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철학한다고 하면서 철학사에 나타나는 중요인물들을 선정하여 그에 압도되고 심취되는 경향이 있다. 교육 초기 단계에서 유익한 이 경향은 흔히 그 단계를 지나고서도 지속될 때, 그 인물은 그 한국인의 철학적 사유의 교주의 자리에 들어선다. 자연히 그 철학자의 저술에 접하기 위하여 범어, 중국어, 희랍어, 나전어, 독어 또는 영어를 읽히고 이 언어는 그 저술을 이해하는데 <영감받은 언어>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 한국인의 철학적 사유에 있어서 한국어는 <영감받은 언어>가 아니므로, 즉 그 철학적 사유의 언어적 구조와 같은 언어가 아니므로 적합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 철학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한국어는 거의 항상 번역어인 까닭에 어색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는 동안 한국어는 철학적 사유에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가 압도된 모든 철학적 문제는 한국어 이외의 언어로 제기되었고, 그가 감동한 모든 철학적 조명은 다른 언어로써만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관한 철학이 아니라, 한국어로서 하는 철학이라는 그의 주장에 나는 찬동한다. 그는 언어적 철학, 혹은 개념분석의 철학을 주장하면서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그 언어와 개념을 한국어라는 일상언어에 한정시킨다. 이때 한국어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따라서 철학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함께 하는 것이 된다. 일상적으로는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마음을 나누다가 철학을 할 때는 각기 영웅의 영감받은 언어로 돌아가는 이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그는 아주 객관적인 표현으로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렬, “과학, 도덕학, 미학의 역사적 관계: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르네상스 휴머니즘까지).” 사회와 이론 (September 2004).
이오니아 학파가 신화로부터 자연주의로의 전환을 대표한다면, 소피스트는 휴머니즘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아테네인들은 갈수록 기존의 신화 속에서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우주로부터 인간 자신에게로, 우주개벽설에서 도덕과 정치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소피스트들은 이러한 전환을 알리는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진정한 철학자라 부르며 소피스트와 날카롭게 분리시켰다. 그 주된 이유는 소피스트에 대항하여 파르메니데스로부터 기원하는 그리스의 이론과학을 옹위하려는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그는 논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실 소피스트는 독자적인 학파를 형성한 것도 아니고, 그들의 저작도 대부분 소실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저작들이 소실된 상태이니 우리는 플라톤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다지 믿을만한 정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방법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택광도 메논을 통해 그의 주장을 정당화할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이미 플라톤의 적대적 관점을 통해 위에서 논구했다.
19세기에 헤겔이 소피스트들을 상대주의자로 되살린다. 자 이러한 헤겔의 해석 속에서 소피스트들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그 “재해석의 핵심은 소피스트가 파르메니데스로 대표되는 이론과학에 도전하였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프로타고라스는 도덕학을 통해, 그리고 고르기아스는 미학을 통해 이론과학에 도전하였다.”
283 사실상 소피스트는 문법, 문학, 수학, 천문학, 지리학, 역사락 등을 포함한 많은 주제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목은 수사학과 정치학이었다… 284 소피스트는 진리의 발견 방법보다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런 점에서 소피스트는 논쟁에 전투적인 성격을 부여한 최초의 존재이다.
그렇다면 고르기아스는 어떨까? “첫째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알려질 수 없다. 셋째, 알려진다 해도,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표현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당연히 이런 주장은 파르메니데스의 주장, 즉 “존재는 존재하며,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만약 고르기아스의 미학의 원형을 자연과학으로 해석한다면 현대 미학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연과학자들인가?
이러한 고대 희랍의 지적 지형도를 지도화하면 어떻게 그려야 상식적일까?
“이러한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은 서구의 지식 패러다임의 원형을 모두 제공하였다.이오니아인들과 원자론자들은 경험과학의 원형을, 소피스트들은도덕학과 미학의원형을,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과학의 원형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학, 미학, 심지어는 경험과학을 이론과학의 아래에 종속시킴으로써 그것들을 주변화할 토대를 마련하였다”
최종렬의 이러한 해석에도 무리는 있다. 하지만 받아들일 만하다. 그의 논문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제시와 논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문은 비판을 통한 건설적인 논쟁이 가능하다.
이철주, “고대 희랍철학에서의 노모스(Nomos)와 퓌시스(Physis)의 의미 탐구.” 윤리교육연구 18 (2009).
이러한 정신의 풍요 속에서 인간은 사변적이고 과학적인 측면의 자연에 대한 고찰보다는 삶과 행위에 관한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중심에는 소크라테스를 포함하는 소피스트들이 있었다. 159
만약, 이철주의 논의를 따라 소피스트에 이르러 노모스에서 퓌시스로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해도, 소피스트들의 퓌시스는 외적세계인 물리적인 자연에 대한 강조가 전혀 아니다.
“퓌시스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지만 크게 세계를 생성하는 내부의 힘, 사물의 구조나 원리를 포함하는 고유한 본성, 그리고 생산된 외적세계인 물리적인 자연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에서 인위적이고 가변적인 노모스에 대하여 절대적인 원칙으로 작용하는 것은 본성으로서의 퓌시스이다.” 160
남경희, “소크라테스와 학문의 발견.” 서양고전학연구 28 (2007).
학문적 탐구의 대상은 진리인데, 서구에서 진리의 이념은 여러 단계를 거쳐 형 성된다. 호메로스시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언어에 주목함으로써 진리의 개념이 자 리잡게 되었으며, 이러한 진리는 자연철학자들, 특히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에 이 르러 논리의 방법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소피스트 시대에는 말의 세 속화와 함께 세견(doxa)의 개념이 형성되면서, 진리는 만인에게 설득되어야 할 것이 되었다.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doxa와 episteme가 구분되면서 진리는 탐구 의 대상으로 자리잡아, 서구적 학문 이념이 확립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서문
플라톤의 지적대로, 소피스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을 설득하는 것, 그 말의 내용 이 무엇이건 간에 타인들이 그것을 진리로 믿는 것, 그래서 논쟁에서, 법 정에서, 아고라에서 타인을 이기는 것이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은 믿어진 것이 과연 객관적으로 진리이냐, 믿음이 인식의 지위에 이 르렀는가 하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의 궁극적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이르고, 진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61
자, 소크라테스를 서구철학의 기원으로 보는 남경희의 주장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무지의 지의 교설; 둘째, What- is-x?의 물음; 세째, 논박의 방법
그의 철학적 활동의 이런 특색은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는가? (1) 무지의 지를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중요한 것, 진리나 실재를 모르고 있으므로 그것을 탐구해야 한다는 당위를 역설하고자 한 것이다. 65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판적인 것으로 논박의 방법이며36), 다른 하나는 보다 생산적인 것으로 산파술 또는 문답법이 다. 66
논박은 지극히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논리적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형식을 갖춘다.41)
P, P→Q, Q →R, S, S→T, T →~R, Therefore~P
그런데 이건 논리적인 방법이다. “논박법은 모순배제율에 의거한 논리적 방법이다. 한 명제와 그에 모
순되는 명제는 공존할 수 없다는 원칙에 기반한 사고법으로, 이 원칙은 어 느 경우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철칙임을 그는 대화의 과정에서 상대방 에게 거듭 확인시키고 있다” 68
중요한 것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 스의 시대에 이르러 말은 전적으로 세속적인 것이 되며, 주술 종교적인 힘 과 분리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소피스트에 이르러 세속화는 과도하게 진행 되어, 그 결과로 상대주의나 주관주의가 편재적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교정하려 한다. 소크라테스의 논박법은 소피스트들의 애매성의 논리를 모순배제율의 논리로 대체시킨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 간의 결정적 차 이는 진리를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설정하였으며, 나아가 시민들이 탐구 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는 점이다. 69
마지막 왓이즈X는 무엇인가?
위의 논문들이 어렵다면 소피스트적 수사와 플라톤적 수사를 대비시키며 과학적 방법론에서의 소피스트적 수사를 축출하는 다음 논문이나 읽어라. 짧다./
김영정, “수사학과 비판적 사고.” 대한토목학회지 53, no. 10 (September 2005).
그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기종석, “프로타고라스의 지식론.” 서양고전학연구 2, no. 1 (September 1988). 에서 운터스타이너의 해석을 따르는 방법이다. 운터스타이너의 이상의 해석은 너무 적은 토막글에서 너무 많은 것을 확대하여 해석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이러한 까닭으로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거부되고 있다.
이 점이 거스리나 커퍼드가 운터쉬터이너의 작업이 매우 불완전한 탐구라고 한 이유다.
http://www.kpec.or.kr/Site/web/sub_frameView.asp?prepage=more&menuKMCD=KP0065&selKMCD=KP0110&BKNO=156 여기서 운터스타이너의 맥락이 나오며. <소피스트 운동>의 저자가 커퍼드. 그가 운터를 깠음. 그러니까 소피스트 의 권위자를 거부하는 해석이란건 도대체 무엇인가? 2003년 여름(50집) – 서평문화 제50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