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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뇌지도와 화무십일홍

자넬리아 연구소의 전 연구소장이었던 게리 루빈 G.M. Rubin이 네이처에 논문을 출판했다. 연구소장직에서 은퇴하고 여전히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더니, 무려 초파리 커넥텀 데이터를 이용한 어마어마한 행동유전학 논문을 만들어냈다. 커넥텀 데이터라는게 있다는 정도만 아는 나 같은 연구자에겐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논문이다.

Schretter, C.E., Hindmarsh Sten, T., Klapoetke, N. et al. Social state alters vision using three circuit mechanisms in DrosophilaNature (2024). https://doi.org/10.1038/s41586-024-08255-6

논문을 대충 보니 초파리의 행동상태에 따라 신경회로의 구성이 달라진다는걸 커넥텀 데이터를 이용해 증명한 모양이다. 아래 회로도를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복잡한 여러 뉴런들이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암컷 초파리가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시각회로의 지형도가 저렇게 세 가지 형태로 바뀐다는 뜻인 것 같다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어쩌면 전성기에 그 중심에서 발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 책 <플라이룸>에는 게리 루빈을 중심으로 한 자넬리아 연구소 초파리 행동유전학자들의 압도적인 연구에 절망했던 내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쓰여 있다. 지금은 담담하게 그 시절을 회고할 수 있지만, 자넬리아는 적어도 초파리 행동유전학을 커넥텀과 유전학 도구의 발전을 통해 괴물 같은 분야로 만들어버렸다. 이젠 초파리 신경회로의 지도를 개별 뉴런의 수준에서 행동과 연결하는 일이 가능하고, 이 정도의 수준에서 연구하지 않으면 신경회로 연구자라고 말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 버렸다.

얼마전엔 네이처에 초파리 뇌지도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표지로 알려지며 무려 7편의 초파리 신경회로 연구가 출판되었다. 그 논문에 이름이 들어가 있는 학자들이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주류 마피아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알기론 한국인 중엔 UC 산타바바라의 김성수 교수가 이 그룹에 들어있다. 그나저나 이 와중에 YTN은 초파리 뇌지도 완성을 치매정복과 연결시키는 참 구태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차피 어디에서도 주류가 되어보지 못한 인생이라, 이젠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발전 또한 조금 떨어져 관조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넬리아가 초파리 뇌지도에 쏟아부은 돈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꼬마선충 커넥텀이 완성된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신경회로의 연결에 관한 일반이론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아직도 행동유전학자와 신경생물학자들은 복잡한 신경회로의 일부분을 장님 코끼리 만지듯 연구하고 있을 뿐이다. 꼬마선충보다 더 큰 초파리의 뇌지도가 완성되었다고 이 상황에 큰 반전이 생길까? 네이처를 장식하는 초파리 커넥텀 논문이, 그것조차 커넥텀 데이터를 이용하는 주류에 속한 그룹에서만 출판할 수 있는 논문이 더 많이 등장하리라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런 논문들이 과연 두뇌의 비밀에 대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걸 알려주게 될까? 내 솔직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고, 솔직한 느낌은 이런 연구가 돈낭비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초파리 신경회로의 원리에 다가갈수록, 인간뇌의 비밀에 더 가까워질까? 생체시계 유전자처럼 분명 유전자 연구는 그런 비교가 가능했다. 유전자의 기능은 진화의 과정에서 아주 잘 보존된 구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회로의 메커니즘 또한 그럴까? 나는 그 지점이 도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알츠하이머병, 즉 치매의 원인으로 수십년간 지목되었던 아밀로이드 가설은 거의 폐기되었다. 심지어 아밀로이드를 완벽하게 없앨 수 있는 항체치료제가 나왔지만, 치매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알츠하이머 연구자들과 학회 그리고 제약회사와 투자자들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아밀로이드 가설만 믿고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고, 이젠 심지어 가설이 거의 틀렸다는 점에 대다수가 동의함에도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어쩌면 과학계의 가장 큰 비극으로 기록될 일인지 모른다.

오바마가 들고 나왔던 인간뇌지도 사업에 대한 비판은 사업의 시작부터 끊이지 않았다. 나 역시 커넥텀에 대한 환상은 미국행정부가 만들어낸 일종의 과학계의 뉴딜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뇌에 대한 연구는 중요하다. 하지만 과연 뇌연구를 위한 자원의 대부분이 인간뇌지도와 초파리 및 생쥐의 뇌지도를 그리는데 낭비되어야 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게리 루빈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 하워드 휴즈 재단을 설득해 구축한 자넬리아 연구소와, 그 자넬리아에서 시작되어 괴물이 되어버린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진화를 목격한 운 좋은 세대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네이처를 장식하고 있는 이 이해조차 힘든 초파리 신경회로 연구논문들이, 화무십일홍인 듯 싶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권력은 십 년을 못가고 활짝 핀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한다.”