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답할 것 같다. 과학적 사회라는 꿈을 꾸던 시기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내 생각을 담은 글과 책을 알리는데 페이스북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 과정에서 사이비 과학으로 공공의 이익을 어지럽히는 이들에게 몇 건의 고소도 당했고, 페이스북과 소셜미디어는 그 억울함을 푸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페이스북이 언젠가부터 광고로 도배되기 시작했고, 나 역시 점점 흥미를 잃기 시작한 것 같다. 요즘은 진지한 글이나 사회비판을 담은 글은 거의 올리지 않고, 내가 쓴 글도 왠만하면 공유하지 않는다. 소설가라는 직함을 가진 이가 내 글에 시비를 걸고, 그 글이 꽤 시끄러워지기에 페이스북 계정을 지웠다가 아내가 김영사를 위해서 책 광고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서 계정을 다시 살렸지만,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영감이나 정보를 얻는 일은 이제 드물다.
최근엔 페친의 상당수가 라스베가스 CES에 참가를 했는지, 죄다 라스베가스에서 노는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오는 중이다. 과학자들의 국제학회가 휴양지에서 열리는 꼬락서니를 혐오하는 나에게, 한국인들이 라스베가스까지 가서 자기들끼리 시덥잖은 네트워킹이나 하고 오는 모습은 참 싱겁고 혐오스러운 풍경이다. 잘 들여다보니 실제로 CES를 통해서 자신의 사업을 알려야 하는 이들보다, CES에 나온 신기한 물건들을 국내에 알리려는 언론인이나, CES가 유명하다니까 너도나도 따라가는 정치인과 관료들 그리고, 그냥 거기 가야 유명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관종들이 대부분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정작 애플이나 테슬라는 CES에 부스조차 만들지 않는다고.
실리콘밸리 근처에서 포닥을 하는 바람에, 테크기업에 다니던 사람들과 꽤 많이 교류가 있었고, 실리콘밸리의 혁신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를 가지고 나대고 팔아먹는 사람들은 기업대표나 엔지니어들이 아니라 기자 출신의 언론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관련 공기업도 기자 출신이 중책을 맡는걸 보고, 한국에선 뭔가 거꾸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 됐다. 주커버그나 빌 게이츠 같은 엔지니어 출신의 대표가 대접 받는 일은, 아마 한국사회에선 불가능할 것이다.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채우는 또다른 부류는 과학자들인데, 본인 논문이 나올때만 영어로 자랑질을 하는 인간들을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 그냥 논문을 공유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한국 과학자들 중에 호흡이 긴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지식인은 드물다. 페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나마 글을 좀 쓴다는 이들도 구어체로 휘갈기는 글이 대부분이다. 그런 과학자들에게 칼럼을 쓰게 해본 적이 있는데, 초등학생 수준도 안되는 글을 들고 오는 교수 직함을 든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꽤 고민한 적이 많다. 심지어는 무슨 IT회사 대표 국회의원이 칼럼이랍시고 글 교정을 해달라고 쓴 글을 읽고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은 적도 많다. 대통령 백일장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한국사회는 오피니언리더를 글쓰기를 보고 뽑아야 할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을 골방에 가두고 글을 한편 써보라고 하면 아주 가관일 것이다. 정치인들을 시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선시대 과거처럼 글을 써보게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들이 글을 못쓰는 거야, 그들의 직업이 수려한 글을 쓰는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퉁치더라도, 과학자들이 과학의 제도나 정책에 대해 사회비판을 하는 글을 가끔 읽으면, 그 사고방식의 편협함과 박성래가 중인의식이라고 부른 이기주의에 치를 떨게 된다. 얼마전에 주간경향에 실명으로 한국 과학계 리더들 이름을 썼다가 수정한 적이 있는데, 아마 주간경향 지면엔 그대로 나갔을 것이다. 과학계 리더라는 자들이 연구개발비를 대폭 삭감한 대통령을 따라 영국까지 간 것도 문제지만, 거기에 가서도 대통령에게 쓴소리는 커녕 본인들 분야만 홍보하고 오는 수준이란, 정말 혀를 찰 일이었다.
한국 과학자들의 중인의식이야, 단 한번도 본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 투쟁해보지 못한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고 치자. 하지만 한국 과학자 대부분이 보여주는 엘리트주의는 정말 속물스럽고 혐오스럽기 그지 없다. 특히 네이처라도 한 편 쯤 낸 과학자가 연구비를 공평하게 나눠주면 안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는, 정말 싸다귀라도 한대 쳐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렇게 연구비 양극화의 결과가 알고 싶으면, 미국을 보면 된다. 연구비 시스템에 대해서는 내가 <보통과학자>에 써놓은 산더미 같은 글이나 좀 읽고 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딱 한마디만 하자면 이거다. 어차피 노벨상도 못탈 연구나 하는 주제에, 시덥잖게 국내용 논문이나 내는 주제에 무슨 엘리트주의를 내뱉느냐는 말이다. 내가 보기엔 IBS 연구단장이라는 이들 중에 노벨상을 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에서 혁명적인 연구가 나오는걸 기대하느니, 차라리 연구비라도 공평하게 나눠 갖고 과학이 망하지 않는게 IBS 하나 유지하는것보다 낫다는게 내 생각이다.
페이스북에서 관종질 하는걸 딱히 뭐라 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짓거리를 해봤으니 그 쾌감에 대해 잘 안다. 하지만 실력을 좀 갖추고 떠들었으면 좋겠다. 어중이 떠중이 과학계 관종들이 모여 만든 과학동호회가 망했던 이유도, 실력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이들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벌어지는 아주 쉽게 예측 가능한 참사 때문이었다. 아직도 꼴같잖은 사단법인에서 이사를 달았다고 어머니를 부르며 감격을 하던 과학자도 아닌 법률계열 대학원생의 유치한 포스팅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젊다고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 유치한 과학동호회와의 악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겪어본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사람들이 더 악랄할 수 있다. 감정을 배제하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건 생각보다 어렵다.
최근에 내가 고등학생때부터 멘토를 했던 생물학자가 지방대 교수로 임용된 걸 봤다. 나에 대한 뒷담화를 늘어놓으며 내가 과학동호회원들과는 상종조차 하면 안되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인간이다. 얼마나 학생들과 잘 지낼지가 궁금하긴 한데, 어차피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인간들이 똑같이 당하는 꼴을 워낙 자주 봐온터라, 이젠 그마저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그런 못난이들의 일상이 아니라, 광대한 자연이 보여주는 신비 뿐이다. 요즘엔 꿀벌의 펩타이드들이 내 두뇌를 독차지하고 있다. 잘 살아라 이 못난이들아. 그렇게 발악을 하고 살아야 한다면, 그 삶 또한 존중해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