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대결을 도킨스와 굴드의 점진 대 도약의 구도로 파악한 것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럴때 참으로 난감한데,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점진과 도약의 대결을 사회학적 화두에 그대로 꿰어맞추는 나이브함을 어떻게 응징할 능력이 아직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회의 발전과정처럼 사회전체, 즉 진화학으로 유비하자면 한 종 전체의 생존은 개체, 나아가 유전자를 기준으로 하는 자연선택에 의해 발견되지도 않을텐데, 그것을 기술진화론에까지 유비시켜 정치사회학적 유사논문을 만들어내는 재주는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복거일과 공병호의 짬뽕을 읽었다면 이해가 갈까 싶다(글을 다 쓰고보니 어쩌면 다윈의 불독 헉슬리의 아류 허버트 스펜서의 논리의 현대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타이핑하는 것이 버릇이신듯 해서 글을 읽기가 참으로 애매했다. 이미 타이핑 해둔 책들의 일부를 복사해 붙히고, 매우 짧게 자신의 ‘주장’을 덧붙히는 식으로 대부분의 글들이 진행되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짧게라도 덧붙혀진 주장은 오려붙힌 원저자들의 주장을 잘 엮거나, 그 거리감을 좁히는 데 소요되어야 옳으리라 본다. 예를 들어, 윗 글 ‘보수주의가 우월하다(제목이 너무 길어 임의로 좀 줄였다)’를 읽으면서 처음부터 들었던 나의 궁금증은 후반에서 소넷씨에 의해 스스로 드러났다. 그래서 다행히도 논리적 비약은 있을지언정 글에 대한 전체적 조감은 가지고 계신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궁금증이란,
였다.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계신다.
정확한 ‘범주의 오류’다. 자연과학이나 기술이 이룬 진보의 속도가 사회과학의 그것보다 아무리 빠르다 할지언정, 그리고 자연과학과 기술의 진화가 점진적 양상을 띤다는 점이 나타난나고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보수적 변화’가 우월하다는 논리적 비약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게다가 내내 나를 궁금하게 했던 논리라는 것은 결국 크루그먼의 입을 빌려, “경제학도 원시과학”에 불과하다는 짧은 말로 끝난다. 인용으로 가득한 이 글이 논리적 정합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점진적 진화의 양상과, 기술의 진보에서 나타나는 점진적 양상이 사회적 변화에 적용되기 위한”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것이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이나 기술보다 미개하다는 엉뚱한 논리로 마무리되어 버리는 것이다.
만약 이 글이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개념사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면 매우 훌륭한 분석이요 노력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진보라는 ‘단어’의 개념사라면 진짜 사회적 ‘진보’에 대한 분석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변화에 대한 다른 이들의 가치판단에 하등 미칠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그가 이전 글에서 주장한 다섯가지 정치학적 스펙트럼인 급진주의, 진보주의, 온건주의, 보수주의, 반동주의 속에서 스스로의 입장이라 자처한 ‘보수주의’를 옹호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정치사회학적 논의가 이 글의 핵심이며, 그러한 주장의 정당화는 ‘진보’라는 개념의 역사가 아닌 사회역사학적 분석이 주를 이루어야 옳다. 즉, 진보라는 개념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변화, 소넷씨의 세계관으로 이해하자면 사회적 동역학이 점진적이라는 증거들이 이 글의 말미에 반드시 등장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
사실 이런 세계관을 끝없이 확장시켜나가면 결국은 모든 것이 물리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더욱 급진적인 입장은 수학으로의 환원일테지만, 수학은 자연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도구일 뿐, 자연세계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으리라는 기대로 과학의 언어 혹은 분석도구로서의 수학이라는 지루하고 오래된 개념을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소넷씨의 세계관이 결국 모든 학문의 물리학으로의 환원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본인도 매우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간략히 짚고 넘어가자. 그는 자신의 글에서 다윈의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점진적 진화’라는 ‘자연’의 성격과 기술의 진화에서 등장하는 점진적 변화를 ‘자연과학과 기술의 사회과학에 대한 우월성’이라는 논리로 사회적 변화에 적용시켜버렸다. 결국 생물의 진화라는 법칙이 기술의 진화라는 법칙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고, 나아가 이 둘의 통합이론이 사회적 진화에도 곧바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들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초끈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과 만나 토론하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무시무시한 통합이론이라는 개인적 사견을 덧붙힌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그가 버날을 등장시키며 사회과학을 폄하하는 나름 역사적 분석에서 등장한다. <사회과학에 관한 논고>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은 이 글에서 그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묘한 역사적 관계를 분석하려고 시도한다. 버날은 ‘좌파과학자’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면서 마르크스 주의에 심취했고, 특히 사회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인물이다. 버날은 ‘과학적 세계 국가’의 이상을 꿈꾸었던 사람이다. 특히 그는 계몽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의 사상을 끝까지 고민했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의 철학과 ‘과학적 세계 국가’라는 이상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인종차별에 동원된 우생학을 비판했고, 로잘린 프랭클린이라는 여성과학자를 키워냈으며, 섹스에 열광했던 버날은 아무리 생각해도 소넷씨의 ‘보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소넷씨를 존경하게 되는데, 그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을 가로지르는 인용을 가능하게 하는 초이념적 인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이 글 역시 ‘과학자’라는 개념을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과학이라는 말이 과학보다 먼저 등장했다는 것을 휴월과 라블레의 저서로부터 인용하는 것이 그 논거다. 문화평론가가 문화라는 말보다 나중에 생기는 건 일견 당연한 것이니 이런 개념에 대한 집착에 딴지를 걸 필요는 없다.
이 글을 읽으면서 ‘보수의 우월성’을 주장한 윗 글과 비슷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선 과학과 과학자의 관계와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논하는 제 1절과 2절은 매우 훌륭한 요약이다. 이 글을 위해서는 별반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1절과 2절을 읽으면서 독자가 느끼는 궁금함은, 도대체 소넷씨는 ‘과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느냐였다. 나는 제 3절쯤에서는 이러한 내 의문에 대한 답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사회과학에 관한 논고>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중요한 내용은 제 3절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번 움찔했는데, 하이예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라고 과학에 대한 논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나는 그러한 학문에 대한 위계를 소넷씨처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자연과학과 기술의 계층적 우위를 주장하는 소넷씨의 인용구에서 경제학자 하이예크의 입으로 ‘과학’의 정의를 듣게 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를 조금 놀라게 했다.
더욱 내가 놀란 것은 무려 하이예크를 끌어들이며 등장한 것이 정작 ‘과학’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과학의 범주’에 대한 정의였기 때문이다. 즉 진실에 대한 탐구라는 오래되고 폭넓은 의미와 자연과학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의 과학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자연과학에 대한 소넷씨만의 정의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야 자연과학에 대비해 사회과학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크롤이 빨라졌고, 결국은 그런 정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실상 제 3절은 4절을 위한 준비였으니 그냥 넘어가자. 4절은 역사적 분석을 다룬다.
4절을 내 식대로 표현하면 이렇다. 결국 자연과학이 양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확실성의 세계관을 구성하던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그 시기는 자연과학과 다른 제반 학문이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재편되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현대의 학문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사실 이러한 학문적 분과다양성과 역사적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추천 국역 과학도서와 그 의미>와 <추천 국역 과학관련 도서와 그 의미>를 통해 대강 나의 생각을 기술했었는데 수고롭게도 다시 설명해보도록 하자.
사실 귀납이나 연역으로 과학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려는 시도는 낡은 것이다. 19세기 논리실증주의에서 발전한 과학철학의 잔재인데, 귀납과 연역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포괄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건 가추가 등장하는 퍼스로부터 라카토슈, 포퍼, 파이어아벤트와 최근의 과학철학을 일괄해야 하는 논의인데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 여하튼 19세기 물리학으로부터 얻어진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속에서 시작된 과학철학은 메타과학이라는 분야에서 물리학과 같은 법칙성을 얻으려는 시도를 했고, 귀납과 연역이라는 틀로 과학을 묵으려는 시도는 그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라는 점만 언급한다.
이미 뉴턴에게 감동 먹은 칸트가 물리학을 학문의 모범으로 순수이성비판을 저술했고, 순수이성비판에서 다루지 못하는 영역을 실천이성비판으로 기술했다는 사실로부터 자연과학의 발전과 제반학문들의 상호작용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데카르트도, 헤겔도 마르크스도 이러한 상호작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소넷씨가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 역사적 분석과 나의 분석이 별다른 차이점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우석훈씨의 글에 달았던 트랙백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를 일독할 것을 권한다. 측정량과 재생산가능성이라는 과학의 특성이 이론과의 연결점을 찾으며 자유롭게 발전하는 과정을 미약하게나마 기술해 놓았다.
그 글을 읽었다면 소넷씨의 (1)번 결론이 논파될 수 있다. 정량화의 길을 걸어온 과학이 측정량에 의한 이론의 제한이라는 세속화의 과정을 겪었음을 이해한다면 중세의 학문들에서 ‘자연과학’의 냄새를 맡을 수는 없다. 감히 단언하건데 중세에는 현대 자연과학의 냄새가 나는 그 무엇도 없었다. 논리학이나 수사학, 수학의 발전이 있었을런지는 몰라도, 자연에 대한 양화라는 과학의 미덕은 중세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건 르네상스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괜히 르네상스를 인문학의 부흥기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역학이 어느정도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는 17세기 뉴턴의 시대까지도 자연과학의 조상은 없었다. 대부분의 과학이 일종의 수사학 또는 이론의 남발이었고, 신뢰할만한 데이터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갈릴레이의 이론을 굳이 과학으로까지 부르며 논파한 파이어아벤트로부터 찾을 수 있다. 결국 수학이라는 훌륭한 분석적 도구로 초간단한 자연(두개의 공으로 설명되는)을 설명할 수 있었던 물리학이 탄생한 이래, 라부아지에와 돌턴이 등장하는 18세기까지도 여전히 화학은 연금술과 분간하기 여려웠고, 생물학은 19세기까지도 수집이나 관찰에 의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현대적 관점에서의 과학은 19세기에나 등장한다. 양화의 역사는 간단한 시스템을 다루던 물리학에서 가장 먼저 완성되었고,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기술해야 했던 화학으로 그 다음은 생물학으로, 심리학으로 이어져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분과학문간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과정은 따로떼어 화학자와 물리학자, 생물학자와 화학자, 물리학자와 생물학자를 나눌 수 있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다. 모든 것이 엉켜 있었다. 그냥 대략을 개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과학이 이렇게 순차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루는 대상의 복잡성에서 기인한 것이지 과학의 위계를 나누는 기준은 아니다. 그리고 각각의 자연과학 분과들이 정량화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성공을 사회과학의 분과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항상 존재했다. 철학에서 칸트가 그랬고, 화학의 성공은 사랑과 증오를 화학으로 설명하려는 수많은 시도를 낳았고, 생물학의 성공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스펜서 등등의 수도 없이 많은 학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의 대부분은 유감스럽게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분트로부터 시작된 실험심리학의 전통은 스키너의 행동주의와 프로이드를 거쳐 게슈탈트 심리학으로, 결국 심리학을 양화시키려는 시도와 그 반대급부간의 갈등으로 번졌고, 심리학은 여전히 그러한 갈등의 중심에 서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사회생물학이 과감하게 생물학으로 사회학을 집어삼키고자 했지만 일종의 선동적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도킨스의 사기적 개념인 밈(Meme)이 미미틱스(Memetics)라는 우스운 학문을 등장시켰지만 별다른 학문적 성과도 없는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통계역학의 성공은 곧바로 사회학으로의 적용을 시도하게 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진행형일 뿐이다. 이러한 학문들 모조리 제대로된 정량화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나의 논거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여전히 진행형인 ‘사회물리학’에 관해서는 이 분야를 공부하시는 셀돈님의 블로그를 참조하자. 또 다른 글에서 이미 논했지만, 버틀란피의 ‘일반 시스템 이론’이 실패한 이유도 이와 일맥 상통한다. 어쩌면 나는 자연과학의 역사적 법칙성을 찾았나 보다(농담이다). 실상 내것이 아닌 이론이지만.
결국 (2)번 결론도 역사적 공부의 부족에서 등장한 무지의 소치다. 첫째, 사회과학이 분과다양성을 획득하던 19세기는 자연과학 역시 분과다양성을 획득하더 시기였다. 19세기는 소넷씨가 그다지 좋아하는 진화론의 유비를 사용하자면 학문의 캠브리아기의 대폭발과 같은 시기였다. 현재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들의 연원은 대부분 19세기에 완성된 것들이다. 여기서 갑자기 “보수의 우월성”을 논했던 글로 돌아가 굴드의 이론을 이러한 학문적 발전과정에 빗대 그 주장을 논파하고 싶지만 역시나 일종의 ‘자연주의의 오류’일 것 같아 참는다. 자연주의적 오류는 오류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자연과학의 이론을 사회과학에 나이브하게 외삽시키는 시도는 역시나 오류라고 생각된다.
(2)번의 결론이 황당한 것은 “보수의 우월성”을 주장했던 첫번째 글처럼 또다시 범주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자연과학이라는 좁은 의미의 ‘개념’이 정립되는 것과 사회과학의 ‘학문분과’가 다양해지는 것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인가. 자연과학이라는 개념이 구체화되었던 그 시기가, 사회과학이라는 개념이 구체화되었던 시기와 겹치고, 자연과학이 분과적 다양성을 획득하던 시기가 사회과학이 분과적 다양성을 획득하더 시기와 겹친다. (2)번 결론은 무의미하다.
(3)번 결론은 좋다. 분과학문으로 나누어진 후에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모사한 것인지, 방법론의 적용에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분과적 다양성이 획득된 것인지 역사적 사실 관계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대충 그렇다고 쳐도 된다.
그리고 다시 모호한 결론이 등장하고, 버날의 글이 나온다. 아마도 언어학을 자연과학이라고 주장하던 한 블로그의 글을 논박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글인데, 결론은 애매하게 끝난다. 사회과학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이해하고 사회과학의 분과학문을 자연과학적 방법론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규정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그런 시도를 하지 말라는 것인지 애매하다. 그런데 나는 소넷씨의 결론을 <언어학도 자연과학이 되고 싶은 듯?>이라는 글에서 이미 본것 같다.
그리고 <언어학도~>라는 글에서 그가 생각하는 자연과학을 읽고자 했다. 자연과학의 간판을 걸고나오면 이야기가 다르다길래, 도대체 자연과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가 등장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없었다. 그는 사이비과학을 규정하는 글로 언어학을 일종의 사이비과학이라 규정하고 싶은 눈치였다(물론 그렇게 나이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상 언어학이 자연과학이기 위한 전제조건을 물었으면 건강한 토론이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언어학의 방법론에 얼마나 정량적 신뢰도가 부여되어 있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촘스키의 이론이(이론이다. 굳이 따지자면 언어학은 여전히 이론이 측정량을 제한하는 시기에 머물러 있다. 이건 나도 인정한다) 우랄-알타이어에도 잘 적용이 되는지 등등. 예를 들어 스티븐 핑커라면 꽤나 과학자라 부를만한 사람인데, 그리고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그의 책이 소넷씨의 블로그 좌측에 떠억하니 걸려있던데, 핑커의 <언어본능>은 도대체 자연과학대중서인지, 사회과학대중서인지에 대한 판단쯤은 해주길 바랬다. 결국 회의주의자라는 이야긴데, 이에 대해서는 <모기불통신과 회의주의>로 대신하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이후부터는 그냥 주장이다.
스스로 보수라 했다. 그리고 파인만과 (감히) 버날을 들먹이며 사이비과학을 논했다. 이 도식은 국내 스켑틱스들이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보수화라는 함정에서 그도 자유롭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버날의 이름 앞에 (감히)라는 말을 붙히는 것은 사이비과학을 논파하는 버날의 이념은 진보이기 때문이다. 이념… 시바. 뒤에 다시 얘기하자.
군사학에 관심이 많으신 듯 했다. 군사학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보가 될 수 없다는 것 또 다시 증명해 주셨다. 실상 그가 보수라서가 아니라, 어쩜 이렇게도 내가 그려 놓은 도식에서 자유롭지 못한가가 흥미롭다. 내가 찾아낸 또다른 법칙이다.
학문에 일종의 위계를 두고 계신다. 자연과학이 사회과학에 비해 일종의 방법론적 우위에 서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보수에게서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위계적 세계관과 계급주의가 보이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에 대해서만은 자연과학과의 분리를 시도하고 계시다. 이 부분만 공부를 제대로 하셨거나, 기술자이심에 틀림없다. 누구나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는 법이다. 이것도 법칙이라 불러도 좋다.
사실 역사에서 무엇을 보는가는 자유지만, 그리고 과학사에 대한 해석도 자유지만, 과학을 중심으로 학문을 서열화하려는 시도는 유럽이라는 세계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했던 19세기 역사학의 잔재라는 생각은 안하시는지 묻고싶다. 과학을 전공하는 나조차도, 학문의 분과다양성과, 물리학을 통한 모든 학문의 환원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나는 역사로부터 다양성이라는 교훈을 배우는데,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 왜 역사로부터 또다른 학문의 위계구조를 만들려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정 과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모든 ‘주의’로부터 결별해야 하는 것이라 여기는데,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에 탐닉한 버날의 시도는 일종의 미완이라고 여기는데, 과학의 세속화는 이론이 측정량을 지배하던 독재의 시절로부터 측정량이 이론을 제한하는 민주주의의 시대로 이행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그래서 이념이 과학자의 두뇌를 감싸는 순간 그것은 사망선고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데, 왜 자신을 보수라는 틀에 가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어려운 과학책을 이토록 많이 인용해서 과학을 이 땅에 전파시키려는 분이 왜 과학이 그토록 벗어나려 애썼던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쓰다보니 별 말이 다 나온다. 이틀전인가 트랙백을 걸어 두었는데 답이 없으신 걸 보니 이번에도 답을 안하실 모양이다. 모든 답변에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에서 일말의 희망을 보았는데, 나같이 초라한 블로거의 글에는 답을 달 필요도 없다고 여기시나보다. 차라리 답을 안하셨으면 좋겠다. 간만에 서울에 와서 쉬다보니 타이핑하기도 귀찮다.
일단 그가 대부분의 교본으로 삼고 있는 <기술의 진화>부터 어디 헌책방에서 구해봐야 할 듯. 바살라의 책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데 적어도 김동광씨의 번역이라는 것은 좌파적 냄새가 어느정도 풍긴다는 건데, 역시 초이념?
이 논의를 정밀하게 쫓기에는 제가 너무 과문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흥미롭습니다.
“정치사회학적 논의가 이 글의 핵심이며, 그러한 주장의 정당화는 ‘진보’라는 개념의 역사가 아닌 사회역사학적 분석이 주를 이루어야 옳다.”
“자연과학의 이론을 사회과학에 나이브하게 외삽시키는 시도 […]”
“학문에 일종의 위계를 두고 계신다. […] 보수에게서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위계적 세계관과 계급주의가 보이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어려운 과학책을 이토록 많이 인용해서 과학을 이 땅에 전파시키려는 분이 왜 과학이 그토록 벗어나려 애썼던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구절들이 특히나 마음에 밟히네요.
진정성과 성실함, 무엇보다 마음 가득한 열정이 담긴 치열한 반론 잘 읽었습니다.
추.
서울에는 언제까지 계시는 건가요?
지금은 물론 성급한 바람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언젠가 맥주라도 한잔 하면서 대화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아, 그리고 혹 기분전환 삼아 동일한 제목의 이 유쾌한 글을 읽어보시면 어떨는지요? : )
intherye,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2008년 03월 10일)
http://intherye.wordpress.com/2008/03/10/conservative/
끝으로 이틀전에 트랙백하셨다고 하셨는데, 글 등록일자를 보면 오늘 새벽으로 되어 있는데요, 추고하셔서 재발행한 것인가요? (사소하게 궁금해서요)
서울에는 8월 20일까지 있을 예정입니다. 그 후에는 양키들의 제국으로 떠납니다. 슬프게도. ㅜㅜ
맥주한잔 하지요. 비밀글로 전화번호를 남겨주세요. 제가 문자드리겠습니다.
이틀전에 트랙백한 글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라는 글이었습니다. ^^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술의 진화> 결국 북코아에 남아 있던 대한민국 마지막 한권을 질러버렸다.
저도 좀 끼워 주실 수는 없으시련지요… 굽실굽실…
민노사마와는 이전에 면식 정도는 있는디… 겸사겸사 한 번 뵙고 이것저것 배우고 싶네요
연락처는 019 494 1884입니다 : )
얼마전에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읽었습니다.
경제학의 역사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비슷한 맥락의 설명이 반복되는데.
기득권의 정당성을 증거하기 위하여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역사가 부자의 경제학이라는 겁니다. “빈민 구제 따위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우주의 법칙이라구요!”
심리학에 인지부조화라는 말이 있잖아요.
절대적인 가치중립은 오히려 종교적 성향을 지니는 것 같고요, 인지부조화를 이겨낼 자신이 없다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일련의 증거 수집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과학을 수호하기 위해서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이죠.
저는 진보냐 보수냐를 다른 걸로 보지 않고 이렇게 봅니다.
새로 알게 되는 (비교적)객관적 정보를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거나 말거나 공평하게 대할 수 있으면 진보. 아니면 보수.
저는 현재 종교가 없지만… 관련된 명언 하나를 트랙백 합니다.
닫힌계와 열린계로도 설명이 되죠. 두뇌회로의 가소성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기술의 진화>가 도착했다. 소넷씨는 박정희와 경제와 대미원조와 수출경제정책 등등의 ‘졍제학적’논의로 정신이 없으시다. 이 책 좋은 책이다. 우선 바살라가 <19세기의 생물학>의 저자 윌리엄 콜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부터가 그걸 증명한다. 콜맨은 반드시 이 땅에서 재평가해야만 하는 인물이다. 제 2장의 주제가 연속성과 불연속성인데, 결국 <보수의 우월성>에 대한 소넷씨의 글은 거기서 받은 영감일게다. 그렇다면 대단한 외삽이다. 간만에 독서를..
함량미달의 블로거인 제가 발을 거는 바람에 소넷씨가 지금 쓸데 없는 힘을 쓰시는 와중입니다만 또 여기서 그 분과 관련된 글을 접하게 되니 참 블로고스피어가 좁다는 생각이 드네요. 🙂
오옷 푸그님 무슨 그런 말씀을 ㅎㅎ. 자꾸 대답을 안하면 기술의 진화 서평 쓰면서 한번더 트랙백을 보낼까 해요. 이번에 문제가 된 포렐이야기도 <기술의 진화>가 출처더라구요.
푸그님 글들은 rss로 잘 구독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세요
제가 오히려 고마워해야죠.
이런 좋은 글을 읽해주셨으니 말입니다.. : )
제 손전화번호는
010 – 6316 – 1951 입니다.
우선 오늘밤 기술과 과학의 관계에 관한 포스팅을 하고(이건 지난번 산업혁명과 관련해서 누군가와 약속했던 것), 오늘이나 내일중 <기술의 진화>에 대한 서평을 올리겠습니다. 소넷씨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요며칠 오래된 벗들과의 술자리가 포스팅을 미루는 계기가 되고 있다. 술은 싫은데 사람은 좋다. 그게 항상 딜레마다.
드디어 미국으로 가시는군요. 저는 출판사에서 여전히 책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뇌과학을 전도하는 박문호 선생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재씨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더) 좋은 과학자가 되어서 돌아와 주세요 ^^;
네. 얼마나 훌륭해질진 알 수 없지만서도. ㅎㅎ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대한 우월성 비교와
과학이란 정의와 그 범위에 관한 논의….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을 분리 하기 위한 노력등등에
대한 말이 나온거 같은데… 솔직히 알고 있는게
적어서 반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거 같아요…
앞으로도 종종 들리겠습니다.
소넷은 서브프라임 사태 진행중에도 ‘시스템이 위험을 흡수하니’ 어쩌니 조낸 근거없고 낙관적인 얘기를 리플로 떠들었던걸로 기억
그리고 그말 나오자 마자 프레디맥이랑 페니매이 털리고 NYSE 급락했죠
어휴
지금은 그리플 지웠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