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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스크 – 닭대가리를 한 뱀

십여 명의 학생과 연구원들을 이끌고 실험실을 운영한지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처음엔 교수가 어떤 직업인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하다가, 이제야 실험생물학 실험실의 교수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조금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실험실 교수는 대가리다. 즉, 우리 몸에서 머리가 하는 일을 교수가 전부 해내야 한다. 교수가 손이 되어서도 안되고, 학생이 머리가 되어서도 안된다. 교수는 머리여야 하고, 학생과 연구원은 수족이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이 머리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게 바로 손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이 좋은 교수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교수는 손이 하는 일을 낱낱이 알아야 한다. 손이 뭘 하는지 모르는 머리는 손의 움직임을 조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조직의 리더가 해당 조직이 하는 일을 바닥부터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우가 모든 형태의 조직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통령에 걸맞는 직업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국가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직을 법을 다루는 율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정치를 장악한 결과가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역사와 현실에 물어보면 될 일이긴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서구민주주의 체계엔 어떤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고 본다.

사실은 삼성전자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삼성전자의 머리가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는 사태를 과연 삼성의 위기와 연결지을 수 있을까.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삼성전자의 리더십은 비상식적이다. MS의 빌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미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심지어 대만 TSMC의 역대 회장 모두가 전기공학 박사출신이다.

아까 이야기로 돌아와서, 실험생물학 실험실의 대가리가 실험생물학 박사 출신이 아닐 수는 없다. 이건 상식을 넘어 그냥 진리다. 범위를 조금 확대해보자. 생물학과 학과장이 물리학자일 수 있을까? 없다. 자연과학대학 학과장이 역사학과 출신일 수 있을까? 없다. 카이스트 총장이 사회학 전공일 수 있을까?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삼성의 CEO는 동양사학 전공자일까? 무슨 내가 모르는 통섭의 비밀이 숨어 있는 건가? 삼성은 바실리스크다. 닭대가리를 가진 뱀, 그게 삼성이다. 그런 괴물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