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지난세대 과학자들이 한 역할을 너무 무시하지 말라는 ‘충고’에 답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과거에 대한 평가는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에 따라 갈리는 법이다. “6.25 동란 때는 참 힘들었다” 는 방식의 자기방어를 듣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읽으라고 권했던 글도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수십년 전에는 지금보다 교수 되기가 편했다는 사실에 대해 먼저 근거를 대실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질문은 현재의 과학계의 시스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사후연구원이라는 제도가 생긴 것이 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만 찾아봐도 저런 말은 쉽게 할 수 없다. 네이쳐나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드는 노력과 비용, 그리고 경쟁이 과거보다 얼마나 더 치열해졌는지도 구글을 뒤져보면 금방 찾아볼 수 있다. 과학자의 수가 많지 않던 당시와 지금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그동안 증가한 대학의 일자리 수와, 늘어난 과학자 수를 비율로만 따져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현재의 과학자가 대학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몇배는 힘들다. 네이쳐지가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박사공장”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실었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나올 답을 도대체 왜 나에게 묻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근거를 제시하라니? 근거를 줘도 읽지 않는 사람에게 나는 두 번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꼰대짓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꼰대짓은 자신이 누구인지나 밝히고 정정당당하게 해야 그나마 봐줄만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 질문엔 그닥 해줄 말이 없다.
두번째 질문은 더욱 가관이다. 블로그에 글을 뜸하게 쓰던 무렵 나는 “과학자의 본령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의 본령은 실험입니다”라고 말했었다. 그 뿐 아니라, 내가 쓴 글이 과학자가 과학을 때려치우고 사회운동으로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없다. 저런 류의 반박을 하는 이들이 모여서 자위를 하는 곳을 알고 있는데, 그다지 대꾸해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바로 몇주전에 이에 관해 이미 글을 썼고, 그 글은 아무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내가 <과학지식인열전>을 통해서 온통 고민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 고민을 들어볼 생각도 없이, 저 짧은 글만 달랑 떼어내서 혼자 과잉해석을 하며 자위를 한다는 것은, 그냥 평소에 나를 싫어해서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기회만 엿보던 하이에나 같은 부류 이외의 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욕을 듣기 싫으면 자신이 누군지 밝히면 된다. 나는 익명의 뒤로 숨어 장문의 글을 남기는 이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여기 있다. 이 글의 최근 부분들을 읽어보면 된다. 몇몇 글은 검색이 안되는 듯 한데. 이 후에 실린 글은 이거다. <과학과 사회운동의 사이에서> 착각하는 것 같은데, 과학자들 보고 과학 때려치우고 사회운동이나 하라 그러는건 내가 아니라 과학사회학자들이다. 이것도 안 읽을 듯 하니, 벡위드의 말로 대신한다. 벡위드의 말은 두번째 질문자 같은 부류에게 “빅엿이나 먹으라”는 의미다. 울트라 그레이트 엿까지 먹고 싶으면 조용히 기다리면 된다.
“나는 과학자가 생산적인 과학 경력을 쌓아 가면서도 동시에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활동가가 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분열된 개성을 지니고 과학을 시작했다. 과학 바깥의 사상 세계는 나를 매혹시켰지만, 과학자 공동체 내부의 세계로부터는 너무나 동떨어진 듯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 있어 두 개의 세계는 점차 하나로 합쳐졌다. 나의 정치 참여는 과학에서의 생활과 융합되었다. 과학의 철학, 역사, 사회학에 관해 읽은 책들은 나 자신의 과학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과학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그 놀랍도록 인간적인 활동에 대해 숙고해 보는 법을 배웠다.”1 . [존 벡위드]
그리고 다시 내가 한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멍청하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과거에 대해 서로 간에 다른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합니다. 어린 순진한 영헌들을 과학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고 있는 분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과 비교한다면 당연히 그 때에 비해 지금이 교수가 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왜냐하면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자료들과 더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과 20년전만해도 인터넷은 없었고 도서관에 자료도 없었으며 논문을 한 편 보기 위해서는 몇 달을 기다려 우편물실에 들락날락했어야 했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클릭 한 두번으로도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당연히 연구의 속도와 질과 양이 10여년전과도 달라졌고 20여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현재 교수가 되기 더 어려워진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만큼 더 젊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부와 연구의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80년대 후반 학번에 비해 90년대 초중반 학번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었고, 90년대 학번보다는 2000년대 학번 사람들이 더 훌륭한 환경에서 더 좋은 교수들 밑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당연히 지난 10여년, 혹은 20여년간 교수가 되기는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린 영혼들을 과학의 구렁텅이에 넣고 있는 사람들은 80년대 학번도, 90년대 학번도, 이제 갓 박사 학위 받을까 말까하는 2000년대 학번도 아니잖습니까? 그 사람들은 50년대, 혹은 60년대, 혹은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이미 교수가 되었던 사람들이고 지금은 은퇴했거나 나이 지긋해서 에헴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교수가 되기 쉬었던 그시절에 교수된 사람들에 의심스럽다면 그 당시에 교수가 되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교수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겠지요. 그리고 지방의 시시한 작은 대학이 아닌 지금으로 치자면 CNS 등에 논문이 여럿 있어야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위 큰 대학들 명문대학들에 교수가 된 사람들이 과거 5,6 70년대에 어떻게 교수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지요. 지금도 지방의 상당수의 시시한 대학은 교수 되기가 님께서 생각하시는 그 과거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적당한 최소한의 연구 성과만 뒷받침 된다면요.
주변의 수학자분들은 리버럴하시다던데, 정작 그쪽께서는 참 보수적인 사고를 하고 계시다니 재미있습니다. 계속 많은 조언을 해주시길.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재미있습니다. 제가 요즘 만나본 젊은 생물학자들은 참 다르던데 재미있는 일입니다. 수학이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