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대 정신분석학‘이라는 글에서 평소에 모순된다고 생각했던 진화심리학과 다윈의학 혹은 진화의학의 가정들을 소개했는데,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은 아니다. 우선 내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강규영은 두 학문이 충돌하는 지점은 단지 ‘정도’의 문제라고 보는데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 환경이 다르다고 같다고?), 연구의 주제에 따라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예를 들어,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만’을 관심에 두므로 강간, 짝짓기, 생식, 협동과 같은 주제들을 탐구한다 (최근엔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듯 하다). 진화의학이 다루는 주제들이 좀 더 광범위한데, 이는 비만, 근시, 알러지, 천식, 기생충 등과 같이 의학이 다루는 대부분의 주제를 포함해서 정신의학에까지 이른다. 아마도 두 분야가 상충하는 지점이 생긴다면 진화의학이 정신질환과 인간의 이상행동들을 다룰때가 될 듯 싶다. 특히, 나는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사례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두 학문이 생물학과 심리학 전반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지점, 즉,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영역에서 두 학문을 바라보는 관점, 그것이 내게는 더욱 중요한 탐구가 된다. 게다가 나는 행동유전학자이지, 현장에서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을 경험해볼 기회조차 없는 사람이다. 두 학문에 대한 관심은 과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고 역사학적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가정
1. 인간의 정신은 진화의 산물이다.
2. 인간의 정신은 우리 조상들이 직면했던 구체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 선택에 의해서 디자인 되었을 것이다. 즉, 인간 정신의 구조는 우리 조상들의 진화적 흔적들을 지니고 있다.
3. (암묵적인 가정) 진화적 적응환경(EEA)과 현대인이 살아가는 환경은 매우 다르지만, 인간 정신의 어떤 진화적 형질들은 여전히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4. 인간 정신의 적응형질 > (현대인이 살아가는 환경) > 인간 정신
즉, 진화심리학의 암묵적인 가정은 진화적 적응환경과 현대의 환경의 차이가 최소화되는 지점 혹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적응형질들을 전제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이 주로 인간의 짝짓기나 성행위 등과 같은 행동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식적합도에 관여하는 형질들은 환경의 변화에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강한 놈이 아니라 더 많은 암컷을 수태시키는 놈의 유전자가 결국 유전자풀을 장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해보자면, 문명에서 고립된 늑대소년은 언어능력을 상실하지만 성적능력은 정상일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언어능력도 적응형질이지만 사회의 교육이라는 환경적 영향이 없으면 발현되지 않는다. 인간 정신의 어떤 형질들은 환경적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진화심리학이 가장 큰 설명력을 지니는 주제들이 바로 이런 형질이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지난 수십년간의 논쟁을 통해서 이미 인정했던 사안들이며, 피글리우치나 내가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지점은 바로 진화심리학이 이러한 설명능력의 한계를 넘어 인간 정신의 모든 영역으로 질주해나갈 때 뿐이다. 실제로 나는 인간의 짝짓기 행동의 상당부분이 진화심리학에 의해 가장 잘 설명된다고 믿는다.
결국, 진화심리학은 항상 인간 정신이 환경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는 형질들을 다룰때 전통적인 심리학의 도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인간 정신의 가소성을 연구의 중심으로 삼는 발달심리학, 인지신경과학 등의 행동과학 분과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인지신경과학의 두뇌에 관한 연구들을 진화심리학이 종합하지 못한다면, 1970년대 진화생물학이 분자생물학과 충돌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들 중 가장 강력한 종류가 바로 생물학적 기초를 자주 무시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화심리학은 두뇌의 모듈성을 강조하는데, 현대 신경과학의 연구들은 그러한 가정에 의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진화심리학의 대부 투비와 코스미데스가 인지신경과학에 손을 내미는 것인지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행동과학 분야들 중에서, 이론보다는 실험으로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나가는 분야는 인지신경과학뿐이라고 생각하며, 진화심리학과 인지신경과학의 관계는 20세기 중반의 진화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의 관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여긴다. 물론 이러한 추측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또다른 공부가 필요한 지점이다. 20세기 중반 생물학의 갈등은 이 논문을 읽으면 된다. ‘Paradox and Persuasion Negotiating the Place of Molecular Evolution within Evolutionary Biology‘. 특히 진화심리학의 가정들이 최근의 행동과학 연구들을 종합하던가 해야지,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최근의 종합적인 비판은 다음 논문 Bolhuis JJ, Brown GR, Richardson RC, Laland KN (2011) Darwin in Mind: New Opportunities for Evolutionary Psychology. PLoS Biol 을 읽으면 된다. 진화의학과의 충돌지점은 지적하고 있지 않는 과학 논문이지만, 진화심리학이 다른 행동과학 분과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진화의학의 가정
1. 인간의 몸은 진화의 산물이다.
2. 인간이 겪는 많은 질병들도 우리 조상들이 겪은 진화적 유산이다. 즉, 진화론적 관점에서 현대의학이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3. 특히 진화적 적응환경과 현대인이 살아가는 환경의 극단적인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많은 질병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근시와 알러지 등이 그러하다.
4. 인간 몸의 적응 형질 > 현대인이 살아가는 환경 > 인간의 질병들
진화의학이 다루는 모든 질병들이 우리의 조상과 현대인이 겪는 환경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진화의학이 임신을 다루는 방식에는 환경적 영향이 최소한으로 고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의학이 ‘질병’ 혹은 ‘비정상적인 상태’를 다룬다는 점에 의해, 고려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이 고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진화심리학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진화의학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홍적세에 적응되어 있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환경은 홍적세의 그것과 너무나도 다르다. 이러한 환경적 불일치가 많은 질병들, 예를 들어 알러지, 비만, 당뇨병, 암, 퇴행성 신경질환, 정신질환 등의 원인이 된다. 진화의학이 진화심리학에 비해 환경의 영향을 광범위하게 고려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지점에서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이 서로 다루는 주제들이 겹치지 않는다거나,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그 차이가 크지 않다는 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진화생물학이라는 잘 정립된 학문을 기반으로 하는 두 분과학문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들에 맞춰 진화생물학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내가 발견한 것은, 흥미롭게도,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이 현대문명이 만든 환경을 적응형질들에 적용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진화심리학은 그 차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의학은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두 분과학문이 다루는 주제들이 상당부분 겹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무시할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진화의학이 정신질환을 다루기 시작할 때 (그리고 실제로 조지 윌리암스와 함께 다윈의학을 시작했던 란돌프 네세는 정신의학자였다. 정신질환을 다윈의학으로 설명하는데 집중하고 있기도 하다) 분명 진화심리학과 충돌하는 지점들이 등장하리라는 것이다. 즉, 최근에 발표된 ‘가정폭력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는 논문‘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해당 연구자들은 유전적 근친도와 가정폭력의 상관관계를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데, 현대 가정의 구조가 홍적세의 그것과 같은지 다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유전적 근친도로만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 특히 현대인에게 홍적세의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비약적으로 증가한 정신질환들이 어떻게 가정폭력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고려, 이런 문제들이 두 분과학문이 충돌할 수도 있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두 분야는 동일하고 또 동일하지 않은 가정들을 전제한다. 즉, 인간 정신에 대한 과학을 연구하고자 할 때, 내재적 요인과 외재적 요인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의 문제다. 이는 강규영이 인용한 매트 리들리가 행동유전학과 진화심리학이 특수성과 일반성이라는 건널 수 없는 학풍을 형성해나가고 있다는 통찰과 유사한 비유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매트 리들리는 이 문제를 제대로 기술한 적이 없지만) 행동유전학의 전통과 진화심리학의 전통은 갈등을 넘어 아예 대화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행동유전학이 유전자 수준에서 행동을 다루는 극단적인 환원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는 매트 리들리가 지적했듯이, 행동유전학이 유전자 수준의 차이가 얼마나 다양한 행동을 만드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반면, 진화심리학은 유전자 수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행동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행동유전학과 진화심리학의 경우에도 다루는 주제에 따라 해당 분과학문의 전통이 무색해지는 지점이 있게 마련일테지만, 두 학문이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전제들의 철학적 차이는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분과학문의 학문적 특성이라는 수준에서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의 전제들이 모순적이라고 지적한 것이지, 세부적인 탐구의 주제들에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종류의 탐구는 과학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철학이 다루어야만 하는 주제가 된다.
진화의학과 진화심리학의 학문적 충돌에 관한 연구논문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는데, 최근에 <Principles of Evolutionary Medicine> 라는 책이 출판되었고, 이에 대한 <진화심리학 저널>의 <Unadapted>라는 리뷰가 이 문제를 조금 다루려는 듯 보인다. 저 책은 읽어볼 것 같지 않아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