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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행동분석 도구의 문턱값

언제였던가, 아마 내가 2014년 오타와대학에 교수로 임명되기로 한 이후에 참석했던 콜드스프링하버 <초파리의 신경생물학 Neurobiology of Drosophila> 미팅에서 초파리 행동분석 도구의 사용을 두고 젊은 연구자들끼리 작은 미니세션을 가졌을때 일이었던 것 같다.

생체시계와 수면연구로 유명한 아미타 시갈 랩에서 포닥을 하고 교수가 된 한 연구자의 얼굴이 세션 내내 일그러져 있었고, 계속해서 자기가 하라는데로 설치를 해봤는데 설치도 안되고, 행동분석도 안된다고 투덜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미국에서 교수로 자리를 잡고 연구비와 실적 압박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가뜩이나 초파리 행동분석 도구들이 프로그래밍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문턱값이 높아 짜증이 났던 것으로 보였다. 나처럼 아예 처음부터 그런 복잡한 행동분석은 포기하기로 한 사람 마음은 편했지만, 아마 그 미팅 이후 자넬리아 미팅을 다녀온 이후에 초파리 행동분석이 머신러닝 및 인공지능 발달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는걸 보면서 나 역시 좌절감을 느낀건 사실이다. 그 내용은 내 책 <플라이룸> 첫 장에 잘 녹아 있다.

며칠전에는 중국의 한 그룹이 무려 74종류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행동분석 도구를 논문으로 출판했는데, 이번달 말에 난징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꼭 만나볼 생각을 하고 있다. 초파리 행동분석 도구는 여전히 빠르게 진화 중이고, 사실상 모든걸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다.

Mi, K., Li, Y., Yang, Y. et al. DVT: a high-throughput analysis pipeline for locomotion and social behavior in adult Drosophila melanogasterCell Biosci 13, 187 (2023). https://doi.org/10.1186/s13578-023-01125-0

하지만 초파리가 어떤 모델생물인가. 기르기 쉽고 빠르고 생쥐에 비해 돈이 적게 들어서 쓰는 생물이다. 사실상 시모어 벤저가 처음으로 초파리 행동유전학을 창시했을때, 그는 주광성을 측정하는 아주 간단한 장치로 돌연변이를 찾아 행동과 유전자를 연결시켰다. 이후 코노프카가 생체주기를 24시간 측정하는 장치를 만들었지만, 그것도 아주 간단한 적외선 투과장치였을 뿐이다. 19970년대에 비하면 현재 초파리 행동유전학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장치는 너무나 방대하다.

교수를 관두고 타운랩을 준비할 때, 벤저의 유산을 따라 학생들에게 아주 값싸고 간단한 장치로 초파리의 섭식행동을 연구하는 FlyFAT이라는걸 만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당시 생각했던건 아두이노 같은 값싼 컴퓨터와 PCB를 사용한 전자회로, 그리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초파리를 사용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행동유전학 연구를 할 수 있다는게 내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나와 아주 작은 인연이 있는 조르지오 질레스트로 교수가 에토스코프 Ethoscope라는 아이디어로 내 구상을 나보다 잘 구현하고 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에토스코프는 3D 프린팅으로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는 행동분석 도구와 PCB와 아두이노로 구성된 카메라 및 분석장치만으로 구현되는 초파리 행동분석 플랫폼이고, 정말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장치다. 만약에 나중에 타운랩을 하게 된다면, 이 장치는 아마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논문 업데이트를 읽다보니 질레스트로 교수가 아직도 에토스코프를 업데이트 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Laurence Blackhurst, Giorgio F Gilestro, Ethoscopy and ethoscope-lab: a framework for behavioural analysis to lower entrance barrier and aid reproducibility, Bioinformatics Advances, Volume 3, Issue 1, 2023, vbad132, https://doi.org/10.1093/bioadv/vbad132

에토스코프는 처음 PLoS one에 출판되었고 주목을 덜 받았지만, 지금은 꽤 유명한 시스템이다.

Geissmann, Q., Garcia Rodriguez, L., Beckwith, E. J., French, A. S., Jamasb, A. R., & Gilestro, G. F. (2017). Ethoscopes: An open platform for high-throughput ethomics. PLoS biology15(10), e2003026.

Kling, J. (2018). Diy goes in vivo. Lab Animal, 47(6), 143-146. https://www.nature.com/articles/s41684-018-0066-z

Gillestro lab website

나는 자넬리아가 구축한 그 비싼 초고속 카메라와 엄청난 장치로 분석한 초파리 행동유전학 논문들보다, 질레스트로 교수가 구축한 에토스코프가 만들어낸 연구들이 과학에 더 큰 가치를 지닌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냥 그런 연구가 더 좋다. 그러면 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