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종교적 성향은 대충 이렇다. 이승만 : 개신교(감리교)
윤보선 : 무교
박정희 : 무교(육영수 여사는 불교, 박근혜 대표는 천주교)
최규하 : 무교
전두환 : 불교
노태우 : 불교
김영삼 : 개신교(장로교)
김대중 : 천주교(세례명: 토마스)
노무현 : 천주교(세례명: 유스토)
이명박 : 개신교(예수교 장로회)
비율로 따지자면 무교와 개신교가 3명으로 가장 많고, 천주교와 불교가 각 2명씩이다. 참 고르게도 대통령이 배출된 나라인 것 같다. 하지만 좀 따져봐야겠다.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이 매우 진한 개신교 신자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는 한 보수성향의 기독교 단체의 구국기도회에서 석기현이라는 목사가 “하나님께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세워 주셔서 이 나라가 공산주의로 시작되지 않고 민주주의에 기초하게 해 주셨다”라고 기도했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더 알려줄까?
1950년 5.10 총선거로 210명의 제헌의원이 선출되었다. 이달 31일에는 국회의장에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이승만은 목사
출신인 이윤영 의원에게 국회의 개회 기도를 요청했다. 내 일일이 그 기도의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다. 이승만은 항상 정부의
대소집회를 기도로 시작한 인물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제 2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1952년 8월 기독교계에서는 다시
이승만 박사를 차기 대통령후보로 추대하면서 몇가지 이유를 내세우는데 그 세번째 이유가 가관이다. 이승만이 “국가의식을
기독교식으로 지령하는 등 정치기독교화에 적지 않은 공헌이 있었던 까닭이다”라고 이들은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의 기독교계는
이렇게 외쳤다. “전국 기독교인 유권자 제위는 명심하고 투표에 임할 때가 왔다. 기도하는 중에서 ‘한국 기독교회’를 지향하여
신중 투표하시라”고. 더불어 “대 영도자(무려 대영도자이시다) 이승만 박사에게 귀중한 표를 총집결하여 주시기를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대한민국은 진하게 기독교와 함께 시작한 기독공화국이다. 고고학을 전공한 윤보선 박사는 사실 정당성을 지닌 대통령이라기엔 부족하다. 어떤 이는 윤보선이 무교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는 안동교회에 출석하던 신자였다. 고로 그는 무종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박정희는 무교라고 기술되어 있지만 대종교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한 때 동학교도였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역시 무종교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최규하는 건너뛰자. 1년도 안되는 시절을 박정희의 암살로 넘겨 받은 그를 역대대통령의 종교적 성향으로 분석할 가치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그가 무종교인이었을지라도 대통령으로서의 정당성이 없었으므로 고려에서 제외된다. 백담사로 은둔했던 전두환과 그의 친구 노태우도 건너뛰자. 그들이 독실한 불교신자였음은 부인할 길이 없다. 대한민국 최초의 장로 대통령이자 국민망나니 김영삼은 당당히 두번째 기독교인 대통령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매우 안타깝게도 김영삼에제 최초의 장로 대통령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나마 천주교 신자였던 이들의 종교적 색채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들은 무종교인은 아니었으되 종교적인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적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이다. 무려 라엘리안으로부터도 지지를 받는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자랑스런 예수교 장로회 소망교회의 장로님이시다. 세심한 분석의 결과 자명해졌다. 대한민국의 역대대통령 중엔 무종교인이 단 한명도 없었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헌법에 박아 놓은 찬란한 대한민국엔 무종교인인 대통령이 단 한명도 없다. 정
교분리의 원칙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나는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했던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의 시도를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동의한다. 천주교는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과할만한 규칙을 지닌 단체다. 카톨릭대 교수이자
신부인 오경환의 논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천주교의 입장과 더불어 정의구현사제단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공의회는 성직자들이 정치 권력
구조에 너무나 깊이 들어가서 교회가 국가와 혼동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또한
어떤 법률이나 조약 때문에 교회가 어떤 국가에 지나치게
얽매이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교회가 국가에 예속되어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상실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국가도 교회에 예속외어 자신의 독립성 뿐 아니라
자율성을 잃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이상적인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분명히 말하지는 않지만,
공의회는 서양의 중세기에 일부 지역에서 교회와
국가가 혼돈될 정도로,
그리고 국가가 자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상실할
정도로 성직자들이 정권에 깊이 참여했던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보인다.
그 외에도 서양에서 근대 국가들이 출현하면서
카톨릭 교회는 국가들과 정교 조약을 맺은 결과로
그들에게 지나치에 얽매였던 역사적 사실도 공의회를
후회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파시스트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국가적
정책 때문에 교회가 탄압을 받으며 독립성과 자율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도 좋지 않다고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 혹은 한국에서처럼,
교회가 국가에서 분리되어 얽매이지도 않고,
종교이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국가의 제재를 거의
받지 않아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 <오경환, 정치와 종교에 관한 카톨릭의 입장中>
천주교의 정치와 종교에 관한 입장은 “교회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종교 문제에 관하여 아무런
권한을 갖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국가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려면, 교회는 현세
질서에 대하여 정치적 권력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한 사목헌장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회가 참된 자유를 가지고….인간의
기본권과 영혼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사목헌장
76항)”는 조항도 정의구현사제단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물론 문제는 헌법이다. 하지만 헌법의 정교분리원칙은 매우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어 해석의 여지가 넓다. 대한민국 헌법 제 20조는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1.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이게 전부다. 범위와 한계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다. 국교는 분명히 금지되어 있으나 종교와 정치라는 어찌 보면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두 제도를 어떻게 분리하고 있는지 규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미 한번 언급했듯이 그냥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의 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편이 낫다. 즉, “정치
체제와 통합되어 있는 종교나 그것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종교보다는 정치체제 혹은 국가와 창조적
긴장을 가지는 종교가 사회 발전에 더욱 기여한다“는 식으로.
2007년 11월에 실시된 SBS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이 깨야할 금기사항 1순위로 ‘종교계 비판’이 선정됐다. 아마도 SBS는 이때부터 ‘신의 길 인간의 길‘
을 준비하고 있었나보다. 당시 종교계비판여론이 확산되었던 이유는 종교계의 탈세행위 때문이었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종교에서
신앙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경우다. 종교라는 집단도 결국은 먹고 살아야 하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경제적 가치와 관련된 이슈는 민감하기 마련이다. 결국 종교가 신앙을 내세워 타집단을 공격하는 경우나, 민중이 종교를 공격하는
경우 모두 가장 큰 정당성은 경제적인 측면, 즉 돈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이
땅의 개신교와 불교가 돈과 관련해 얼마나 더러운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심심찮게 교회와 절 그리고 돈에 대한 더러운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지닌 역사적 과오 또한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그 더러운 친일의 역사와 독재를 찬양한 기도회에
대해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다. 적어도 천주교는 그들의 친일행위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했고 반성했으며 따라서 이
땅에서 정의를 행사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허나 개신교는 다르다. 망국 일본이 그들의 죄를 사과하지 않는다 하여 분노하는
개신교 신자들은 먼저 자신들이 속한 종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옳다. 쪽바리나 독재의 나팔수를 자처했던 개신교나 기깡이
기깡이다.
도
대체 우리가 이 아까운 시간을 왜 종교에 낭비해야 한만 말인가. 역사적으로 윤리적/도덕적으로, 그리고 그 어떤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무종교인들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해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무종교인이 깨끗하다는 건
아니다. 허나 인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종교가 무종교인의 삶에 비해 나을 것이 하나 없다면 우리는 과감히 종교를 내쳐도
된다. 개인에게 그것은 선택이겠으나 정치적으로 우리는 과감히 무종교인을 당선시키는 스탠스를 취해도 된다. 그것은 과거 이 땅의
종교가 벌여온 작태와 악행에 대한 민중적 심판으로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바. 무종교인이 대통령이 되는 그 날에, 그래 그 이후에 과학자가 대통령이 됨을 꿈꾸어 볼 일이다. 이매진(Imagine)이다. 그래 천국이 없는 세상, 종교가 없는 세상도 한번 꿈꾸어 볼 일이다.
어어.. 혹시 예전에 노스모크에서 활동하시던 분 아니신가요?^^;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
안녕하세요. 트랙백 잘 봤습니다.
좀 동떨어진 글이지만, 마지막 문제 의식을 공유하기에 저도 트랙백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