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진중권의 탄생

1.
적어도 지식인으로 생각되는(스스로 그리 생각하던 말던 간에) 사람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을 비판할 때는, 자신이 비판하는 상대를 닮지는 말아야 하는 법이다.
노정태가 쿨게이들을 팩트골룸이라는 명칭까지 붙여줘 가며 깔 때, 나는 그에게 동의했었다. 팩트골룸들에게는 “파편적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을 때, 나는 기꺼이 그 말에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편적 사실들에 입각해서 사태를 전체적인 맥락 속으로 종합하지 못하는 쿨게이들의 태도야 더 말할 나위 없이 못난 짓이다.

이제 노정태는 노빠들을 깐다(팬클럽에서 정당정치로). 이유는 간단하다. 노무현이 추구했던 정치개혁에 집중해야 할 노빠들이, 오빠를 잃은 팬클럽마냥 이성을 잃고 민주당과 진보신당 등의 진보세력들을 무차별 사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빠들에게 연예인팬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광신적 태도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차분히 앉아 노무현이 추구했던 개혁들을 실행해나가는 것이 순리적으로도 옳다. 그런데 그것이 노빠들을 까댐으로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정태는 표적을 잘못 설정했다.

2.
이 말을 하기 전에, 노정태의 무차별적인 비판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노정태가 왜 강유원을 깠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회사원 철학자였던 그가 강사로 변신한 것이 노정태의 윤리적 잣대 속에서는 그리도 비윤리적인 행태로 보였던 것일까. 왜 도대체 강유원이 은둔고수로 머물렀을 때에만 아름다웠다는 것인지 그의 글 속에서는 제대로된 비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철학계에서 은둔고수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근대 학문의 기본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은 모르겠지만, 철학은 내가 알기론 그렇지 않다. 도대체 근대학문의 기원을 어디로 잡는 것인지 모르지만, 자연과학자였던 17세기의 뉴턴이 중요한 업적들을 발견한 시기는 케임브리지가 문을 닫아 휴양했던 2년 동안이었고, 논쟁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그의 저술들도 20년씩이나 발표가 미뤄졌지만 우리는 뉴턴이 선수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소통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대학자로 부르기를 주저하지는 않는다. 19세기의 다윈에 대해서도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비록 지인들과의 활발한 서신 왕래가 있었지만, 다윈은 아카데미에 속한 인물도 아니었고, <종의 기원>을 발표할 때까지 숨어지냈다. 비트겐슈타인은 또 어떤가. 그가 흔히 후기 비트겐슈타인이라 불리는 인물로 다시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도대체 학생들과 무슨 소통을 했을까. 근대 학문의 기원이 뭔지 도대체 알 수는 없지만, 철학계에는 이러한 예가 부지기수로 많다. 수학계도 마찬가지다.

아카데미와 소통하지 않는다고 해서(사실 강유원이 아예 소통을 접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근대 학문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고(인터넷이 이렇게나 발달한 지금, 사실 철학이나 인문학 같은 분야에서 학회나 아카데미가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논문이 중요한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저술로 승부를 보면 되는 철학과 인문학은 꼭 아카데미에 속해서 학자들과 소통해야 장땡이 아니다. 오히려 썩어빠진 교수사회의 권위주의 속에서 강유원 같은 존재는 홀로 있을 필요도 있다. 근대 학문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철학과 인문학은 노정태가 말하는 그 따위 정신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 이건 잘 생각해보며 안다)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강유원에 대한 평가는 훗날 역사가 내려줄 것이다. 아직 강유원은 본격적인 그만의 저술들을 내놓은 상태도 아니고, 그렇지 못한 이유가 소통이 부족해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강유원에 대한 비판이 가능한 지점은, 그가 과연 자신있게 스스로의 이론을 건설할 학자의 깜냥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고, 이 문제는 아직 평가유보상태다.

3.
다시 노빠 이야기로 돌아가자. 노정태가 노빠들을 까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진보신당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보신당 당원인 노정태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고, 노정태처럼 뭔가 배운 사람은 이런 감정을 ‘팬클럽 정치’와 ‘정당 정치’라는 보기 좋은 말로 에둘러 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정치개혁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빠들의 탓이 아니다. 그리고 노빠들이 그것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빠들에게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과 같은 강력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노빠들이 노무현의 죽음으로 의기양양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 임기 중반부터 무차별 폭격을 받고 기반을 잃은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그냥 노무현의 죽음으로 잠시 의기양양하는 그들을 참고 봐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특히 도대체 왜 정당 정치로의 진전을 노빠들이 일궈내야 하며, 왜 그들만이 노정태의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 비판에서 박빠나 진보신당 내의 진빠들은 자유로운 것인지도 모르겠고, 지나치게 인물중심으로 흘러온 이 땅의 민주주의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본다면, 과연 노빠들만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도대체 왜 표적을 노빠로 잡아서 생고생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팬클럽에 불과한 그들이 오빠를 잃고 잠시 슬퍼하는 이 시기를 못참고, 그들을 까야만 하는 노정태의 심성도 참 냉정하기 짝이 없다. 연예인 팬클럽 애들도 가만 놔두면 정신을 차리곤 하는데, 노정태는 뭐가 그리도 급해서 그들의 오빠가 세상을 뜬지 겨우 보름도 안된 이들을 이토록 괴롭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노빠들을 향한 노정태의 어긋난 욕설은, 디워 논쟁 당시의 진중권을 빼다 박았다. 무려 고종석에게 ‘사내’라는 호칭을 받고, 20대의 상징으로 떠오른 터라, 게다가 진중권에게 ‘노정태를 주목하라’라는 칭찬 아닌 칭찬까지 받고 보니 대충 진중권처럼 살고픈 욕구가 샘솓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웃기는 건, 진중권의 계몽주의를 그의 성실한 비평정신으로 높이 샀던 노정태에게서는 그 어떤 성실한 비평가로서의 자세도, 진중권과 같은 전문가로서의 일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꼬마 진중권이라 착각하면서 살아도 좋다. 하지만 디워 논쟁에서 보여준 진중권의 성실함이 강준만과의 논쟁에서는 보이지 않았듯이, 노정태도 약자에게는 강한 채 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채 하는 그의 행태만을 닮을까 무섭다. 지금 노정태가 비판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젖어 잠시 이성을 잃은 노빠들(심성이 착하다면 좀 봐줄 수도 있는, 정치개혁의 주체도 아닌)이 아니라, 그가 그리도 사랑하는 진중권을 죽이려는 세력들이 아닐까 싶다. 실상 꼬마 진중권이라는 말조차 아까운 이유는, 그에게는 진중권과 같은 용기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싸우고 싶으면 쉬운 상대가 아니라 어려운 상대를 골라라. 역사적으로 이성과 합리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중들과, 두뇌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수구들은 ‘노정태라는 사내’가 상대할 적이 아니다.


추신: 이번 사건은 노정태의 그릇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가 진중권의 아류로 성장할 것인지, 진중권을 넘어선 그릇이 될 것인지 지켜보겠다. 그냥 넘기기엔 그를 비판한 이들의 무게가 결코 작지 않다.

21 thoughts on “꼬마 진중권의 탄생

  1. 노정태라는 인물을 알고 싶네요. 고종석으로부터 사내라고 불린 거랑, 진중권이 노정태를 주목하라라고 한 내용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2. 구글신에서 “노정태라는 사내”로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진중권으로부터 그렇게 불린 사연은 어디선가 읽었는데 링크는 찾지 못하겠습니다. 진중권이 노정태를 주목하라고 했다는 말은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3. 헐…구글신이라고 해서 구글 말고 무슨 다른 서비스가 있는 줄 알았네요. 윽…창피… 아무튼 감사합니다.

  4. “노 전 대통령이 평생에 걸쳐 싸워온 과제가 바로 정치개혁이었다면, 남은 이들은 바로 그 정치개혁 자체에 몰두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이 그 대안을 실천하고 있다. 진짜 정당정치, 당비 내는 당원들의 힘으로 당직자와 후보가 먹고 사는 정치, 그래서 재벌 뿐 아니라 지방 토호의 자금을 빌릴 필요도 없는 정치, 이미 진보 정당들은 다 하고 있다.”라고 하는 노정태는 노빠에 대해서 별 희망을 안 갖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그에게 “특히 도대체 왜 정당 정치로의 진전을 노빠들이 일궈내야 하며”라는 말 자체가 지적으로 먹히게 되지 않지요.

    저는 노정태의 지적이 온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적의 ‘시점’에 대한 문제제기는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그들의 오빠가 세상을 뜬지 겨우 보름도 안된 이들”이든 1년이든 상관이 없다는 거죠. 마치 1987년에 김대중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고 1992, 1997, 2002, 2007년 2번(2007년엔 1번)을 찍으라는 사람들이 말하는 ‘현 정국’ , ‘현 단계’, ‘이번 선거’라는 말과 “겨우 보름”이 동형적이지요. 어차피 어느 시점에 찔러도 노빠는 아프고 아픈 만큼 분노하고 퍼부을 겁니다. 피할 수 없다는 것.

    물론 노빠의 ‘변화’를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그들이 ‘진보’진영으로 넘어오지 않을 거라는 것은 확고해 보이네요.

  5.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이토록 차분한 논조와 논리를 갖춘 글은 오랜만에 보내요.
    블로그 링크해도 되는지요?(물론 링크는 할겁니다.^^)

  6. 1. 그렇다면 굳이 팬클럽 정치를 욕하면서 정당정치로의 개혁을 논할 이유가 없었을 듯 합니다. 제가 지적한 것은 정당정치로 가야한다는 옳바른 지적이 왜 노빠를 까면서 제기되어야 하느냐입니다.

    2. 그리고 그 지적이 온당하려면 노빠들이 정당정치로의 이행을 막았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더 세심한 논의가 되려면, 노빠를 비롯한 팬클럽 정치가 정당정치를 막았다는 논의를 보여주는 게 맞습니다. 노정태의 글에서는 진보신당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만 있고 노빠가 그걸 막았다는 논거는 없습니다.

    3. 노빠들에 대한 지적이야 언제든 온당할 수 있겠습니다만, 왜 지금 노빠들을 까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노정태 말처럼 그들은 지금 대화가 안될 정도로 이성을 잃었습니다. 타이밍이 웃깁니다. 제 눈엔 노정태는 그냥 남들이 안까는 대상을 까고 싶어하는 별난 취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 그렇지만…뭐.

    저도 노빠들의 성향에 대해선 헨드릭스님과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정태의 논의에서 노빠를 지금 까야 하는 온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노정태는 뭔가를 까야만 글이 나오는 취향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건 변태적인 건데…뭐 인신공격은 아닙니다.

  7. 물론 대찬성입니다. ㅋ 덧: 그리 차분한 논조는 아닙니다. 나름 흥분했어요.

  8.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링크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

    전 사실 노무현이 정치의 한계를 읽었다고 보고, 그 때문에 봉하마을로 내려갔다고 생각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제시하는 사람입니다만, 노정태씨의 글이 썩 맘에 들지는 않더군요. 분명 정치개혁이 필요한것은 맞지만, 그 정치개혁이 과연 진보신당의 방식으로, 그리고 진보신당의 기치아래 이루어져야 한다는 노정태씨의 논리에 대해서는 뭐랄까, 많이 답답했습니다.

    사실 노빠들이(뭐 제 자신도 노빠의 범주에 들긴 합니다만) 민주당과 진보신당에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것이 이해가 안가는것도 아니고, 진보신당의 입장에서 이런 사실들이 매우 불쾌할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을 진보신당의 기치아래에 끼워맞추는 노정태씨의 태도는 진보가 아닌 수구라고 생각될 정도네요.

    그 누구보다도 지금 방향을 잃고 헤메는 노빠들을 열렬히 까야하는 사람들은 사실 노빠 그 자신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구심점을 잃은 만큼, 이 구심점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정치색이 결정되는건 맞을겁니다. 하지만, “보수 VS 진보”의 형태라고는 장담할수 없는 상황임에도, 저걸 계속 주장하기에는 아직 불안한 요소가 많다고 보여지니까요.

  9. 아 정말 이 글 이후에 이어진 노정태의 글은 못봐주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내가 노정태의 질을 너무 높게 평가했던 듯 싶다. 글 잘쓰는 강의석 정도 되겠다. 그릇이 얼마나 되나 좀 보려고 했더니 정말 누구 말대로 딱 변희재 수준인 듯 하다. 못써먹겠다.

  10. 정치꾼이더군요. 오늘 새로 올라온 글에서는 그냥 정당정치에 대한 제대로된 논의를 펼치면 될걸, 또 노무현과 유시민을 가져다 대며 살풀이를 하는 변태임이 확연해졌습니다. 고종석씨도 다시 한번 재평가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저런 애를 사내라고 부르는 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11. 1. 노정태 글의 주제는, ‘우리사회의 정치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미저리노빠들, 팬클럽 짓 때려치고 우리처럼 정당정치로 개혁하는 일에나 힘써.’입니다.

    2. 노정태는, ‘우리가 지금 정치개혁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빠들의 탓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미저리노빠들은 우리사회의 정당정치 실현에 아무 도움도 못되는 놈들이다.’라고 말하는 것 뿐입니다.

    3. 단순히, ‘보름밖에 안됐는데 너무 심하다.’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번 반복해서 시점을 심각하게 문제삼으며 변태라고까지 말하니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님도, 노정태는 노빠가 진보를 공격하기 때문에 그들을 공격하는 거라고 말하면서.. 저쪽에서 공격할 때 공격해야지 그럼 가만 있는데 공격합니까?

    4. 인신공격이 지나칩니다(혹시 노정태와 절친한 관계라면 제가 머쓱해지겠지만요..). 미저리노빠들을 좀 깠다고 꼬마진중권이라고 하면 그럼 님은 꼬마변희재인가요? 그리고 제 느낌으로 노정태는 한윤형과 같은 진빠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인터넷 글쓰기라고 하지만, 한 인간의 삶에 대해 ‘주체성 없는 삶’이라고 조롱하는 것은 엄청난 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2. 글 잘 읽었습니다.

    저… 그런데 글의 2번은 전체 맥락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 아닌가요? 글의 의도가 ‘노정태의 무차별적인 비판에 대한 지적’이라면 또 모르지만요. 제가 이해하기로 의도하신 글의 주제는 ‘노정태의 노빠 비판에 대한 반론’인 것 같거든요. 후자를 의도하신 게 맞다면 2번은 필요없는 내용이고, 전자를 의도하셨다면 첫째, 한편의 글이 갖는 주제로서는 너무 광범위하고 둘째, 2와 3을 묶는 결론이 좀 미약한 것 같습니다.

    제가 설마…하는 바는, 의도하신 주제는 후자인데 노정태씨에 대한 감정이 섞여서 전자로 이야기가 흐르지 않았나 하는 점인데요. 만약 그렇다면(조선일보 사설이냐? ㅠ.ㅠ) 이 글이 더 좋아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니(아무래도 감정이 어느정도 걸러진 글이 좀 더 날카로울 수 있으니까) 고정 독자로서는 안타깝다는 느낌이 좀 듭니다.

    이번 진보세력-노빠(라는 명칭이 불만입니다. 언제부터 ‘진보’라는 단어를 브랜드 네임으로 자연스레 쓰기 시작했는지. 그리고는 상대는 빠돌이 수준으로 격하시켜서 부르다니. 저 ‘노빠’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층의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자신이 누구를 적?으로 삼고 있는지 정확한 정의부터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정태씨는.)의 논쟁에 관심이 많은 이들 중 하나로서, 이어지는 많은 좋은 글들 기대하겠습니다.

  13. 핑백: 민노씨.네
  14. 사실 “진보 정당은 이 정도야!” , “니네는 뭐하니??” 하는 식의 감정이 노정태의 글에 섞여 있기도 하죠. 그렇게 댓글 놀이를 즐기고 있는데…

    그런데 그럼에도 긁어주는 바가 있었기에 댓글 달아본 겁니다. 노정태의 글에 대한 몇 안되는 유의미한 지적이어서~

  15. 주구장창 제가 주장하는 건, 노빠에 대한 비난 없이도 가능한 논의에 쓸데 없는 적의가 보인다는 겁니다. 인신공격이라면 반성합니다.

  16. 2번 글은 그냥 개인적 취미정도입니다. 아무 상관 없지는 않은 이유는, 노정태씨가 비난할 필요가 없는 대상을 억지로 비난하며 글을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냥 그 변태적인 태도가 진중권을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17. 노정태 글의 대상은 물론 1차적으로 ‘노빠’겠지만, 넓게는 노무현 서거로 급격히 늘어난(혹은 필시 늘게 될) ‘뉴비’까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진보신당 입장에선, 노무현 재임시절 내내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노무현과의 선긋기’를 분명히 해야할 필요성이 있죠. 노빠를 까는 건 진보정당 공격에 대한 대응도 되면서 노무현의 한계까지 함께 지적할 수 있으니, 그저 노무현이 죽은 게 슬플 뿐인 어여쁜 뉴비들을 올바른 정치세계로 인도할 시의적절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18. 한편의 글로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다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지난번 모짜르트와 베토벤에 대한 글과 댓글을 통한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보며 이건 아닌듯 하다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지적에 대해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더 이상 글을 안달았기에 끝나버렸지만요. 어쨋든 대국적인 시각 없이 그저 까기 위해 상대를 설정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그나 저나 이 블로그 성격이랑 맞지는 않는 것 같은데… 릴레이를 하나 넘겨드렸습니다. 받아주실거죠? ^^

  19. 노정태에대해 약자에게 강한 채 하고 강자에게 약한 채 하게 될까 걱정된다는 얘기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참고로 디워사태

    때 진중권이 발끈한 이유는 네티즌들이 평론가들을 마녀사냥 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약자는 제 할 일 하다 느닷없이 테러당한 평론가들이겠죠.)

    그리고 노빠들은 그저 오빠를 잃고 잠시 슬퍼하는 약자가 아니에요.
    그들이 그저 오빠를 잃고 추모한다면 그걸 반대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지금 노빠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수가 몰려가 진보세력들을 까는데 열중입니다.

    그들은 조중동과 보수세력이 노무현,개혁세력을 비난 할 때 썼던 수사를 똑같이 진보세력들에게 퍼부으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무서워요.
    만약 그런 모습을 노정태가 봤다면 노정태의 노빠비난글은 일견 이해가 됩니다.

    결국 하고싶은 말은 ” 노정태씨, 애꿎은 노빠들 까지 말고 실행 가능한 논의나 하쇼” 인 것 같은데 강유원까지 끌어들여서 비판하는 걸 보면 왠지 진중권과 노정태에 대한 님의 질투심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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