길 원하지 않기에 침묵하는 겁니다. 같은 책, 249쪽.

여성과 여성처럼 생각하는 남자가 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이 유전적으로 우월한 통치력을 가졌다고 생각하 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돌보고 나누는 가치는 아직 여성이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들 또한 그런 가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생물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사안이기 때문이에요. 같은 책, 257쪽


안희경씨는 불교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안희경. 2002. “朝鮮時代 後期 風俗畵 硏究.”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라는 논문을 썼다. 결론부에 “풍속화가 갖고 있는 시대의식은 서민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라는 문장이 와 닿는다. 논문 전체를 다운 받아 두었지만, 미술에는 문외한인지라 읽는 것은 훗날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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