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만, 김종영, 강정인 등의 한국 사회과학계의 지역성, 종속성, 서구중심주의 비판 등을 엮어 오래 전 읽었던 그들의 논문과 글들을 함께 정리하려고 쓴 블로그 포스팅을 두고, 또 어떤 논객들은 “책도 안 읽고 저런다”고 난리도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서평이 아니다.
1. 내 블로그의 글들은 발표용이 아니다. 내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는 용도다. 따라서 이 블로그의 글들을 발표된 글의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2. 어제의 글은 서평이 아니다. 서평이 아니라고 따로 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서평이 아닌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서평이란 책을 읽고 쓰는 것이다. 난 책을 읽지 않고 서평을 쓰지 않는다. 그걸 서평이라는 기준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바보다.
3. 김경만의 책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이 어제 내가 지적했던 문제들을 책에서 모두 다루었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요지다. 고마운 일이다. 책을 읽어볼 여지가 생겼다. 그런데, 서평도 아니고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는 단상에 불과한 포스팅에 그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썼다고 비난하는 자는 바보임에 분명하다.
4. 가령 모든 책을 읽은 척하는 로쟈 이현우의 블로그 포스팅을 서평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내 포스팅도 이런 책과 학문적 흐름이 존재하고,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정도의 공부 중의 생각을 정리해본 것 뿐이다.
5.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김경만의 신작이 다루는 내용이 어디서 뜬금 없이 떨어질리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십여년 전 부터 비슷한 류의 생각을 말해왔다. 이번 책은 그런 논문들과 생각들을 정리한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책이라면 생각의 단초들은 그의 논문이나 논쟁, 인터뷰, 발언 등등에 담겨 있을 수 밖에 없다. 내 전공도 아닌 학자의 책을, 발표된 글로 비판할 생각도 없는데, 내가 그의 책을 모두 읽고 비판할 여유는 없다. 그것도 트위터에다 툭툭 내뱉듯 푸념하는 잉여들에게 성실하게 답변할 의무도 없다.
6. 어떤 자에게 그럼 책을 읽은 당신의 서평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에게 보여줄 서평은 없다며 피한다. 그게 바로 김경만이 말하는 의도적인 외면이다. 김경만은 서구의 학자들을 비판할 때엔 서구의 학자들이 노는 씨름판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럼 블로그에서나마 생각의 단상들을 인상비평처럼 써내려간 글을 읽었을 때는, 비슷한 정도의 지적 성실함은 보여주는 것이 비판의 자격일 것이다. 어차피 익명의 뒤에 숨을 요량이면, 아예 학적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김경만의 실명비판을 추앙하며 스스로는 익명의 뒤로 숨는 사회학도들을 나는 머저리라고 부를 것이다.
7. 어차피 익명 뒤에 숨을 머저리들이니 그 트위터 아이디들은 공개해도 무방할 것이다. 첫번째 머저리는 @Hedonist2020 이라는 아이디를, 두 번째 잰체하는 머저리는 스스로 골드문트라고 부르는 인간이다 @setupwindow (역시 윈도우는 셋업이 제맛이다)
8. 다시 한번 말한다. 그것은 서평이 아니다. 또한 이 블로그의 글들은 학문적으로 발표될 글들이 아니다. 실명으로 학자들을 겨냥해 비판한 글들은 모조리 모른채 하는 인문사회과학도들이 왜 블로그와 트위터에서만 얼쩡거리며 설치는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