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스는 1870년 뉴욕에서 출생, 1955년 사망한 문헌학자다. 그는 콩트의 실증주의에 매료되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고, 이를 학문의 분류체계에 적용시켰다. 콩트를 따라 그는 지적인 발전이 물질적인 발전을 유발하고 촉진시킨다는 입장에 섰다. 그는 진보의 단계가 신학적 단계(사제와 군인에 의한 지배), 형이상학적 단계(성직자와 법률가에 의한 지배), 실증적 단계(산업경영자와 과학자에 의한 지배)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식의 분류법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루어진 체계일 것이다. 이론적인 것, 실천적인 것, 제작에 관한 것으로 잘 알려진 그의 분류법은 오르가논이라는 방법론에 의해 통합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내가 쓴 글을 참고.
콩트는 모든 지식을 이론적 지식과 실증적 지식으로 구분했다. 이론적 지식은 다시 자연과학과 형이상학으로 구분하고, 자연과학은 다시 추상적 지식과 구체적 지식으로 구분된다. 실증적 지식은 수학과 5대현상군의 6개 실증과학으로 체계화된다. 아마 현대사회에서 지식에 위계를 두는 전통은 콩트에게서 시작된 것도 같은데 그가 학문의 주제를 수학-천문학-물리학-화학-생물학-사회학의 순서로 배열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분류법에 동의하지 않는데, 발생학적 탄생순서가 학문의 엄밀함을 결정한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은 블리스의 1929년 논문 Bliss, Henry Evelyn, “The System of the Sciences and the Organization of Knowledge.” Philosophy of Science 2, no. 1 (January 1935): 86. 에서 가져왔다. 이 논문을 통해 블리스는 각종 지식분류체계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일치점을 부각시키고, 지식의 지적 상호관계와 체계를 포함하는 지식의 조직을 보여주려고 했다. 서지학 혹은 문헌학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중요한 것은 실증주의자의 전통속에서 블리스의 분류법에는 ‘과학’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역사적으로 원래 그랬다. 우리가 잊었을 뿐. 다음 논문을 참고하면 블리스의 생애를 간략하게 나마 알아 볼 수 있다. 남태우, “블리스(Bliss)의 서지 분류법에 관한 연구.” 한국정보관리학회지 22, no. 2 (2005). 블리스의 1929년 논문은 일독할 가치가 있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는 문헌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체계를 부여하려고 노력한 그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다.
Can intellectual purposes be served more satisfactorily in “freedom” by unorganized, inconsistent, confused contrivances with undefined terms and tangled terminologies? Are the revelers in kaleidoscopic views drifting onward to be submerged in unending futile disputation? Come; let us abjure this unresoned pessimistic negation! – H.E. Bliss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