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학의 상처받은 혁명

<이기적 유전자>만을 읽은 독자들 가운데 도대체 왜 그렇게 도킨스에게 적대적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꽤 유명한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의 한 회원은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내게 도킨스를 비판하는 ‘과학적’ 근거를 대라고 종용한 적도 있다. 도킨스가 실제 학술지에 과학논문을 쓰거나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전문학술영역이 아니라 대중서를 통해 주로 종교비판에 치중하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과학자’의 권위로 행세를 하려 한다는 지적이었는데, 그런 비판을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그런 영역의 비판은 오히려 사회학이나 철학 혹은 논객들의 작업에 가까운 것인데, 왜 그걸 ‘과학적’이라는 권위로 가두느냐고 묻자, 내가 과학자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와 황망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 통계학자는 모든 비판을 통계적으로 해야 하나? 모든 학문적 영역엔 필요한 만큼의 합당함이 깃들어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과학책을 읽는다는 보통사람들을 대표하는 이가 과학을 저런 방식의 독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가 과학현장 혹은 연구실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을 결과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대표적 집단이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일텐데, 그들이 과학을 소비하는 방식도 독단과 권위주의의 한 형태다. 그들도 대부분 과학적 사실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무지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과학의 미덕은 사실을 발견하는 방법론, 즉 그 과정에 있다. 이론은 실험결과들의 해석이므로,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그것이 토마스 쿤이 본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데이터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은 변하지 않는다. 이론의 근거가 되는 측정량은 재현가능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과학의 현장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교양과학서적만으로 과학을 접한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빠지게 되는 오류다.

서론이 길었다. 본론과 결론은 짧게 끝낸다. 간만에 린 마굴리스의 세포내공생이론을 들춰봐야할 일이 생겨 자료들을 조사하다가, 다시금 위와 같은 현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린 마굴리스는 분명 여기저기 떠돌던 세포내 공생이론들을 모아 하나의 이론으로 정식화한 공로가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틀린 이론을 제시했다. 게다가 그가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 공간은 학술지나 학회장보다는 대중과학서였다. 그건 과학자로서 정정당당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이론이 동료과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그 발표는 반드시 과학자공동체 내부에서 이뤄져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이 조직화되는 19세기 이후, 마굴리스처럼 과학자공동체를 외면하고 그 외부의 대중을 지지기반으로 삼아 성공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사례로는 찰스 다윈이 마지막일 것이다. 재야의 과학자는 왠지 멋져 보이지만, 협업에 기반하는 과학공동체를 외면하고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천재과학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과학자들은 대부분 허현회와 같은 사기꾼에 가깝다. 그렇게 과학 바깥을 떠돌던 마굴리스가 말년에 에이즈 바이러스 음모론을 펼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과학자 개인은 결코 위대하지 않다. 과학은 협업의 산물이다. 과학자공동체의 협업이 작동하는 까닭은, 무명의 리뷰어들이 쏟아내는 독설과 칼날같은 비판을 견뎌내고 출판되는 논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으 이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과학자는 동료들을 외면할 수 없다. 그 동료들 중에 꼰대같은 영감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물리학자가 말했듯이 그런 꼰대는 언젠가 죽고 결국 원래 옳았던 과학이론만이 살아 남는다. 따라서 자신의 이론이 지닌 신빙성을 대중의 지지에 기대려는 과학자가 있다면, 언제고 다가가 당신은 사기꾼이라도 말해도 된다. 그는 과학을 하고 있지 않다.

진화생물학의 역사엔 자신들이 쌓은 금자탑을 지키기 위해 이런 방식의 선동으로 과학이론을 부정하려했던 시도들이 있다. <분자전쟁>이라는 내 글은 진화생물학 근대종합의 기수들인 에른스트 마이어, 도브잔스키, 조지 심슨 등이 얼마나 악의적으로 분자시계라는 기법을 개발한 분자생물학자와 생화학자들을 괴롭혔는지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일본의 과학자 모투 기무라의 중립가설은 진화생물학계의 거성들 덕분에 아주 늦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것이 지금은 교과서의 정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늘 발견한 사실은 미생물학에서도 이런 도전이 있었고, 어김없이 다윈의 수호자 에른스트 마이어가 나타나 이 젊은 과학자를 난도질 했다는 것이다. 리보솜 RNA의 염기서열 분석으로 분자진화학의 기초를 세우고, 원핵생물을 고세균 Archea와 진정세균 eubacteria로   나눠야 한다고 제안한 과학자, 게다가 동물, 식물, 원생동물같은 분류를 진핵생물 하나로 퉁쳐버린 과학자, 그 이름은 칼 워즈 Carl Woese다. 칼 워즈에 대해서는 위키백과 등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고, 특이한 것은 그가 원래 생물학에 거의 문외한인 물리학자였다는 것이다. 워즈가 생물학으로 전향하던 당시 얼마나 많은 물리학자들이 생물학으로 넘어들어왔는지, 당시가 얼마나 화려한 융합과 학제간 연구의 전성기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리학에서 연구가 잘 안돼 미생물학까지 넘어들어온 이 얼치기 과학자가 기존 학계의 편견과 상관 없이 혁명적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마도 ‘데이터만을 믿어라’는 미덕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남의 동네에 넘어온 과학자가 인정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기 혹은 데이터에 올인 외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977년 우여곡절끝에 PNAS에 출판한 논문을, 노벨상 수상자인 살바도르 루리아가 인신공격까지 해대며 디스하고, 다윈의 수호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긴 비평논문으로 까댔다. 워즈는 마이어의 비판에 더 장문의 글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데이터가 없이 권위만으로 워즈를 박살내려던 마이어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워즈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데이터들은 속속 늘어났고, 상처받은 혁명은 과학적 사기라는 오명에서 교과서의 정설로 재탄생한다.

분자시계라는 기법은 알란 윌슨이라는 호주의 생화학 출신 과학자에게서 나왔고, 중립가설은 모투 기무라라는 일본의 생물학자에게서 등장했으며, 리보솜RNA 분석기법과 3영역 분류법은 칼 워즈라는 물리학자에게서 나왔다. 이쯤되면 우리는 근대종합이라는 이름으로 선전되는 몇몇 진화생물학자들의 선동을 한번쯤 의심해볼만 하다. 도대체 현대진화생물학의 뼈대를 이루는 지식들은 근대종합이라는, 몇 권의 저술들로 대표되는 행위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가? 생화학과 유전학이 만나는 시점부터 생물학자들 중 진화생물학으로 흘러들어간 이들과, 이들이 현재는 정설로 판명된 진화생물학에 기여한 부분은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게, 에른스트 마이어는 언제나 패퇴했다. 승리는 언제나 조용히 실험실을 지키며 데이터를 믿는 과학자들의 몫이었을 뿐이다.

다시 한번 막스 델브뤽의 말을 되새긴다. “과학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은거하기 위해 그의 작업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없으며,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서도 또한 그렇다” 감히 덧붙히고 싶다. “과학자들은 과학과 연결되기 위해 대중을 찾아서는 안된다.”


참고하면 좋을 논문들은 아래와 같다.

  • Goldenfeld, N., & Pace, N. R. (2013). Carl R. Woese (1928-2012). Science, 339(6120), 661–661. doi:10.1126/science.1235219
  • Mayr, E. (1998). Two empires or thre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95(17), 9720–9723. doi:10.1073/pnas.95.17.9720
  • Morell, V. (1997). Microbiology’s scarred revolutionary. Science (New York, N.Y.). doi:10.1126/science.276.5313.699
  • Nair, P. (2012). Classic Profile: Woese and Fox: Life, rearranged.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9(4), 1019–1021. doi:10.1073/pnas.1120749109
  • Prakash, O., Jangid, K., & Shouche, Y. S. (2013). Carl Woese: From Biophysics to Evolutionary Microbiology. Indian Journal of Microbiology, 53(3), 247–252. doi:10.1007/s12088-013-0401-4
  • Woese, C. R. (1998). Default taxonomy: Ernst Mayr’s view of the microbial world.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95(19), 11043–11046. doi:10.1073/pnas.95.19.11043
  • 강석기의 다음 글은 워즈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칼 우즈, 생물학의 뿌리를 뒤흔든 아웃사이더

 

2 thoughts on “미생물학의 상처받은 혁명

  1. 실험실을 굳건히 지키며 데이터의 힘을 믿는 과학자들은 대체로 조용하죠. 그래서 떠드는 과학저술가들이 과학자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2. 실험실을 활짝 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본령인 데이터의 바다에서 헤매는 ‘과정’이 고급 교양을 원하는 일반인들(파편화된 과학 지식의 주 소비자들)에게 감추어지고, 잠정적이고 한시적이지만 명료한 껍데기로 포장된 결과만이 우상화된 신비로 떠받들여지게 된 지금 상황에는, 자본과 결탁해서 산업화된 아카데미에서 한 자리 얻는것만 제대로 된 커리어로 생각하도록 길들여진 학계 문화에도 잘못이 있죠. 과학이 자본의 동력원인 ‘지적 재산’의 처지를 벗어나고 상아탑을 탈출해야 장기적으로…
    제가 지금 옛날 글에 매달려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네요.
    전 사실 메이커 무브먼트랑 시티즌 사이언스라는 과학계의 신흥종교ㅠ에 빠져든 물리학/수학/생물학/피지컬컴퓨팅 독립 연구자(초보)…인데요.(신과학 이딴거 아님 물리랑 수학은 대학원까지 제대로 다녔고 생물학도 학부 수업은 거의 다 들었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몇년전 미국이랑 독일 해커스페이스 몇군데 다녀보면서 아 이게 진짜구나 하고 그만… 요즘은 BCI/BMI, 그리고 CRISPR랑 바이오 툴(자동화/리얼타임/디지털화?)에 관심있어서 이거저거 파보고 있습니다.
    가라지 사이언스 문화 비슷한것이 한국에서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질문과 실험을 시도하기에 앞서 답이라고 정해진 것을 배우도록 되어있는 한국 교육이 문제일까요. 아님 한국 사람들은 ‘답’에만 의미가 있고 질문과 탐험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교육 체제를 작동시키게 된걸까요. 과학에서 답이란 한 질문에서 더 많은 질문들로 건너가기 위해 잠깐 빠져서 쉬어가는 아늑한 함정일 뿐일텐데요.
    근데 그래도 빅토리아 시대 귀족들마냥… 지금 한국 사회에서 과학 지식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는 과학적 탐험의 과정에도 기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화적으로나 경제적-_-으로나. 어쨌든 자연계를 지적으로 탐구하는 것 자체에 손을 대보고 싶다는 로망이 강렬하신 분들이더군요.
    저는 사실 거꾸로, 아카데미에서 엘리트코스를 밟아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연구하는 학자분들이 일종의 사회적 기득권(명예나 경제적 보상)을 수호하기 위해 사회경제 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방해하지 않을까 염려를 하곤 합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이 독점적으로 누리던 지적 활동의 핵심 도구들이 점점 민주화/보편화되고 있고, 도구 자체를 재발명하는 것 까지도 아카데미 영역 밖에서 가능하게 되면서, 아카데미라는 경직된 틀로 묶인 전문 학술 집단은 오히려 사회 전체의 빠른 변화에서 고립되거나 자연스럽게 해체될 수도 있…그랬으면 좋겠네요.
    고학력 백수들이 아카데미 커리어에 어떻게든 진입하려고 매달리지 말고 그냥 여기저기 숨어 모여서 이상한 일 벌이면서 지금의 사회를 고장내고 고치고 하다가 보면 세상이 좀 더 즐거워지고 과학스러워지지 않을까 싶네요. 먹고 살 걱정 없어야 그럴 수 있다는게 함정이지만요. 근데 먹고 살 걱정을(심지어 집 살 걱정까지) 너무 미리 하는 것도 잘 이해는 안갑니다.
    아 내가 뭔 뻘소릴… 너무 길게 쓴게 아까워서 남깁니다. 잡글 죄송합니다.
    어쨌든 공감가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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