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자. 기억하자. 그리고 준비하자.

고인의 뜻대로 그 육신이 한 줌 재가 될때까지는 마음껏 슬퍼하자. 하지만 마음껏 슬퍼한 연후에 그 뜨거워진 가슴으로 공허해하지는 말자. 그를 기억하자. 그를 유교적 도덕정치국가의 이상을 가졌던 급진적 정치개혁가 조광조에 빚대어 생각하는 것이 무리일지는 몰라도, 여기에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다. 조광조의 개혁은 비록 절반의 것이었지만, 그가 후대 조선의 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그의 급진성은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역사는 그의 급진성으로 인해 그를 기억한다. 조광조도, 노무현도 변할 수 없는 한가지 가치에 목숨을 걸었다. 도덕적 이상국가. 우리는 그것만을 기억하자.

마음껏 슬퍼하고, 노무현의 이상을 기억한 후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지난 10년의 복수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이 땅의 수구세력으로부터 다시금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 특히 단순해 보이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음흉한 정책들은 그와 그 주변의 세력들이 다시는 이 땅의 진보세력에게 정권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야욕의 노골적인 표현이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미디어법 개정의 배후에는 전국민적 세뇌를 통해 경제적 양극화를 고착화하려는 시도가 숨어 있다. 학벌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그 어떤 누구도 그 본질적인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 재벌에 의한 경제권 장악과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경유착의 근본적 모순을 끊으려는 기존의 노력들도, 모두 허사로 만들어 버렸다. 명박과 현정부는 김대중 정부 집권 그 이전의 시대에서 행복을 느끼던 인물들로 가득차 있다. 이들은 어떻게든 현재의 상태를 11년 전의 시점으로 회귀시키고자 한다. 거기에서야 비로서 기득권의 존립이 위태롭지 않을 것이고, 조용히 이 나라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원포인트 개헌을 이야기했듯, 이명박 정부 하에서 개헌 논의는 조금씩 그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 개헌의 속내가 드러나면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지나치게 조급하게 추진해가고 있는 이 정책들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고하승의 분석처럼 내각제를 통한 이명박의 장기집권이 될지, 연임을 통한 새로운 보수정권의 창출이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명박에게도 박근혜는 무서운 존재라는 점이다. 명박은 박근혜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연임제로의 개헌은 독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고하승의 분석이 맞을 수도 있다.

경제가 조금 안정된 연후에 명박은 분명 개헌카드를 꺼내 들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도 여전히 진보세력이 무능함을 보여준다면, 지금 우리가 슬퍼하고 오열했던 그 절규들은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분명 준비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얼마나 단시간내에 대한민국의 역사가 거꾸로 갈 수 있는지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역사의 방향키를 바로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슬픔을 이겨내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노무현을 보내며 마음에 새겨야하는 단 하나의 교훈이다.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고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냉철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다시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레 만들기 위해 눈을 똑바로 뜨자. 앞으로 3년 후, 그 3년 후를 잃는다면 우리에겐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오늘의 슬픔은 이 기나긴 전투를 위한 카타르시스다. 나는 노무현의 죽음보다, 흉악한 시정잡배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상상하는 것이 더욱 슬프고 무섭다.


표출되지 못한 슬픔은 분노가 된다. 명박은 무지하다. 시민들의 슬픔을 가로 막는 것은 결국 그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에 인색한 자를,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명박은 이제 인심을 잃었다. 조문을 하는 시민들을 가로막는 그에게 더 이상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31 thoughts on “슬퍼하자. 기억하자. 그리고 준비하자.

  1. 민주당도 주시할 겁니다. 원칙보다는 밥그릇싸움에만 정신팔린 놈들.

    일이 터졌을 때 제발 무능함을 보여주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2. 반드시 정권을 바꿔야 합니다. 노무현의 죽음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해석과 평가를 낳겠지만, 적어도 지금/여기에서 우리의 선택은 단순한 것 같습니다.

  3. 핑백: 자유인
  4. 네, 준비해야 합니다. 이번엔 지켜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소중한 분을 보내버렸지만 두번다시 같은 문제를 반복할수는 없습니다.
    23일 오후부터 끊임없이 절 괴롭히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걸까..?” 여전히 계속 고민중입니다.

  5. 제 주변엔 무지한 인간들이 많습니다. 직장내에서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오늘 웃고 떠들고..슬퍼하기는 커녕..말한마디도 꺼내지도 않더군요

    추모는 무슨…가족하나 제대로 처신못하고 ..그게 뭐냐고..
    이딴식의 말들..그리고 박정희때가 좋았다고 회상하는 인간들…박정희나 국장이지..무슨 국장까지하냐고..
    아..오늘 정말 살인낼뻔했는데…노통의 가는길…부디 편히 가시라고 정말 참았습니다.
    무지한 인간들..어떻게..해야하나요…정말 그들의 뇌가 궁금합니다.

  6. 핑백: under the SEA
  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잘 집어내셨군요.

    노무현은 영웅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무현 서거를 기점으로 시민들의 역량이 집중되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면

    훗날 노무현은 위대한 영웅으로 기록되겠지요.
    그리고 역사는 소박한 시민들의 승리를 기록할 것입니다.

    제 블로그에도 한번 오셔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8. 잃을 인심이라도 남아 있던가요..

    그리고 인심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감수성이라도 있을까요..

  9. 핑백: 매한불매향
  10. 핑백: +being muzavi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