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조선일보에 실린 글을 소개한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메디컬투데이라는 곳의 기사를 좃선닷컴이 옮겨다 실은 것 같지만. 정부의 강력진압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판단이다. 엇나간 지배욕구란다. 현정부의 자폐증적 행태에 관한 분석도 있다. 이 기사의 윗글에 나오는 포스텍 연구진의 논문은 내 후배의 논문이기도 하다. 영삼이의 말처럼 “국민들에게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정부라면 현정부의 지배욕구는 병적인 자폐증과 더불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인
간의 지배욕구와 권위에 관한 유명한 두가지 실험이 있다.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에 의해 1969년 수행된
‘복종실험’은 ‘권위와 복종’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실험은 실험자가 전기충격기로 건너편의 피실험자에게 얼마나 높은
볼트의 전류를 흘릴 수 있는지를 테스트했다. 무려 65%의 사람들이 사람이 죽을 수 있을 정도의 전류를 흘려보냈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이다. 즉 권위 앞에서 인간의 양심이 갖는 힘은 35%에 불과하다는 대강의 일반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35%에서 인류의 희망을 찾기도 한다. 아마도 현 상황에서 이 실험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간은 어청수가 아닐까? 위에서 괜찮다고
칭찬해주니까 이 놈의 쉑히가 점점 전류를 올리려고 한다. 게다가 이제는 자폐증까지 더해져서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인지도 잊었다. 민주화가 이 정도 진행되었으니 망정이지, 어청수 이 쉑히는 독일 정권에서 태어났으면 충실한 히틀러의 개가 되었을 놈이다.
필립 짐바르도(
PhilipZimbardo)에 의해 수행된 스탠포드 대학교의 ‘감옥실험’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기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즉 상황에 따라 인간은 누구나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짐바르도의 실험이 전경들의 불가피한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이 땅의 민중은 참으로 착해서
전경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결론이 나 있지는 않겠으나 감히 말하건데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짐바르도의
실험결과는 고기 먹는 야만인이라는 유전학적, 문화학적 배경을 지닌 양키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본다. 전세계 인종 가운데
네오테니(Neoteny), 즉 유형성숙이 가장 많이 진행된
아시아인들에게도 그러한 실험이 효과 있을런지는 미지수다. 물론 누군가는 진화심리학이라는 전 인류적인 보편성을 믿고 싶겠으나,
문화적 차이는 심리적 차이를 동반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답이 없다. 누군가 실험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가끔 짱개들의 미친
짓거리를 보자면 국가라는 강력한 권위가 존재한다면 아시아 인종도 잔인한 행위를 서슴지 않음을 통감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양키들과 아시아 인종들 중 이러한 잔혹한 행위에 나서기까지 필요한 권위의 강도가 어떤 쪽이 낫겠느냐는 건데, 뭐
약간의 인종우월 발언이라고 봐도 되시겠다. 정부의
강경진압을 엇나간 지배욕구라고 분석한 손석한 교수는 “일반인도 그렇지만 특히 통치권자는 대중에 대한 지배욕구가 크고 우위에
설려고 하는 마음이 많다”고 말한다. 음 그렇군. 그래서 인터넷에서 지배욕구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건지 좀 찾아 봤는데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이런 글이 눈에 들어온다. 어
렸을 때 지배욕구가 강한 강아지는 커서도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배욕구가 강한 강아지는 아래 두 가지
테스트로 구분할 수 있다. 강아지일 때 가지고 있던 성품이 사회화 과정이나 환경에 따라 자라면서 바뀌는 경우도 있으므로, 양육
중에도 수시로 테스트해 보면 조기에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도그카페에서 펌
아.
지배욕구라는 것이 성격 나쁜 개들에게 적용하는 개념이었구나. 그러니까 양육 중에 수시로 테스트를 해봐야 했는데 우리가 개를 잘못
키운 것이로구나. 맞다.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어릴 때 사람 손가락을 물려고 하는 개새끼는 그러지 못하게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
안 기어오른다더라.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라는 게 내 철학이거든. 그래서 지금 내가 기르는 나의 개 ‘허비’도 어릴 때 나한테
디지게 혼났다. 뭐 불쌍해서 많이 패기는 힘들고
우리 할머니가 개를 다루는 방식은 독특했다. 일단 개가 집에
오면 이유 없이 패신다. 뭐 대충 이유는 분명하다. 여기저기 똥을 싸질러 놓는다던가 그런거다. 그러면 빗자루를 들고 무지막지하게
패신다. 나하고 우리 형도 어릴 때 그 빗자루에 많이 맞았다. 그리고는 그렇게 맞은 개에게 고깃국에 밥을 말아 대접하신다. 그
이후부터는 자명하다. 할머니만 보면 개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절대 복종한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현정부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영삼이가 그랬듯이 현 정부는 시민들을 개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좀 패면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독재의 항거를 이겨내고 꿋꿋이 선 진정한 합리성의 총체다.
그리고 정부는 고깃국도 준 적 없다. 경제성장이라는 고깃국이 요원한 시점에서는 시민들이 개라 할지라도 때리는 주인의 말을 들을
리 없다. 오히려 주인을 문다.
둘째, 현정부를 다루는 시민들의 방식이다. 분명히 열심히 패대고 있는데 개가 말을 듣지 않는다. 게다가 말만 잘 들으면 고깃국을 주려고 하는데 안 먹겠단다. 미친개다. 자폐증에 걸린 지배욕구가 강한 버릇이 없는 미친개다.
지금 누가 누구를 훈련시키려고 하는가는 자명하다. 정부가 국민을 훈련시키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독재라 부른다. 국민이 정부를 훈련시키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민주주의라 부른다.
지
배 욕구란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켜 자기의 지배 아래에 두려고 하는 마음이다. 어떤 심리학자가 미국 역대 대통령 취임 연설을
바탕으로 각 대통령의 성격을 분석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취임 중에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예외 없이 다양한 성격 요소 가운데
지배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거의 예외 없이 지배욕구가 강한 대통령은 전쟁을 일으켰다 한다. 무서운 일이다.
정부의 방관 속에 어청수가 벌였던 일은 자폐증에 걸린 채 권력을 지닌 이들이 행한 폭력이다. 이 시점에서 내가 궁금한 점은 도대체 개도 자폐증에 걸리느냐는 것이다.
추신: 아 맞다. 총리라는 작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자랑스레 사다가 쳐먹는 걸 보니 작금의 사태는 확실히 자폐증에 의한 광기가 맞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