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함께하는 생활속에서

역설적으로 나의 블로깅은 실험실 생활이 즐거워지면 질수록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 나의 본업은 글쓰는 작가가 아니라, 실험가이자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엄청난 희열을 느끼는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할 40대를 설계하기 위해, 나는 하루하루 초파리들의 성생활과 사회생활을 관찰하며 살아야 한다. 가끔 초파리들은 내게 엄청난 좌절을, 또 희열을 안겨준다. 원래 실험이 그렇다. 대부분은 실패하고, 가끔 성공한다.

열심히 썼던 글들이 울려퍼진다. 과연 나의 글들이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진화론이라는 주제로 홈페이지를 열었던 1997년에,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창조론자들과의 싸움으로, 극단적인 회의론자로 사는 것에 지쳐버렸던 열정을 잃었던 그 시기에 만났던 노스모크는 또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우연히 만났던 어떤 왕은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과학을 공부한 것일까, 아니면 과학이 아닌 것을 공부한 것일까. 나는 과학자일가, 아니면 얼치기 과학자일까. 콜링우드의 말은 진리를 담보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 자신의 독백이나 투정 이상이 아닐까.

사회생물학에 몰두한 시기가 있었다. 학교를 마치면 산에서 곤충을 잡으며 소일하던 나는, 개미를 연구하던 최재천 교수에게 질투를 느꼈다. 나에겐 그 분야로 갈만한 역량과 여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엔 진사회성 곤충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있었다. 해밀턴의 천재적인 해결책은 나를 사로잡았었다. 개미들의 카스트 제도는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아주 우연히, 정말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나는 동물행동학과 유전학을 접목시킨 시모어 벤져의 제자의 실험실에 와 있다. 시모어 벤져가 죽었을 때, 나의 보스가 사이언스지에 부고를 작성했다. 대만인인 YN은 아주 터프하고 완고하며 말수도 적은 아시아인이다. 그는 벤져보다는 박사과정의 스승이었던 델브뤽의 영향을 더 받은 듯 하다. 여전히 그와 몇마디 해보지 못한 나지만, 점심식사중에 신나게 했던 이야기는 대부분 델브뤽에 관한 일화들이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생물학을 하지 말라. 델브뤽이 했던 말이다. YN과 릴리는 그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네이쳐나 사이언스와 같은 잡지보다는 한 분야를 깊게 파는데 더욱 열정적인 진솔한 과학자들이다.

이곳에서 나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내게 주어진 자유의 폭이 드넓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오기전 행동유전학을 셋업해놓은 레베카는 내가 아는 유일한 천재다. 그녀의 덕으로 나는 보은을 입었다. 모두가 덴드라이트를 연구할 때, 나는 행동유전학을 부담없이 연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레베카가 교수가 되어 곧 떠난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보지는 못했지만 기억하고 싶은 과학자다.

초파리를 사회적인 곤충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진사회성 곤충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들의 협업이다. 초파리에게 그런 협업의 특성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초파리 성체는 본질적으로 단독생활을 하는 곤충이다. 초파리 애벌레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함께 모이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 카스트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초파리 애벌레로 사회성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꽤 있다.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 먼 훗날에 사회성을 지닌 초파리를 내가 만들어 인류가 멸망하는 일이 오더라도 상관 없다. 이 미친 세상을 인간이 지배하는 것보다는 그런 초파리들에게 맞기는 것이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초파리로 할 수 있는 사회성 연구란 암수간의 성행위나 숫컷간의 경쟁정도다. 특히 후자는 정자전쟁, 그래 로빈 베이커의 과장이 참 인상깊던 그 정자전쟁을 다룬다. 내가 책에서나 보던 그런 주제들로 연구하게 될지는 생각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삶은 참으로 웃기게 흘러간다. 레베카가 성행위에 관련된 중요한 텃밭을 일궈놓았다. 그 천재에 대한 나의 웃기지도 않는 자존심은 그 텃밭에 발을 담구지 않겠다는 식으로 발현된다. 나만의 영역을 만들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리하고 싶다.

초파리를 모델동물로 삼은 학자들의 전통은 둘로 갈린다. 실험실에서 유전학적 연구를 했던 이들은 발생학과 신경생물학에 집중하며 초파리 연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야외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진화와 종분화에 초점을 맞추던 도브잔스키의 전통도 여전히 굳건하다. 그들에게서 재미있는 단서들이 많이 발견된다. 엊그제 레베카와도 이야기한 것이지만, 도브잔스키의 전통과 모건의 전통 사이엔 여전히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있다. 전자는 지나치게 겉보기 연구에 치중하고, 후자는 지나치게 세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둘을 하나로 만들고 싶다. 어느쪽 전통이 우월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주로 유기체의 내부를 연구하던 이들에게서 통합이 이루어졌다. 한번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

이전 실험실의 교수가 연구비 부족으로 쫓겨나는 바람에 우리 랩으로 건너온 데이빗이란 대학원생이 있다. 성격도 좋고 참 열심인 아이다.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와 데이빗이 칠레에서 건너왔다는 거였다. 어머니도 유명한 초파리 유전학자라는데 생물학자 집안이라니 국내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국내의 이공계 부모들이 과연 자식을 이공계로 보낼까. 나는 회의적이다.

여하튼, 칠레라길래 별 기대도 안하고 내가 아는, 그리고 꽤나 탐독했고 관심을 가졌던 바렐라와 마투라나의 이야기를 넌지시 던졌다. 알거란 기대는 안했다. 국내에서 생물학자들 중에 바렐라를 아는 이들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참 좁다. 데이빗의 어머니가 바렐라의 제자란다. <인식의 나무>가 번역되어 사두었는데 다시 한번 탐독해야겠다. 대학원생의 입에서 오토포이에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들으니, 내 대학생시절과 대학원 시절, 술을 마실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주변에서 눈치를 받던 내 불우한 경험이 떠올라 쓴웃음이 지어진다. 과학문화라는 말이 오늘따라 참 절실히 생각나는 날이다.

쾰러의 <Lords of Fly>를 번역해 볼까 생각중이다. 벤져의 일대기를 다룬 <초파리의 기억>이 번역되어 있지만, 초파리 유전학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제대로 다룬 책은 이게 유일해 보인다.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지원을 좀 받으면 좋겠는데 저 책의 가치를 아는 학진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혹여라도 학진 분들이 이 블로그를 읽으신다면 연락 바란다. 머 어차피 초파리의 전통이 없는 나라에서 초파리 유전학의 역사를 다룬 진지한 책을 번역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워딩턴의 책, <과학적 태도Scientific Attitude>의 제 2장 <Science is not neutral>을 번역해 두었는데 올리까 말까 고민중이다. 워딩턴이라는 인물이 워낙 인상깊은 인물이라 무턱대고 주말에 번역을 하긴 했는데, 이 인간도 천상 과학자다. 원래 과학자로 길들여진 인물들의 글쓰기라는 것이 유치하기 짝이없곤 하다. 크릭의 책도 참 실망이었는데 워딩턴의 책도 그렇다. 번역은 했으니 올리긴 올려야 겠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헛소리고 어디서붙 들을 만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는 과학인가>라는 챕터는 도대체 이 인간이 맑스의 과학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는 하고 썼는지 모르겠다. 책을 써도 이런 과학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외국학자들의 책이라면 껌뻑 죽고 마는 국내의 풍토도 좀 바뀌었으면 한다. 영어라는 언어의 권위는 참 무서운 것이어서, 같은 질의 책이라도 영어로 되어 있으면 있어 보이게 마련인데, 꼭 그렇지 않다. 이젠 학문적으로 좀 자존심을 가져도 되는 시대가 왔다. 인터넷이 이렇게 발달한 시기에, 수백년전 학자들의 책을 모조리 공짜로 쳐다볼 수 있는 시기에, 이젠 우리도 이 유럽인들의 자기중심적 사관으로 점철된 과학의 역사를 좀 비웃어줄 때도 되었다.

두어달쯤 전에 수잔이라는 랩의 초파리 담당자와 한두어시간 신나게 토론을 했었다. 거의 싸우다시피 했는데 물론 진짜로 싸우지는 않았다. 과학의 기원을 그리스로 소급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과학자라는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치면서도 유럽중심주의적 사관이 얼마나 서양인들에게 깊이 세뇌되어 있는 것인가 다시금 깨달았다. 다빈치가 과학자면 정약용도 그렇다. 나는 19세기 근대과학의 혁명기 이전에 존재하던 흔적들을 유럽인들처럼 과대포장할 이유도 없고, 그렇지도 않다라고 생각한다. 과학사라는 학문이 언제 탄생했는지를 보면 모든게 명확해진다. 19세기 이전까지 자연철학과 과학의 경계는 모호했다. 그건 현대적 의미에서 보았을 때 과학이라 부르기 어려운 면이 많다.

수잔은 합리적 사고를 과학이라는 말과 동치하는 무지를 보여주었는데, 60먹은 할머니의 그 순진한 발상에 내가 뭐라고 욕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그저 묵묵히 내가 생각하는 걸 보여주었을 뿐이다. 합리적 사고는 과학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신을 믿던 과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말이다. 과학은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것과 별개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속아온 유럽중심주의 역사가들의 함정이 존재한다. 합리성, 웃기고 자빠졌다. 파이어아벤트의 말처럼 이성이여 바이바이다.

이성과 합리성의 제국이 세운 이 거대하고 미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문명의 최고봉이라 뒤늦게 추켜세운 과학을 공부하는 나는 참으로 모순된 존재다. 미친 세상. 그래도 이 미친세상을 사는 나의 독법은 과학 뿐이다. 그 속에서 ‘착하게 살자’는 공자의 깊은 뜻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명박, 나는 당신이 정말 싫다.

이 미친세상에서 요즘 나를 살게 해주는 건 태연의 '만약에'와 티파니의 '나 혼자서',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뿐이다. 망할 세상이다.
 

19 thoughts on “파리와 함께하는 생활속에서

  1. 학진에는 고전명저번역총서 지정도서 추천 해보고 먹히면 노려보시라는.

  2. 깊은 사색의 글이라서 댓글을 달고 싶은데 너무 깊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이 미친 세상에서 요즘 저를 살게 해주는 건 폴 크루그먼 형님 뿐입니다. :)

  3. 정말로.. 소녀시대의 노래를 음악적으로 높히 평가하시는가요? 님의 음악적 취향에 맞는가요? 아니면 가수가 좋은가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갈수록 아리송하네요~~^^

  4. 제목만 보고도 모처에서 김우재님과 마찬가지로 ‘초파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친구녀석이 떠올라 괜시리 큭큭거리며 웃었네요. 항상 투닥거리는 사이인지라. 석박 과정인디 이놈이 박사 학위를 받는다 해도 죽어도 ‘박사’라곤 못 줄러줄지도. (웃음) “니가 박사면, 난 비트겐슈타인이다”랄까요. (펑-)

  5. 담구다 를 본것 같아 아싸 지적질~ 하고 굳게 맘먹었더랬는데 제가 취한건지 눈이 취한거겠죠
    파리로 여행중이신가 일순 제목만 보고 여하튼 간만의 새소식에 기뻤네요
    늘 휴가는 4박5일이었고, 그 와중에 7,8일씩 고집했었는데 막상 8일이 공식적으로 주어지니
    집에서 차분히 지내고 싶던 맘에 미국행 불이 지펴졌어요 동경하던 곳은 맨햍 이었는데
    동경이란 어휘가 어울리지 않을만큼의 감정인지도 모르지만 늘 제게 미쿡은 그랬는데
    왠지 다른 지역의 표도 찾아보고 그랬네요 ㅎㅎㅎ

    아 댓글을 너무 오래 작성하고 있어요 참 무슨 사이라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anyway 저는 기쁘고 당신은 덜 기쁜 그런 타임인가요 늘 건승하시길..romantic biologist~!

  6. 지금은 돌아간 칠레동료의 생일에 초대받아 갔었을 때 그곳에 모인 칠레인들에게 마투라나와 바렐라를 아냐고 물어본 적이 있지요. 갑자기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안되는 영어로 땀을 뻘뻘 흘렸다는… 옆방 교수였었다는 산티아고 대학 사람들에게 그 두분은 거의 영웅이더군요. (우리에겐 황우석인가요….T.T)
    김우재님 ‘이중나선의꿈’ 이후에 다시 이곳에서 뵙고서 반가왔었습니다. 여전히 올곧게 정진하고 계시군요. 갈짓자로 휘청거리고 있는 저로서는 부러울 뿐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7. 전 폴크루그먼 RSS를 받아보면서도 하나도 읽지를 않습니다. 크루그먼은 아나키스트가 아니니 패스.

  8. 가장 진지한 질문이군요. 태연의 가창력은 제가 인정하는 아주 높은 수준입니다. 음색도 좋고, 특히 가성과 진성을 넘다드는 < 만약에>는 일품입니다. 제 음악 취향은 고급이 아닙니다. 전 유재하를 세계 최고의 뮤지션으로 생각하며 살아왔고, 음악에 있어 그 이상 정진할 생각이 없습니다. 소녀시대의 음악은 제게 최고입니다. 댄스음악들보다는, 다시만난 세계나 팅커벨, 그대를 부르면 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발라드를 좋아합니다. 진지하게 대답하자면 전 소녀시대의 음악이 매우 좋은 수준이라고 여깁니다. 음악은 제게 취향 이상의 것이 아닙니다. 거기 어떤 절대적 기준이나 고상함 따위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9. phD라는 건 이 땅에서 사는데, 것도 기초과학 박사라는 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 따로 박사라고 불리기도 싫습니다.

  10. 이중나선의 꿈 시절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제게 큰 행운입니다. 감사합니다.

  11. 저는 삼각형나 사면체를 관찰하면서 살고있습니다. 초파리를 관찰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가끔은 삼각형이 과연 실재하는 대상인가 하는 고민도 합니다. 초파리를 관찰할때는 그런고민을 할까요?
    초파리도 각 개체마다 완전한 똑같은 개체는 없을테니 모든 초파리들이 가진 어떤 공통적인 특징을 가진 대상의 모임 혹은 그 개체를 일컬어 부르는 명칭이겠죠. 삼각형도 마찬가지 일까요?…

    언제나처럼 생각은 꼬리를 무네요…

  12. 국경없는 생각회 고문으로 위촉합니다.
    터치 내리면서 마지막 사진 보고 깜딱 놀랐어요.
    바쁜 실험 중 예쁜 여친 생긴 줄 알구요.
    실험 건투를 빕니다.

  13. 삼각형으로 그런 생각을 하신다면 고대 수학자들을 한번 따라가보시길. 그런 생각했던 사람들 많으니까요. 피타고라스 형 등등. 개인적으로는 참 미친 생각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런 미친 생각도 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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