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아이디는 시골의사다. 다행히 사람들은 박경철의 직업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는데, 그건 그의 아이디 때문이기도 할거다. 그도 의사로 본업을 시작해서 경제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정지훈은 소셜네트워크 및 여러 IT분야의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그도 의사다. 하지만 트위터에 관한 백분토론에 그가 초대될 정도니 그를 소셜네트워크 전문가로 아니 부를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어떤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가지는지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공계의 의사라면 인문계의 짝으로는 변호사가 있다. 전원책은 백분토론의 단골 논객이다.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변호사 혹은 검사 출신이다. 물론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박원순은 변호사다. 의사 안철수와 서울시장 후보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채 후보대통합을 한 그 인물 박원순은 변호사라는 말이다. 이제 기억이 날 거다. 박원순은 ‘변호사’라고 불린다.
의사와 변호사 출신의 두 인물이 서울시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질투가 난다는 게 아니다. 배알이 꼴린다는게 아니라, 이게 과연 한국사회에서 우연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인간 안철수와 인간 박원순만을 떠올리고 있는데, 나는 왠일인지 그들의 직업적 정체성을 되묻게 되더라는 말이다. 그들은 의사 안철수이고 변호사 박원순이다.
왜 의사와 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서울시장 후보로, 그것도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을까? 그 사실이 한국사회에서 의사와 변호사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무관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사와 변호사라는 직업군에서 이처럼 활발한 사회적 활동가들을 마주칠 수 있는 이유가, 안철수 개인이나 박원순 개인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의사나 변호사가 한국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그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경제적 안정성이 다양한 의사/변호사 출신의 사회활동가들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내가 내리는 결론이다. 혹자는 안철수나 박경철은 국가에 좀 찍혀도 다시 의사로 돈 벌면 그뿐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 정도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조금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당신이 자식을 의사나 변호사로 만들고 싶은 것과,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제외하고는, 물론 연예인의 -양극화되어 있긴 하지만- 수입을 보면 이것도 예외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의사와 변호사를 선망하는 이유가 안철수와 박원순이라는 상징적인 인물들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게 보수가 되었건 진보가 되었건 그런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사회의 구조가, 의사나 변호사라는 직업군의 사회적 활동을 아주 자유롭게 만들고, 그들의 활동을 용인하고 평가할 만큼 변화했다는 뜻이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의사가 뭘하던, 변호사가 뭘하던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의사질이나 잘하지, 변호사질이나 잘하지 라는 말을 안한다는 뜻이다. 사회의 구조는 그렇게 형성되고,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며, 그 인식은 해당 직업군의 사회적 활동을 보장하는 암묵적 동의가 된다.
안철수나 박원순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있다. 의사나 변호사 대신에 ‘과학자’라는 직업을 위의 말에 대입해 보라. 그게 다다. 한국사회에 기여한 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부류가 둘 있는데 하나가 과학자들이고 또 하나가 프로그래머들이다. 그들 모두 경제적 기여만큼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데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그런 구조를 만든 사회적 원인은 무엇일가? 그걸 고민해보자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윤리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윤리적 책임을 지기 위해서 자신들의 지위를 위해 ‘투쟁’해야 할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들에겐 그런 지위가 이미 주어져 있었다. 우리는 아니다. 그렇게 가장 절실해야 할 한국의 과학자사회는 참 태평하다. 오늘 사이언스타임즈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어떤 변화를 기대한다기보다는 현재 돌아가는 세상을 보니, 뭔가 한마디는 보태야겠기에. 내 생전에, 과학자와 프로그래머가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하는 상황을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나라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라는 확신은 든다. 투쟁은 이런 인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동감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과학자가 우리나라 사회로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과학자들 스스로의 문제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학이라는 학문은 마땅히 사회와는 동덜어진 곳에서 순수한 연구를 수행해야된다는 이상한 사회적 통념도 잇는 것 같고, 무엇보다 과학자들 스스로가 이 통념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순수 연구가 아니면 다들 취업이나 생각하고 있는 것이 공대생들의 현실이니까요. 사회 현안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잘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지는 않고 ‘나는 공대생이잖아.’하고 마는 친구들을 많이 봤거든요. 마치 사회 현안에 대한 문제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다루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갈려있죠.이런 의미로 몇몇 인문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자왈 소크레테스 얘기만 하고 정작 사회현안에는 관심가지지 않는 것이 과연 철학인지도 의문입니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그러지는 않겠지만요.
제 탓입니다.
과학자의 사회참여가 저조한 까닭 중 하나는, 과학이란 학문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과학은 이전에 전해 내려오는 지식을 습득하는데에만도 수많은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서 자신만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희생이 따르게 됩니다. 또한 학위 취득 이후에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만 과학자들의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습니다. 천재가 아닌 한 대부분의 시간을 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에 투자하여야 겨우 중간 정도 하는 곳이 과학자 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의 과학자들은 사회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부족합니다.
아시다시피 가정이 생기는 3-40대부터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젊은 날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해야 나이 들어서도 그 관심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데, 과학자들은 20대초반의 대학생 시절부터 자리 잡아 자신의 연구실을 갖는 30대 중반까지 그 오랜 시간을 공부하고 연구하는데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특별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과학과 사회참여를 동시에 잘 하는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 글의 내용 속에 나와있습니다. 의사나 변호사들은 과학자보다 안 바쁜 사람들일까요? 님이 그런 과학자를 본 적이 없는 이유는, 한국사회가 그런 전통을 경험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고, 그런 사회적 구조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씨는 의사긴 하되 임상 의학을 전공하지 아니하고, 기초 의학(혹은 과학)인 생리학 전공하였습니다. 박사 학위는 ‘심장 전기생리’이며 학위 뒤 취업할 때도 단국대학교 의대 임용되었습니다.
시골의사는 외과 전문의 및 개업의로, 의사로서의 명성은 거의 없지만, 주식 투자 및 경제 관련 컬럼니스트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만약에 “의사의” 사회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의업으로 얻은” 경제적 풍요라고 한다면, 안철수나 박경철은 적절한 예가 아닌데, 창업을 통해 얻은 부나, 주식 투자/베스트셀러 저자/강연료로 얻은 부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의사 출신 국회의원은, 비슷한 직종인 간호사나 약사 출신 보다 더 수가 적거나, 비슷한 정도이며
현실적으로 의사의 정치 및 사회 활동 참여는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회를 향한 비전이 아니라, 돈 따위가 정치를 하겠다고 누군가 나서는 근거가 된다면, 재벌 회장들이 정치하고 있을 겁니다.
글의 내용을 잘 생각해보세요. 안철수나 박원순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왜 그 직업군에서 저런 인물들이 나오는가에 대한 사회구조적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되었건 그들이 의사라는 사실은 사회 속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풍요가 그들의 사회활동을 만드는 게 아니라, 경제적 지위에 대한 인식을 가진 직업군에서 그런 이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를 사적 차원으로 끌고 가면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겠죠. 하지만 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잘 모르시나본데, 정주영 명예회장과 그 아드님, 그리고 수 많은 재벌들과 정치인들의 혼맥을 전혀 모르시나 봅니다. 돈따위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근거가 되는 사회가 한국입니다.
문제 의식에 공감합니다. 해결 방법은…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