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엔터키 함부로 치지 마라

엔터키 함부로 치지 마라. 그냥 개인적 취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도 2000년도 쯤에 노스모크에서 배운 바다. 단락개념이란 어려운 말이 아니다. 글을 쓰고자 할 때 단락에 대한 개념을 탑재하라는 거다.


락(paragraph)이 무엇이냐. 글이 잠시 숨을 가다듬는 호흡의 길이다. 독자를 위해서도 필자를 위해서도 글엔 호흡이
필요하다. 임산부 호흡이 따로 있고, 단전호흡도 있고, 마라톤에도 호흡이 중요하듯 글에도 호흡이 있다. 단락이란 한 호흡이다.
적절한 호흡을 글에 부여하는 작업이다.

단락개념이 매우 잘 탑재된 글을 하나 보자. 오늘 보고 감동먹은 글이다.

“회의를 넘어서”


기갑은 애초에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됐다 치더라도, 쇠고기 정국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여러 토론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이지 꽝이었다. 오늘 스브스 시시비비에 나와서는 진행자마저 강기갑을 무시하던데, 이런 모습은 현재 촛불시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강기갑의 말빨과
촛불시위 간의 관계가 어찌 상관이 있겠느냐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6월 10일 동원된 시민들의 절대 다수는 시위라는 직접적인
행동에서 이탈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의 배후에는 QSA라는 제도를 들고 온 김종훈과, 그를 위시한 정부여당의
‘설득'(그것이 설득일 리는 없지만)이 상당부분 먹혀들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디어몹이나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별개로, 한때나마 품었던 희망들은 망상이 되어버렸음이 거의 확실하다.(사실 아고라 믿지 않는다. 그들은 황우석을
두둔하고 진중권을 비난하던 자들과 다르지 않다. 어째서 그들이 절대선인 집단지성이라는것인가. 애초에 집단지성이라는 의미도
왜곡되어있거니와, 절대선일 리도 없다.)

6월 10일을
기점으로 하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었다.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드디어 시민들이 사회경제적 이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노라고 판단했고, 그 증거로 화물노조 파업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을 들이댔다. 과연, 언제 이렇게 파업이
환영받아보았던가. 이러한 양상들은 한국을 지금까지 구속하던 반공 우익 헤게모니가 균열하는 매우 극적인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자 아직 단락개념이 뭔지 모르겠는 사람은 단락개념이 탑재 안된 글을 보자. 미몹에 글을 올리는 많은 블로거들도 단락개념 없이 글을 쓰곤 하던데 현피뜨이기 싫어 다음아고라의 글 하나를 링크해 본다.

“이명박정권의 경제살리기..그 허구와 의사불일치..그리고 촛불”中

총리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직후

대통령 이씨가 “쇠고기 문제로 인한 논란을 끝내고 경제살리기 국면으로 가야 한다”하며

긴급 장관회의를 가졌다고…………..

 

한승수의 담화문에 대하여는 이미 대문글에 조목조목 반박한 글이 있으므로,

굳이 중언부언 하고 싶지 않다.

별로 새로운 사실도 아니지만 환기적 차원에서 몇가지만 언급하면,

이번 광우병 쇠고기 사태와 촛불집회의 발단은 이명박 정권의 졸속협상이란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그것은 한승수의 담화문이 처음부터 잘못써진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주권국민을 개패듯 패고 잡아가는 정권의 참모로서 자유니,인권이니 늘어놓을 수 있는

그 대담무쌍함과 비열한 양심이 연구 대상이고,

소고기수입 추가협상에 자화자찬하기에도 낯부끄러운것이

정부가 자랑하는 2차 졸속 추가협상의 결과도 촛불집회의 사진이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이미 김종훈이 실토하지 않았던가…?


광우병사태에 촛불집회가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친고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본말전도의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는다.

소고기수입에 광우병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 한 서민경제는 죽는다.

광우병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누가 소고기를 안심하고 사 먹을 것이며

식당등 관련 업종들이 영업이 되겠는가..?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나쁜 음식도 고르지 못한다는 어리석은 국민으로 보지 않고서야…

서민경제를 잡는것은 촛불집회가 아니라 정부의 부적절한 정책과 행동에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일을 타산지석으로 알겠다며 끝을 내려하는데,

결코 타산지석이 될수없는것이 먼산의 돌멩이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당신들이 장본인이다.

또,미래를 봐서라도 절대로 그냥 넘어 갈수없는 일들이 아닌가..?

차이가 보이는가? 제목은 참으로 거창하니 좋고 글도 썩 괜찮다. 근데 단락개념이 없다. 이 글을 단락개념에 맞추어 정리해보자.

총리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직후 대통령 이씨가 “쇠고기 문제로 인한 논란을 끝내고 경제살리기 국면으로 가야 한다”하며 긴급 장관회의를 가졌다고..


승수의 담화문에 대하여는 이미 대문글에 조목조목 반박한 글이 있으므로, 굳이 중언부언 하고 싶지 않다. 별로 새로운 사실도
아니지만 환기적 차원에서 몇가지만 언급하면, 이번 광우병 쇠고기 사태와 촛불집회의 발단은 이명박 정권의 졸속협상이란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그것은 한승수의 담화문이 처음부터 잘못 써진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주권국민을 개패듯 패고 잡아가는 정권의 참모로서
자유니,인권이니 늘어놓을 수 있는 그 대담무쌍함과 비열한 양심이 연구 대상이고, 소고기수입 추가협상에 자화자찬하기에도
낯부끄러운것이 정부가 자랑하는 2차 졸속 추가협상의 결과도 촛불집회의 사진이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이미 김종훈이 실토하지
않았던가?


우병사태에 촛불집회가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친고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본말전도의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는다. 소고기수입에
광우병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 한 서민경제는 죽는다. 광우병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누가 소고기를 안심하고 사 먹을 것이며
식당등 관련 업종들이 영업이 되겠는가?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나쁜 음식도 고르지 못한다는 어리석은 국민으로 보지 않고서야..


민경제를 잡는것은 촛불집회가 아니라 정부의 부적절한 정책과 행동에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일을 타산지석으로 알겠다며 끝을
내려하는데 결코 타산지석이 될수없는것이 먼산의 돌멩이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 당신들이 장본인이다. 또 미래를 봐서라도 절대로
그냥 넘어 갈수없는 일들이 아닌가?


대로 쉼표 좀 없애고 말줄임표가 너무 많길래 좀 줄였다. 뭐 좀 보기 좋은가? 나는 보기가 좋은데 여러분은 어떨런지 모르겠다.
원래 글은 마구 눌러댄 (아마도 매우 흥분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엔터키에 글의 호흡이 매우 빨라져 있었다. 문장이 하나
끝나기도 전에 쳐댄 엔터키가 읽는 독자의 마음을 숨가쁘게 한다. 차분히 숨을 고르고 생각의 한 꼭지가 끝날 무렵에 엔터를 쳐대도
된다. 그래도 된다.

나는 이런 글들을 외국에서 별로 본 적이 없다. 외국애들이 우리나라애들보다 우수하다는 건 아니다. 그냥 걔네들은 어릴때부터 그런 훈련을 받아왔다는 거다. 내가 자주 가는 블로그 중에 사이언스블로그라는 데가 있다. 여기가서 아무 글이나 한번 클릭해 들어가 보자. 아무거나 눈감고 골라봤다.

Early Birds Shake Up Avian Tree of Life

A
fascinating paper was just published by some of my colleagues in the
top-tier journal, Science, that analyzes the largest collection of DNA
data ever assembled for birds. This analysis effectively redraws avian
phylogeny, or family tree, thus shaking up our current understanding of
the early, or “deep”, evolutionary relationships of birds. For example,
one of the most surprising findings of this analysis is that parrots
and songbirds are “sister groups” — each other’s closest relatives!

And
here’s another surprise; falcons are the sister group to the parrots
and songbirds. Further, the falcons (Falconidae) include the New World
vultures — but they are not closely related to eagles, hawks and
osprey (Accipitridae), as previously thought.

So
why is avian taxonomy suddenly in such a state of upheaval? The precise
evolutionary relationships between major groups of birds have long been
contentious because they underwent an explosive radiation event
sometime between 65 million and 100 million years ago. Nearly all of
the major avian groups arose within just a few million years — a very
short period of evolutionary time. As a result, those groups of birds,
such as parrots, doves and owls, that are united by distinct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seem to have appeared suddenly because
there are few, or no, known evolutionary intermediates that provide
clues to their deeper relationships with other avian groups.

참으로 놀라운 교육의 힘이다. 얘네들이 뭐 우리보다 열라 똑똑해서 이렇게 글의 호흡을 아는 것이 아니다. 얘네들은 학교에서 맨날 에세이라는 걸 써댄다. MIT에서 제일 잘 팔린다는 책이 “The Elements of Style”
라는 책이다. 글쓰기에 틀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글이 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구 눌러대는 엔터키는
“시”를 만든다. 물론 시를 써도 된다. 근데 내가 보기에 과잉 엔터키를 눌러 댄 대부분의 글들이 시를 의도한 것 아닌 것 같다.


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글쓴이의 내공을 알 수 있다. 하나의 단락은 하나의 호흡이고, 호흡의 반복으로 그의 몇갑자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호흡에 리듬이 더해질 때 글은 춤추기 시작하고,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조용히 호흡하며 글에 생명이 더해진다.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런데 난 단락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글을 잘 안 읽는다. 정말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말해도 된다. 근데 조금만 신경쓰면 필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좋은 버릇이 되고 문화가 된다.

또 하나 있다. 말줄임표 좀 자제해라.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하나 더 있다. 쉼표는 말 그대로 쉼표다. 호흡을 멈추어야 하는 부분에 신중하게 사용해라. 쉬기 싫은데 쉬어야 하는 내가 미울 때가 있다.


가끔은 참으로 동양은 “시”적인 문화가 살아 숨쉬고, 서양은 “산문”적인 문화가 살아 숨쉰다 느낀 적도 있다. 그래도 산문을
쓰고자 할 때엔 약간의 틀이 필요한 거다. 이건 그냥 정해진 규칙 같은게 아니라 몇천년의 역사가 만들어 낸 경험의 성과이기도
하다.

엔터키 함부로 발로 치지 마라. 너의 글이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겁게 읽히기 위해서라도.

  1. 글 잘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글쓰기에 대한 검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학생들은 단락에 대해서 모른다는 미국선생의 말도 있는거 보면 교육이 문제인것 같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글쓰기에 대해서 강좌를 개설하셔도 괜찮겠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10064

  2. 글쓰기에도 이런 것이 있는 것이군요. 또 하나 몰랐던 것을 배우고 갑니다. ^^

    저는 바짝 붙어있으면 구분하기 힘들어서 한칸 한칸을 구분해서 읽기 쉬우라고 엔터를 썼던 것인데
    문장에도 호흡과 단락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 있군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국어와
    문학을 공부할때 단락별 정리를 하고 내용을 파악했던 기억이 있고, 대학에서 원서를 볼때면 항상
    단락별 구분이 되어 있던 것이 생각이 나는군요.

    잘 쓰는 글과 그 방법을 한번에 알아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주의깊게 보고 연습해봐야겠습니다.
    또 하나 배워서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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