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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8일, 성대입시부정 사건의 피해자 김명호 교수를 위하여, (hwp)
들어라, 침팬지들아!
김우재
하나의 유령이 지금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역사라는 유령이. 우리가 과거사를 청산해야 하는 것은 민족주의나 좌파적인 이념 때문이 아니라 과거를 아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한 자는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산타야나 리뷰가 새삼 우리에게 가깝게 들리는 이유는 이제 대한민국이 바로 그 과거에, 한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 없이 외롭게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던 그 과거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더 잘 알고자 함은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밝히는 일이 현재를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산타야나의 말처럼 ‘역사에 있어서 오랫동안 망각된 상처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참담한 결과는 당신들이 숨쉬고 있는 현재 상황속의 사태다. 또한 이러한 참담한 결과는 미래와 연관되어 있어 중요하다. 즉, 만약 ‘우리가 과거를 이해할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미래를 컨트롤하는 통찰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과거는 결코 우리를 떠나는 일이 없으며 미래는 이미 눈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우리 눈앞에 와 있고 이제 우리가 그것을 잡고 놓치지 말아야 할 때다.
두개의 역사, 그리고 만인평등주의
언제나 억눌려 왔지만 민중은 항상 역사의 올곧은 방향을 느끼고 있었다. 길이 뒤틀리면 민중이 움직인다. 역사가 소수에 의해 움직인다는 터무니없는 말로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자들은 역사에 무지한 자들이다. 그들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기록된 역사에 무지하고 또 인간이라는 한 종의 진화사에 무지하다. 세계사로 무대를 넓히지 않더라도 한반도의 역사가 민중에 의해 인도되어 왔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왕정이 이 땅을 지배하던 먼 과거로 눈을 돌리지 않더라도 가까운 과거로부터 우리는 민중의 역동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동학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기치가 4.19혁명으로 광주 민주화항쟁으로 그리고 87년 6월 항쟁으로. 우리는 분명 역사의 지평을 넓혀왔다.
민중의 움직임에는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사가 담겨 있다. 인류가 수백만 년 동안 진화했던 사회 환경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그것과 다르다. 우리의 마음이 적응되어 있는 상태는 입헌군주국도 독재국가도 공화국도 아니다. 우리는 만인평등주의라는 사회체제에 적응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인류학자들의 민속지학적인 연구로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인류가 많아야 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씨족사회에서 적응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연구는 우리의 대뇌피질이 수용할 수 있는 인식집단의 최대치가 147.8명임을 예측한다. 이러한 진화적 적응환경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전 세계의 수렵 채취인 사회가 놀라울 정도로 만인평등주의적이라는 점에서는 인류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그들은 사냥해 온 고기를 철저히 공유한다. 만인평등주의는 비단 음식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만인평등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은 그들의 사회체제에서 더욱 극명하게 부각된다. 인류학자 크리스 뵘에 의해 ‘역지배’라고 명명된 이 현상은 한 개인이 아무리 이기적인 충동에 휩싸일지라도 동시에 이들은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제어 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렵채취인 집단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사람은 그 집단 내의 나머지 사람들의 단결된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우리가 가진 부정적 감정의 대부분은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선천적 심리학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말레이 반도의 치웡족이 가진 ‘푸넨 시스템’, 가봉에서 왕을 선출할 때 사용되는 ‘콧대 꺾기 전략’ 등에서 우리는 만인평등주의의 뿌리 깊은 연원을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서구의 산물이라고 알려진 민주주의가 결국 ‘견제와 균형’이라는 단순한 원리에 의존한다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말하지 않던가.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라고. 어쩌면 악이란 상호견제의 부재인 것이다.
이러한 만인평등주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은 목적과 구조로 이루어진다. 그 목적의 이름은 코뮤니타스 정신이고, 구조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다양하다. 평등한 개인들로 구성된 단체로서의 공동체를 빅터 터너는 코뮤니타스라고 부른다. 이러한 코뮤니타스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구조가 제안될 수 있다. 구조란 사람들의 나이와 성 그리고 공동체내에서의 지위와 연관된 역할들의 체계를 의미한다. 사회적 규범 안에서 규정된 역할이란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데 사용될 경우 즉각적인 제제를 받게 된다. 빅터 터너가 종교의식에 적용한 구조와 코뮤니타스라는 개념은 공동체의 크기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가능하다. 인류 진화사와 관련된 자연선택이 미처 예상하지도 못했던 거대한 집단 크기로 인해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대표자를 만들고 계급을 나누기 시작했다. 거대 집단은 만인평등주의 시스템으로는 곧 도태되기 때문이다. 일정한 크기를 넘어선 곳에선 계층화되어 있는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처럼 다양한 구조들도 결국 만인평등주의라는 목적 속으로 용해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이룬 집단은 만인평등주의를 지향하도록 구조화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적 진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 속의 개개인은 이기적일 수도 있다는 가변적 사실이다. 이러한 전제로부터 인간이 곧 침팬지라는 공식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 유행하던 책들의 제목처럼 인간이 챔팬지의 일종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뇌가 가진 가소성은 그 어느 종보다 뛰어나다. 자연선택이 인류에게 던진 단하나의 행운이 있다면 세부적인 사안 모두를 유전자의 통제 하에 두지 않고 환경단서에 적합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소성이 극대화된 두뇌를 선물했다는 사실이다. 가소성이 극대화된 두뇌의 특징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다.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류는 ‘제3의 침팬지’나 ‘벌거벗은 원숭이’가 아니라 오히려 ‘눈치 빠른 원숭이’에 가깝다.
인간과 침팬지
선천적 심리학의 근원이 이기적인 속성을 지닐지라도 눈치 빠른 우리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이기적일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침팬지와 다르다. 프란스 드 발의 연구는 침팬지들의 사회가 가진 속성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이들의 권력투쟁은 호르몬에 의해 강화되고, 강화된 호르몬은 우두머리를 더더욱 잔인하게 변화시킨다. 직장인들 중 부하직원들과 상사들의 표본 집단을 선출해 지위와 관련된 남성 호르몬의 역학 조사를 실시하면 우리는 침팬지에게서 얻은 결과를 그대로 얻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침팬지 사회는 인간의 사회와 유사하다. 침팬지 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을 인간 사회에 적용시킴으로서 드 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경고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경고할 수 있고, 무엇을 장려할 수 있을까. 우리의 정치가 침팬지들처럼 권력 투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할 수 있을까? 진화학자들의 고질적인 버릇인 냉소적인 어투로 과연 그러한 정당화가 가능할까? 침팬지 사회를 인간 사회와 비교하면서 인간도 결국 영장류에 불과하다고 실컷 비웃고 나서, 다시 인간이라는 종의 우월함을 내보이며 잔인한 권력투쟁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사실을 떠나 이러한 유비로부터 무언가를 정당화한다는 것에는 커다란 비약이 존재한다. 오히려 우리는 인간과 침팬지의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을 부각시킴으로서 무엇인가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다름’이 ‘잘못 혹은 우월’이라는 가치로 환원되지 않도록 계층적 사유를 제거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침팬지와 다른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드 발의 유비를 인간 개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만약 그 적용 대상을 집단으로 한정한다면 우리는 꽤나 멋들어진 이론 하나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의 집단이 침팬지들의 권력투쟁과 유사하다는 것을 누가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사실 거대한 규모에서 인류는 분명 좋은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왕정에서 민주로의 전환을 일구어내고 있다. 그러나 정치집단, 경제집단, 교수집단으로부터 우리가 뻔히 보고 있는 현실은 바로 침팬지의 그것이다. 아마도 인류의 문화가 인류 개개인에게 가하는 가장 큰 압력은 정치와 경제에 관련된 것이었던 듯 하다. 어느 사회나 민주화와 함께 기업은 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제도에서 민주화를 이루어가면서 우리는 부패로 얼룩진 기업에 개혁의 칼날을 겨누지 않았던가. 농경사회로의 전환을 통해 거대화된 환경을 창조한 인류에게 정치 집단과 경제 집단의 침팬지화는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우리에겐 코뮤니타스라는 이상이 선천적 심리학의 메커니즘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이를 이루기 위한 구조의 발견은 때를 기다리며 천천히 발전하기 때문이다. 비록 늦기는 하였으나 여하튼 우리는 그것을 이루어가고 있고 어쩌면 그것은 만인평등주의를 위한 필연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라 말할 수 있다. 구조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그저 만인평등주의라는 이상을 가슴속에 담고 한 맺힌 삶을 살아갈 도리 외엔 방법이 없다. 구조의 이면엔 견제라는 감정이 내재되어 있으며, 민주주의 또한 이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역사적 사실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만약 만인평등주의를 향한 발전과정이 자발적이라면 이러한 견제의 역사는 ‘기록’된다는 것이다. 그 기록이 문자로 남건, 집단적인 두뇌 속에 심어지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견제의 역사가 지닌 내재적 메커니즘을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조는 기능할 수 없다. 기록은 처음엔 느슨하게 시작되어 결국은 딱딱하게 고착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이러한 딱딱한 기록 중의 하나가 바로 유전체인 것이다. 유전자들은 처음부터 하나가 아니었고, 유전자들의 집단을 이루며 기록을 자동화했다. 이러한 유전자 집단은 다시 유기체를 만들며 유전체라는 기록을 남겼고, 이제는 그것이 분리되어 있다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고착화되어 있다. 아마도 신경계를 가진 종들은 이러한 기록을 두뇌에 저장할지 모른다. 또한 인간은 그것을 문자라는 기록으로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문화라 부르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다. 여하튼 기록의 고착화가 진행될수록 부분은 전체와의 구분을 상실한다. 마치 유기체처럼.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역사’가 된다.
따라서 이기적 집단을 만인평등주의적 이상으로 이끄는 구조 속에는 반드시 ‘역사’라는 개념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역사는 산타야나가 말한 것처럼 오류가능성을 줄여주는 것 이상으로 인류에게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부연하자면 역사는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 혹은 작은 소집단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기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시스템의 구성성분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기나긴 진화적 설명을 통해 역사는 사회과학자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로 기능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를 통해 도대체 왜 우리 사회에 과거사 청산이 필요한지를 역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일까. 구조가 필요한 집단이 정말 정치권과 경제권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혈연, 지연, 학연은 집단이 아닌 것일까.
교수가 정치인을 욕할 수 없는 이유
대한민국의 교수집단은 침팬지와 많이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질문은 학문이 정치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과 유사해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학문이 정치와 다르다는 것은 이론과 현실의 차이로, 순수함과 더러움의 차이로, 아이와 어른의 차이로 얼마든지 대비시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교수집단과 정치집단은 그렇지 않다. 교수집단은 학문을 대표하지 않는다. 특히 대한민국의 교수집단은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그들이 정치집단을 매우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역사에서 언제 학계가 주도적으로 그 역할을 해낸 적이 있던가. 왜 항상 우리가 가진 혁명사의 주인공들은 교수들이 아니라 학생들인가. 유신을 찬양하고 전두환 시대의 나팔수를 자처한 이들 중 또 얼마나 많은 교수들이 있었는가. 끊임없이 터지는 교수임용비리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혹시 자신의 집단을 강화해 줄 꼭두각시를 선발함으로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선거에 유리한 이들이라면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마구 공천해대는 과거 정치인들의 행태와는 얼마나 다른가. 우리학풍 건설은 뒷전이고 외국 이론을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수입해서 그것을 독점해 버리는 학문풍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농민들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농산물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우겨대는 기업인 총수들의 행태와는 또 얼마나 다른가. 여제자를 성폭행하고, 졸업논문과 취업을 빌미로 학생들을 착취하며 학생들이 마땅히 받아야만 할 임금을 몰래 빼돌리는 행태는 악덕 고용주의 그것과 또 무엇이 다른가. 도대체 교수집단이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침팬지 사회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이러한 악덕을 교묘한 언변으로 정당화하려는 이들에게 우리는 이미 위에서 우리가 분석해 놓은 ‘역사’라는 잣대를 더더욱 철저하게 들이댈 수 있다. 역사라는 기록은 문자라는 텍스트를 포함하고, 그 문자를 다루는 것이 교수집단이며 따라서 누구보다도 역사를 잘 알아야만 하는 이들 또한 바로 교수집단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오류를 피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역사를 다루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오류가 적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쩌면 인류 집단이라는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차마 교수집단이라는 용어를 학자집단이라는 용어로 바꿀 수가 없다. 이미 말했듯이 교수집단은 학문을 대표하지 않고, 우리가 양심적인 학자라 부르는 이들 중엔 진정으로 역사를 아는 이들도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교수집단에 속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역사를 거론하며 이 땅을 정화해 온 학자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문이 정치와 다른 이유
학문이 정치와 다른 이유는 학문이 진리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학문이 진리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더욱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다는 편견은 이제 벗겨질 때가 왔다. 사실 모든 학문이 역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따라서 학문은 단지 그 시대의 진리를 말해줄 따름이다. 결국 개별 학문이 추구하는 진리는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상황적 진리인 것이다. 따라서 학문과 정치를 구분하는 잣대는 진리라는 추상적 틀이 아닌 방법론에서 구해져야 한다. 학문이 정치와 다른 이유는 학문이란 무엇인가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고 정치란 무엇인가를 적용시켜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과 정치 모두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적용시켜나간다는 지적 또한 가능하다. 따라서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론의 차이만으로는 학문과 정치를 구분하기 어렵다. 역사에서 발견될 수 있는 상식을 근거로 이 둘을 구분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 상식은 서로에 대한 적용가능성이다. 정치를 학문에 적용할 수 있는가. 그 반대는 가능한가. 정치인이 학자가 될 수 있는가. 그 반대는 가능한가.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것이 더 이상에 가까울 것인가. 이에 대해 유교보다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겨둔 분야는 없을 것이다. 최한기는 학문정치를 꿈꾼다. 조광조는 어렵더라도 학문에서 얻은 성찰을 정치에 응용시킬 이상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나는 학문과 정치, 나아가서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시켜볼 만한 기준으로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상태’인가를 묻기를 원한다(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정치란 침팬지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정치집단의 침팬지화를 거론하지 않았던가. 학문은 인류사에서 매우 뒤늦게 탄생했다. 뒤늦게 탄생했다는 것이 모든 것을 가리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보다 문화적, 즉 유전적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영역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또 인간이 가진 선천적 호기심이라는 자연의 영역으로 학문을 ‘자연스러운 상태’ 가까이 가져다 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전자-유기체-인간사회‘라는 비유를 통해 다층수준에서 보이는 딱딱한 혹은 느슨한 기록을 살펴본 우리는 학문이 아직 인간사회에서 비교적 느슨한 기록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유전자보다는 문화를, 본성보다는 양육을 선호하는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는 축복이 되는 결론이 뒤따라 나온다. 학문의 영역에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 이는 학문이라는 영역이 아직 인간사회에 길이 덜 든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속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느슨한 기록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자유의지의 확대, 혹은 인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확장, 혹은 단순하게 말해서 ’학문적 자유’라고 말한다 해도 아무런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학문에는 분명 자유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새로운 자유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자유의 영역이다. 만인평등주의를 구현하는 코뮤니타스 정신이 이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학문은 정치와 구분된다. 학문의 자유는 사실 근대 사상과 법, 제도에서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권리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 2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며 학문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밝혀두고 있다. 학문의 자유라 함은 연구의 자유, 연구결과발표의 자유, 강학의 자유, 학문적 집회/결사의 자유로 구성된다. 연구의 자유는 비교적 자유로우나 이외의 자유는 제한적 자유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외부와의 연계성이라는 기준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학문하는 이들의 헌법적 정당성을 분석하거나, 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학문의 자유’라는 추상적 권리에 어떤 힘을 보태는 것도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나는 더욱 기본적인 것들을 말하고 싶어 한다. 나는 학문이 정치와 구분되며, 우리의 기준에 따라 더더욱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명확히 하지 않더라도 이미 위에서 펼쳐둔 ‘역사적‘이라는 것의 의미 분석을 따라온 사람은 그것이 상호견제에 기반을 둔 만인평등주의라는 것을 안다. 이쯤에서 이제 누군가는 자연스러운 것과 부자연스러운 것, 딱딱한 기록과 느슨한 기록,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테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러한 구분을 시작한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정치보다는 인간을 닮았다고 여겨지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권력투쟁보다는 상호견제라는 인간의 미덕을 닮은 비판정신이 반드시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비판적 사유의 부재가 곧 악이라는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비판보호구역
학문의 영역에서 비판적 사유라는 미덕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사회생물학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에드워드 윌슨은 당시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다. 사회과학은 생물학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그의 발상과 더불어 우생학과 나치를 연상시키는 그의 사상은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미명하에 호된 비판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윌슨을 강하게 비판하던 이들은 또 다른 생물학자들의 그룹이었고 이들 중 한 명인 리쳐드 르원틴은 윌슨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르원틴은 집요하게 윌슨을 공격했다. 자신을 나치와 동일시하는 그런 비판을 듣고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정상은 아닐 것이다. 또한 최재천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윌슨과 르원틴은 자주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으며 둘 사이에 주먹다짐은 없었던 것 같다(적어도 보고 된 바에 의하면 그렇다). 사회적 지위라는 명예 때문인지, 서구적 문화 때문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현재의 지위를 박탈할 권력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 가진 권력이 비슷했기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두 사람은 학문의 영역에서 비판정신이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윌슨 교수의 제자인 최재천 교수마저 르원틴을 개인적으로 흠모한다고 말하지 않던가. 만약 두 사람 사이의 권력이 비슷해서 비판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또는 그것은 서구적 문화에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여긴다면 가까운 우리의 과거, 두 사람의 권력이 확연하게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비판정신을 잘 보여준 사례를 떠올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그토록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기에 인색하지 않은 조선시대에도 퇴계와 고봉은 그 엄청난 권력차이에도 불구하고 학문이란, 학문에서 비판정신이란 이런 것임을 매우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의 학문은 조선시대보다도 못할지 모른다. 비판정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500여 년 전 과거의 학자들보다 못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95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수학입시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누구보다도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김명호 전교수의 사례를 위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자란 적어도 잘못된 것을 잘못돼 있다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지적이 오류라면 그 오류에 대해 다시 지적하면 그 뿐이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싫다고 그 감정을 잔뜩 호르몬에 실어 침팬지들처럼 상대를 패고 죽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인간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적어도 학문의 장이 침팬지들의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돼는 것이다. 학문이라는 가장 (우리가 분석한 의미에서의) 인간적인 분야에서,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대학이라는 장소에서,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학자들이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오래 지난 일이라고 그냥 덮어두자는 이들도, 내가 이미 수십 번을 이야기한 의미에서의 ‘역사’를 땅에 묻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란 어찌되었던 간에 역사를 다루는 자들이고 또 역사를 소중히 여겨야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르는 역사를 다루는 자들이, 역사를 다루지 않는 영역에 이를 전파해야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 침팬지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물을 주어야 할 난초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러므로 들어라, 침팬지들아. 역사가 너희들의 목을 겨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