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들이 가진 용어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정의에 대한 천착은 수학에서 사용하는 ‘정의’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 아니면 개념의 정량화에서 비롯되는 무의식적인 노력인가. 존 루카스의 말처럼 ‘역사’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서술이 정의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칸트가 불가능하다 믿었던 생물학이 과학이 되었다. 칸트가 ‘목적론’적 자연개념을 지녔기에 ‘기계론’적 자연을 가정하지 않았기에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생물학이 과학이 되었다는 것은 목적론과 과학 사이에 필요충분조건 따위가 성립하지 않거나, 그냥 칸트가 틀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칸트는 과학이 정량화된 측정량과 이론사이의 관계이며 데이터의 재생산 가능성이 이론을 제한하는 구조 속에서 과학이 건강하다는 상식을 알지 못했다.
인문학이 그리고 철학이 과학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마땅한 도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과학은 인문학의 폭주를 제한하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이는 인문학이 윤리적으로 과학을 제한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다른 층위의 논의다(발끈할 이들을 위해).
글세요 발끈할 사람은 없을듯 싶은데요 인문학이 윤리적으로 제한해야 하는건 과학이 아니라 인간이죠 ㅋ
발끈할 사람 있다니까요. 그리고 생각보다 많아요. 두고 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