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를 잔잔한 호수에 던지면 원을 그리며 파동이 퍼져나가듯이, 릴레이는 그렇게 블로거들 간에 퍼져나간다. 어떤 릴레이가 멀리 나아가는지, 어떤 릴레이가 오래 가는지, 그리고 이런 시도를 통해 어떻게 별 파워를 지니지 못한 블로고스피어를 오프라인에 영향력을 미치는 공론의 장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일이다.
수령의 릴레이를 받아 글을 쓰다보니 나도 궁금한 게 생겼다.
처음 <이기적인 유전자>와 <다윈 이후>를 접한 것이 대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어떤 고상한 학자들처럼 중고등학교 때부터 괴테니 칸트니 푸코니를 읽은 적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고(시를 좀 써대긴 했다. 유치한 사랑시였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처음엔 책 같은 것 읽지 않았다. 그냥 막막하게 현장에 나가 동물행동학이나 해봤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고, 술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들은 한 선배가 나에게 건내주었던 틴버겐의 원서 한권은 군대에 갈 때까지 겨우 10여페이지 남짓 읽었을 뿐이다. <이기적 유전자>도 우연히 친구를 기다리다가 들른 홍익문고에서 눈에 띄어 샀던 것 뿐이니 학구적 기질 따위 그 이전에 나에게 존재했을리 만무하다.
그리고 나선 학과 공부는 때려치고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생물학과 과학, 철학 기타 자연학 분야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는데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시절에 제렛 다이아몬드의 ‘제 3의 침팬지’니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이니, 에드워드 윌슨의 책들, 굴드 및 조지 윌리암스, 도킨스, 기타 등등을 마구 읽어댔던 듯 하다. ‘이중나선의 꿈’이라는 홈페이지도 그 당시 급조했었고 창조론자들과 전쟁을 벌이며 다들 민주화에 앞장 설때 나는 조무래기 창조론자들과 놀고 있었다. 당시 내게 가장 시급했던 일은 그것이었고 좌파니 우파니 정치니 하는 것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었다. 심지어 내가 9시 뉴스를 챙겨 보기 시작한 것도 대학원 박사과정 이후의 일이다.
그러니 통신 공간을 달구었고, 대자보며 서프라이즈며, 21세기 프론티어 등등의 활동들과 내가 완전히 무관했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 당시엔 네이버를 검색엔진으로 사용했었는데, 내가 검색했던 주요 단어들이라는 게 ‘도킨스’, ‘굴드’, ‘진화’, 진화론’, ‘다윈’ 등이었으니 내가 어찌 진중권, 강준만, 장하준을 알 수 있었겠는가. 정말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게다가 동갑인 변희재가 설치던 당시에도 나는 서프라이즈니 대자보니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처음 내가 좌파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도킨스와 굴드가 서 있는 스탠스에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정치적 스탠스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부터였다. 도킨스에게서 느끼는 차가움은 굴드에게선 따뜻함으로, 도킨스의 정치적인 무관심은 굴드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대비되어 다가왔다.
다시 내가 과학과 좌파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은 ‘과학전쟁’에 관한 글들과 과학철학 및 과학사회학에 관한 글들을 섭렵하던 2000년 무렵이었다. ‘김환석-오세정 논쟁’을 비롯해서 라투어 및 머튼과 소칼의 ‘지적사기’를 접하면서 과학자들과 좌파 사회과학자들 사이의 묘한 긴장관계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즈음에 아마 처음으로 소칼방에서 나대던 진중권의 이름을 들었던 듯 하다. 안티조선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였을 것이다. 나의 첫느낌은 지금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는데, 국내의 좌파 사회과학자들에게 과학은 일종의 권위적인 지적 체계이고 묘하게 권력 혹은 자본과 겹쳐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맞는지 아닌지 그들과 이야기해보지 않아서 알수도 없고, 이런 개인적인 것까지 그들이 표현할 리는 만무하므로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만, 나로서는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고 심각하게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화두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과학자로서 좌파로 산다는 것, 혹은 좌파로서 과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내의 논객이란 자들은 모조리 사회과학 혹은 인문학자들이고, 그들에게서 과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 볼 수 없다. 국내의 과학자들 중 나름 지식인이라 뽐내는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중강연이나 하는 수준이니 이들이 사회에 대해 어떤 진지한 고민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footnote]<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과학자들>을 참고할 것.[/footnote]
나는 굴드를 하나의 모델로 바라보긴 하지만, 굴드에게서 발견하는 많은 문제들도 넘어서지 않을 수 없다. 굴드가 멈춰선 지점에 양신규가 있다. 좌파로서 과학을 생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고민되어야 하는 무엇이고, 아니면 과감히 대한민국이 포기해버려여 하는 것인지 모른다. 교양이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는 것으로 규정지어 지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영원히 낭만주의 과학, 나아가 뉴턴의 자연관에 반대하며 전일론적 과학을 구상하던 괴테를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반쪽의 괴테만큼 우리에겐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좌파로 사는 과학자로 내가 하는 고민은 대충 이런 것들이다.
과학자로 사는 이들과, 과학자는 아니지만 과학에 관심 있는 이들, 그리고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 어떤 이들이라도 좋다. 우선 첫번째 릴레이는 안용열, 이승환, 그리고 로쟈 님에게 돌린다. 세분은 위에 든 세 부류에 속한다고 나름 생각해 본다.
리.. 리승환 동지께!
릴레이에 대한 지적은 확실히 적절한 듯 합니다. 공유 공간이 아니라 개인 공간의 다발인 블로고스피어에서, 너는 그러냐..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만드는 데 적절하겠군요. 물론 게시판에서처럼 적이 생기고 그것을 토벌하는 상황과 같은 것이 벌어지는 식으로 강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애초에 불가하겠습니다만..
무려 포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세상에 몇 안되는 지식인이 수령동지이십니다.
저련님은 당연히 릴레이를 하셔야죠. 하실 줄로 믿고 안 썼습니다. ㅋ 파이륑~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깊이 들어가면 좌빨(이 용어 직접 타이핑하니 참 재밌습니다 ^^)과 과학은 통하지 않나 싶은데요. 출발점이 같은 듯 한데… 어쩌다 보니 사람들이 과학의 겉모습만 보고 권력과 겹쳐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이든 좌빨이든 사고의 프레임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느 사고의 체계이든 겉으로 흉내만 내는 사람이 있고, 제대로 깊이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런면에서 우재님의 깊이있는 사고를 볼 때마다 부럽습니다. 제게도 우재님처럼 깊이 파고들만한 생각의 프레임이 있나 싶어서요.
저언혀 깊은 생각이 아닙니다. ㅎㅎ 이런 고민을 한 학자들도 많고 하는 학자들도 많은데 국내엔 거의 전무하다는 것 뿐이죠.
funding 없이 연구하기 힘든 분야가 많다보니.. 좌파적인 자세를 보이기 힘든 경우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정부에서 연구자의 이념에 관계없이 연구비 지원을 할 수 있는 좋은 나라라면 좋겠군요.. ^^
이건 어째 릴레이가 부진합니다..
주제에 혹해서 그만 트랙백을 걸어버렸습니다. 너그러이 받아주시기를…
잠깐 제 트랙백을 다시 살펴보니, ‘과학적 방법’ 같은 메타적인 문제 이하는 연구실 경험이 풍부하신 분들이 다뤄야 할 듯 하다는 결론이 나오는군요. 알바로라도 들어가야 하나.. ㄲㄲ
좌빨과학자면 펀드를 안준단 말인가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제가 아는 좌빨 스승님들중에 잘나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뭐 제 글이 그렇죠,
우문에 현트랙백입니다.
제가 나중에 귀국해서 혹여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문학자들 실험실 트레이닝 프로젝트를 해볼까 구상중입니다. 과학자들은 부려먹을 사람 생겨 좋고, 인문학자들은 과학을 몸으로 배우니 좋고. 누이 좋고 매부도 좋고
뭐 저보다야.. ㄲ
흥미롭습니다. 초파리를 만져볼 날이 오겠군요. 그나저나 인문학자들이라면 임금이 별로 들지는 않을 듯.. ㅋㅋ
ㅎㅎㅎ…<좌빨>을 자칭하는 분을 보니 기분이 조쿤요. 가끔 들릴께요.
좌빨이 뭔가요? 정확한 정의가 어떻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