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중인계급, 대한민국의 과학자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930년대 이후에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연구소를 무대로 활약한 좌파 철학자 집단으로 제2차 세계 대전 후 파시즘의 등장과 서구 자본주의 세계를 분석한 학파로 1968년 이른바 68년 학생운동이라 일컫는 서방 세계와 일본의 대학가를 강타한 학생 운동의 지적 배경이 됐다. 이 학파의 중심 인물은 허버트 마르쿠제,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레오 뢰벤탈, 프리드리히 폴로크 등이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포함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부분 거의 부유한 부르주아나 관료 등 상층계 출신이 다수이며,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직접적 혁명 경험이 없고, 이론적 차원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혁명 운동이란 것이 대학강단, 학자들의 논의속에 나타날 뿐 노동운동이나 정당운동과 연결되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정치학자나 경제학자가 아닌 예술, 철학, 문학 비평가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였다. 68년 학생운동의 지적 배경이 되었으면서도 그들 자신은 참여하지 않았다.

<위키피디아>

내가 프랑크푸르트 학파로부터 출발하는 이유는,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의 지적 지형도를 둘러싼, 그리고 그 외연이 확장되어 결국은 정치 지형도를 아우르는 지식인들의 행보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그것과 닯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뿌리가 이들에 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footnote]이들 이론가들이 실천에 인색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그러한 점에서 조정환의 문제의식이 빛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실천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것도 결국 우리를 이론수입국의 지위에 머물게 한다는 측면에서 크게 장려할만한 일은 아니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지점이다. 실천은 분명 주요한 지식인의 가치임에 틀림없지만, 그 실천을 위한 이론적 토대가 우리의 상황과 걸맞지 않은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나아가 왜 우리는 이론을 수출할 수 없는 이런 지적 구조에 갇혀버렸단 말인가.[/footnote]

예를 들어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상반되는 두 논객, 진중권과 변희재는 미디어를 전공으로 하는 학자로 자처하고 있으며, 몇몇 사회과학자들을 제외하고 이 땅의 인문논쟁과 정치논쟁을 주도하는 이들의 전공은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거론했던 그 주제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문화비평, 예술비평, 영화평론 등등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형도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지식인들의 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지적 토대를 빼다 박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스승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들의 면면이 그러할 뿐 아니라, 예술을 아는 자만이 지식인의 대열에 속할 수 있다는 현대 유럽식 포스트모더니즘의 어떤 예술적 우월주의를 닮았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 교양인으로 살기 위해 중요한 덕목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예술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으로부터 튀어나온 ‘시뮬라르크’와 같은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이 곧 그들에게 지식인 혹은 정치비평의 정당한 대변자로 기능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결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를 만드는 것은 일반 대중의 눈엔 보이지 않는 문화권력들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유럽식 인문주의와 정치노선만이 진보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암묵적 동의에 물들어 있다. 조정환도, 이택광도 진중권도 변희재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피해가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나 상황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의 새로운 르네상스

19세기, 과학이 새롭게 태어나던 그 때의 유럽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의 유럽이 지니고 있던 지적 지형도에는 과학자와 사회학자, 철학자와 인문학자의 위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시의 유럽학계는 막 피어나던 과학적 발견들에 고무된 철학자들의 논쟁과 논의가 주를 이루곤 했다. 마르크스라는 현대 진보세력의 우상조차 다윈의 자연선택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레닌의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과 이를 통한 새로운 종합적 이론 건설은 다시 논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런 전통이 1,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를 거치며 점차 쇠락해가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비록 계몽주의의 야심찬 시도가 실패한 지점에 과학의 과오가 존재할지 모르지만, 지나친 성공에 대한 자만감으로 인해 우생학이라는 망상을 꿈꾼 것도 과학자들이 실패한 지점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과학에 대한 이해마져 지식인들에게 일종의 불신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결국 CP 스노우가 <두문화>를 논하던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괴리감은 정점에 달했고, 과학은 협소한 기능주의적 관점으로, 인문학은 무능한 자기들만의 리그로 함몰되어 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역사적 조건

우리의 역사는 서구의 지식인들이 겪었던 이러한 변화에서 한발 비켜나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19세기 과학의 새로운 혁명기에 조선은 망해가던 제국이었고, 결국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으며, 엄청난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지던 20세기 초중반의 시기에도 여전히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 둔화는 역사학계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일제의 잔재를 깊이 아로새겨 놓았고, 이를 치유하는 데에만 수십년이 걸려야 했다. 그 일제의 잔재를 치유하기 위해 국내의 인문학자들이 취한 처방은 유럽으로부터 새로운 이론들을 수입하는 방식이었다.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이론들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한국 학계의 형성은 일제시대에 완성된 형태로부터 진화했다. 임종태의 말을 옮겨보자.

*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과학과 문화의 단절 현상 또는 그 토대가 일제 식민지시기에 갖추어 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시기, 특히 1920-30년대에 인문사회과학, 과학기술 등을 포함한 한국의 근대 학계가 등장했고, 이들에 의해 형성된 지식의 지형은 해방 이후에 까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 당연한 말이지만, 식민지 시기 한국인들의 지적 지형에는 일본의 교육제도, 근대적 학술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일본 지식인들이 근대 학문을 분류하고 명명한 것들이 대개는 한국 지식인들에게도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문과와 이과의 구분도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확실하다. 1877년 도쿄대학은 법학부, 문학부, 이학부의 체제로 출범했으며, 이학부 내에는 자연과학과 공학의 여러 분야들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형성된 문리과 구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이었으며, 그것이 식민지 조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리과 구분과 폭넓게는 과학과 문화 사이 단절의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다.

*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요인은, 식민지 시기 한국인들이 일군 지적 지형에서 과학기술과 다른 분야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1920년을 기점으로 근대적 문학, 역사학, 언어학, 사회과학이 신문과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데 비해, 과학기술 분야로의 진출과 활동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요컨대 1920년대 이후의 소위 ‘문화운동’에서 과학기술은 주류의 영역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인 지식사회 전체에서 과학기술을 대변할 전문가 집단이 뚜렷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 한국인으로서 이공계 분야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약 400명 정도였으며, 그 중에서 이후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 당시에 형성된 과학기술자들 중 일부는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의 문화적 지적 흐름에 적극 참여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김용관, 박길룡 등 경성고등공업학교 출신자들이 전개했던 과학대중화 운동이나 박물학을 ‘조선학’의 한 분야로 정립하려 했던 석주명의 시도가 그러한 예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지닌 ‘주변적’ 지위 또는 인문학과 과학의 불균형한 지형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포항공대과학문화연구센터, 제2회 과학문화심포지엄

서구의 과학문화를 그대로 모방하는 데 성공했던 일본으로부터 학문적 영향을 받은 구한말의 상황은 당시 유럽이 겪고 있던 <두 문화>의 단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20세기 중반의 대한민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1960~7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정립되기 시작한 과학기술계의 제도적 재정비는 박정희식 경제개발논리에 함몰된 채 도구적으로 수입되기에 이른다.

* 이러한 상황은 해방 이후, 1960-70년대를 거치며 고급 과학기술자 집단이 대규모로 형성된 이후에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이 형성된 과학자 집단과 다른 지식인 집단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진 감이 있다.

* 그 원인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 시기 과학자 사회가 박정희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 하에 형성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의 토대로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차관을 재원으로 하여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과학원, 국방과학연구소를 비롯한 일련의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 기관을 건설했다. 이들 기관들은 서울의 홍릉, 그리고 이후 대덕이라는, 기존 대학 사회를 포함하여 외부 사회부터 사회문화적으로 고립된 공간에 배치되었다. 성공적으로 창출된 현대적 과학기술의 공간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근대화 사업의 혁혁한 성과의 하나로 내외에 선전되었다.

* 문제는 그 공간의 바깥 사회, 특히 소위 ‘在野’로 대표되는 지식인 사회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방식의 근대화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대항적 지향을 추구한 이들 ‘재야’ 집단은 종교인, 문학인, 예술인, 인문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되었는데, 물론 그곳에서 과학기술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일제 시기 일부의 과학기술자들이 당시의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를 통해 형성된 과학기술과 ‘在野’ 사이의 문화적 간극은, 오늘날 과학기술계 원로들과 재야 출신의 정치가들이 1970년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회고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나는 여기서 재야가 추구했던 가치를 옹호하거나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향유했던 과학자 사회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과학’을 결여한 재야 지식인들의 ‘지성’이 얼마나 건강할 수 있었는지의 문제도 이제는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과 문화 사이의 간극이 이때 심화되었고, 그것이 1970년대의 ‘재야’와 그 정치적 문화적 후손들이 사회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최근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1970년대 형성된 한국 현대 과학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은 바로 그 집단을 형성시킨 독특한 역사적 조건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를 조선후기에 형성된 ‘중인의식’에서 그 역사적 기원을 찾는 것은 그리 적절치 않아 보인다. ‘중인의식’이라는 말이 오늘날 과학기술자들이 지닌 독특한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과거의 선례에서 선택한 유비적 표현일 수는 있어도, 그 둘 사이에 역사적 인과관계를 설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유구한 전통을 지닌다고 믿었던 것들이 알고 보면 그 유래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과학과 문화의 단절 현상도 그러한 사례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인데, 왜냐하면 그 유래가 우리에게 가까운 과거에 있다면, 그 해결책도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항공대과학문화연구센터, 제2회 과학문화심포지엄


임종태의 말처럼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회문화 주도층에서 과학기술인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지식인이라는 계층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특수한 역사적 조건으로부터 기인한다. 그 역사적 조건은 보편적인 세계적 흐름 속에서 벌어졌던 과학과 인문학의 괴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세계적 흐름을 받아들인 일제로부터 학문을 시작했던 우리의 역사적 특수성, 그리고 해방 이후 다시금 민주화를 겪으며 우리가 처했던 특수성, 다시 말하자면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에 종속될 수 밖에 없었던 과학기술계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과학기술계의 권력자들 대부분이 미국유학파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지만,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국내의 과학계가 정치에 그다지도 무관심했던 데에는, 실제로 그들이 공부했던 미국의 상황이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경험을 국내의 개발독재 시대의 명분과 억지로 엮어버린 이들의 책임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공부했더 1960~70년대 나아가 80년대의 미국의 지식인계는 국내의 과학기술인들이 생각하던 것처럼 사회문화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으로 이주한, 그래서 누구보다도 정치적 사안에 민감했던 과학지식인들로 가득차 있었고, 이는 칼포퍼를 비롯해서 미국 지성계를 주름잡던 이들의 배경으로부터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과학-인문의 괴리감이 반드시 대한민국적 특수성으로부터만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언가 역사적인 조건이 우리를 그런 방향으로 가속화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조선의 인문주의로부터 일제를 거치며 개발독재라는 상황에 처했던 우리의 역사적 조건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괴리감이 세계사적으로도 보편적이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한 것이다. 이는 존 브록만이 <새로운 인문주의자들: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로 번역됨>을 통해 제기한 문제의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사회/문화 일반에 걸친 과학자들과 인문사회과학자들간의 갈등은 우리의 것만은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조금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인문학과 통섭

1991년 <엣지 The Edge>의 설립자인 존 브록만은 <제3의 문화의 등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전통적인 미국 지식인은 이제 어떤 의미에서는 점점 더 반동적으로 되고, 우리 시대의 정말 중요한 지적 업적들에 무지한 것을 오히려 매우 자랑스럽게 그리고 괴팍하게) 여기는 여기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과학을 추방한 그들의 문화는 경험세계와 멀어졌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용어를 사용하고 자신들의 빨래만 빨았다. 이것은 주석에 대한 주석이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으며, 점점 팽창하는 주석의 나선형 소용돌이 끝에 이르면 마침내 진짜 세계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알라딘 미리 보기를 재인용>

분명 미국의 상황이 우리의 민주화 투쟁과 같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분명 인문학과 과학의 괴리를 체험하고 있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발로와 무관하지 않으며, 이러한 조건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시 유럽의 지식인 세계가 경험했던 사건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아직 나는 이러한 분석을 살펴보지 못했고 따라서 그러한 분석을 찾게 되면 다시금 글을 쓸 것이다. 다만, 존 브록만의 고민은 결국 소칼의 <지적사기>를 통해 과학전쟁으로 표면화되었다. 어쩌면 다시금 이러한 전쟁으로 인해 국내에서 과학이 설 입지가 좁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시의 그 논쟁이 과학지식인의 입지를 확장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하기엔 우리네 지식인들의 지형도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너무 강했을런지도 모른다. 결국 과학은 일종의 과학문화로 그렇게 소극적인 교양 정도로 국내의 지식인 사회에 뿌리 내렸다.

국내의 학자들에게서 이런 고민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고민은 산재해 있다. 예를 들어 그닥 좋은 책은 아니지만 이필렬 교수등에 의해 편집된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는 그런 고민을 담고 있다. 그나마 과학학자들 가운데 존경할 만한 이필렬 교수는 이 책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 인문학자들의 자연과학 이해수준은 그들이 인간배아복제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논의를 하지 못한다는 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고 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바로 이 점이, 인간사회와 정신세계를 뒤흔들지도 모를 사건에 대해 그들이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이 사실이 한국사회를 지적인 빈곤 상태로 방치하고, 일순간에 한쪽으로 쏠리게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의 미리보기에서 재인용

그것은 지적 무능, 혹은 지적 불성실함이다. 내가 이필렬 교수에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과학자들을 무조건 자본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들로 규정 짓고, 과학적 논의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확장되는 데 있어, 과학자들의 역할보다는 인문학자들의 역할을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옹호하는 데 있다.[footnote]예를 들어 “인문학은 여러 학문분야 중에서 자본의 압력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분야이다. 과학기술이 자본에의 종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문학은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 과학기술은 16, 17세기 근대과학이 태동할 때까지도 가지고 있던 인문적 정신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후 그는 과학기술의 자본에의 필연적 종속이 과학기술자들의 자본에의 필연적 종속을 수반한다고 거침없이 말하는데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우리의 역사가 조건지운 것 뿐이다. 그런 잣대로는 존 브록만의 시도나 서구에서 빈번하게 타나는 과학자들의 정치적 참여 및 과학지식인들의 태도를 설명할 수 없다. 결국 이필렬 교수는 ‘인문학자들이여 과학을 좀 공부하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과학자들이여 인문학을 공부해서 정치사회문화분야에서 당신들이 잃은 그 자리를 쟁취하라”라고 외치지 않는다.[/footnote] 이는 그가 내리는 결론이 결국은 과학기술의 성과들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의 삶에 대해 인문학이 제대로 조언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내려지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이필렬 교수는 결국 과학기술자들의 권익, 나아가 정치사회문화에서 과학기술자들이 펼쳐내야만 하는 그 지위에는 관심이 없다.

인문학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인문학이 조언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조언을 제대로 하려면 현재의 인간 삶에 대한 고찰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현대인의 삶이 도처에 존재하는 과학기술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과학기술의 성격에 대한 파악은 인간 삶의 파악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된다. 인문학에서도 과학기술을 조금 멀찍이서 바라보고 그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의 미리보기에서 재인용

오히려 인문학자들에 대한 따끔한 이런 훈계는 나은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항상 내가 이야기하는 바이기도 하고, 학문간의 대화를 위한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철학으로 과학하라>라고 외친다면 이건 최재천 교수의 ‘통섭’을 비판하는 학자의 자세는 이미 아닌 것이다. 환원주의에 대한 혐오, 이로부터 비롯된 전일론적 사상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국내 과학철학계의 이상한 사이비과학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그 중에는 이성규와 같이 과학사적 분석을 현대과학을 평가하는 데 적용시키는 부류로부터, 스스로의 철학적 호불호를 현대과학을 판단하는 데 동원하는 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footnote]게다가 이런 시도들이 창조론을 옹호하는 데 사용된다면 할 말 다한 것 아닌가.[/footnote]. 그런 시도들의 역설은 이미 신과학운동을 비판했던 최종덕 교수가 다시금 이상한 사이비과학자를 들먹이며 현대과학의 환원성을 비판하는 것에서 상징화된다.[footnote]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궁금한 분들은 최종덕 교수님의 홈페이지에서 동영상 강의를 들어보시길.[/footnote]

짧은 결론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고민하는 저작들은 이미 국내에서도 표면화되기 시작했지만, 그 논의가 한국의 정치담론과 연관된 형식으로 제기된 적은 없다. 그것은 여전히 과학기술인을 일종의 도구적 지성으로만 사고하는 한국사회의 지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미국유학 1세대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이제 정치담론에 과감히 뛰어드는 젊은 과학기술인들을 마구마구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들과 한국의 전통적 지적으로 보수적인 논객들의 한판 혈투가 벌어질 시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진정한 과학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자본 없이는 불가능한 과학기술의 특성 때문에, 얼핏 보기에 과학기술자들은 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계급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땅의 뿌리 깊은 인문주의적 성향 속에는, 과학기술자가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태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녹아 있다. 이러한 인식은 스스로의 덫에 갇힌 과학기술계도 마찬가지다. 이젠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정치 논객들에게 과학을 공부하라는 상투적 주장을 넘어, 진지하게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참여를 모색할 때다. 그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이 될 수도 있고,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이 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좌파 우파 모두에게 회의적인 이 땅의 대중들에게 내가 조언하고 싶은 하나의 대안이기도 하다. 결국 모든 고인 물은 썩지만, 언제나 새로운 시도는 물이 썩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듣보잡 과학자는 제 아무리 정치를 하고 싶어도 영원히 중인일 뿐이다. 그들에겐 지위를 상승시킬만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시스템은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정치에 대한 일종의 관념에서 기인한다. 정치전문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면, 이제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야 한다. 열심히 신문을 챙겨 읽고, 뉴스를 쳐다보면서, 몇권의 사회과학 이론서를 읽고, 또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정치를 말하기 위한 조건이라면, 그런 대열에 과학자가 동등한 지위로 동참한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으므로 나는 주장한다. 이 지긋지긋한 중인의 지위를 이제 과학자 스스로 박탈하라고. 그것이 통섭이라는 허무맹랑한 사이비과학보다 백배는 낫다고.

보론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지적 관계망을 고민하는 저작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이 현장의 과학자가 아닌 과학학자 혹은 철학자들에 의해 저술된 것도 사실이다. 그 지형도를 과학자와 인문학자 중 어느쪽을 중시하는 가에 따라 좌에서 우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이종필 (글항아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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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된 이종필의 책은 결국 과학으로 인문사회과학을 잡아먹겠다는 시도다. 이러한 시도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의 정치적 버젼이다. 나는 이러한 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통섭에 대한 비판은 이종필의 책에 대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통섭(지식의 대통합)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에드워드 윌슨 (사이언스북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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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통섭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최재천 (이음,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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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브록만 (소소,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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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비롯해서 최재천 교수와 존 브록만의 일련의 저술들은 과학으로 인문학을 흡수하려는 야심찬 시도다. 이에 대한 비판은 앨런 오의 <큰 그림>을 참고하기 바란다.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이인식 황상익 이필렬 외 (고즈윈,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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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교수와 과학자 오세정, 이인식 등이 주축이 된 이 저술은 큰 틀에서는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결론은 “인문학자들이여, 과학을 좀 공부하라”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곳에 이 땅의 과학기술자의 지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다.

과학으로 생각한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이상욱 (동아시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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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사회학의 쟁점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김환석 (문학과지성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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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과학의 사회학적 측면에 집중하고, 과학자들에게 대중 속으로 뛰어들라는 주문을 하고는 있지만. 암묵적으로는 이 땅의 전통적 지식인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들에게 과학자들의 정치참여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정치/사회/문화라는 주제들은 그들의 밥그릇이며 과학자들이 넘봐선 안되는 영역일 뿐이다. 그것이 그들이 가진 이중잣대다.

철학으로 과학하라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최종덕 (웅진지식하우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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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자들 역시 스스로의 인문성에 함몰되어 과학자들의 역할에 대해 강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특히 이들의 주장은 조금만 더 나가면 회의주의자들에게 비판받을 여지가 심하다. 학문의 특수성과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 통섭적 논의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처럼, 인문학과 철학으로 과학을 통제하고 제어하려는 시도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에모토 마사루 (더난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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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극단에 사이비과학이 존재한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의 상부에 이 책을 위치시키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스펙트럼이 결국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정치사회담론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8 thoughts on “영원한 중인계급, 대한민국의 과학자

  1. 잠깐 음악듣다 생각해 보니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으로 행복했을 것 같군요. 쥐새끼부터 형이상학까지.. 거기에 2천 3백년동안 똑똑하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최종보스 역할까지 하고. 인류 최강의 괴물인듯

  2. 아마 플라톤에 대한 지적인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그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기는 ‘난 플라톤과는 다른 길을 찾을테야. 그러고 말테야’라고.. ㅋㅋ

    서구 1000년사를 장악했으니 인류최강의 괴물이긴 괴물. 근데 따지고 보면 예수(님이라 해야할듯)가 더 괴물.영향력만 따진다면 말이죠. ㅡ.ㅡ

  3.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영역이 심하게 양분화 되어 있는거 같습니다. 이것이 곧 기술의 발전을 저하시키고 사람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려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난 수학이 싫으니깐 문과로 갈거야’ 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한 이유가 바로 이런거 때문이 아닌지….

    좋은글 정말 잘 읽고 갑니다^_^

  4. 나아가 경제학 대학원에서 수학과와 물리학과 학생이 더 대접받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5. 오타 지적드립니다.

    엄청난 자본 없이는 불가능한 과학기술의 특성 때문에, 얼핏 보기에 과학기술자들은 이 사호에서 어느 정도의 계급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사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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