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익명성과 만인평등주의

본인 매우 소심하여 악플에 민감하다. 소심한지라
모든 악플을 두루 챙겨보며 혹시라도 모를 편향과 왜곡의 오류를 막으려 한다. 허나 천성이 과학자인지라 악플을 보면 악플에
반응하기보다는 먼저 악플의 특성을 생각하게 되더라. 오늘 재미있는 실험결과를 하나 얻었다.

이 글 하나 쓰려고 참
인터넷을 오래도록 항해했는데 원하는 답은 없더라. 궁금했던 건 “왜 내 블로그에 부정적 댓글을 단 애들은 모조리
비로기니스트들일까(非로그인+ist)”였다(재연가능한 실험결과가 이곳에 있으니 바로 확인하시면 된다). 얘들 혹시 욕하는데
로그인하기 귀찮아서 그런걸까? 아니면 로그인하고 욕하는건 현피 뜨는것 같아서 무서웠던 걸까?

실명 밝히고 악플
다는 애들도 많다는 건 잘 알지만 일반적으로 익명성은 악플의 발병원인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런데 관심 있는 학자들이
있을까 해서 검색 좀 해봤다. “익명성+공격성”이라던가 “Anonimity+Aggression” 정도로 시작했는데 두루뭉실한
글들 뿐이더라. 본업이 생물학인지라 어떤 괴짜생물학자가 익명으로 악플다는 애들 피 뽑아서 호르몬 레벨이라도 좀 조사해 보았을까
했더니 역시 그런 실험은 없는 듯 하다. 그러다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될 만한 글을 하나 찾았다. 2007년에
Computers in Human Behavior
라는 저널에 Kimberly M. Christopherson이 발표한 논문인데 제목이 “The positive and negative implications of anonymity in Internet social interactions“다. 부제가 더 재미있다. “인터넷에선 니가 개인 줄 아무도 모른다(On the Internet, Nobody Knows You’re a Dog)”.


루한 학술 논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이 글은 익명성을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뭐 기술적 익명성(techinical
anonimity)과 사회적 익명성(social anonimity)이라는 게 있다는데 뭐 대충 현상과 지각의 범주로 나눈 정의
같다. 뭐냐면 타인에게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기술적 익명성이라 부르고 자신 혹은 타인을 표출할만한 정보가 없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을 사회적 익명성이라고 부르는 건가보다. 본인 자연과학자이므로 사회과학 책좀 읽었다고 해도 모르는 것 많다.
너그러이 이해 바란다.

익명성이 보장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개인 혹은 집단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들이
무지하게 많더라. 우선 익명성과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의 관계를 논하기 이전에 인터넷이라는 문화가 현실과는 다름으로 인해 나타나는
재미있는 현상들이 있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여론형성과 집합행동”

라는 논문은 “사회적 실재감 이론(social presence theory)”이라는 걸 소개하고 있다. 사회적 실재감이란 우리가
상대방을 실제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고 상호작용을 관계로 인식하는 정도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연관의 정도는 특정한
채널에서 가용한 ‘비언어적 정보의 양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모티콘은 인터넷을 하나의 사회로 체감하기 위해 인터넷
사용자들이 고안한 하나의 장치물이라는 것이 사회적 실재감 이론에 의해 설명된다.

“사회적 맥락단서 이론”이라는 것도
있다. 말 참 되게 어렵게 만든다.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주위의 사회적 환경에 맞게 메시지를 조절하는데 이러한
사회적 맥락단서가 대부분 비언어적 채널을 통해 전달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맥락단서가 부족한 상황에서
탈금제(disinhibition)가 쉽게 발생한다고 한다. 짜증나게 고상한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우리가 현실에서 누간가와
대화를 할 때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서 말을 사리는 데, 인터넷엔 그런게 없어서 사람들이 막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거다. 뭐 풀어 놓고 보니 사회적 실재감 이론하고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전통적으로 익명성이 우리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와 관련된 주요 이론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동등화 가설(Equalization
hypothesis)”은 익명성이 제공하는 사회적 단서가 제거된 상황이 전통적으로 소외되었던 계층과 권력을 가진 계층 사이의
위계를 사라지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자면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초딩들도 아는 걸 참
어렵게 설명한다.

주류학자들은 대부분 “SIDE(Social identity model of
deindividuation effects) 이론”이라는 걸로 익명성을 설명하는 것 같다. 이 이론의 핵심은 결국
“탈개인화”라는 거다. 탈개인화란 개인적 정체성(personal identity)이 약화되는 과정을 말하는데 SIDE이론은
탈개인화의 진행이 결국 사회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SIDE이론의 요결은 커뮤니케이션 참여자들에 대해
제한된 단서만을 제공하는 인터넷상에서 타인을 지각할 때 그 개인이 가진 속성보다는 그 개인이 속하였을 것이라고 지각되는 사회적
범주의 특성을 통해 평가하고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뭐냐, 사람들이 내가 김우재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도좌파냐 중도우파냐, 대학졸업자냐 노동자냐와 같은 내가 속한 집단의 특성으로 나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탈개인화는 인터넷에서 개인규범보다는 집단규범이 더 잘 작동하게 만들게 된다.

특히 인터넷에서 개개인에 대한
이해는 주로 외모나 성격보다는 가치관에 의해 평가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기대가 이념형으로 수반된다고 한다. 이념이란 일종의
종교다. 이념이 집단성과 만나게 되니 인터넷은 지독한 이념집단형으로 진화하게 된다는 거다. 게다가 위에서 얘기했던 동등화 가설로
인해 개개인의 차이가 사라지고 사라진 개인차원의 차이는 집단적 규범을 더욱 잘 순종하고 유대감을 증가시키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결국 결론은 익명성이 만이념적 탈개인화로 귀결되면서 집단화를 유도한다는 거다. 아 되게 어렵다.

뭘 되게 많이 읽고
요약하기는 했는데 내가 원하는 답은 없다. 나는 왜 비로기니스트들이 부정적인 댓글을 더 많이 다는지가 궁금했을 뿐인데 말이다.
사실 현피 뜨는게 무서워서 로그인을 못하고 욕하거나 익명성 뒤에 숨는다가 아주 적확한 답 같은데 이런걸 학문적이라고 부르진
않으니 어쩔소냐. 그렇다고 나한테 현피뜨자고 하지 말아라.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본인 매우 소심한 소시민이다. 또 글 맘에
안든다고 이거 보고 로그인한 후에 욕하지 말아라. 나도 거기 쫓아가서 욕할거다. 차라리 트랙백을 달고 의견엔 의견으로 맞서라.
그럼 현피 안뜨고 대응해 준다.

결국 뭘 좀 공부했다는 애들이 하는 얘기는 잘못 읽으면 인터넷이 되게 위험하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건 아닌데. 그러니 어떤 애들이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느니 인터넷을 폐쇄해야 한다느니 여론을 왜곡한다느니 하는 것일게다. 그래도 “인터넷상에서 사회적 의사소통 양식과 합의 형성” 같은 논문은 이러한 현상을 매우 희망적으로 관찰한다. 일일이 요약할 수는 없으니 궁금하면 읽어보시면 되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하고 박수를 보낸 구절은 아래와 같다.

한국의 전통적인 정치사회제도는 신분에 의거한 계급 사회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공론형성을 위한 사회구성원의 제도적 참여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공론권(公論圈) 또는 언로구조는 폐쇄적이었다. 이처럼 사대부나 지배권력 층에 의한 공론권이나 제도언로의
대안으로서 민중부문에서는 고유의 비제도적, 비정치적인 커뮤니케이션 통로, 즉 전통적 커뮤니케이션의 마당이 존재했고 그것을 통해서
민중 상호간의 수평적, 개방적인 상호작용과 의견표출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질수 있었다. 두레나 품앗이, 동제(洞祭)나 굿 놀이
등 민중들에게 참여가 개방되고 자유로운 의견표현과 정보교환이 이루어진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장이 존재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을
인터넷이 되살려 내고 있는 것이라면 인터넷에 의한 여론형성의 가능성은 무망한 기대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몇 시간을 투자해 얻은 공부의 결론은 익명성이 공격적 성향의 악플러들을 양산하긴 한다는 거다. 그것도 매우 집단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러한 사태가 이념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이건 나쁜거다. 그런데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수평적
상호작용을 촉발시키며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적 수직성을 중화시킨다. 이건 좋은거다. 그러니까 인터넷을 이야기할 때 좋은 점
나쁜 점 다 있다고 이야기하는 틀에 박힌 이야기를 조금 구체적으로 재확인한 정도다. 뭐 아주 쓸데 없는 짓은 아니었다.


제 여기서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과연 이러한 익명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인터넷 실명제”냐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은 거대한 광장에 운집한 군중과 같다. 모두가 광장에서 서로 제각기 목소리를 높여 나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비유하자면 스탠딩 파티와 비슷한 듯 하다. 파티참가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떠들고
있다. 누군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주의를 집중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리저리로 오가며 이야기를 하기도 듣기도 하며
즐긴다. 뭐 사실 이런 스탠딩 파티는 별다른 욕지거리 없이 진행되기 마련이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기 전에 보통 통성명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인터넷에도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적어도 민증을 까면 욕지거리 하며 서로 싸우고
할퀴는 일은 없을테니까. 근데 말이다. 실명제를 한 이후를 한번 생각해보자. 결국 인터넷의 익명성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이로부터 생겨나는 괴리감이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든다는 건데, 인터넷을 현실과 동일하게 만든 이후를 한번 상상해 보자는 거다.


건 비극이다! 인간의 악랄한 본성은 인터넷이라는 세계에 또 다시 악랄한 계급구조를 몰고 올 것이다. 가진 자가 또 다시 권력을
쥐고, 자본의 논리가 성행하는 현실로 인터넷은 회귀하게 될 것이다. 그건 역사의 퇴보다. 왕권을 철폐하고 만인평등주의를 향해
달려 온 인류사의 치욕이다. 인류가 사는 사회의 구조가 200만년 이상 지속된 원시부족사회로 돌아갈 수 없는 한, 현실의
제도만으로 만인평등주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개개인의 연결망이 150여명의 사람들로 제한될 수 있는 통제된 제도가 불가능하다면
평화적인 만인평등주의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 자꾸 뜬금없이 만인평등주의를 외쳐서 죄송하다. 이와 관련해서 쓴 글이 하나 있다
궁금하면 그걸 먼저 읽으시길 바란다(
들어라 침팬지들아!).


인터넷이 만인평등주의를 구현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만약 인터넷을 현실과 아주 똑같이 만들려는 시도에 저항한다. 뭐
대충 이모티콘 좀 만들어서 감정적 맥락을 첨가하고, 텍스트보다 그림과 영상의 비율을 증가시켜서 현실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좋다.
근데 실명제는 아니다. 그건 인류가 실패했던 계급의 잔존구조를 답습하는 행위다. 따라서 나는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한다.

그리고 만약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려 한다면 무엇인가 댓가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다음 글에서 그 댓가에 관해 주절거려 보려 한다.

– 참고한 논문과 글들은 아래와 같다.

+ The
positive and negative implications of anonymity in Internet social
interactions: “On the Internet, Nobody Knows You’re a Dog”

+ 사이버공간에서의 익명성과 책임
+ 익명성, 파시즘 또는 체제 전복
+ 인터넷상에서 사회적 의사소통 양식과 합의 형성
+ 사이버공간에서의 여론형성과 집합행동
+ 블로거들은 왜 로그인 덧글을 선호하는가?
+ 익명성에 대한 세 가지 오해

  1. 우재 샘 또 잘 읽었습니다.
    익숙치 않아 머리가 지끈거리고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진짜 재밌네요. ^_^

    그런데 링크 잘못됐어요.
    글 중에 링크된 두 글이 서로 바뀌어 있어요 ㅇ_ㅇ;;
    =>들어라 침팬지들아 / The positive and negative~

    들어라 침팬지들아도 진짜 재밌게 읽었습니다. ^^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