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급진적 생물학자 (2008-2011), 아카이브 (2002-2013)

들풀에서 줍는 과학: 김준민

들풀에서 줍는 과학10점김준민 지음/지성사

생태학자 김준민(96세)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별세하셨다고 한다. 사실 김준민이라는 이름을 오늘 처음 듣는다. 나는 한국의 생물학자들에 대해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한다. 석주명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리고 석주명이 나비학자로서도 국어학자로서도 (강영봉, 제주어(濟州語)와 석주명(石宙明), 탐라문화, 2002; 석주명에 대한 괜찮은 논문은 다음을 참고하면 좋다. 문만용, ‘조선적 생물학자’ 석주명의 나비분류학, 한국과학사학회지, 1999)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전통이 분명히 끊겼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과학자들의 계보를 잠시 공부해 본적이 있지만, 그다지 학풍이라 부를만한 뚜렷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갑작스레 닥친, 준비도 안된 해방 이후 한국의 과학은 산발적으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그러한 발전 과정에 제동을 걸었던 사람이 박정희다. 이후, 그나마 산발적으로 연결되던 박물학의 전통조차 한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신과학운동이나 장회익 교수 등의 흔적이 보이는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에 이르러서 최재천 교수가 귀국하면서 생태학이나 동물행동학, 그리고 진화생물학이 대중적으로 인지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사회생물학을 최재천 교수보다 먼저 소개했던 전북대의 이병훈 교수가 있다. 

<들풀에서 줍는 과학>에 소개되어 있는 김준민 교수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한국생태학회지의 창간사를 쓰신 것으로 보아, 생태학회를 창립한 주축 멤버이셨던 듯 하다. 
소개 : 1914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일본 동북제국대학 이학부 생물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와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식물의 생태> <식물생태학> <39가지 과학충격> <과학자들은 지금 무엇을 연구하고 있을까>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기후와 진화> <토양과 문명> <생물에서 본 세계> 등이 있다.

<들풀에서 줍는 과학>은 한국의 과학에세이집들의 경박단소함에 질린 나의 선입견이 놓치게 만든 책인 듯 하다. 미리보기를 읽어보고 놀랐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겠다.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집이 아니다. 다음 서평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대학의 텍스트로 써도 될 정도로 전문적인 내용들이 실려 있다.

2년 전 과학기술부(당시)와 과학문화재단(현 과학창의재단)으로부터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한 ‘들풀에서 줍는 과학’(2006, 지성사은 김준민 선생이 한국의 생물과 자연을 평이한 서술로 풀어낸 에세이다.

하지만 결코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책장 마디마디에 생태학 연구에 평생을 보낸 노학자의 지혜와 철학이 묻어나는가 하면, 대학 덱스트로 써도 손색없을 높은 수준의 생태학 지식이 빼곡히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진달래는 양지에서 자라지 않는다거나 아카시아가 산림녹화에 제일 알맞다는 것, 겨울철 이른 한파가 대나무를 죽인다는 등 일반이 알아두면 유익할 우리나라 식물에 대한 상식과 정보가 가득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과 오류 속에 살아가는가. ‘들풀에서 줍는 과학’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하고 있다. 산성비,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지리산 반달곰 등 중요한 환경문제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상식과 편견을 바로 잡아준다. 결국 우리는 지나치게 환경을 걱정하며 사는 셈이다. 우리 환경을 제대로 알면 더욱 환경을 사랑하고 보전하는데 매진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은유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들풀에서 과학을 줍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을 일독함으로써 우리는 사소한 들풀에서조차 숭고한 자연의 섭리를 읽고, 정교한 과학의 교직을 체험하는 행운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들풀서 과학 줍는 식물학자 ‘김준민’>

달팽이에 관한 에세이로 유명한 권오길 교수가 김준민 교수의 제자라고 하니, 한국 생태학 혹은 거시생물학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아셨을 분인데, 누구 하나 그 생생한 역사를 전해 듣고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을까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나마 이런 인터뷰가 눈에 띄는 것은 다행이다. <들풀서 과학 줍는 식물학자 ‘김준민’>. 이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을 올겨본다.

지구온난화 피하기 어렵지만 적절히 대처할 것  

Q. 식물생태학 하면, 요즘 기후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A. 독일에 ‘물푸레나무가 참나무보다 먼저 푸르면 그해 여름엔 비가 많이 온다’는 속담이 있어요. 여름에 북태평양의 저기압이 발달하면 비가 많이 오는데, 그걸 물푸레나무가 미리 안다는 거죠. 식물과 생태학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터득한 지혜인데, 우리는 좀 미진한 것 같아요. 식물과 기후와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잘 안했던 거죠.

Q. 유사한 속담이 우리에게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A. 이게 생각나네요. ‘참나무는 벌판을 내다보면서 연다’는 말. 도토리가 많이 열리는 해는 가물어요. 도토리는 많이 열리지만 농사는 잘 안 된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봄에 도토리꽃 필 때 가물면 자연 도토리가 풍성하게 되죠. 하지만 논은 물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흉작이 되죠. 반대로 도토리꽃 필 때 비가 많이 오면 꽃이 떨어져서 도토리가 적게 열리고, 농사는 풍년이 든다는 거죠.

Q. 이런 걸 정리한 학문을 뭐라고 하나요?

A . 페놀로지라고 해요. 굳이 해석하면 계절학 또는 화력학이라고 해요. 사실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에요. 후학들이 열심히 했으면 좋겠는데….

Q. 요즘 지구온난화다 산성비다 해서 세계가 기후변화를 놓고 큰 걱정을 하고 있는데요

A. 사실 너무 민감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 세월 기후와 생태계 변화를 지켜본 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온난화를 피하기는 어렵지만 그로 인해 초래될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인류가 적절히 대처할 것으로 믿고 싶어요. 

Q . 선생님께서 천착해 오신 식물학과 생태학이 최근에 아주 중요한 학문으로 진화되고 있는데요. 두 분야를 일찍이 공부하신 선각자 입장에서 한 번 정리해 주시죠. 

A. 최근 들어 생명공학이나 생태학이 각광을 받는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죠. 하지만 학문을 하면서 세태에 너무 영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공부를 해서 세상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학자의 임무 아닌가요? 조금 이름나면 아는 척 잘난 척 하는 세태, 참 안타까워요.

Q . 그래도 생명공학 분야는 신성장동력 학문으로 전망이 좋지 않습니까?

A. 정부, 학계, 거기에 기업까지 나서서 올인하는 현실은 바람지하지 못해요. 그렇다 보니 정부와 산업계가 지원하는 연구비조차도 생명공학 분야에만 집중되고 있는데, 이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요. 마치 우리가 생명공학을 잘 할 수 있는 DNA라도 가진 듯 착각하고 있지만, 생명공학 분야에도 우리가 세계적 수준까지 도약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그리 많지 않거든. 또 요즘처럼 너도나도 줄기세포 연구에만 매달리다가는 생물 분야에서 우리가 정말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소외되기 십상이고 이 같은 ‘연구 편식’이 결국은 총체적인 측면에서 과학기술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죠.

Q . 이공계 기피다, 과학기술 홀대다 해서 과한기술 분야가 술렁이고 있습니다만….

A . 그런 거 떠들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과학자란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자기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그것으로 족해요. 열심히 안하면서 매명이나 하려고 하면 그건 과학자가 아니죠.

Q. 그런 열정도 중요하지만 기초과학 분야에 대해선 아무래도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지 않나요?

A. 그건 맞아요. 학문의 발전은 기초에 있고, 산업기술 등의 응요 역시 기초분야가 든든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선 제도적으로 우수 인재들이 기초 분야에 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줘야겠지. 

당신의 열정엔 마침표가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중앙일보의 기사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눈에 띈다.

교수가 책을 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김 교수는 1914년생이다. 올해 나이 아흔셋. 출판사 관계자는 “그런 종류의 조사가 없어 장담할 순 없지만 아마 국내 최고령 저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책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복기하는 회고록이 아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이 쓴 글을 적당히 묶고 자기 글 한두 개 붙여 엮어 낸 것도 아니다. 그의 책은 생명과 자연을 다룬 대중 과학서적이다. 

김 교수는 산성비든, 지구온난화든 너무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진달래는 양달에서 피는 것이 아니라 북쪽 사면에서만 자란다는 주장도 했다. 또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을 풀어놓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게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만 254명이다. 그는 “전국 교육대학 10곳에서 생물을 가르치는 교수 20명이 내 제자”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교수시절 30년 동안 휴강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해방 이후(식민지 이전의 과학사는 대충 정리가 된 상태지만, 식민지 직후 박정희 이전까지의 역사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김준민 교수처럼 노장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과학사가 누군가는 이 역사를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한국 박물학 혹은 자연사의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박물학자도 아니고, 자연사를 전공하지도 않았으며, 더더구나 내 전통과는 ‘생물학’이라는 카테고리 하나를 빼고는 공통점도 없는데 굳이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는가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역사들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진다. 최재천 교수가 이런 작업들을 진행중이라면 다행이지만, 최 교수도 역사에는 그다지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요즈음엔 ‘대학문국’이라는 주제로 주로 ‘미래’를 향한 운동에 열심이신 듯 하고.

한국생태학회지의 창간사와 함께, <들풀에서 줍는 과학> 뒷표지에 실린 글을 옮긴다. 과학자의 에세이들은 역사적 맥락에서 의미부여만 된다면 가치 있는 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에세이들의 역사는 상당히 길다. 문제는 이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써 연구하셨던 그 토양에서 언제나 평안하시길.


나는 과학자들이 아직도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과학자들은 마치 인류가 이제 자연의 비밀을 대부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연은 결코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비단 오존층 파괴 문제가 아니더라도 들에 핀 꽃 한송이, 연못에서 헤엄치는 개구리 한 마리에 대해서도 사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1. 짧은 인터뷰이지만, 노학자의 말에서 느껴지는 자상함과 사려깊음 그리고 당당함에 경외의 마음이 절로 나는군요.

  2. 몇해전 학과 대학원생들끼리 책읽기 클럽을 진행할때 두번째로 선택했던 책이네요.
    (달랑 둘이서 만든거였지만…).

    이곳에서 이렇게 보게 되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오늘 다시 꺼내서 읽어봐야 겠어요.

    이곳에 올때마다 읽어야 할 책들이 나날이 늘어 갑니다.
    살짝 클릭하기가 두려워 진다고나 할까?
    (그…그래도 포스팅 하는 글은 꼭 읽을꺼에요!)

    좋은 밤 되세요.

  3. 학문분과와 무관하게 존경받을만한 분이시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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