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연구서 혹은 이에 준하는 양서들이 팔리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만 특수한 일은 아니지만, 백만권씩 팔려나가는 소설에 비해 그 시장규모가 턱없이 작음에는 틀림 없다. 로쟈님이 거의 대부분의 신간을 독점하고 소개하는 일에 열중이니 나까지 끼어들 필요가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과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책들 중 분명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인 자극이 없다는 이유로 잘 안팔리고 있는 책들, 내가 좀 구제할 수 있다면 해야겠다. 뭐 알라딘 TTB나 기타 등등을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은 없다. 그저 이 글을 읽고 책을 구입하는 분들이 한 분이라도 더 생긴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알라딘의 ‘내보관함’에는 꽤 많은 책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해외에 나와 있는 나로서는 글을 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책이 아니면 이 책들을 구매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책들이 있다. 고전으로서의 가치도 가치려니와, 연구서로서 충실한 그런 책들인데 국내 시장에서는 거의 팔려나가질 않는다. 그 결과는 빈곤의 악순환이다. 좋은 연구서들은 잘 안팔리고, 출판사들은 잘 팔리는 감성적인 책들만을 번역하고 출판하고, 독자들은 거기에 물들고, 좋은 연구서는 뜻이 있는 분들에 의해서만 출판되고, 이 분들은 망하고, 또 출판사는 어쩔 수 없이 대중의 입맛에만 눈치를 보게 되고, 도서들의 질은 점점 떨어진다. 베스트셀러를 욕하자는 게 아니다. 어째 이런 구조가 파이가 커지면 자연스레 빈곤층에게도 이익이 돌아간다는 그 웃기지도 않는 논리와 맞아들어가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제 아무리 소설 시장이 커져도, 연구서 시장은 커지지 않는다. 그건 기학문에 대한 기본적인 투자가 사회공공부분과 같이 취급되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연구서의 가치는, 당장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역사를 두고 보았을 때, 좋은 연구서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곧 그 나라의 문화적 힘이 된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해서 대중의 입맛에 맞는 야시시한 책들만 쏟아 내는 인문학자들도 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인문학 교수들이 기금이라도 만들어서 연구서 출판을 장려할 일이다. 그러다보면 정부도 도와주겠지. 배부른 교수들이 “인문학이 위기야, 내 밥그릇 날아가겠네”를 외쳐봐야 별로 와닿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인문학의 구조조정을 위한 노력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도올이 맨날 외치는 것처럼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대적으로 일제에 끊어져버린 우리 선조들의 책들을 국역하는 것부터, 서구와 동아시아 사상의 원전들을 번역하는 작업으로 인문사회과학의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일까지,이 나라 인문학자들은 도올이 100년 전부터 주장해온 진짜 중요한 이야기엔 귀도 기울이지 않는듯 하다.정말 니 밥그릇 개밥 그릇이다.(유행에 따르자면, 이건 앞으로 ‘니밥개’라고 불러야 겠다).
중요한 책부터 안 중요한 책의 순서로 나열해야겠으나,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으라는 이유로 안 팔리는 책부터 그래도 좀 팔리는 책의 순서로 나열하겠다. 우연히도 중요한 책이 잘 팔리는 경우는 내가 뭐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건 좋은 일이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권의 책은 전혀 독자들에게 인식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내가 가진 좋은 책의 선정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이 책들이 형편없는 것이거나 뭐 그럴 것 같다.
<파스퇴르 쿼드란트>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혹은 기술 및 공학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식인,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 나아가 정책입안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그런 책이다. 책이 주장하는 바는 아래의 그림으로 다 설명된다. 적절한 수준에서의 조화, 파스퇴르가 탄저병 백신을 개발했던 것과 같은 그런 식의 연구를 주장하고 있는데, 나도 책을 읽어 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보론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자연을 이해하려는 충동은 강하지만 실용화와는 동떨어진 닐스 보어, 실용적인 성격은 강하지만 자연에 대한 이해와는 동떨어진 에디슨, 그리고 이 둘을 모두 추구한 파스퇴르 모 이렇다.
발생학자이자 20세기의 ‘마지막 르네상스맨’으로서의 과학자 콘라드 워딩턴의 책 중 무려 단 한권만이 겨우 번역되어 있다. 그것도 그의 주옥같은 철학서나 연구서가 아닌 <미래의 인류사회>라는 가장 만만한 책이다.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발생학에서 출발해서 결국은 초파리 유전학으로 꺼져가는 등불 같던 다윈의 진화론을 구제한 토마스 헌트 모건의 책도 단 한권 번역되어 있지 않은 판국에, 워딩턴의 책이 그나마 번역되었다는 것은 다행이다. 모건은 극단적인 회의주의자였는데 따라서 그는 자신이 실험해보기까지는 다윈의 진화론도 멘델의 유전학도 믿지 않았다. 그냥 안 믿은게 아니라 아예 책까지 내면서 씹었다. 특히 고전으로서도 가치를 지닌 많은 책을 출판했는데 국내에서는 아예 유전학의 전통에 중요한 이런 책이 번역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론 피셔, 홀데인, 라이트 삼형제와 도브잔스키, 마이어(이 할아버지는 예외), 심슨의 책들도 번역될 일이 없을 것이다. 모건이 쓴 책의 리스트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워딩턴의 후생유전학적 풍경에 대한 소개는 내가 최근에 팔아 먹은 글을 참고하시길.
워딩턴의 이 책은 아예 ISBN을 넣어야 검색이 되시는 분이다. 게다가 그림도 안뜬다. 내가 소개하는 많은 책들이 알라딘에서 표지를 불러오지 못하는데(버젓이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쓰럽기 그지 없다. 뭐 그렇다.
생물철학자들 중에서 마이클 루즈 같은 철학자처럼 경박하지 않으면서도, 좀 제대로 된 종합적인 사고를 펼치는 인물이 그닥 많은 것은 아니다. 진 게이욘(Jean Gayon)등이 그런 인물인데, 데이빗 헐(David Hull)은 적어도 모두를 아우르는 성실한 학자로 명망이 높다. 무려 학술진흥재단에서 선정되어 번역된 책인데 판매수준은 참패다. 그래도 이런 책은 좀 낫다. 학진에서 지원을 받을테니까(세상에 이 책은 티스토리 책 검색에서 제목으로 검색해도 1권이 나오질 않는다. ‘과정으로서의 과학+헐’로 검색했더니 겨우 1권을 찾을 수 있었다).
무려 “사회비평가로서 나는 내 조국(미국)의 운명과 다른 나라들의 운명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이 책을 쓴다.”라고 말하는 시어도어 로작의 이 연구서도 컴퓨터의 발달과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현대인이 겪게되는 아이러니를 치열하게 파고든 연구서다. 미디어 시대 미디어 시대 하는데, 시뮬라르크나 되내이는 것보다는 좀 제대로 사회를 분석하고 개념을 만들 일이다. 로작은 미국에서는 진보적 지식인으로도 이름 높은 인물인데, 반미(진중권은 항미라더라, 민노당이 항미연북)감정과 더불어 로작의 정치비판서는 좀 팔리는 모양이다. 로작의 말로 정리.
우와 님 블로그 대충 훝어보고 감탄해서 링크할라는데 -_-;;이글루스에서 어떻게 링크하는지를 모르겟네요. 님 포스트가 자동으로 뜨게 어떻게 링크하는 법없나요. 이글루스면 걍 링크해버리면 편한데 ㅜ.ㅜ
그냥 즐겨찾기 해야하나요.
여기다 댓글달기 뻘줌하네 ;;
한RSS를 사용하세요. 양질의 블로그들만을 엄선할 수가 있답니다. 쿨게이들을 안볼수도 있죠.
예전에 비해서 좋은 책들이 꽤 많이 번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팔린다는 이유로 고전이라 불릴 수 있는 책들도 이제는 절판, 품절 요런 상태네요. 좋은 책이 잘 안 팔리고 있는 것도 독자나 책을 공급해주는 출판사가 다 얽혀있는 문제라 출판사 탓만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말로 된 전문서나 학술서는 교과서 제외하고 정말 손에 꼽을 정도라 ㅡㅡ
팔리든 안팔리든 좋은 책 번역을 지원하고 출판하라고 마냥 출판사에 압력을 넣는다는 건 돈 벌지 말고 굶어라라고 하는거나 같으니 그럴 수는 없는 문제고, 결국은 출판 시장에서 전문서나 고전의 출판 문제도 과학/공학 분야에서 순수과학이 연구될 수 있도록 장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해두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확실히 공공재 투자의 철학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계속 (순전히 제 기준에서 -_-) 싸구려, 하향평준화가 안되려면.. 그리고 좋은 책에 깔려있는 시대적 고민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면… <파스퇴르 쿼드런트>에 나와있는 미국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정책의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바뀌지만 기본적으로 ‘순수과학’이라 불리는 연구에 대한 지원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안고 가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구요.
칼 폴라니가 마이클 폴라니 형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링크 신고하고 갑니다.
정진 정진해서 나보다 훌륭한 학자로 성장하길. 이 말은 이미 나는 훌륭하다는..컥.
잡설하고 폴라니 형 아우 문제는 알고 있었는데 쓰고 나서 수정이 귀찮아서..사실 그닥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수정하겠음. 쿨게이들이 이런걸 가지고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거지 내말은. 니 얘기 아니고.
쿨게이 따위의 글보다는 이런 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현실은.
돈과 여유와 문화와 그 삼박자가 만드는 무서운 실력이다. 다 그런건 아니고. 결국은 돈과 제대로된 정책이겠지. 나도 살아남으려면 내일부터라도 좀 달려야겠다.
요 글이 블로그 메인페이지에 바로 안 떠서 그런거 같은데요 (순전히 물리적인 이유이길 바라는;) 많이들 RSS 쓰시니 상관없으려나 ㅡㅡ
제국 쪽 소식도 좀 전해주세요 ㅋㅋ 이제 ‘겉보기’ 시스템에서는 차이가 그리 많이 나는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제국은 도대체 뭐가 다른겁니까. 결국 뿌리내린 문화 차이인건지… 해답은 결국 돈으로 귀결되기 때문인건지…
요즘엔 글이 기관포처럼 쏟아져 나오네요. 눈팅해온지 꽤 되는 사람입니다만 솔직히 말해 조금 질리기까지합니다.
좋은 책도 소개주시고 하셨으니 감사의 뜻으로 글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제국에 대한 공포와 조국에 대한 비탄을 동시에 느꼈다는…….
미국의 한국 비밀문서 이야기
http://www.thekison.org/pages/kison-archive-kn585.htm
http://www.thekison.org/pages/kison-archive-kn586.htm
ps. 지금 다시 읽으니 자꾸 승정원일기가 떠오릅니다.
http://erebus4.tistory.com/13
질리신다면 잠시 글을 접고….
좋은 링크 감사.
파일은 여기서 받으세요 => http://818986.hidisk.op.to
호 나름 흥미있는 내용들을 담은 책들이네욤 나중에 기회도면 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