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규제에 대한 유비는 대부분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제 백분토론을 보니 또다시 진성호라는 인간이 나와서 ‘음란물’에 관한 피해를 ‘명예훼손’으로 엮어 ‘포털에 대한 규제’와 ‘법적조치’라는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우습지도 않은 논리를 엮더라. 아무리 좋게 보아 주려고 해도 도통 음란물에 대한 병적인 간질증세가 있으신 듯 한데, 그냥 자기 컴퓨터에 청소년보호프로그램 깔아두고 안보시고 사시면 좋겠다. 음란물에서 시작된 논의가 어떻게 포털에 대한 규제, 그것도 법적인 규제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악플러들 혐오한다. 가끔 다음아고라에서 보이는 집단광기적인 행태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이 바로 직접적인 규제로 이어지는 논리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지닌 성질을 차분히 규명하고, 적절한 방법을 간구해보지도 않은 채, 모든 것을 법에 맡기려는 무사안일적 발상은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근대법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권력은 왜 인터넷을 두려워하는가. 왜 보수적인 정권일 수록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형성을 두려워하는가. 첫째, 그것은 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로 향하는 인류사적 제도의 변화의 중심에 사회개인간의 네트워크의 발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첫번째 이유로부터 파생된 정보의 비독점화가 역사적 발전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일수록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강해지는 이유는, 언론으로부터 정보가 개개인에게 흘러나가게 되고, 흘러나간 정보가 개개인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거대한 견제권력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중파를 비롯한 제도권 신문이 여론형성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이제 인터넷이 그 자리를 대체해나가고 있다. 아직은 개똥철학 수준에 불과하지만, 나의 철학에 따르면 그것은 ‘만인평등사회’를 향한 거대한 역사적 힘이다. 역사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생각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것은 그가 계급투쟁을 역사를 발전시켜나가는 하나의 힘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간만에 휴가를 와서 이곳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을 주욱 훓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경제학 콘서트>,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이야기 일본사>, <롱테일 법칙>, <80/20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등이었는데- 아! 맞다. 나열한 책들도 내 기준에서는 절대 양서가 아니지만 준서정도는 되는데, 악서 한권이 꽂혀있더라. <MB노믹스>- 확실히 요즘에 파레토법칙이라는 것이 여기저기서 많이 언급되는 추세인 듯하다. 20:80이라는 것이 파레토가 정확히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후세의 학자들에 의해 파레토가 정신적 대부로 칭송되면서 이 법칙에 파레토라는 이름이 붙혀진 듯 하다.
사실 <롱테일 법칙>이라는 책과, <80/20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이라는 책은 같은 파워로 분포에 관해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롱테일 법칙>은 지금까지 20에 맞추어진 촛점을 나머지 80에 맞추어 성공한 아마존과 같은 기업을 다루고 있고, <80/20~>이라는 쓰레기 책은 나름 이 법칙으로부터 희망을 볼 수 있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으며 전혀 그 희망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책이다. <롱테일 법칙>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메일이나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고객관리 등의 네트워킹에 드는 비용이 거의 제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개인간의 상호작용에 드는 비용이 줄어들 수록, 80의 가치가 빛나고 그들이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두려워하는 힘이다.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은 역사에서 소외된 80이 조직화하면서 그 힘을 발휘해왔다. 그 조직화에는 편지, 우편, 전화, 그리고 현재는 인터넷이 역사적으로 기여해왔다. 권력자들에게 두려운 것은 80의 소외된 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힘이다. 그 정보의 공유가 쉬워질 수록, 그것은 거대한 견제로 표현된다. 문제는 멱함수 법칙이다. 이렇게 조직된 80의 네트워크 또한 파워로를 그린다. 역사적 필연론이나 비관론에 빠지지는 않겠다. 역사를 이끌어 가는 거대한 두 힘의 긴장감 속에 결국 역사는 제자리를 찾는다는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만인평등주의의 실현, 그리고 이를 위해 필연적인 또다른 파워로의 출현은, 권력에게 80을 통제하기 위한 쉬운 도구를 제공한다. 이는 일부 척도없는 네트워크가 지닌 견고성(rubustness)과 취약성(weakness)에 의해 설명된다. 즉,
무작위 네트워크에서는 어떤 임계점을 초과해서 장애가 발생하면 네트워크가 붕괴될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어떤 종류의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서는 상당부분의 노드를 임의로 제거했을 때에도 네트워크는 붕괴되지 않고 그대로 작동된다. 이 같은 장애에 대한 견고성이야말로 무작위 네트워크와 구별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만의 특성인 것이다. 이러한 위상구조적 견고성은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서 볼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인 허브의 존재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허브를 제거하면 네트워크가 급격히 붕괴될 수 있다는 취약성을 아킬레스건으로 가지고 있다. <erehwon.LAB : 네트워크의 이해>
척도없는 네트워크는 랜덤한 공격에 강하다. 많은 링크를 가진 노드보다 적은 링크를 가진 노드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브가 공격당했을 때 그 네트워크는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인터넷 구조는 그 허브를 모두 포털에 기대고 있다. 현재 제정중인 법률들이 포털을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자칫하면 인터넷을 통한 권력의 규제가 단한번의 공격으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보적 인터넷 운동이 포털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정당성이 된다.
민노씨를 비롯한 블로거들이 추진중인 블로거들의 연합(블로그래픽)은 포털의 시대에 권력의 공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취약한 진보적 인터넷 운동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는 것으로 본다. 당연히 포털을 규제하는 것을 일단 막아야겠지만, 우리는 거기서 더 나아가, 포털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단 하나의 허브를 만들어 강력한 여론의 장을 형성해야만 했던 지난날의 인터넷 운동,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했던 그 운동을 넘어, 다양한 아웃포스트를 구축하고 전방위적으로 연결점을 찾는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다. 영향력 있는 블로거들이 연합하고, 다양한 형태로 여론을 수렴하는 장을 만들고 이를 오프라인의 운동으로 연결시키는 인터넷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새로 시작해야할 시기가 왔다.
하나, 권력이 포털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터넷의 힘이 권력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신호다.
하나, 포털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한민국의 인터넷 파워는 단 하나의 허브를 가진 취약한 네트워크라는 약점을 갖는다.
하나, 우리는 중심을 여럿으로 분산시키고 분산된 중심을 다양한 형태로 연결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 여론형성 운동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하나, 이러한 중심에 블로거들이 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포털과 같은 형태의 취약한 네트워크가 등장해 권력의 타겟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나, 이러한 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등장해야만 했던 역사적 배경과 유사한 정당성을 지닌다. 포털은 그 역할을 다했다. 이제는 분산된 중심으로부터 더욱 강건한 네트워크를 그려가야 할 때다.
글이나 그림이 어릴 적 즐겨봤던 학생과학이라는 잡지에 나왔던 – 어떤 과학자가 설계한 – 우주정거장의 모형을 연상시키는군요. 당시 그 모형의 개념도 글에서와 비슷하게 어느 노드가 무너져도 전체 네트웍은 그리 많이 손상되지 않는 개념이었던 같습니다. 제가 글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했나요? ^^;
그 그림을 볼 수 있으면 좋을 듯. ^^
이번 글의 결론 부분에 동의하고, 글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문제의식 또한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의 과정 중, 몇몇 부분은 당혹스럽습니다.
”… 나의 철학에 따르면 그것은 ‘만인평등사회’를 향한 거대한 역사적 힘이다. 역사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생각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것은 그가 계급투쟁을 역사를 발전시켜나가는 하나의 힘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막스는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생산양식의 발전단계를 구분해서 설명했습니다. 이 말은 막스가 예언자처럼 역사를 직선의 방향성 위에 놓았다라는 말과는 다른 것입니다. 헤겔이 여전히 인간의 본성을 믿었다면 막스는 인간의 조건만을 믿었고, 조건의 인식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계급을 탄생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라는 것은 사실 계급투쟁의 역사다.” 라고 썼을 때 막스가 가진 역사에의 유물론적 이해는, 철학이 세상의 해석에서 벗어나 변화를 생각해야한다는 것에서 출발한 선언적 명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 파편도 생물학자님의 고정된 생각일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를린 장벽이나 소비에트가 무너졌다고 막스의 생각이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와 비평등이 판을 치는 지금이야말로 막스가 다시 읽어져야 하는 때가 아닐런지요.
마르크스가 역사를 선형적인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점, 역사의 발전을 단계로 구분하고 역사적 필연론에 천착했다는 것은 헤겔의 정신적 그것과 물질적이라는 특면 이외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데요. 제 해석은 그러했습니다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자본론은 요약본으로만 읽었고 공산당 선언 및 도올과 몇몇 학자들의 2차서적들만을 읽었으니 진정 맑스가 선형적 역사관을 부정하지 않았는지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다양한 문화조건에서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사회에 대해 동일한 역사적 목적론을 전제한 것은 또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것은 좋지만 전 그것을 경전으로 읽지는 않으렵니다.
전체적으로는 동그란 구형에 저렇게 각 교차점마다 작은 공이 있고 그 공들이 선으로 연결된,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장난감과 매우 유사한 형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보여드릴 수는 없죠. 🙂
아. 희미하게 기억이 납니다. 정확하게 이해하셨네요. ^^
오~ 김우재님도 당시 학생과학을 보셨던 모양이시군요.(당연하지)
학생과학만이 아니라 소년동아, 소년중앙 등등 어깨동무도 있었죠. ㅎㅎ 이것저것 다 보았던 사이언스키드였습니다.
글은 진작에 읽었는데 댓글은 이제야 남깁니다.
실은 이글과 관련한 글을 쓰다가.. 생각이 엉켜서 일단 댓글만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뒤늦게, 혹은 급하게(?) 남깁니다.
글 전체 취지에 깊은 공감합니다. 이런 저런 문제들을 잘 풀어주시고, 또 매우 시의적절하게 문제제기 해주신 글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1. 블로그래픽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블로거들의 연합(블로그래픽)은 포털의 시대에 권력의 공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취약한 진보적 인터넷 운동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는 것으로 본다.” 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해석자의 주관이 개입된 개성적 논평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는 전제에서… ^ ^; 그 해석을 존중하는 한편으로 조심스럽게, 역시나 제 주관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블로그래픽은 ‘진보적 인터넷 운동’이라는 다소간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지향성을 갖거나, ‘연합’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만큼 어떤 강한 조직적 결사체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 단체는 적어도 현재로선 아니구요(물론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는 모르지만요… ).
소개말( http://blographic.net/about )에 나타난 여러가지 바람들, 희망들을 꿈꾸는 그런 블로거들의 (본문에도 표현하신 바) 네트워크입니다. 그저 호감으로만 연계된 블로그 네트워크 보다는 좀더 강한 네트워크이되, 위계적인 조직은 아니죠(물론 그런 취지로 말씀해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마르크스에 관한 ycj님의 지적에 대해선… 참고할 만한 사이트를 몇 개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우연히 발견한 사이트인데… 좋은 글이 많더라구요.
특히 이 글 (마르크스의 교훈)은 담담하지만, 많은 것들을 다시 기본에서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http://web.chungbuk.ac.kr/~ahnsah/tnboard/read.cgi?board=essay_board&y_number=13&nnew=1
위 사이트의 상위 주소는
http://web.chungbuk.ac.kr/~ahnsah/tnboard/main.cgi?board=essay_board
그리고 다른 카테고리들 가운데 유용한 꼭지는 (논문 자료)
http://web.chungbuk.ac.kr/~ahnsah/tnboard/main.cgi?board=open_board
그리고 강유원 교수가 pdf 파일로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과 거기에 수록된 맑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11개의 테제’도 번역 정리한 사이트가 있네요.
http://armarius.net/bbs/view.php?id=manuscript&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64
네. 마르크스에 관한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내일 광장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