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문화부 장관의 주도로 세워진 한예종은 그 설립 과정부터 기존 사립예술대학들의 질시와 견제를 받으면서도 지난 14년간
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거뒀다. 우리도 ‘세계적인 예술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설립 취지에 한예종은 충분히 부응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론과의 존재에 딴죽을 걸며 황지우 총장을 사퇴시키고 한예종을 구조조정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예종의 이론과에는 정부에 비판적인 좌파 이론가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뉴라이트의 비일관적 행태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이념적으로 악용해서는 안된다고 누차 천명했다. 시민들이 모일때마다 정부와 우파는
시민의 정치적 배후를 의심했고, 누군가 이념적으로 그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었다. 시민의 배후에 그런 조직이 있다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비록 촛불시위가 자발적인 것이었다는 정황적 증거가 뚜렷하지만, 이념적/정치적 배후를 걱정하는
정부와 뉴라이트 단체들의 기우는 이해할 만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와 뉴라이트 단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촛불시위에 가져다 댄 비판의 칼날이 한예종 사태에서는 그대로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모른다는 것이다. 전임 대통령의 서거에
모인 시민들의 이념적/정치적 배후를 비판하는 세력이 이념적/정치적인 이유로 한예종을 척결하려는 것은 초등학생에게도 어이 없는
모순이다. 왜 어떤 사안은 정치적인 악용을 우려하면서, 다른 사안에는 정치적 악용을 자행하는가. 이명박 정부에겐 정책적/도덕적
일관성이 없다. 결국 가장 이념적인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것은 정부가 비난하는 좌파세력이 아니라 정부 그 자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대학의 자율화를 말했다. 교육제도의 개선은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천명한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대학을 내버려두는 것이 지난 30년간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는 가장 손쉬운 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자율화의 기본은 ‘대학 교육의 자율화’가 아닌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는 30년간 한국 대학의 발전을 저해한 요인이
‘입시제도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대학자율화의 또 다른 이름은 ‘대학 입시 자율화 3단계 정책’이다.
한국의
대학들중에 세계적인 대학이 없는 이유는 대학입시제도에 자율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대학교육의 문제는 뽑는 데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면서 막상 가르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교육이 사람을 만든다. 이 말은 좌파던 우파던 모두가동의하는
테제다. 강남의 사교육 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투자해 현행 입시제도에 맞춤 교육을 받은 아이들만 상위권 대학에 진입시키겠다는
입시자율화는 대학의 무능을 스스로 드러내는 우회적인 표현방법일 뿐이다. ‘우리는 너무나 못나서 질 좋은 학생을 뽑아놓지 않으면
대학을 발전시킬 수 없다’라는 교육적 무능을 솔직히 시인하는 셈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을 신봉하는
세력집단이다. 학생들은 육질이 좋은 송아지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대학생들의 실력은 이미 고등학생 때 결정되어 있는 것이고,
대학은 그 육질을 선별하는 교육기관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라면 대학은 그냥 교육기관이라는 명칭을 버리는 것이 옳다. 육질 좋은
소고기를 감별하는 기관은 더 이상 교육기관이 아니라 감별기관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말 대학은 병아리 감별사일 뿐인가.
진정한 대학자율화는 입시자율화가 아니다. 대학의 자율화는 일정한 역량을 갖춘 이들을 골고루 뽑아 놓고 이들을 누가 더 우수한
인재로 길러낼 것인지를 가리는 경쟁에 그 핵심이 있다. 정부가 할 일은 대학의 운영에 자율권을 주고 대학이 제대로 된 교육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뿐이다. 그 자율권은 입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대학의 진정한 가치는 교육기관이라는 그 말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경쟁’이라는 말을
입시가 아닌 대학교육에 적용하는 것이다. 대학은 자신들이 가진 교육철학과 교육관으로 경쟁하고 정부는 이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우수한 대학에 더욱 많은 지원을 해주면 그 뿐이다. 그것이 대학자율화다.
과학의 발전에서 대학과 정부의 역할
과학의
발전에서 대학이 끼친 영향력을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 말은 즉, 대학이라는 제도의 설립이 과학자라는 ‘창조적 소수’를
기르는 데 있어 언제나 가장 효율적인 기관은 아니었다는 말과 같다. 13세기부터 설립된 유럽의 대학들이 학문의 부흥을 이룬 것
같지만 지속적인 것은 아니었다. 17세기에 이르러 대학은 왕권과 교회 권력과 결탁했고 현재 우리가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자유사상가들은 별도의 모임을 조직하고 대학 밖에서 활동했다.
갈릴레이가 가장 좋은 예다. 갈릴레이의 위대한 업적들은 파두아대학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반동분자들의 모임인 ‘아카데미아 델
시멘토’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갈릴레이는 결국 파두아 대학을 떠나 플로렌스로 가서 투스카니 대공의 개인수학자로서 그의 위대한
저술들을 출판한다. 17세기를 구분짓는 위대한 과학자들 중 거의 아무도 대학교수의 직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과학혁명은 대학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이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다. 특히 갈릴레이의 위대한 업적을 시기한 것이 교회의
성직자들로부터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갈릴레이의 반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불안을 느낀 대학 교수들에게서 나왔다는 점도 주목해야할
사실이다. 한예종의 ‘창조적 소수’들을 시기하는 사립예술대학 교수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왕권과 교회에 예속된
대학에서 불만을 느낀 자유사상가들은 독일에서는 ‘소시에타스 에로네티카’를, 영국에서는 ‘로얄 소사이어티’를 조직했고, 이러한
모임들은 17세기 중엽을 거치며 학회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자발적인 조직이었던 학회가 대학과 연계되기시작하면서 다시금
타락이 벌어지고, 18세기에 이르면 제도권 대학에 대한 반발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중의 하나가 스코틀랜드 버밍엄의
만월회였다. 결국 대학은 19세기 말엽에 가서야 제대로 조직을 이루고 대학 중심의 학계는 20세기 이후에야 가능해진 것이다.
갈릴레이와 같은 ‘창조적 소수’는 정부의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대학제도로부터 탄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참여했던
반동분자들의 모임, 그리고 투스카나 대공과 같은 뜻있는 독지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유럽처럼 오래된 대학제도의 실험을 거치지
못한 우리는 입시정책이라는 잘못된 화두에 촛점을 맞춤으로서 지난 30년간 제대로 된 교육실험을 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결국
교육의 상당부분이 모두 정부에 귀속되었고, 대학과 같이 자율적인 고등교육기관조차 정부에 목을 매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우리에게 ‘시카고 학파’와 같은 학풍의 건설은 요원한 일
그
결과는 우리가 가진 상위권 대학들의 세계적 경쟁력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학문연구 기관으로서의 대학이라는 기능과, 사회준비인을
배양하는 기관으로서의 대학기능이 적절히 조화되지 않은 채, 후자만을 쫓아온 결과가 바로 현실인 셈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대학엔
학풍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상황이 초래되었다. 우리에겐 ‘시카고 학파’도 ‘베를린 학파’도 없다. 그저
서울대학과 지방대학이 존재할 뿐이다.
필자의 눈에 ‘창조적 소수’를 천명한 한예종의 지난 14년은 우리에게도 시카고 학파와 같은 하나의 학풍이 예술이라는 분야에서
사상최초로 생겨나리라는 하나의 희망이었다. 비록 역사적 실험과 정책입안자들의 무지로 관주도 형식을 빌릴 수 밖에 없었지만,
총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구성원들의 열정이 어떻게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 수 있을지를 가능케 하는 위대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 위대한 실험을 부수려 한다. 갈릴레이를 질투해 그를 종교재판에 세웠던 낡은 대학교수들처럼,
사립예술대학의 교수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정부에 동조하고 있다. 그들의 질투는 한예종의 실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너무나 뛰어난
성과들을 올리고 있기에 그들의 눈 밖에 난 것이다. 우리는 다시 중세로 돌아가고 있다.
정부, 민영화 그리고 제3의 길
뉴라이트는
한예종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필자도 한예종과 같이 위대한 대학이 정부의 이념적/정치적 공격을 받느니 차라리
민영화로 자율성을 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하는 민영화는 어린 아이를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처럼
책임감 없는 헛소리다. 교육재원의 대부분이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결국 민영화를 위한 자본을 어디서 충당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300억이라는 국가의 세금이 들어가는 한예종이 아무리 밉더라도 14년간 쌓아온 그 경험과 노력이 보존될 뒷길은
터주어야 한다.
유럽의 과학혁명의 배경에는 과학자들과 자유사상가들의 자발적인 조직을 후원하던 뜻 있는 독지가나
귀족들의 존재가 있었다. 유럽에서의 과학혁명은 그런 독지가와 귀족들의 후원으로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서구전통은
현대에 이르러 비영리민간재단, 즉 제3섹터형 기구로 정착한다. 우리에겐 구미에 존재하는 제3섹터의 지원이 미미하다. 예를 들어
분자생물학의 혁명을 이끌었던 록펠러 재단과 같은 자본, 백신개발에만 투자된 빌게이츠재단과 같은 자본이 대한민국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김석현, 혁신정책Brief 2005). 이 말은 천민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이제야 논의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와도
통하는 일이다. 서구대학과 학문적 발전의 주춧돌인 비영리민간재단의 지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한예종의 민영화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특히 민영화의 의미가 단순히 한예종을 상업논리가 지배하는 민간자본에 귀속시키는 일이라면
이는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예술의 가치는 상업적으로만 환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영리민간재단의 가치는 그들의 활동이
말 그대로 ‘비영리적’이라는 데 있다. 300억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던 대통령의 사회환원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적
천민자본주의 속에서, 기초학문과 기초예술의 보장은 아직 정부가 떠 맡아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스크린쿼터를 지켜야했고 이로부터
한국영화의 부흥을 얻었던 것과 같은 논리라는 말이다. 결국 정부는 미국과 같은 비영리재단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들은 그런 철학과 비젼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한예종은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모순을 드러내는 희망의 상징이다
결국 한예종 사태는 여러가지 면에서 상징적이다. 첫째, 대학자율화라는 이명박 정부의 기조가 가진 오류를 그대로 보여주는사건이다.
교욕의 자율화로 급성장을 이룬 한예종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현 정부의 자율화 정책이 결국은 입시지옥을 만드는 일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둘째, 학벌중심사회라는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정부의 철학적 무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대학졸업장을 포기하고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겠다는 한예종의 ‘창조적 소수’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는 간판과 학벌로
서열화된 대한민국에 던지는 희망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셋째, 대학교육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예종사태는 상징적이다. 정부의 이념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본이 부재한 대한민국의 현실속에서, 한예종 사태는
자본을지녔다는 이유만으로 학문적/교육적 성과가 정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힐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넷째, 위의
이유들과 더불어 이제 우리도 학문과 교육의 발전을 위해 기업이 나서야 한다는 장기적 전망으로서의 상징이다. 대한민국의
기업들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수 없이 외쳐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국가는 우파 자유주의자들도 바라는 세상이 아니다. 따라서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는 비영리재단과 같은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뉴라이트 세력도 마찬가지다. 정부주도를 탈피하는 길이 반드시 민영화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시장의 사잇길은 존재한다. 자본주의의 본령인 미국에서 가장 번창한 비영리재단의 예는 이 땅의 우파들이 얼마나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사고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예종이 국립대학으로 출발한 것이 비극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그만한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출처는 정부뿐이다. 그리고
파국은 다시금 정부로부터 왔다. 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장기적인 교육정책의 수립이 무조건 정부주도로만 가서는 안된다는 데
있다. 정부에 모든 짐을 떠넘긴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비영리민간재단을 설립하는 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한예종의 좌파적 성향에 대해 정부가 분노하지 않아도 되고, 한예종도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비상할 수 있는 궁극적인 대안이다. 나아가 그때에서야 우리는 제2의 한예종, 제3의 한예종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학풍 없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한예종은 그런 상징이다. 우리는 한예종을 지켜야 하고, 한예종을 통해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촛불강경진압 전직 대통령 기록물 반출시비 용산참사 인터넷실명제 미네르바구속 노무현검찰수사 서울광장봉쇄 한예종등 일련의 사태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이 모든 일의 판단에 어떤 일관된 흐름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마도 배후에 이명박의 자문 그룹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이지요. 이명박이 개개의 현상에 대해 이 정도의 일관된 이념적 판단을 할 정도로 정교한 이데올로그는 아닌 것으로 보이거든요. 아마도 작년 촛불시위 중반쯤에 정부 출범 당시부터 자문해온 온건파들이 불신임을 받아 밀려나고, 보다 강경한 그룹으로 교체되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촛불시위 초기에 두번씩이나 직접 사과하고 재협상 대표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했지만 촛불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강경파들의 자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들의 주문대로 강경진압으로 돌아 섰을겁니다. 어쨌든 그 후 촛불시위가 사그라드는 효과를 봤고 새로운 자문그룹이 신임을 얻었겠죠. 그 후로 진행된 일련의 강압적 조치들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고요. 물론 제 의견은 거의 음모론 수준이니 신뢰하거나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정말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학풍이 없는 대학, 너무도 뼈아프군요…
김우재님의 글이 한예종 사태가 잘 해결되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김우재님이 우리나라 생물학계의 새로운 학풍을 이끌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정체성의 전제가 독립이라는 것이 여기서도 느껴지네요. 물적 토대가 없는 독립이란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고보면 결국 대개의 정체성이란 그 물적 토대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겠지요. 실제 삼성의 많은 장학지원이 결국은 학문의 정체성을 ‘식민화’하는데 있듯이 말이죠. 그럼에도 그 물적 토대의 인력에 당겨지지 않으려 버티는 힘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모든 독립 운동은 결국 ‘자유’를 위한 투쟁이며 동시에 ‘자기의 이유’를 찾는 과정이리라 봅니다.
밥과 자유라는 이 두 개의 분열된 욕구의 싸움은 참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밥이 자유라면 얼마나 좋을까요?ㅎㅎㅎ
기획예산처 예산표가 웹에 있나 모르겠다는. 대충 09년 예산 기준으로 순수학문(당연히 거대과학 포함)이나 순수예술 예산 합쳐봐야 2~3조원정도 되는, 별로 큰 돈은 아니었던 기억이(정규예산이 2백조니까 1%). 이게 그렇게 주기 싫어서 그러는건지, ㄲㄲ
그럴지도…
저는 그럴만한 역량이 없을 듯 합니…컥
언제나 딜레마죠..밥과 자유
공무원들이 빼돌리는 돈만 대충 더해봐도 그 정도는 넘는 것 같더군요.
글 전체적 맥락이나 결론에는 공감하지만 부연 설명 내지는 이견이 있어서 늘어놓습니다.
한예종의 경우 아시는 것 같지만(오타가 나신건지 중간에…) ‘국립대학’으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국립학교(컨서바토리)라고 봐야겠죠. 정확하게는 프랑스의 Conservatoire(정확한 명칭은 Conservatoire de la Musique et la danse)를 모델로 한 것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음악원’이라고 번역되며 전세계 음악원의 효시가 됩니다. 또한 그 안에는 매우 보수적이라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죠.
그래서 초대 총장은 당연히 음대, 그리고 물론 작곡가였던 사람이 맡았습니다(관습적). 음악 이론가이기도 했고 서울대 출신이었죠. 음악원 – 무용원이 사실상 의미나 맥락상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보고 있고 실제로 소위 ‘비약적’ 발전이란 다 거기서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비약적 발전이란 것은 대체적으로 국제 콩쿨 입상입니다(그것도 사실은 대체로 영재교육에 의해 이미 예상된 일이고, 대학 입학 시기의 학생들은 그런 기량이라고 말하긴 좀 어렵습니다). 아무튼 총장을 위시해서 상당수의 교수들은 서울대 출신들이었고, 또한 그 서울대 출신 교수들은 서울대 주류파들의 권력 다툼(실력 다툼은 아니고)에서 밀려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초기부터 사립대는 물론, 국립대인 서울대와도 마찰이 많았죠.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은, 한예종이 한계를 느끼고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켜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게 먹힐리가 없었죠. 사실 서울대의 경우 꽤 기분이 상해 있었습니다. 유일한 음악/예술분야의 국립대로서 존재하고 있었는데 한예종은 훨씬 더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등등… 그러던 중 그런 학위(최소 학사 이상 수여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니 서울대는 물론이고 모든 사립대들이 대놓고 반대했죠.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해보자면, 당연히 유럽식인 음악원 제도와 미국의 종합 대학제가 공존하는 형태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사실은 이게 미국식이군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게 수용이 될 나라가 아닙니다. 학위 역시, 석사는 물론이고 지금은 당연 박사가 대세고, 소르본느는 물론, 이제 자리 하나 마련하려 스탠포드(공대)까지 갑니다(그러니 한예종 예술사라……) 현실적으로. 생물학자는 회사를 가든 연구소를 가든 연구를 하면 월급이란 것이 나오지만 ‘한국에서’의 음악가는 자기 돈을 써가며 연주를 하거나 작곡을 합니다. 한 마디로 학계의 ‘자리’ 혹은 외국에 자리잡지 않는 한 말 그대로 그냥 굶어 죽습니다. 세계적인 예술가요?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을 보면 참 신기할 정도입니다.
아무튼 그런 종합대학으로의 승격 요구란 것은 한예종 스스로가 정체성을 포기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립대들도 한예종이 싫었을 겁니다. 새로 나타난 경쟁자임은 물론이고 국가에서 상당한 자금을 투여해서 시설과 교수들을 갖춰 갑자기 서열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지각변동을 막고 있었던 것이 학위 문제였는데 그걸 또 동등하게 해달라? 당연히 난리가 나죠.
한예종이 차별화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그 전문성과 교육체계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자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뭐 천재들이야 많이 있고 그게 예고로 갈 건지, 인문고에서 공부 잘 하며 있다가 대학에 갈건지, 유럽식 시스템인 꽁세르바투아로 갈 건지의 차이만 있으니까요. 그 중 몇은(주로 연주자에 해당됨) 재능이 있다면 원래 당연히 미국이나 유럽에 조기 유학을 갈 것이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지금까지의 한예종의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죠. 뭐 피아노의 경우야 이젠 유럽에서 한국으로 배우러 와야 하지 않냐 할 정도로 기술적 발전이 축적된 상태니..
지금 이런 일련의 얘기들을 큰 틀에서 보자면 시스템의 충돌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복지’와 큰 정부의 유럽과 ‘시장’과 자유경쟁의 미국 시스템도 충돌하고 있죠. 물론 그 2 시스템은 양쪽의 장점들을 못지않게(유럽-시장 작지 않음, 미국-예산 지원 적지 않음) 가지고 있지만 한국은 그야말로 그런 게 거의 없죠. 예술, 인문 분야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뒷전이거든요. 정부나 사람들이나.
이런 곳에서의 한예종이 미국, 프랑스의 꽁세흐바투아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포지션을 점한다는 것이 역설적이고 의미심장합니다. 정치적, 성향 상으로도 완전 정반대군요. 솔직히 그 쪽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한예종 진짜 ‘골치덩어리’입니다. 그런 걸 해결하기보다는 삽질해서 파 내려는 사람들처럼 쿨하지 못해서 이 정도밖에 못쓰겠습니다.
시카고 학파의 예를 보고 생각이 나서 잠시 하나만 더 남깁니다. 예술 전반에 대해선 제가 감히 코멘트 하기 어렵겠고(사실 하고 싶지 않아서) 음악계에서라면 시카고 학파 이상의 수많은 다양성들이 존재는 합니다. 주로 유학지와 배운 선생에게 소급되는 그런 맥을 따라 형성되는 것이죠.
작곡의 경우에는 어느 나라나 공통적인 문제인데, 소위 그 나라 전통성을 추구하는 흐름이나, 소위 최신의 현대적 경향을 따르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 경제학에서처럼 어떤 쟁점에 대한 관점에 의해 일종의 무리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바흐나 베토벤 시대 정도라면 가능했겠군요. 현대 예술의 특성상 소그룹 이상의 거대 흐름들이 한 국가 내에서 형성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보다 아카데미즘과 예술 본연에 충실한 예술(혹은 소통의 예술)이 갈등하고 있는 국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중 한국에서 후자는 밥벌어 먹고 살기가 상당히 곤란하므로 어쩌면 ‘교수 자리를 확보했거나 가능성 있는 예술가’와 ‘그럴 가능성 없는 막장 예술가’들의 피튀기는 뒷담화 모습이 MB시대의 기록영상으로 남을 것 같군요.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그 2 부류가 유학시절엔 그래도 상당히 전도유망하고 뛰어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별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인….
여하튼 서울대가 문제가 됩니다. 한예종에 대해 좀 더 잘 알수 있었습니다. 비판적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자주 들러서 댓글 부탁드립니다. 배우는 게 많습니다.
천재작곡가/ 크헐! 현장에서 느낀 문제들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