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위한 플랫폼

얼마 전 ‘인문학 공부를 위한 효율적인 텍스트 읽기‘라는 제목의 글을 슬로우뉴스에 기고했다. 평소 실험과학자로 살면서 ‘원전이나 읽고오시’라는 자들이나 라깡을 지젝대는 이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농담이다, 공부란 내 만족을 위해 스스로 하는 것일 뿐이다. 라깡을 지젝대건 바디우를 데리다 쌈을 싸먹건 내가 알바 아니다 ) 쌓은 대강의 비법들을 풀어놓은 것이다.

저 글을 읽고 이때다 싶어 멘델레이를 깔고, 포켓을 사용해보고, 구글 스칼라나 공짜책 사이트를 이용해 공부를 한다면 글이 목표로 한 개인적 차원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 정보들을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이나, 공부에 목을 매지만 시간이 없는 이들과 공유한다면 목표의  사회적 차원 중 소극적인 측면에만 성공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저 글이 의도로 하는 것은, 공부를 해서 남을 줄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저 글을 읽고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룬 사람은, 도대체 왜 학술정보의 양과 질, 내용 뿐 아니라 학술정보들을 구성하고 조직화하고 심사하고 퍼뜨리는 모든 행위의 플랫폼들마저 우리가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가하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엔드노트도, 멘델레이도, 펍메드도, 구글스칼라도 모조리 서구의 플랫폼이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아마존과 이베이와 알리바바, 플랫폼을 가져간 자가 시장을 독식한다. 학문 시장이라고 다를 바 없다. 영어라는 플랫폼을 빼앗긴 상황에서 어차피 학문적으로 세계와 경쟁하는 것은 불리함을 안고 싸우는 것인데, 거기다 학술정보들이 글로벌화되고 온라인으로 병합되는 과정에서마저 우리는 완전히 뒤쳐지고 있다. dbpia, riss.kr, kiss.kstudy,  papersearch, 한국의 논문들은 이름도 외우기 어렵고 산재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데다 대부분 무료도 아니다. 서울대학교의 학위논문은 윈도우 시스템이 아니면 볼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경만 교수가 글로벌 지식장 안에서 대결하라는 말은 본말이 전도된, 아니 선후가 바뀐 강단학자의 분석일 뿐이다. 지금 우리 학문의 내용이 없어서 우리가 밀리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과학이 서구중심인 것이 단지 학자들이 게을러서 그런게 아니다. 우리에겐 플랫폼과 시스템이 없다. 시스템은 대학을 바꿔야 하는 일이니 힘들겠으나, 플랫폼은 대학을 상정하지 않고도 바꿀 수 있다. 아무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아래의 웹사이트와 서비스들은 단지 과학분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서구학술정보들이 점점 오픈소스의 형태로 나가고 있으며,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학술정보시장으로 들어와 플랫폼을 구성하고 있다는 증거다. 톰슨 로이터는 SCI라는 사기에 가까운 지표로 학자의 학술적 권위를 계량화해 전세계의 과학을 망쳐놓았다. 이제 다양한 학자들과 회사들이 학술정보가 공공의 권익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사익에 봉사하고 상아탑에 갇힐 것인가를 두고 벌어질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네이쳐와 사이언스지가 과학을 잠식해나갈때, 서구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과학의 공공도서관 PLoS를 만들어 오픈액세스 저널의 시대를 열었다. 서구의 과학자들은 단지 상아탑에 머무는 이들이 아니라,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몸이 너무 멀리 있다.

  • ORCID Open Researcher and Contributor ID는 과학자와 다른 학문 저작자를 인식하기 위한 비영리 숫자 코드로 비영리조직에 의해 오픈소스로 운영되고 있다. 연구자라면 당장 등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뭔지 모르겠다면 한글 위키백과를 참고할 것.
  • ORCID와 비슷한 개념으로 ResearchID.com이라는 곳이 있다. 어디가 이길지 모르니 둘 다 등록해 놓는 것이 좋다.
  • ResearchGate는 과학자들을 위한 소셜네트워크다. 최근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논문을 이곳에 올리면서 공짜로 볼 수 있는 논문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구글스칼라는 이곳의 PDF 논문을 검색해 검색결과 우측에 띄워준다.
  • Academia.edu 도 리서치게이트와  비슷한 류의 학자들의 연구공유 소셜네트워크다. 최근엔 왠만한 미국대학들에 소속되면 자동으로 이곳에 등록된다.
  • Open Science Framework 는 갈 수록 과학의 결과들이 부정으로 얼룩지고, 재현성이 떨어지고, 과학자들의 비밀주의가 성행하는 것에 대항에 등장한 비영리조직이다. 현재는 심리학과 암생물학의 데이터 재현성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들을 가동 중이다. OSF에 관해서는 다음 뉴스페퍼민트 번역의 필립 볼 칼럼을 참고할 것.
  • Publons 는 굉장히 실용적인 사이트다. 과학자들은 저널 편집자의 부탁에 의해 익명으로 논문 심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무보수 봉사에 가깝다. 실제로 논문 심사를 해주는 것으로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큰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펍론스는 이런 과학자들의 불만을 세련되게 풀어주려고 만들어진 사이트다. 여기서 남의 논문을 리뷰해준 과학자는 자신이 리뷰한 논문들을 공개하고 크레딧을 얻을 수 있다. 논문을 쓰는 것 뿐 아니라, 심사한 것으로도 자신의 캐리어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솔깃하지 않은가?
  • Impactstory는 유료 사이트 같은데 자신의 학술논문이나 출판물들이 인용되고 SNS에 리트윗되고, 멘델레이에 저장된 정도를 포트폴리오로 분석해 알려주는 사이트 같다. 유료로 할 생각은 없지만.
  • Pubchase 의생명과학자들의 Pubmed search를 도와주는 사이트로, 무료다. 논문을 매개로한 의생명과학자들의 소셜네트워크 정도로 보면 된다.
  • F1000 엔드노트와 멘델레이를 잘하면 한방에 날려버릴 서비스로, 온라인 논문주석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놀라울 정도의 유저인터페이스를 지니고 멘델레이나 엔드노트와의 완벽한 호환성, 워드프로세스와의 완벽한 호환성을 보여준다. 논문 정보를 저장하기엔 이보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는 듯 하다. 물론 유료가 될 것 같긴 한데 고민중이다.
  • QUARTZY https://www.quartzy.com 는 과학실험실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시약 주문부터 랩미팅, 논문 작성 등등을 모두 관리할 수 있다.
  • LabX http://www.labx.com 는 실험실 기기를 중고로 교환하거나 판매 구입하고, 경매까지 하는 시스템이다.
  • 앞으로 이 블로그에 발견하는 족족 계속 추가할 예정이다.

과학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비단 자연과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최근엔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어플중에 실험을 매개로 한 장난같은 SNS도 등장하고 있고,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사회과학 너머까지 학술플랫폼 시장은 완벽하게 미국에 의해 장악되어가는 중이다. 삼성이 절대 애플을 넘어설 수 없는 이유는, 아이튠즈, 애플스토어, 최근 공개된 애플뮤직과 팟캐스트 같은 플랫폼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학문시장에 희망은 없다. 어차피 대학은 망하는 중이지만, 학문까지 망하는 건 시간 문제다. 우리도 뭔가 플랫폼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김경만/강정인 교수가 사회학의 글로벌 지식장이니 학문식민지니 가지고 책상발림 논쟁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뜻이다. 더 깊은 원인을 짚어나가야 한다.


학문플랫폼을 위한 참고문헌들 (마지막 업데이트 2015.06.11)

  • Hunter, P. (2015). Web 2.0 and academic debate: Social media challenges traditions in scientific publishing. EMBO Reports, e201540721. doi:10.15252/embr.2015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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