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사의 챗GPT가 한바탕 전세계를 시끄럽게 만든지도 꽤 오래되었다. 아직까지 우리가 직접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엄청난 혁명적인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박태웅 의장의 말처럼, “잠재적인 패턴”이 숨어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분야에서 조만간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이 반복작업에 불과한 일들은 더이상 인간의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1, 처음 챗GPT가 세상을 흔들었을 무렵, 내 분야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글 몇 편을 주간경향에 연재했었다.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 [김우재의 플라이룸](35)챗GPT와 한국 정치 – 주간경향 1511호. 2023.01.16
- [김우재의 플라이룸](36)AI와 종말, 저항, 희망 – 주간경향 1515호. 2023.02.20
- [김우재의 플라이룸](38)AI, 인문학 그리고 과학 – 주간경향 1523호. 2023.04.17
- [김우재의 플라이룸](39)약탈적 학술지와 인공지능 – 주간경향 1527호. 2023.05.15
권위있는 학술지로 알려진 네이처지는 사실 잡지다. 미국의 사이언스지도 마찬가지다. 그 둘은 타임지나 이코노미스트 같은 잡지로 분류되고, 잡지 안에는 수많은 광고가 실려 있으며, 논문은 부록처럼 제공될 뿐이다. 굳이 부연하자면 네이처라는 잡지/학술지는 잡지를 흉내내는 학술지이자 학술지를 빙자한 잡지다. 실상 이런 잡지들이 과학학술생태계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 중 하나는, 네이처가 가끔 과학저널리즘에 충실한 일을 잘 해낸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 당시에도 네이처에 실린 여러 과학자와 생명윤리학자들의 인터뷰가 큰 기폭제로 작용했고, 자신들의 밥그릇인 거대학술지의 독점이라는 문제만 제외하고 본다면, 과학생태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네이처지만큼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잡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네이처가 이제 인공지능 AI가 과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를 시리즈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2023년 9월 27일에 실린 사설의 제목이 “AI는 과학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 이제 연구원들은 그것을 길들여야 합니다”였다. 이 사설은 과학연구 자체에 AI가 사용되는 측면, 즉 알파폴드, 일기예보, 의료진단 등에 대한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학분야 역시 잠재적인 패턴이 존재할 것으로 예측되는 복잡한 데이터셋에서 패턴을 알아내는 일은 AI의 역할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1600명의 과학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요약하고 있다.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네이처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바로 영어로 진행되는 과학연구논문 작성이 AI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영어가 모국어인 이들은 과학연구에서, 특히 논문과 연구비 작성에서 엄청난 특혜를 누렸었다. 하지만 방대한 영어문서로 학습한 LLM들은, 영어가 비모국어인 과학자들이 거의 완벽한 영어문장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내가 직접 LLM을 사용하면서 주간경향에 바로 그런 변화가 AI가 과학계에 가져올 직접적인 변화의 서막일 것이라고 예측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2.
1600명의 설문조사결과 중 AI가 과학에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나타낸 표는 다음과 같다.
여러 설문조사 결과들 중, 현재 설문에 응한 연구원들이 AI를 자신의 연구에 사용하는 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은 진지하게 연구에 사용하는게 아니라, 흥미를 위해 사용한다. 그리고 LLM의 특징처럼 상당수가 코드를 짜고, 연구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논문작성을 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과학의 데이터는 잠재적인 패턴을 알아내는 것만으로 과학의 내부로 편입되지 못한다. 과학활동은 “재현가능한 측정량과 이론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며, 측정량만으로는 과학이라는 건물을 축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해석하고 이론을 만드는 일이 과학활동의 또다른 축이며, 바로 그 훈련이 과학자로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다. AI가 과연 그 영역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바야흐로, AI의 시대다. 하지만 과학에 있어서라면 AI는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AI의 시대에, 어쩌면 가장 안전한 직업은 과학자가 될 것이고, 바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자만이 나와 인문학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학자가 한국에 존재할 리 없다3.
- 권위적인 소설가의 발언에 대해 비판했을때, 한 시니컬한 페북 유저 한 명이 생물학자가 왜 인공지능에 대한 글을 쓰느냐고 조롱하는걸 봤다. 20년전 이택광과 조정환이 촛불혁명에 대해 토론할 때 그들의 현학적인 언어를 비판하고, 이후 이택광의 라깡에 대한 윤지선 한남충 같은 논문에 대해 비판했을때, 경희대 교수라는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이 “초파리나 연구해라”였다. 그 이후 나는 한국 인문학계에 남은건 쓸데 없는 권위주의와 알량한 자존심뿐이라는걸 확신했다. 통섭이니 경계를 넘자느니 하는 말로 연구비를 타는 주제에, 누군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분야를 침범하는걸 견디지 못하는 그들이야말로, 한국 학계의 적이다. ↩︎
- 그 내용은 위의 글 4 편 중 한 둘에 있다. 나는 그 이상 친절하게 글을 지시해주지 않을 것이다. 공부에 게으른 자들이 너무 많다. ↩︎
- 핵심은 밀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