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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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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5일, 포항공대 고전강독회 제 1회 모임 발제문, (hwp)


1. 고전이란 무엇인가

1-0. 고전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방금方今에 소용없는 고전은 쓰레기다. 역사는 거대한 규모로 반복되며 고전에 유행이 있는 것도 그러한 역사의 전환과 함께 발생하는 사태다.

2. 과학자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

2-0 과학자에게 고전이란 상상력의 샘이다. 상상력은 어떻게 창발하는가.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2-1. 이상하: 19, 20세기 과학의 학제간 연구 정신: 과학 발견의 역사에서 학제간 연구의 의미와 제도의 역할 (2004)

19세기의 오스트리아. 70여명의 학자들. 카프카, 칼 포퍼, 카르납, 노이래쓰, 칼 멩거, 괴델, 버틀란피, 비트겐슈타인, 브렝따노, 쉴릭, 칼 불러, 프로이트, 콘라드 로렌쯔, 마흐, 볼츠만, 만하임: 19세기 최고의 철학자들은 철학자들이 아니라 과학자들이다.

상호작용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적합성의 측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19세기의 폴란드 수학자 울람.

과학자의 발견은 다른 발견의 모방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학제간 연구 정신이 20세기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불행히도 우리에게 직접 해당하지 않는다. 한의학을 제외한다면 과학의 뿌리는 서양이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를 거쳐 타의에 의해 분단된 우리의 경우 구한말 다양한 사상조차 현대에 자연스럽게 계승되지 않았다. 실학 운동이 정말 있었는가를 둘러싼 논쟁을 떠나서 19세기 조선 사상가들이 본격적으로 재조명 받는 분위기는 최근에 들어서야 정착했다. 과학의 학제간 연구 정신이 필요한 근거를 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내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우리는 왜 학제간 연구 정신이 필요하며, 어떻게 학제간 연구를 촉진시킬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통해 묻고 대답해보아야 한다.

학제간 연구 정신이 약해진 것은 2차 대전 이후 전문화 교육에서 기인한다. 학제간 연구정신은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 과거로부터 구조해내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2-2. 홍성욱: 잡종적 지식론

경계를 뛰어넘어 연관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 이러한 주체들의 유연한 네트워크, 그 위에 중첩돼 있는 이론과 실천의 연대, 그리고 이 복잡한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해주는 기술적인 결합. 이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잡종적’ 지식인의 필요조건이며, 위험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힘이다. 

2-3. 에른스트 마이어: “현대 생물학자들은 극도로 전문화된 경향이 있다…..생물학자들은 좀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생명과학 전반을 훑어보지 않는다…..내가 얘기를 나눈 생물학자들은 누구나 인접 분야는 고사하고 자기 전공 분야의 논문도 미처 읽어낼 시간 여유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종종 자신의 좁은 전공 분야의 외부로부터 개념적인 진보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풀린다.” <이것이 생물학이다의 序>

3.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는 누구인가

3-0. 대표작: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유학비판)-<기측체의氣測體義>(인식론)-<기학氣學>(우주론)-<인정人政>(실천론)

3-1. <명남루수록>, <기측체의>, <인정>은 ‘한국 역사정보 통합 시스템’
http://kh2.koreanhistory.or.kr/index.jsp 에서 국역본을 볼 수 있고, <기학>은 최근 개정증보판이 나온 상태. 

3-2. <명남루수록> → <추측록> → <신기통> (박종홍 <최한기의 경험주의>) → <기학> (김용옥 <독기학설>, <기철학서설>, 최종덕 <기氣에 대한 자연철학적 이해>) → <인정> (김용옥 <독인정설>, 박희병 <崔漢綺의 사상과 21세기>) → 기타 논문들 독파.

4. 최한기는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가. 열암 박종홍에서 도올 김용옥까지

4-0. 1960년대 북학의 학자들에 의해 유물론의 선구자로 추앙받으면서 발굴 시작.
4-1. 박종홍: 최한기의 경험주의(1965) (V)
4-2. 이우성 外 성균관 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명남루총서 간행(1971)~증보 명남루총서 편찬(2002)
4-3. 김용옥: 독기학설(1996), 독인정설(2003) (V) 
4-4. 박희병: 운화와 근대(2003), 최한기의 사상과 21세기(2002) (V)
4-5. 최종덕 外 기학의 모험 (2004), 기氣에 대한 자연철학적 이해(2004) (V)
4-6. 최한기는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꼬락서니를 보면 울고 싶을 것이다. 최한기는 최한기의 책이 아니라 그의 사상의 실천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 (V) 표시는 파일로 소장 중인 자료.

5. 우리에게 최한기는 무엇인가.

5-0. 혜강이라는 사상가의 비극은 ‘단절’이다. 

5-1. 오치誤置된 동시성의 오류(The Fallacy of Misplaced Correspondence): 번역의 제일의 원칙은 “문자의 동일성”이 아닌 “의미의 동시성”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번역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5-2. 혜강에게 있어 과학은 곧 형이상학이다. 또한 혜강의 자연과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포항공대 학부생의 자연과학 수준과도 별다를 게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서 자연과학에 대해 배울 것이 없다. 현대 물리학을 알기 위해 최한기의 책을 뒤지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파인만을 읽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는 단지 최한기가 밝히고자 하는 인간과 우주, 그리고 그 속에서의 과학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면 그 뿐이다. 

5-3. 신비주의: “헤아릴 수 없고, 알 수 없다고 하여 그것을 모두 신비神秘에 귀속시키면 제거할 수 있는 것도 제거할 수 없게 되고, 규명할 수 있는 것도 규명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기학 2-91>

“그런데도 여기서 지나쳐 천지와 인물의 소이연(所以然)의 이치를 궁구한답시고 허무하여 전혀 알 수 없는 데로 빠져들어 가면, 비록 혀가 닳도록 도를 말한다 하더라도 어찌 그것을 믿게 하리요. 또 길흉 화복(吉凶禍福)과 부응(符應)의 이치를 굳게 기필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일과 시운(時運)은 변화가 무상한 것이라, 오히려 이 생애의 것도 믿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보고 들을 수 없는 죽은 뒤의 일이겠는가. 전후(前後)의 법도를 지나친 학문과 평상에서 벗어나 초월하는 술법 따위를 제거하면, 자연히 진정한 대도의 따를 만한 법이 있을 것이다.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수족(手足)과 제촉(諸觸)을 버린다면, 어찌 한 터럭만한 이치인들 얻을 수 있으며 한 가지 일인들 증험할 수 있으랴.” <신기통 序>

“백성의 의로움을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안다’라고 할 수 있다” <논어 옹야 20>

혜강은 신비를 빙자한 모든 학문을 배격한다. 공자는 종교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자에게 귀신의 세계는 긍정과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관심의 밖”이었다. 공자에게 있어 종교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길은 오로지 종교를 버리는 것이다. 토마스 헉슬리는 이를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 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종교를 버린다는 것은 종교적 독선과 무지와 편견과 오만을 버린다는 뜻이다. “모든 종교의 핵심은 신비주의에 있고 신비주의의 핵심은 엑스타시라고 불리우는 이상체험에 있다“라고 윌리암 제임스는 말한다.

5-4. 혜강을 넘어섬: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미치지 못한 다른 사물의 성실한 (진리의) 측면을 들어, 나의 기학에 첨가하고, 또 그것의 증험하는 바의 보편성이 나의 기학을 능가하고, 또 구체적 사례들에 적용함에 있어 나의 기학을 뛰어넘는 바가 있어, 그것을 천하에 밝힌다면 나의 기학은 폐지될 수 있는 것이다” <기학 2-19>

누가 폐지하겠는가? 인문학이? 사회과학이? 아니면 자연과학이?

혜강이 말하는 聖人은 氣學之人이고 기학지인은 곧 과학자다. “나의 학문은 성경(聖經: 성인의 법칙)이 아니라 천경(天經: 자연의 법칙이다!” 과학자에게 텍스트는 고전이 아니라 자연이다. 이 땅에서 고전으로부터 자연으로의 텍스트의 이행은 최한기로부터 시작된다!

5-5. 앎과 함과 삶: 그러나 과학자란 과학科學의 자者가 아니라, 통학統學의 자고, 과학은 통학과 구별되지 않으며, 통학은 곧 실천의 학문이다. 앎은 삶에 귀속된다. “앎이란 곧 사람을 아는 것이다. 子曰: 知人” <논어 안연 22> 최한기에게 知人은 곧 人政이다.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삶’이 곧 ‘앎’이다.” <마투라나 바렐라 1995>

6. 모임의 방법론.

6-0. 어떻게 모이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책을 읽어 온다는 행위자체가 모임의 구체적 방법론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고, 중요하다는 것은 구체적 방법론의 결여는 구성원의 성실에 답하지 못하는 허무함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6-1. 일상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의 분량은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고전의 향기만큼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
6-2. 다만 모이는 그 시간만큼은 최대한 집중하고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6-3. 구성원의 성실함은 보답 받아야 한다.
6-4. 하나의 책이 끝날 때 반드시 하나의 결과물을 남긴다. 결과물에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의 흔적이 남으면 그 뿐이다.
6-5. 하나의 책이 시작되고 나서 중간정도의 시점에 다음 책을 정한다. (자연스럽게 정해지게 될 것) 희귀본이라면 미리 제본해야 하고, 책을 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책 읽는 속도가 빠른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지루하기 때문에. 아예 미리 책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좋다. 주제를 정하고 한 학기 동안 어떤 주제의 사상들을 독파할 것인가를 만드는 것이다.
6-6. 모임에 나오고 안나오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모임에 나오지 않음으로서 그 다음에 입게 되는 부족감은 스스로 메워야 한다.
6-7. 모임에 나올 때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토론거리를 들고 와야 한다. 이것이 모임의 유일한 강제다. 
6-8. 모이는 시각은 금요일 저녁 7시로 정한다. 다만 부득이 할 경우 시간을 조정한다. 오늘 나온 멤버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시간을 확정하는 것이 좋겠다.
6-9. 모임이 3시간이 넘으면 그때부터의 토론은 원하는 이들만 계속한다. 
6-10. 회비는 없으나 제본이나 책 구입에 필요한 돈은 미리미리 현금으로 지불한다.
6-11. 모임에 관한 모든 소식은 이메일로 한다. 이메일 주소를 [email protected]로 보낼 것. 내일 중으로 보내주길 희망함.
6-12. 이건 회칙이 아니다. 쫄필요가 저~언혀 없다. 모임의 회칙과 전통은 지금 여기로부터 우리가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