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인가 경제학을 전공한다는 이에게 이자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말했더니 나이브하다고 하길래, 내가 그 생각을 어디서 떠올렸을까 반추해보니 케인즈의 책에서였다. 해당 구절을 찾아 올린다. 이런 이야기는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월요일이 되기전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생각으로 한 자씩 또박또박 옮겨본다.
오늘날에 있어서의 이자율은 지대의 경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결코 어떤 진정한 희생에 대한 보수가 아니다. 토지가 희소하기 때문에 토지의 소유자가 지대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이 희소하기 때문에 자본의 소유자는 이자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가 희소하다는 데 대해서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본이 희소하다는 데 대해서는 본질적인 이유가 없다. 이자라는 형태의 보수가 제공될 때 비로서 진정한 희생이 바쳐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희소성이 존재해야 할 본질적인 이유는 장기적으로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개인의 소비성향이 자본이 충분히 풍부하게 되기도 전에 완전고용 하에서의 순저축을 끝나게 하는 성격의 것일 경우에는 예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있어서조차도 국가의 기관을 통해 사회의 공동저축을, 자본이 희소하지 않게 되는 점까지 자본을 성장하도록 하는 수준에서,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자본주의의 이자생활자적인 측면은 그것의 역할이 끝날 때에는 소멸되는 과도적인 단계로 보는 것이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개역판), J.M. 케인즈, 조순 역, 비봉출판사, 2007, 452-453쪽.
아마도 나는 케인즈가 피력한 이 견해를 그대로 개진했었는데, 뭐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니까 무시당해도 되는 거겠지. 생각할 수록 웃기다. 은행이라는 조직이 자신의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이자율만 가지고 돈 놓고 돈 먹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 그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만 할 수 있어도 케인즈의 의견은 당연히 귀결 아닌가?
“토지가 희소하다는 데 대해서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본이 희소하다는 데 대해서는 본질적인 이유가 없다.”를 별표하고 갑니다. 오랬만에 인사드립니다.
이 책은 1936년에 출판되었슴. 자본주의의 위기 시점이었지. 논쟁의 역사적 문맥은 길고 그 이후의 파장도 매우 길어서 다 쓰기가 쉽지 않지만 이 부분은 그의 사상과 당시의 경제적 상황의 전체 문맥에서 봐야하는 구절임. 이 논리의 귀결로 케인즈가 국가 저축을 강조했음. 국가 저축이 머냐믄, 4대강 같은 거. 가카를 떠올리며 문제점의 하나를 간단히 짚을 수 있으려나. 글고 이 말이 나온 문맥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거임.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지금도 자본주의는 위기야. 그리고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맥락에서 나온거라는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지도 모르겠고. 길게 쓰기 귀찮으면 맨날 짧게 그렇게 투덜대시던가. 뭐 어차피 긴 호흡으로 차분히 쓴 글을 본 바 없으므로 별 기대는 안함.
그리고 포인트는 “이자율은 과도적이라는 거야”. 내 주장은 그건데 왜 엉뚱한 소리? 그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거 아니면 필요 없음
고율// 상대성이론을 원자력발전소에 쓰던, 핵무기에 쓰던 상대성이론의 참거짓이 변하지 않듯이, 종교를 돈을 모으는데 쓰든, 진정한 종교인의 길을 가든 그 종교의 참거짓이 변하지 않듯이, 케인즈가 위 논리를 공공사업 증가를 주장하는데 썼든, 돈놀이를 까는데 썼든 위 논리의 참거짓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일단 자본의 희소성에 관해 나름 따져보면, 공급과 수요간의 차이가 희소성을 결정할텐데, 은행은 항상 있고 대출로 사업을 차리는건 생활에 필수적이진 않으니 경향상 자본에 희소성이 생기기는 어렵겠네요. 다만, 예외가 있다면 사업성이 될만한 자원이나 컨텐츠가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겠지만 이것 역시 항상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 잭팟이라 희소성을 보장하기엔 한계…. // 사업거리가 없어서 금고에 쌓인 돈에 대한 수요/공급의 상호작용이 희미해지게 되면, 생산의 방향이 새로운 사업이 창출되는 것 보단 기존의 것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경제체제가 결정될 것이므로 생산의 주체가 자본에서 노동자로 이동하긴 하겠네요. 하지만 이건 노동자의 개선이라는 새로운 컨텐츠를 창출하게 되므로 복지시스템 감시나 기술개선 등의 또다른 자본의 발생을 자극하는 가능성을 갖고있어서(예를들면, 1차산업에서 2차산업이, 2차산업에서 3차산업이 창출되듯이….), 과연 이자율을 자본주의의 소멸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드네요. 하지만 발생되는 자본의 규모는 특수하고 세부적인 부분인 만큼 점차 축소될 듯…. //결론 : 자본은 희소성을 갖을 수는 없는데, 다른방식으로 진화하게 되서 결국 사라지진 않을테고, 이율시스템 역시 사라지지는 않을 것. 하지만 자본의 규모는 평균적으로 점차 작아질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그냥 경제전공은 개념도 안잡힌 나이브한 네티즌의 잡생각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