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철새들이 이동 중에 유리로 지어진 고층빌딩에 부딪혀 죽곤 한다던데 이 녀석 그 꼴이 날 판이다.
잡으려 하니 도망간다. 나 같아도 도망가겠다. 어릴때부터 키운 개 허비는 몇 마디 말이라도 알아듣지만 이 녀석은 내가 키우지도
않았는데다 내 말을 알아들을리도 없는데.. 무작정 3층으로 올라간 녀석을 쫓아 간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게다. 여전히 유리창 근처에서 어슬렁 대고 있다. 바로 옆 창문은 열려 있는데 찾질 못한다. 숨한번 고르고
최대한 위협감을 주지 않기 위해 손을 뒤로 젖힌채 다가섰다. 잘못해서 놀라기라도 하면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죽을 판이다. 꽤나
오랫동안 파닥였는지 힘이 빠진 눈치다. 나도 조용히 다가선다. 왠일로 이 녀석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조용히 두 손으로
감싸니 ‘째액’이란다. 알았다 녀석아.
어릴때에는 이렇게 잠자리도 곧잘 잡곤 했는데 새를 손으로 잡아보긴 처음이다. 초등학교 시절 살던 동네 어귀에는 큰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뒷산으로 오르는 길목이었다. 지금 생각으로도 꽤 큰 상수리나무였던 것 같은데 두 아름은 되었던 것 같다. 조금 컸다
싶은 중학생 형들은 그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자랑처럼 여겼었는데 가끔은 산새집을 털어 알을 훔쳐오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철봉도 오르지 못하는 상체부실자다. 대학교 시절에도 홈통을 타고 학회실에 몰래 들어가 자곤 하는 동료들
대열에서 나는 망이나 보는 신세였고, 녀석들이 열어준 뒷문으로나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높은 나무위에 산새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궁금했는데도 나무에 올라갈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용기가 생겼을 즈음엔 아파트
공사로 나무가 베어진 후였기도 하고. 여하튼 당시 부모님이 사주신 곤충도감, 조류도감, 동물도감을 보고 산에 올라가 참 많은
공부를 했다. 그 때 제일 흔했고 또 조류도감에서 찾기 쉬웠던 새가 박새였다.
박새는 참새 다음으로 수가 많은 텃새라고 한다. 새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교수는 하얀 박씨를 잘 먹는다해서 박새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에 딴지를 거는 분도 있더라. 국어학자도 아니고 누군가 결론을 내려주리라 생각은 하는데 윤교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 분은 박씨가 얼마나 큰데 박새가 이걸 먹겠느냐며 아마도 한자로 ‘흰 뺨을 가진 새’라는 의미의 백협조(
윤무부 교수라 하면 또 대한민국에 과학자의 이미지를 굳힌 선구자적 인물 아니겠는가. 자칭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와 동물의 세계로 유명한 김정만 박사의
계보를 잇는, 과학자로서는 일찌감치 매스미디어를 장악한 분 아닌가. 뭐 이분들에 대해 언젠가는 반드시 조사를 좀 해보아야겠으나
지금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거의 코미디언으로까지 추락해버린 조경철 박사와 윤무부 교수는 과학초딩화에 일조한 바 있음에는
분명하다. 차라리 김정만 박사(사
실 이 분이 박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동물박사 김정만이라고 하지 김정만 박사라고는 안했던 것 같다)는 자신의 길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어린이들에게 동물에 대한 신비를 알려주기 위해 수십년 동안 동물의 세계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를 감수했고 많은 책을
냈다. 그는 적어도 코미디 같은 짓을 하지는 않으셨다. 여전히 건강하신 것을 보니 다행이다. 김정흠 교수라는 분도 계셨는데 2005년에 별세하신 것으로 안다. 물리학자셨던 이 분이 텔레비젼에 등장하면 왠지 모를 압도감이 느껴졌다. 천재의 포스랄까. 언젠가부터 TV에서 사라지셨었는데 그것도 좀 조사해봐야할 가치가 있다.
여하튼 잡은 녀석을 그냥 돌려보내자니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해서 방으로 데려와 사진 몇장을 찍고 돌려 보내 주었다. 다행히 잘 날아간다. 갑자기 조류독감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뭐 그랬다. 손을 좀 씻었다라는 고백을 해야겠다.
박새의 ‘박’자가 한자로는 호박’珀’자라고 한다. 정말 박씨를 먹어서 그런 것인가 보다. 박박하다 보니 다른 박도 생각이
나는데.. 이명박은 한자로 ‘李明博’이란다. 박근혜의 박은 당연히 ‘朴’일테고. 다행이다. 지금 같아선 같은 ‘박’자를 썼다면
잡은 새를 죽여버렸을지도 모를 것 같으니까.
귀엽네요.. 인간이 이름지은 것인데 한자가 같다고 괴롭힘 당해선 안되겠죠. ^^;
맘이 약해서 그런 짓 못해요. 그냥 명박이 겁좀 먹으라고. ㅋ
우하하. 끝에서 폭소. 그나저나 김정흠 교수님은 돌아가셨군요. 어렸을 때 ‘와아, 신기한 할아버지다’라고 생각했던게 어렴풋이 기억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