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거기서 거기라고 우울증에 빠져가던 나날에 희망을 좀 불어 넣고자 어쩌다보니 덜컥 걸려들어 이곳에 왔다. 뭔가 예전의 기억이 중첩된다. 그래 2000년에 노스모크에 올인했을 때도 이런 식이었다. 무려 8년이 지났구나. 그때 많은 노스모키안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나는 허우적 거렸었다. 몰카에 찍히고 있다는 걸 모르는 연인들처럼.
적
응이 빠른 편이다. 노스모크에도 곧 적응했었고 하루 왠종일 F5 버튼을 눌러가며 위키에 올인했다. 주어지는 보상이라곤 자족감과
왠지 모를 자존감. 그것만으로 한 2년을 참 열심히도 글을 쓰며 살았던 것 같다. 그 때 만난 지인들과의 인연은 참으로도
소중하여 각계에 걸쳐 열심히 활동중인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한 것이다. 그 시절엔 블로그라는 시스템도 없었고 우리는 위키가
인터넷의 대안이 될거라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뭐 결국 유저인터페이스 때문인지 인터넷 사용자들의 좌충우돌한 성격때문인지는 몰라도
위키는 블로그에 대패했고 현재에 이르게 된 거다. 변하지 않은게 있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내 아이디는 김우재라는 것 정도일까.
국내 최초의 위키라며 참으로도 많은 글을 써댔던 듯 하다. 지금도 남아 있을까 가끔 들어가보기도 하지만 이미 노스모크는 생명력을
상실했고 남은 자리는 참으로 공허하더라. 잘 들어가지지도 않고.
거기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격렬할 수 있다는 건 노스모크에 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이중나선의 꿈”에서 창조론자들의 공격을 받으며
얼굴이 벌개져 글을 쓰던 적도 있었다. 그래 온라인이라고 마냥 평화로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 대한
공격에 위협을 느낀다. 현실에선 그걸 피하는 쪽으로 행동하겠지만 온라인에선 그걸 방어적으로 되돌려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무지막지한 막장대결들이 펼쳐지곤 한다.
그런거 많이 봤다 노스모크에서도. 몇몇이 서로 치고박다가 자존심이 상한 쪽이
욕지거리를 하기도 하고 (그래도 거긴 욕이 거의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위키란
누구나 누구의 글을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하하) 훌쩍 떠나버리고, 또 착한 누구는 떠나는 그 사람을 붙잡고 하더라. 나도
결국은 한국브라이트넷으로 독립했고 지금은 그것도 사라졌지만 뭐 온라인이 그런거다. 끼리기리 모여 놀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강한거다. 뭐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 하나 있다면 그냥 인간을 멸종시키면 되는데 그건 너무
아프니까 관두자.
내가 노스모크를 떠올린 건 왼쪽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반응들이 당시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위키엔
RecentChanges라는 메뉴가 있었다. 위키에선 해당 페이지의 위력을 수정되는 횟수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페이지의
암묵적인 위력은 페이지의 연결정도, 즉 노드수로부터 튀어나오기도 했다. 위키에서 조회수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블로그에선
해당글의 위력이 조회수로부터 나온다. 조회수가 킹왕짱이다. 모두가 말은 안해도 조회수가 올라가면 뿌듯할 것이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별 짓거리를 다하는 블로거들도 보인다. 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위키는 페이지를 위주로 펼쳐지는
공간이었고 따라서 글의 형태가 이곳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글의 제목들도 주로 명사형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개념사전 식의 페이지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래도 그 시절엔 그런 일이 꽤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주로 페이지를 연결하는 작업에 매진하는 일이 많았다.
아마도 그래서 위키피디아가 살아남았던 것이리라. 블로그는 좀 다르다. 이 곳의 페이지들은 한 편의 완성된 글이다. 주로
동사형으로 제목들이 꾸려지고 칼럼과 같은 형식의 글들이 많이 올라 온다. 난 글의 형식 면에선 블로그가 더 좋다. 워낙 정제된
글을 선호하는지라.
한동안 노스모크에서 글의 정제성을 위해 별짓을 다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단락개념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글을 직접 수정하며 항로를 알려주기도 했다. 근데 잘 안되더라. 정제된 글의 수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망할 파레토 법칙이 작동하는지 파워블로거들처럼 몇명의 소수자에 의해 정제된 글들이 올라가더라.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인 듯하다. 모두가 글 잘쓰는 사회가 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거기엔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사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격렬한 토론 끝에 자존심을 상실하여 떠나는 사태가 있기는 했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잘 지켜지며 운영되었던 것
같다. 모두에 의한 모두의 감시가 가지는 위력이 아마도 위키라는 시스템의 자기정화능력을 유지시켰던 듯 하다.
단순히
말해 미디어몹은 블로그들을 모아 놓고 조회수에 따라 제목을 나열하는 메타블로그다. 모두에 의해 감시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는 하되
그 감시의 행위가 댓글에 제한된다. 위키는 본인이 쓴 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당시에도 위키에 댓글을
다는 식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런식으로 만들어진 페이지는 조잡했다. 누군가 공을 들여 다큐먼트모드로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페이지는 쓰레드모드로 유지되곤 했다. 그런면에서 보면 자신의 글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인
블로그는 정제된 글을 좀 더 많이 양산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문제는 어느 쪽에 자기정화능력이 더 강하게
존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위키일 것이다. 위키에 글을 쓸땐 솔직히 두려움이 공존하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진 않았지만 누군가 내 페이지를 통채로 지워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그런 경험은 한다. 누군가 내
글을 보며 반응할 것을 생각하면 반드시 두려움은 생기게 마련이다.
어찌보면 위키는 만인평등주의와 독재가 공존했던
곳이다. 하지만 참으로 재미있고 유쾌한 시도였음엔 틀림이 없다. 블로그는 모두에 의한 수정권이라는 위키 고유의 특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특징들을 지닌 시스템이다. 비록 링크가 어렵긴 하지만 트랙백으로 해당 글들을 연결하는 것 뿐 아니라, 이젠 페이지의
편집에서 링크가 직접 가능할 정도니까. 위키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링크의 연쇄는 블로그의 편집도구 하나로 끝장나 버린 듯하다.
아마도 그래서 블로그가 승리한 것일게다.
노스모크를 떠올리게 했던 이곳에서도 대판 싸움박질이 일어났다는 걸 보니
여기나 저기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위키보다는 이 곳이 조금 더 편하다. 모두에 의해 감시당하는
사회가 깨끗할지는 몰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만드는 자유가 난 더 좋다.
그러니까 써울때
싸우더라도 트랙백으로 싸우라는 이야기다. 짧은 댓글로 가장 집약된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욕밖에 없다. 아니면 선문답일텐데
우리가 지금 선문답하자고 여기 모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트랙백으로 신나게 치고 받자. 댓글엔 욕좀 하지 말자. 그러면서
가스통을 든 꼴통들을 욕하는 건 어딘가 좀 우습게 보이지 않는가?
에이 시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미디어몹이 막장 되어버렸던 그시절의 노스모크 같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갈아타기도 귀찮다.
추
신: 그래도 그런 건 있었다. 위키라는 시스템은 의견을 획일화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편집권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의견이
다양화되지는 않는 것 같더라. 그것 때문에도 많은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데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서는 착한 사람들이
이기더라. 모두가 평등해지니까 결국 착한 사람들이 득세하는거다. Tit For Tat이 게임에서 이겼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