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경제가 종교가 되었음을 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로부터 명확해진 것이 하나 있다. 적어도 그들은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던져야 하는 떡밥을 제대로 알고 있다. 허긴 그걸 모른다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답은 경제다. 쉽게 이야기하면 먹고 사는 문제다. 검찰은 미네르바의 체포에는 ‘허위사실 유포’죄를 뒤집어 씌우고는 살짝 ‘미네르바로 인한 피해액이 20억달러에 이른다’는 소문을 유포했다. 멍청한 짓이지만 이는 검찰이 적어도 목표만큼은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은 안다.
그들은 재계에서 썩고 썩어 절대 깨끗할리 없을 것이라 믿으면서도 잘먹고 잘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어떤 CEO가 대통령이 되었음을 안다. 드디어 이 땅의 국민들은 사적 영역과 공적영역을 분리해 보기 시작했거나 혹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는 공직자의 윤리 따위는 아무 상관 없다는 막가파로 변신했거나 둘중 하나다. 혹은 본래부터 인간의 본심이 윤리나 철학 놀음은 먹고 살만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임을 드러내주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그들은 안다. 이 땅의 국민들에게 경제는 종교가 되었고, 모든 것은 먹고 사는 행위로 통한다는 것을. 미네르바는 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신화가 되었고, 검찰은 그 민감한 부분을 정권에 유리하게 사용하려 했다. 이 땅에서 경제는 종교다.
경제는 장기적 파국의 국면에서도 잠시 회생하는 듯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한 가지 가정을 덧붙혀 보자. 이미 해미래의 비극과 근시안적 감정주의에서 논의한 바 있지만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지리적으로 반도라는 특성 때문인지, 혹은 그로부터 야기된 역동적인 문명교류의 특징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일제강점기 이후에 생긴 민족의 고질병인지 알 수 없으나, 이 땅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되는 정책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권력자들은 그들의 재위 기간만을 고려하고 정책을 수립한다. 따라서 모든 것은 단기정책이다. 교육정책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명박도 예외일리 없다. 아니 그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서울시장 재직 당시를 회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공익보다 명예를 우선시하는 대표적인 명예추구형의 정치가다. 공익은 그의 명예와 맞아 떨어질 때에만 공익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절대 매스컴이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런 공익은 그에겐 공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들이 단기적 경기부양책 일색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장 국민의 원성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명박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는 건설업을 구조조정하기보다는 건설경기부양을 통해 단기적인 내수촉진을 유도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그는 임시직이라도 일단 명목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 그것이 이후의 정권에 짐으로 남건 말건 그는 그의 재임 기간에 추락하는 경제를 ‘단기적’으로 약간이나마 부양시키기 위해 별 짓을 다할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부터 중소기업 대출 및 기타 사업들이 모조리 그러한 근시안적인 정책들이다.
주식시장에서도 그런 일이 있고, 사람이 죽을 때도 그런다고 하듯이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는 하강하는 듯 보이는 곡선이 가끔 살아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주식시장에서 그러한 잠시의 상승 국면은 투기세력에 의한 것일 경우가 많고, 죽어가는 사람의 경우 과도한 약물복용이나 기타 여러 생리적 작용에 의한 것일테지만, 결국 장기적인 흐름은 거역할 수 없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결국 말기암 환자는 죽는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죽음을 완화시키고 늦출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경제의 추락이 예정된 것이라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이 위기 속에서 국가의 경제적 여건을 재조정하고 강화하며 새롭게 도약할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명박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적어도 5년 동안 정부의 채무가 얼마가 되던, 후임 정권의 빚이 얼마가 되던, 이후에 국민들이 얼마의 고통을 받건, 가진 자원을 모조리 쏟아부어 죽어가는 경제가 마치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것은 김대중 정권의 카드대란처럼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회생은 명박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그렇게 온몸에 붕대를 감고도 마치 기사회생한 것처럼 보이는 말기암 환자격의 대한민국 경제는 여전히 근시안적 감정주의를 공유하고, 또 경제를 종교화시킨 이 땅의 국민들에게 광신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들은 결국 5년 후에 지게 될 아픔을 알지 못한 채 명박이 경제를 결국은 살렸다며 또 다시 그 어리석은 무리들에게 정권을 넘길 지도 모른다. 나는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마냥 엄청난 돈을 쏟아대며 이 정책 저 정책을 남발하는 명박이 두렵다. 그 정책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정책들 중 우연히 ‘단기적인 경기회생’을 가져올 정책이 나올까 두렵다. 그리고 그 단 한번의 결과가 경제를 종교로 여기는 국민들에게 ‘역시 명박이야!’라는 반응이 나타날까 더욱 두렵다. 그리되면 우리는 ‘잃어버린 10년’이 무색할만한 ‘멸국의 시초가 된 10년’을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이해하고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민족은 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치리만큼 많이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그 누적된 결과들은 역성혁명이라는 형태로 표출될 것이다. 아니 적어도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할 것이다. 실상 나는 그러한 혁명을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러한 혁명의 전제조건은 국가의 끝없는 추락이고 민중의 불행이다. 그리고 매우 이기적일지 모르는 나는 민중의 불행보다 혁명의 조건이 나의 삶동안 마련되지 않을까 그것이 가장 두렵다.
나는 조용히 앉아 이 상반된 두려움들을 대비해본다. 결국은 명박이 잘해도 못해도 모두가 나에겐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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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이 두려운 것은 명박 스스로의 문제도 있지만 그런 자에게 과반수가 넘는 지지를 보내고, 한나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이 나라 국민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생각해오던 바가 있기에 포스팅으로 댓글을 대신하겠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최고 좋은 모범 사례라고 생각되는건 무엇일까요 반도국가의 비애라고 하기엔 유럽의 수많은 열강사이에서 꿋꿋히 버틴 나라들이 너무나도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